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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17권
26.3. 식육연(食肉緣)
[自述] 이 하나의 가르침에도 역시 권교(權敎)와 실교(實敎)가 있다.
권교를 말하자면 비니율(毘尼律)에 의거해야 한다.
세존께서는 처음에 도를 이루셨을 때 추악한 범부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미세한 것까지 말하기에는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우선 점교(漸敎) 가운데에서 세 가지 깨끗한 고기에 대하여 설명하셨으니,
자기 자신을 위하여 죽이는 것을 보지 말고, 자기를 위하여 죽인 것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며, 자기를 위하여 죽인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새가 먹다 남긴 것이거나 저절로 죽은 것 동을 말 하는 것으로 이런 것들은 먹어도 된다고 허락하셨다.
대강의 것을 먼저 말하고 자세한 것을 나중 말하여 점차로 허물을 여의게 한 것이니, 이는 별시(別時)의 뜻이요 불요의(不了義)의 말씀이다.
또 실교에 의거하여 말하면 처음 도를 증득한 때로부터 열반하는 날 밤에 이르기까지 시종 열어 놓지 않으신 것이다.
또 『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하였다.
“일체 중생들이 그 고기의 냄새를 맡으면 모두 다 공포에 떨며 자기도 죽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을 낸다.
물과 육지와 허공으로 다니는 목숨이 있는 무리는 모두 그를 버리고 도망치면서 다 말한다.
‘이 사람은 우리들의 원수이다.’
이런 까닭에 보살은 고기를 먹지 않으나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고기 먹는 일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그렇지만 비록 고기 먹는 것을 나타낸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말로 먹는 것은 아니니, 다만 모든 중생들이 그 나타내 보이신 것에 집착하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여래께서 방편으로 하신 말씀과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곧 비니에 국한하여 가르친 것을 치우치게 집착하면서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 깨끗한 고기는 먹어도 된다고 허락하셨다.’
그들은 또 나를 비방하며 말한다.
‘여래께서도 직접 잡수셨다.’
이렇게 말하기는 하나 저런 어리석은 사람들은 큰 죄장(罪障)을 이루어서 긴 세월 동안 이익이 없는 곳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또한 현재와 미래에 현성(賢聖)의 제자들조차도 만날 수가 없거늘 하물며 장차 모든 불(佛)ㆍ여래(如來)를 뵈올 수 있겠는가?
대혜(大慧)야, 모든 성문인(聲聞人)들은 언제나 쌀과 밀가루와 기름ㆍ꿀 따위를 먹으면서 깨끗한 생활을 해야 한다.
법답지 못하게 저축하거나 법답지 못하게 받아 취하는 것도 나는 깨끗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였고, 오히려 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거늘 하물며 살과 피의 깨끗하지 못한 것을 먹으라고 했겠느냐?
다만 고기를 먹으면 선을 깨뜨리고 도를 장애할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삿된 생활을 하게 되어 아첨하고 비뚤어진 마음으로 스스로 살아갈 궁리만 할 것이므로 역시 도를 장애하게 되느니라.”
또 『문수사리문경(文殊舍利問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자기만을 위하여 잡은 것이면 먹어서는 안 된다.
만약 고기가 마치 숲 속의 나무 같고 이미 저절로 썩어서 문드러지려고 할 때, 그것을 먹고 싶으면 그것은 먹을 수도 있다.
그리고 만약 고기를 먹고 싶으면 꼭 이 주문을 설해야 한다.
다냐타 아나마아나마 아시바다아시바다 나
사나사 다가다가 바불바불 승가율다미 사하
이 주문을 세 번 외우고 난 뒤라야 비로소 고기를 먹을 수 있다. 밥도 또한 먹지 않아야 한다. 왜냐 하면 만약 사유(思惟)할 때에는 밥도 먹지 않아야 하겠거늘 더구나 고기를 먹어서야 되겠는가?
부처님께서 문수사리(文殊舍利)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은 자비(慧悲)의 힘도 없으면서 살해하려는 마음을 품으므로 이러한 인연 때문에 고기 먹는 것을 금지했지만,
만약 해치려는 마음을 품지 않고 크게 자비한 마음으로 일체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서라면 아무런 죄가 없느니라.’”
[自述] 이는 또한 처음으로 점차적인 제도를 가르치기 이전의 일이다.
그러므로 다만 자신을 위해 죽인 것이면 먹어서는 안 되나
만약 저절로 죽어서 썩어 문드러지려 하는 것으로 풀이나 나무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면 우선 먹어도 된다고 개방하여 허용한 것이다.
그리고 고기를 먹으려고 하는 사람은 그로 하여금 주문을 외워 부끄러운 마음을 내게 한 연후에 먹으라고 허락하셨다.
만약 고기 먹는 것을 제도를 만들어 금지한 후였다면 일체의 온갖 고기, 즉 저절로 죽었든지 새가 먹다 남은 것이든지를 따질 필요 없이 다 먹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미증유경(未曾有經)』에서 술을 마시도록 개방한 것과 같은 것이며,
『문수문경(文殊問經)』에서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개방한 경우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경전 등을 헤아려보면 이것은 모두 여래께서 처음 도를 이루셨을 때에 중생들의 근기를 헤아려서 아예 끊어버리거나 아주 금지하지는 않으신 것이니, 그런 까닭에 첨차 개방하기도 하고 점차 금지하기도 하였다.
