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린다 : 적은 게 많은 것이다.
우리 실험 중에 가장 유명하고 논란도 가장 뜨거웠던 것은
가상의 여성 린다가 등장하는 실험이다.
아모스와 나는 판단에서 어림짐작의 역할, 그리고 어림짐작이 논리와 양립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 린다 문제를 만들었다.
우리는 린다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린다는 31세의 미혼 여성으로, 직설적이고 아주 똑똑하다. 철학을 전공했다.
학생때는 차별과 사회 정의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반핵 시위에도 참여했다.
1980년대에 학생들에게 이 묘사를 읽어주면 학생들은 항상 웃음을 터뜨렸다.
린다는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에 다녔다는 걸 금방 알아챘기 때문이다.
당시 이 대학은 급진적이고 정치 문제에 관심 있는 학생들로 유명했다.
우리는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린다가 등장하는가능한 시나리오 여덟 가지 목록을 보여주었다.
톰 W문제에서도 그랬듯이, 참가자들 일부는 시나리오를 대표성에 따라 순위를 매겼고,
일부는 확률에 따라 순위를 매겼다.
린다 문제도 톰W문제와 비슷하지만, 반전이 있다.
린다는 중학교 교사다
린다는 서점에서 일하고, 요가 수업을 듣는다.
린다는 여성운동에 적극적이다.
린다는 정신보건 사회복지사다.
린다는 여성유권자동맹 회원이다.
린다는 은행 창구 직원이다.
린다는 보험 영업사원이다.
린다는 은행 창구 직원이고, 여성운동에 적극적이다.
이 문제에는 당시 시대 배경이 여렷 등장한다.
지금은 여성 유권자동맹이 예전처럼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여성 '운동'이란 개념도 어색하게 들리는데,
지난 30년 동안 여성의 지위가 달라졌다는 증거다.
그러나 페이스북 시대인 지금도 그때와 일치되다시피 하는 공통된 의견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린다는 여성운동에 적극적인 사람의 이미지와 아주 잘 어울리고,
서점에서 일하고 요가수업을 듣는 삶과도 꽤 잘 어울린다.
하지만 은행 창구 직원이나 보험 영업사원은 영 아니다.
이제 목록에서 주요 항목에 주목해보자
린다는 은행 창구 직원에 더 잘 어울리는가, 여성운동에 적극적인 은행 창구 직원에 더 잘 어울리는가?
사람들은 한결같이 린다가 전형적인 은행 창구 직워보다는
'여성운동에 적극적인 은행 창구 직원에 더 잘 어울린다고 입을 모은다.
전형적인 은행 창구 직원은 여성운동에 젖극적이지 않다.
그런데 여기에 구체적인 내용을 더하니 좀 더 조리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반전은 확률 판단에 있다. 두 시나리오에는 논리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벤다이어그램을 생각해보자,
'여성운동을 하는 은행 창구 직원'이라는 집합은 '은행 창구 직원' 집합 안에 포함된다.
여성운동을 하는 은행 창구 직원은 모두 은행 창구 직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린다가 여성운동을 하는 은행 창구 직원일 확률은
은행 창구 직원일 활률보다 '반드시' 낮아야 한다..
어떤 사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할 수록 확률은 낮아진다.
이 문제는 대표성 직관과 확률 논리가 상충하는 경우다,
우리는우선, 실험 참가자 집단별로 조건을 달리해 집단끼리 비교하는 ''피험자 간 설계' 실험부터 실시했다.
이때 각 참가자에게 중요항목('은행 창구 직원' 또는 '여성운동을 하는 은행 창구 직원')이
하나만 포함된 일곱 가지 항목을 보여주었다.
참가자들 일부는 유사성으로 항목에 순위를매겨야 했고, 일부는 확률로 순위를 매겨야 했다.
그 결과 톰W의 경우처럼, 유사성으로 매갠 순위나 확률로 매긴 순위나 평균이 일치했고,
둘 다 '여성운동을 하는 은행 창구 직원'이 '은행 창구 직원'보다 순위가 높았다
다음으로 한 집단 안에서 비교하는 '피험자 내 설계' 실험을 실시했다.
이때는 앞의 목록처럼 '은행 창구 직원'을 여섯 번째 항목에 넣고,
'여성운동을 하는 은행 창구직원'을 마지막 항목에 넣었다.
우리는 실험 참가자가 두 항목 사이의 관계를 눈치채고 논리에 맞게 순위를 매길 것으로 확신했다.
그 확신이 너무 강해서, 그 부분을 따로 실험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조수는 그 실험실에서 다른 실험도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참가자에게, 실험 참가료를 지급해야 하니 나가면서 서명을 해달라.
그런데 그 전에 추가로 린다 설문지를 작성해달라고 했다.
조교 책상에 설문지가 열 장쯤 쌓였을 때 나는 별 생각 없이 설문지를 흝어보다가
실험 참가자들이 빠짐없이 '은행 창구 직원보다 '여성운동을 하는 은행 창구 직원'에
더 높은 순위를 매긴 것을 보게 됐다.
그때 너무 놀라 그 순간 금속 책상의 회색 빛깔과 주변 풍경이 정지된 사진처럼
'섬광 기억'으로 남아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모스에게 재빨리 전화를 걸어 우리가 발견한 것을 이야기했다
"논리하고 대표 성을 붙여놨더니, 대표성이 이겼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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