미래의 도래
농경시대에는 공간이 축소되는 동안 시간은 확장되었다.
수렵채집인은 다음 주나 다음 달에 대해 생각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농부들은 미래의 몇 해나 몇십 년이라는 세월 속으로 상상의 항해를 떠났다.
수렵채집인들은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는데다 먹을 거리나 소유물을 저장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도 모종의 사전 계획을 도모한 것은 분명하다.
쇼베, 라스코, 알타미라 동굴의 예술품을 만든 사람들은
작품이 수십 수백세대 이어지도록 의도한 것이 확실히 보인다.
사회적 동맹과 정치적 라이벌 관계는 장기적인 성격을 띤다.
은혜를 갚거나 복수를 하는 데는 흔히 여러 해가 걸린다.
그럼에도 수렵채집인의 생업경제에서 장기 계획을 세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수렵채집인들은 그 덕분에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자기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일을 걱정해봐야 무의미했다.
농업혁명 덕에 미래는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농부들은 언제나 미래를 의식하고 그에 맞춰서 일해야 했다.
농업경제의 생산 사이클은 계절을 기반으로 했다.
몇 개원에 걸쳐 경작을 하고 나면 짧고 뚜렷한 수확기가 뒤따랐다.
풍성한 수확을 모두 끝마친 날 밤 동부들은 마음껏 축하를 할 수 있었지만,
그로부터 한두 주일 이내에 다시 새벽에 일어나 들판에서 온종일 일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식량은 오늘, 다음 주, 다음 달 먹을 것까지 충분했지만
이들은 다음해와 그 다음 해 먹을 거리까지 걱정해야 했다.
매래에 대한 걱정은 생산을 계절적 사이클뿐 아니라
농업 자체의 근본적 불확실성에도 뿌리를 두고 있었다.
대부분의 마을은 아주 제한된 종류의 재배작물과 가축을 기르며 살았기 때문에
가뭄, 홍수, 병충해에 취약했다.
농부들은 소비하는 것보다 더 많이 생산해야 비축분을 만들 수 있었다.
저장고에 곡물이, 지하실에 올리브오일 통이, 식료품 저장싱에 치즈가,
서까래에 소시지가 매달려 있지 않으면 흉년에 굶어 죽을 위험이 있었다.
그리고 흉년이나 흉작은 늦든 이르든 오게 마련이었다.
나쁜 시절이 오지 않을 것이란 전제하에 사는 농부는 오래 살지 못했다.
그 결과 농업의 도래와 함께 비로소 인간의 마음속 극장에서
매래에 대한 걱정은 주연배우가 되었다.
비가 내려야만 논밭에 물을 댈 수 있는 지역에서 우기의 시작은 걱정의 시작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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