뒤에 중생들의 근기가 성숙해졌음을 아시고는 곧 아주 끊어버리고 아주 금지하여 가는 털만큼도 허락하지 않으셨다.
만약 그 근원(根元)을 초출(抄出)해 보지도 않고 어느 때 어리석은 사람이 편벽되게 이 경전만을 원고 곧 함부로 계율을 범하면 이것은 개차통색(開遮通塞)에 차이가 있음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통틀어 수록한 점돈(漸頓)의 글에 대하여 그 본말(本末)의 의미를 알아야만 중생들로 하여금 아주 끊게 하고 열어 드러내는 청정한 행(行)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문] 술은 정신을 온화하게 하는 약이요 고기는 굶주린 것을 배부르게 하는 음식으로서 예나 지금이나 의미가 같거늘 지금 유독 무슨 까닭에 더럽게 여기면서 먹지 못하게 하는가?
만약 불교의 청정한 금계(禁戒)를 상을 당했을 때의 예의제도에 적용한다면 그것은 곧 엄한 군주[嚴君]를 마주하고서 세속의 음식을 버리라고 칙명하는 경우와 같은 것이다.
어찌 스님들에게 관련된 허물이라 하여 막아서 먹지 못하게 하겠는가?
[답] 절개 있는 범부는 재물을 탐하고 여색 좋아하는 것을 천하게 여기며, 청렴한 선비는 좋은 반찬과 맛있는 음식만 즐기는 것을 나쁘게 본다.
애정을 끊고 도를 따르는 것은 옛 성현들이 찬탄하는 바요, 욕심을 억제하고 덕을 숭상하는 것을 옛날 지혜로운 사람들은 똑같이 찬탄했다.
더구나 고기는 살아 있는 목숨을 죽여야 하는 것이고 술은 정신을 혼란하게 하기 때문에 먹지 않는 것이 도리이거늘 어찌 그것을 그르다고 하겠는가?
비록 위에서 억압을 당하더라도 끝까지 엄격하게 끊어야 할 것이요, 비록 임금의 명을 어기는 것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부처님의 마음을 따라야 할 것이다.
[문] 고기는 살아 있는 목숨을 해쳐야 하므로 끊어야 한다고 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술이야 생명에 손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왜 아주 먹지 말라고 금지하는가?
만약 손해를 끼치는 일이 없는데도 죄를 따지고 죄가 없는데도 그르다고 말한 다변 음료수를 마시고 밥을 먹는 것도 역시 죄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늘 어째서 술만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하는가?
[답] 계율을 만드는 것은 사건을 따라서 제정하는 것이고 죄를 얻는 것은 마음에 의거하는 것이다.
고기는 그 자체가 살생의 근원이 되므로 그것을 먹으면 곧 죄가 되거니와 술의 성질은 손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나 지나치면 정신을 혼미하게 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죄를 짓게 한다.
그러한 허물이 생기는 이유는 술 때문이므로 술을 끊으면 곧 없어지게 된다.
그런 까닭에 막고 억제하는 것이지 단지 술 그 자체가 죄가 된다고 말한 것과는 다른 것이다.
[문] 죄에는 차죄(遮罪)와 성죄(性罪)가 있다.
술 그 자체에 죄가 생긴다고 해 보자.
그럴 경우 지금 술에 잘 견디는 사람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고 또 정신을 가리지도 않을 뿐더러 죄를 짓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람은 술을 마셔도 마땅히 죄를 얻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렇다면 술을 마셔도 과실이 없고 허물을 초래하지 않거늘 무슨 관계로 술을 끊음으로써 좋은 계율을 성취한다고 말하는가?
말하자면 아무리 마셔도 술을 견뎌낼 수만 있다면 항상 계율을 지킨다고 해야 할 것이요, 조금만 마셔도 취하는 사람은 곧 큰 죄인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답] 계율을 제정하여 잘못을 막는 것은 본래 선(善)한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한 것이므로 계율이란 곧 선에 머무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몸과 입으로 어김이 없고 인연 가운데 그치고 쉬어서 차제와 성죄의 두 가지를 다 끊어야 비로소 선한 계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술을 잘 견뎌내는 사람은 이미 정신이 산란하지도 않고 다른 계율을 깨뜨리지도 않았으므로 실제로나 이치상으로나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녕 술을 마심으로써 죄의 원인이 발생하기 때문에 밖으로는 차죄의 가르침을 어기는 것이고, 인연 가운데에서 범죄가 생기기 때문에 오히려 죄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술을 마시지 말라는 계율을 어겼으므로 계율을 지킨 것이 아니다.
첫 번째로 사실에 의거하여도 손해가 있다.
경에 의하면 고기를 먹는 사람에게는 열 가지 과실이 있다.
첫째는 일체 중생은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 지금까지 모두가 자기 자신의 친척 이었으므로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입능가경(入楞伽經)』에서 말하였다.
“‘내가 다섯 갈래의 세계를 윤회하는 중생들을 관찰하건대 함께 나고 죽음 속에 있으면서 서로 함께 나서 기르고, 번갈아 부모ㆍ형제ㆍ자매와 남자 또는 여자가 되어 중표내외(中表內外)의 육친 권속이 되며, 혹은 다른 세계인 선한 세계나 악한 세계에 태어나 언제나 권속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인연으로써 내가 중생들을 관찰하건대 서로 번갈아가며 고기를 먹으나 친척이 아닌 이가 없다.
고기를 먹는 맛 때문에 서로서로 잡아먹으며 향상 해치는 마음을 내어 괴로운 업을 더욱 자라게 하므로 나고 죽음의 유전(流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 때에 여러 악한 나찰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악한 마음을 다 버리고서 고기 먹는 일을 중단한 채 먹지 않았고 서로 번갈아가며 보리심(菩提心)을 내도록 권했으며, 중생들의 목숨을 보호하고 또한 자기의 몸도 보호하면서 온갖 고기를 다 먹지 않았다.
그리고 구슬피 울며 눈물을 흘리더니 세존께 아뢰었다.
‘저희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여섯 갈래 세계를 자세히 살펴보니 저희들이 먹었던 고기가 모두 저희들의 친척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서야 고기를 먹는 중생은 바로 저희들의 큰 원수요, 크게 자비한 종자를 끊고 착하지 못한 업을 자라게 하여 큰 고통의 근본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들은 오늘부터 결단코 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며, 또한 저희 권속들까지도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여래의 제자로서 고기를 먹지 않는 이가 있으면 저희들은 마땅히 밤낮으로 친근히 하여 옹호하겠으며,
만일 고기를 먹는 이가 있으면 저희들은 마땅히 그에게 크게 불이익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대혜야, 나찰 같은 악한 귀신은 항상 고기를 먹는 자인데도 내 말을 듣고는 오히려 인차한 마음을 내어 고기를 먹지 않거늘 하물며 나의 제자로서 착한 법을 행하는 이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허락하겠느냐?
만일 고기를 먹는 사람이 있으면 이는 곧 중생들의 큰 원수요, 나의 거룩한 종자를 끊는 자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대혜(大慧)야, 만일 나의 제자로서 내가 말한 것을 듣고서도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 고기를 먹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곧 전다라(旃陀羅)의 종자요 나의 제자가 아니며 나 또한 그들의 스승이 아님을 마땅히 알아야만 하느니라.’
둘째는 고기 먹는 중생을 본 이는 모두 다 놀라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마땅히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저 경전에서 말한 것과 같다.
“고기를 먹는 사람은 중생들이 그 냄새를 맡으면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여 도망쳐 멀리 떠나가 버린다.
그런 까닭에 보살은 여실(如實)한 행을 닦고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마땅히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
비유하면 마치 전다라(旃陀羅)와 사냥꾼ㆍ도아(屠兒 : 白丁)ㆍ물고기와 새를 잡는 사람들이 어느 곳을 가든
중생들이 멀리서 보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제 정녕 죽게 될 것이다. 저기 오는 사람은 바로 매우 악한 사람이며, 죄와 복을 알지 못하고 중생들의 목숨을 끊으며 눈앞의 이익만을 구하고 있다.
지금 이곳으로 오는 것은 우리들을 잡기 위해서이다. 이제 우리들의 몸엔 다 고기가 있으니 그런 까닭에 지금 그들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은 정녕 죽게 될 것이다.’
대혜야, 사람들이 고기를 먹으므로 말미암아 이를 본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이와 같이 놀라고 두려운 마음을 내게 하느니라.
대혜야, 일체의 허공과 땅에 살고 있는 중생들이 고기를 먹는 사람을 보면
모두들 공포에 떨면서 다음과 같이 의심을 내어 생각한다.
‘나는 이제 죽게 될까, 살게 될까?
이와 같이 악한 사람은 자비한 마음을 닦지 못하는 것 또한
마치 승냥이와 이라가 세간을 돌아다니며 항상 고기를 찾아 먹는 것과 같고,
마치 소가 풀을 먹고 쇠똥구리가 똥을 쫓아가면서도 배부른 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우리의 몸은 바로 고깃덩어리인지라 곧 저들의 먹이가 될 것이니, 마땅히 저들과 마주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그들을 버리고 도망쳐서 멀리 달아나는 것이 마치 사람들이 나찰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과 다름이 없느니라.”
셋째는 고기를 먹는 사람은 다른 이의 신심(信心)을 무너뜨린다. 그런 까닭에 마땅히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저 경전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만약 고기를 먹으면 중생들은 곧 일체의 신심을 잃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세간에는 믿을 만한 사람이 없구나.〉
그리하여 신보(信報)를 끊어버린다.
그러므로 대혜야, 보살은 중생들의 신심을 보호하기 위하여 모든 고기를 다 먹지 않아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세간의 어떤 사람은 고기 먹는 것을 보고 삼보를 헐뜯으며 이와 같이 말하기 때문이니라.
〈부처님의 법 가운데 어느 곳에 진실로 청정한 행을 닦는 사문(沙門)과 바라문(婆羅門)이 있단 말인가?
성인으로서 본래 먹어야 할 음식을 버리고 중생을 먹는 것이 마치 나찰과 같구나.〉
나의 법륜(法輪)을 끊고 성인의 종자를 없애는 것은 모두가 고기를 먹는 이의 허물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대혜야, 나의 제자라면 악한 사람이 삼보를 헐뜯고 비방하는 것을 방호하기 위해서라도 마침내 고기라는 생각조차도 내지 않아야 하겠거늘 하물며 고기를 먹을 수 있겠느냐?’”
넷째는 자비한 마음과 욕심이 적은 수행인은 마땅히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저 경전에서 말한 것과 같다.
“‘보살은 나고 죽음을 벗어나기 위하여 마땅히 생각을 오로지하여 자비스런 행으로 욕심을 적게 가지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하며, 세간의 괴로움을 싫어하고 속히 해탈을 구하여야 한다.
만약 시끄러운 곳을 버리고 텅비고 한가한 곳으로 나아가 시다림(屍陀林)이나 아란야처(阿蘭若處)ㆍ무덤 사이[塚間)ㆍ나무 아래 등지에서 혼자 앉아 사유(思惟)하며, 모든 세간을 관찰하면 세간 것은 하나도 즐길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처자와 권속은 마치 목에 씌우는 칼과 쇠사슬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하고
궁전과 누각은 단단한 감옥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하며,
모든 귀중한 보배를 보되 마치 똥무더기와 같다고 생각하게 하고
온갖 음식을 보되 마치 피고름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하며,
모든 음식을 받으면 마치 종창[癰瘡]에 바르는 것 같다고 생각을 하게 하면서
목숨이 존재하는 동안 생각을 성인의 도에 매어 두고 술ㆍ고기ㆍ파ㆍ부추ㆍ마늘ㆍ염교 동의 냄새나는 맛을 탐내어 먹지 않고 이런 것들을 다 버려 먹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이와 같이 한다면 이 사람은 참다운 수행을 하는 사람이어서 온갖 인간과 하늘들에게 공양을 받을 만하다.
만약 세간에 대하여 싫증내어 떠나거나 하지 않고 온갖 맛인 술ㆍ고기ㆍ냄새나는 채소를 탐내고 집착하여 이런 것들을 다 먹는다면 세간의 신시(信施)를 받아서는 안 된다.’”
다섯째는 고기를 먹는 사람은 다 과거 세상에서 일찍이 악한 나찰이 되었던 일이 있어서 그 습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예전처럼 고기를 탐낸다.
그런 까닭에 마땅히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저 경전에서 말한 것과 같다.
“모든 중생들은 과거에 일찍이 한량없이 많은 인연을 닦았으므로 미세한 선근(善根)이나마 있어서 내 법을 들을 수 있고, 믿는 마음을 내어 출가하여 내 법 가운데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일찍이 나찰의 권속이나 호랑이ㆍ이리ㆍ사자ㆍ고양이ㆍ살쾡이 따위에 태어난 적이 있는 사람은
비록 나의 법 안에 있다 하더라도 고기를 먹던 습기가 남아 있기 때문에 고기 먹는 사람을 보면 기뻐하면서 가까이하고,
모든 성읍(城邑)과 마을 또는 사찰에 들어가서도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모든 하늘이나 사람들 보기를 마치 나찰 이 죽은 시체를 먹는 것과 같아서 조금도 다름이 없다고 여기면서도 그는 이미 나의 대중을 잃고 나찰의 권속이 되었음을 알지 못하고 있다.
비록 가사를 입고 수염과 머리를 깎았다고 하더라도 생명이 있는 중생이 보면 마음에 두려움이 생겨 마치 나찰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할 것이니라.’
여기에서는 고기를 먹는 이는 다 과거 세상에 일찍이 나찰이나 사자ㆍ호랑이ㆍ이라ㆍ고양이ㆍ살쾡이 따위로 태어났었기에 그러하니, 때문에 마땅히 고기를 끊어야 한다는 것을 밝혔다.
여섯째는 고기를 먹은 사람은 세간의 주술(呪術)을 배움에 있어서도 오히려 성취할 수 없거늘 더군다나 출세간(出世間)의 법을 어떻게 증득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저 경전에서 말한 것과 같다.
“세간에서 삿된 소견을 지닌 모든 주술사(呪術師)가 만약 고기를 먹으면 주술을 성취하지 못한다.
삿된 술법을 성취함에 있어서도 오히려 고기를 먹으면 안 되거늘 더구나 나의 제자로서 여래의 무상성도(無上聖道)를 증득하고 세간을 벗어나는 해탈을 구하기 위해 큰 자비를 닦는 사람이겠느냐?
정진(精進)하고 고행(苦行)을 해도 오히려 얻지 못할까 두렵거늘 하물며 어느 곳에 마땅히 이와 같은 해탈이 있겠느냐?
그런데도 저 어리석은 사람들은 고기를 먹으면서 그 과보를 얻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대혜야, 나의 모든 제자로서 세간을 벗어나는 해탈과 즐거움을 구하려 한다면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느니라.”
일곱째는 중생들은 다 몸과 목숨을 사랑하나니, 자기 자신과 다름이 없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저 경전에서 말한 것과 같다.
“고기를 먹으면 색력(色力)이 생겨나므로 사람들은 대부분 탐착하여 그 맛을 탐하지만 마땅히 일체 세간에서 몸과 목숨이 있는 것이라면 저마다 스스로를 보배처럼 소중히 여기고 죽는 고통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다.
자기 몸을 보호하고 아끼는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간에 다른 게 없다.
차라리 옴병에 걸린 야간(野干)의 몸으로라도 살아 있는 것을 좋아하지 목숨을 버린 뒤에 온갖 하늘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왜냐 하면 그것은 죽음의 고통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로써 관찰해 보건대 죽음이란 큰 괴로움이요 가히 두려운 법이니,
자신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어떻게 살생하여 다른 이의 고기를 먹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대혜야, 고기를 먹고자 하는 이는 먼저 자기 자신을 생각해 보고 다음에는 중생을 자세히 관찰해 보아야 하나니, 마땅히 꾀를 먹어서는 안 되느니라.”
여덟째는 고기를 먹는 사람은 모든 하늘과 성현들이 다 그에게서 멀리 떠나고 나쁜 귀신조차도 그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된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저 경전에서 말한 것과 같다.
“대개 고기를 먹는 사람은 모든 하늘들도 그에게서 멀리 떠나가거늘 하물며 성인이겠느냐?
그러므로 보살은 성인을 뵙기 위해서는 마땅히 자비를 닦되 기필코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대혜야, 고기를 먹는 사람은 잠을 잘 때에도 괴롭고 깨어나서도 괴롭다. 만약 꿈 속에서 갖가지 나쁜 일들을 보고 놀라고 두려워하여 털이 곤두서고 마음이 항상 불안(不安)하다면 이것은 인자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온갖 선업의 힘이 다하게 되어 만약 그가 아무도 없이 한가한 곳에 혼자 있게 된다면 대부분의 비인(非人)이 그의 틈을 엿보게 될 것이고, 호랑이ㆍ이리ㆍ사자들조차도 다 그에게로 와서 틈을 엿보다가 그의 고기를 먹으려고 할 것이므로 항상 마음이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편안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아홉째는 고기를 먹는 사람은 깨끗한 것조차도 먹어서는 안 되거늘 하물며 깨끗하지 못한 고기이겠는가?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저 경전에서 말한 것과 같다.
“나는 범부가 깨끗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깨끗한 음식을 먹을 때에도 오히려 마음에 자식의 고기와 같다는 생각을 내라고 했거늘
하물며 성인이 아닌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을 허락하겠는가?
그들이 성인에 대하여 아무리 집착한다 해도 고기는 한량없는 모든 과실(過失)을 내기 때문이다.
세간을 벗어나는 데 대한 온갖 공덕을 설하는 내가 어떻게 모든 제자들에게 온갖 살과 피가 있는 깨끗하지 못한 맛을 먹으라고 했겠느냐?
내가 허락했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율(內律)에 말하였다.
‘살아 있는 고기와 피 따위를 먹으면 투란차죄(倫蘭遮罪)가 된다.’”
열째는 고기를 먹는 사람은 죽으면 곧 다시 악한 나찰 동의 세계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저 경전에서 말한 내용과 같다.
“고기를 먹는 중생은 과거에 고기를 먹었던 훈습(薰習) 때문에 대부분 나찰ㆍ사자ㆍ호랑이ㆍ이리ㆍ승냥이ㆍ표범ㆍ고양이ㆍ이라ㆍ솔개ㆍ올빼미ㆍ수리 따위나 새매 동으로 태어나게 된다.
생명이 있는 무리들은 어느 것이나 제각기 스스로의 몸을 보호하고 다른 것들로 하여금 틈을 주지 않게 하면서 굶주림의 고통을 받고 있으므로 항상 악한 마음을 내어 남의 고기를 먹으려는 생각을 하기에 목숨을 마치면 다시 악한 세계에 떨어져서 그곳의 생을 받나니,
사람의 몸조차 얻기가 어렵거늘 하물며 장차 열반(涅槃)의 도인들 얻을 수 있겠느냐?
따라서 고기를 먹으면 이와 같은 일 등의 한량없는 모든 과실이 있게 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런 까닭에 수행하는 사람은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하나니, 그렇게 하면 그것이 한량없는 공덕의 덩어리가 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또 『앙굴마경(央掘摩經)』에서 말하였다.
“문수사리(文殊師利)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장(如來藏) 때문에 모든 부처님께서는 고기를 잡수시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그렇다. 일체 중생은 시작도 없는 과거로부터 나고 죽고, 죽고 나기를 바퀴 돌 듯 하면서 부모ㆍ형제ㆍ자매 아닌 것이 없었으니, 그것은 마치 재주 부리는 아이가 무상하게 변하고 바뀌는 것과 같느니라.
그러므로 자기의 살과 남의 살이 곧 한 가지 살이니라.
그런 까닭에 모든 부처님께서 고기를 잡수시지 않는 것이니라.’
다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곧 하나의 세계요, 먹는 살도 곧 똑같은 살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두 고기를 잡수시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저절로 죽은 소가 있다고 하자.
그 소의 주인이 그 소 가죽을 가지고 신을 만들어서 계율을 지키는 사람에게 보시한다면 마땅히 받아야 하겠느냐? 받지 말아야 하겠느냐?
만약 받지 않는다면 이것이 곧 비구로서의 법이나 만약 받으면 자비가 아니다.
그러나 계율을 깨뜨린 것은 아니니, 일단 변형된 것이라서 살생의 인연을 여의었기 때문이니라.’”
또 이 경전에서 말하였다.
“중생의 몸 속에는 팔십만 마리의 벌레가 있다.
만약 한 중생의 생명을 끊으면 곧 팔십만 마리나 되는 벌레의 생명을 끊는 것이 된다.
만약 굽거나 지지거나 물에 담그거나 햇볕에 말리거나 하면 거기에도 모두 작은 벌레들이 있고 날아다니는 나비와 파리, 그리고 구더기들이 붙어있으므로 이와 같이 하여 엎치락 뒤치락 하며 곁에 붙어 있는 한량없는 생명을 죽이게 되나니, 비록 제 손으로 죽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죽인 것이 된다.
그러나 백정은 스스로 먹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해도 그것은 모두가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위해서 죽인 것은 된다.
그러므로 고기를 먹는 사람은 곧 살생업(殺生業)의 죄까지 겸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혹 어떤 출가한 승니(僧尼)들은 그 몸을 가람(伽藍)에 의탁하고 있으면서 모든 속인들과 함께 공공연하게 한데 어울려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며 냄새나고 매운 채소와 잡되고 더러운 것으로 가람을 더럽히고 있으면서도 존안(尊顔)을 향해 부끄러워함이 없나니, 이와 같이 혼잡하거늘 어찌 외도보다 낫다고 하겠는가?”
또 『니라부타지옥경(尼羅浮陀地獄經)』에서 말하였다.
“몸이란 마치 조각난 살과 같은 것인데 그것을 알지 못하여 이것은 누구인고 하니, 이것은 모두가 술을 마셨기 때문이다.
출가한 승니들로서 어찌 겸전의 가르침을 깊이 믿고 마음에 큰 부끄러움을 내지 않고서 스스로 바른 법을 버리며 외도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겠는가?
만약 다른 중생들이 아비의 고기를 씹어 먹는 것은 그 중생이 제 아비의 고기를 먹는 것이요,
만일 다른 중생들의 어미의 고기를 먹는 것은 그 중생이 제 어미의 고기를 먹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매ㆍ형제ㆍ남녀ㆍ육친(六親)들이 모두 서로 마주 대하면서 원수가 또 원수가 되어 서로가 그 원수를 갚으므로 벗어날 수가 없다.”
또 『사미니계경(沙彌尼戒經)』에서 말하였다.
“살생하지 말고 중생들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되 마치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듯이 해야 하고 움직이는 벌레를 불쌍하게 여기되 어린아이와 같이 여겨야 한다.
무엇을 살생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몸과 입과 뜻을 보호하면서 몸으로는 숨을 헐떡거리는 사람이나 짐승을 가벼이 보지 않는 것이니,
자신의 손으로 해서도 안 되고 남을 시켜서 해서도 안 되며,
죽인 것을 보았으면 먹지 말아야 하고 죽이는 소리를 들었어도 먹지 말아야 하며,
죽인 것이라는 의심이 나도 먹지 말아야 하고 나를 위하여 죽인 것도 먹지 말아야 한다.
또 입으로는
‘꼭 죽여야 한다. 꼭 해쳐서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말을 하지 말고, 또한
‘죽어서 속시원하다. 죽여서 속시원하다. 어느 것은 살이 피둥피둥 쪘고, 어느 것은 말랐다. 아무개 살은 많고 좋으며, 아무개 살은 적고 나빴다’는 등의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뜻으로도 또한 생각하지 말아야 하나니,
중생들을 불쌍하게 생각하되 마치 자신의 골수(骨隨)와 같이 여기고 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또는 자식처럼,
이와 같이 차별이 없어야 할 것이며, 널리 한결같은 마음으로 평등하게 여겨야 하며, 항상 대승(大乘)에 뜻을 두어야 할 것이다.”
또 『현우경(賢愚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바사닉왕(波斯匿王)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오랜 옛날 아승기겁(阿僧祇劫) 전에 이 염부제(閻浮提)에 한 큰 나라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바라내(婆羅奈)였습니다.
그 때의 국왕은 이름이 바라마달왕(波羅摩達王)이었는데 그는 네 종류의 군대를 거느리고 산에 들어가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왕은 못가 늪지대에 이르러 서 짐승을 보고 쫓아 달려갔습니다. 그 수레는 혼자만 탈 수 있었으므로 자기 혼자만이 깊은 숲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왕은 그 때 몹시 피곤하였으므로 말에서 내려와 잠깐 동안 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숲 속에서는 욕심(欲心 : 婬心)이 성대한 암사자 한 마리가 그 짝을 구하기 위해 다니고 있었으나 피곤하기만 할 뿐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숲 사이에서 왕이 홀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음욕의 생각이 더욱 왕성해져서 그 왕에게서 음욕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으로 그의 곁에 가까이 가서 꼬리를 치켜 들고 등을 돌린 채 서 있었습니다.
왕은 그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스스로 생각하였습니다.
〈이 사나운 짐승의 힘은 능히 나를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의 뜻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혹 위태로운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왕은 두렵고 무서웠기 때문에 곧 사자의 뜻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리 하여 일을 끝낸 뒤에 사자는 되돌아갔고, 여러 병사들이 떼를 지어 그곳에 이르렀으므로 왕은 군중들과 함께 곧 궁성으로 돌아갔습니다.
사자는 그 뒤로 새끼를 배었고 날이 흐르고 달이 차자 곧 새끼 하나를 낳았는데, 형상은 전부 사람과 같았고 다만 발에 얼룩진 점만[斑蘭]있는 것이 다를 뿐이었습니다.
사자는 그 새끼가 왕의 아들임을 알고 곧 물고 가서 왕의 앞에다 놓아 주었고, 왕도 역시 그가 자기의 아이임을 알았으므로 곧 거두어 길렀으며, 발에 큰 얼룩점이 있었으므로 이름을 반족(斑足)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아이가 점점 자라나자 재주가 뛰어났고 의지가 용맹스러웠습니다.
부왕이 죽자 반족은 그 뒤를 이어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 때 반족왕에게는 두 부인이 있었는데, 첫째는 바로 왕의 종족이었고 둘째는 곧 바라문의 종족이었습니다.
반족이 놀러 나가면서 두 부인에게 권유하여 자신의 뒤를 따라오라고 하면서 말하였습니다.
〈누구든지 먼저 도착한 사람이 있으면 마땅히 하룻동안 그 사람과 지극히 재미있게 놀아주겠노라. 그러나 뒤에 온 사람과는 만나지도 않겠노라.〉
왕이 떠난 뒤에 그 두 부인은 각자 매우 장엄하게 꾸미고서 수레를 타고 함께 떠났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는 도중에 천사(天祠)가 있었으므로 범지(梵志) 종족의 부인은 수레에서 내려 예배를 올리고 예배를 마치고 난 뒤에 오느라고 나중에 도착하였습니다.
왕은 본래 했던 말대로 그를 앞에 오지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성이 나서 천신(天神)을 원망하여 말하였습니다.
〈당신에게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왕에게 박대를 당하고 있습니다. 만약 천신으로서 힘이 있다면 왜 저를 보호하지 못하십니까?〉
그 뒤에 천사를 부수고 그 터를 평지처럼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천사를 지키던 신은 몹시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 궁성에 이르러 왕궁을 헐어버리려고 하였으나 천신이 길을 막고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산 속에는 한 선인(仙人)이 살고 있었는데 왕이 항상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는 날마다 끼니 때가 되면 궁중으로 날아서 들어왔으며, 반찬이 보잘것없거나 밥이 거칠면 먹지도 않았습니다.
하루는 우연히도 선인이 오지 않았으므로
천신이 그것을 알고 변화로 그의 모습이 되어 그가 평소에 앉았던 자리에 앉아서 밥은 먹으려 하지도 않고 어육(魚肉)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곧 그의 말대로 마련하여 갔다 주자 그제서야 먹고 나갔습니다.
다음날 먼저의 신선이 오자 그에게 어육을 차려 주었는데,
선인이 왕에게 성을 내었습니다.
그러자 왕이 말하였습니다.
〈큰 선님이시여, 어제는 칙명하여 어육을 찾으시더니, 오늘은 왜 드시지 않으십니까?〉
선인(仙人)이 대답하였습니다.
〈어제는 몸이 아파서 어제 하루 종일 오지 못했소. 그런데 그 누구를 가리켜 나라고 말하는 것이오?
나를 업신여기며 시험하려 하는구료. 왕으로 하여금 이 뒤로 열두 해 동안 항상 사람의 고기를 먹게 하겠소.〉
이 말을 마친 뒤에 날아서 산속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 후에 주감(廚監 : 주방장)이 깜빡 잊고 피를 장만하지 못했는데, 끼니 때는 다 되고 아무 대책이 없자 밖에 나가서 고기를 구하다가 살지고 하얀 모습의 죽은 어린 아이가 땅에 떨구어져 있는 것을 보고 생각하였습니다.
〈우선 급한 대로 이것으로 때우도록 하자.〉
그리고 곧 머리와 다리를 잘라 가지고 가서 주방에 들어가 온갖 맛있는 조미료와 약을 가미하여 음식을 만들어 왕에게 올렸습니다.
왕은 그것을 먹어 보고는 평소 고기보다 갑절이나 더 맛있음을 느끼고 곧 주감에게 불어보았습니다.
〈이제껏 먹던 고기는 이렇게 맛있지 않았었다. 이것이 무슨 고기냐?〉
주감은 당황하고 두려워하면서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만약 왕께서 죄를 용서해 주신다면 곧 감히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왕이 그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오직 진실하게만 말하면, 네 죄는 묻지 않겠다.〉
그러자 주감은 앞에 있었던 일을 왕에게 자세히 갖추어 아뢰었습니다.
왕이 말하였습니다.
〈이 고기는 참으로 맛있구나. 지금 이후로는 이런 고기만 구해다가 장만하도록 하라.〉
주감이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지난 번에는 우연히 죽은 아이를 만났습니다만 다시는 더 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왕이 또 말하였습니다.
〈너는 다만 은밀하게 붙잡아 오기만 하라. 설령 발각되는 일이 있더라도 결단 하여 처리하는 것은 내게 달려 있지 않으냐?〉
주감은 분부를 받고 밤마다 항상 몰래 아이를 잡아다가 그 아이를 잡아서 끼니 때마다 왕에게 공양하였습니다.
그 때 성 안에 살고 있는 인민들이 저마다 거리를 헤매면서 통곡하여 말하였습니다.
〈아이를 잃어버렸다.〉
그렇게 자꾸만 소문이 퍼지면서 서로 묻곤 하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까?〉
모든 신하들은 모여서 의논하다가 마땅히 시험삼아 몰래 엿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곧 길거리 곳곳마다 사람을 배치해 살피게 했는데, 왕의 주감이 남의 어린아이를 끌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곧 그를 붙잡아 단단히 묶어가지고 왕에게 데려가서는 앞서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말하자 왕이 말하였습니다.
〈그 일은 내가 시켜서 한 일이다.〉
모든 신하들은 원한을 품고 각자 밖으로 나와 의논하였습니다.
〈왕은 곧 도둑입니다. 우리들의 아들을 잡아다 먹었으니 말입니다. 사람을 잡아먹은 왕과 어떻게 함께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 마땅히 다 같이 제거하여 이 재해[禍害]를 없애야만 합니다.〉
모두가 마음을 같이 하여 함께 공모한 뒤에 일시에 한곳에 모여 곧 그 왕을 포위하고 당장 잡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왕은 병사들이 몰려온 것을 보고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무엇 때문에 나를 에워싸고 핍박하느냐?〉
모든 신하들이 대답하였습니다.
〈무릇 왕이란 백성을 양육하는 것이 그의 본분인데 결국에는 아이를 붙잡아다가 주방장을 시켜서 음식 거리로 삼고 있으니, 그 가혹한 일을 그대로 두지 못 하겠소. 그 때문에 왕을 죽이려 하오.〉
왕은 모든 신하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지금 이후로는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소. 오직 용서만 해준다면 마땅히 스스로 힘써 고치겠소.〉
그러자 여러 신하들이 말하였습니다.
〈절대로 놓아주지 않겠소. 여러 말할 필요가 없소.〉
그 때 왕은 그 말을 듣고 자기 자신은 기필코 죽게 될 것임을 알고 곧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비록 나를 꼭 죽여야만 한다고 해도 잠깐 동안 늦추고 내 한마디 말을 들어 주시오.〉
그리고는 곧 스스로 서원을 세웠습니다.
〈내 이 몸은 그 동안 닦은 선행(善行)으로 왕이 되어서 바르게 다스렸고 선인(仙人)을 공양하면서 많은 덕을 쌓았사오니, 오늘의 저로 하여금 마음을 돌이켜 날아다나는 나찰로 변하게 하옵소서.〉
그 말을 마치자마자 그의 말대로 허공으로 날아가면서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들은 힘을 합쳐서 강제로 나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나는 큰 행운에 힘입어 다시 스스로 구제될 수 있었다.
지금 이후로는 너희들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차례로 잡아 먹을 것이다.〉
이런 말을 마치고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산속 숲 사이에 머물면서 날아다니며 사람을 잡아 메고 와서 음식을 삼았으므로 온 인민들은 두려워서 숨거나 피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있은 뒤부터는 많은 사람들을 잡아먹었으며, 여러 나찰의 무리들도 그에게 자꾸 붙어서 돕고 따랐으므로 그 무리들은 점점 많아지고 해치는 일도 더욱 광대해졌습니다.
뒤에 여러 나찰들이 반족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저희들이 받들어 섬기며 왕으로 모시겠으니, 부디 한 패가 되어 주십시오.〉
왕은 곧 허락하였습니다.
〈여러 왕들을 꼭 붙잡아 와서 오백 명을 채우도록 하라. 그러면 너희들과 한 패가 되겠다.〉
허락이 떨어지자 각자 모두가 가서 그들을 붙잡아다가 깊은 산 속에 가두었으므로 사백아흔아홉 명의 왕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이 모자랐으나 뒤에 그 하나마저 붙잡아 왔으니, 그의 이름은 뒤에 수타소미(須陀素彌)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덕이 큰 사람이었는데 나찰왕에게 청하여 이레 동안의 휴가를 받았습니다. 휴가가 다 끝나자 다시 돌아온 수타소미는 널리 법을 설하고 살생의 죄와 그에 따르는 악한 과보를 분별하여 주었으며, 다시 인자한 마음으로 살생하지 않음으로써 생겨나는 복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반족왕은 환희하면서 공경하고 존중히 여기며 예들 올렸고 그의 가르침을 받들어 다시는 살해하려는 마음이 없어져서 모든 왕들을 다 석방하여 각기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수타소미는 곧 병사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반족왕을 데리고 본국으로 와서 왕이 되게 하였습니다.
앞의 선언이 맹세한 열두 해가 다 갔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이후로는 다시는 사람을 뜯어 먹지 않았으며 드디어 다시 패왕(覇王)이 되서 백성들을 옛날처럼 잘 다스렸습니다.
그 때 수타소미왕은 바로 지금의 나였으며, 반족왕은 바로 지금의 앙굴마라(央掘摩羅)였습니다.
그 때 열두 해 동안 반족왕에게 잡아먹힌 모든 사람들은 바로 지금의 앙굴마라에게 죽임을 당한 모든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사람들은 세상마다 늘 앙굴마라에게 죽임을 당했고, 나 또한 세상마다 선으로써 그를 항복받았습니다.
그 앙굴마라는 바로 지금의 지만(指鬘)비구입니다.’
그 때 바사닉왕(波斯匿王)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만비구는 많은 사람을 죽였고 잡아 먹은 뒤에도 도를 증득했사온데, 앞으로 그 과보를 받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시여, 행한 것은 반드시 과보가 있습니다.
지금 방 안에 있는 이 비구는 지옥의 불이 털구멍으로부터 나와 극히 괴로워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는데 말로는 다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한 비구에게 칙명을 내리셨다.
‘너는 문을 밀치고 지만의 방으로 가서 문구멍을 뚫고 살펴보아라.’
비구는 곧 분부를 받들고 가서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았더니 스스로 불에 타서 녹아버리고 있었다.
비구는 깜짝 놀라 두려워하면서 돌아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행한 것에 따르는 과보가 이와 같은 것이니라.’
그리하여 왕과 그곳에 모인 대중들이 믿고 이해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게송을 읊는다.
재물과 여색, 그리고 술을
세 가지 미혹이라고 이름하나니
신하들이 탐닉하면 집안을 잃게 되고
임금이 이를 중하게 여기면 나라를 잃게 된다.
고기는 커다란 자비를 장애하고
냄새나고 매운 채소는 깨끗한 덕을 막나니
도를 품고 있는 군자라고 하면
이렇게 더러운 것을 욕심내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