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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사 시집속의 시 읽기( 임승유/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
고통을 고통스럽지 않게, 슬픔을 슬프지 않게 그려내는 여유와 순환의 목소리/ 이령
임승유 시인의 첫 시집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는 고통과 슬픔으로 점철된 삶의 단면을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에서 시적발아를 일으키며 감정의 노출이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감정에 이입 시키는 잔잔한 울림의 매력이 있다.
“사라져버리지 않기 위해 웅얼거리는 모든 존재들을 한꺼번에 이해했”고 “그 웅얼거림을 받아 적기 시작했을 때 시적인 것들이 만들어졌다”는 시인의 다짐처럼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에서 시적발아가 시작되는 시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채로운 구성의 이 번 시집을 통해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규정된 틀을 벗어나고자 하는 시인의 자유의지가 돋보이는 시편들이지만 그 목소리는 과하지 않고 여유로우며 어떤 사건과 고통도 순환한다는 것을 암시하며 편안하게 독자의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이번 시집 전체를 재독하며 가장 아프게 읽은 작품은 [책상] 이었다.
엎드렸다 일어나면 온도가 심어지는 책상, 앉아만 있던 태두리가 피부가 된 여기서만 얘들인 얘들, 나는 좌석표를 만들게 아직 못 온 얘, 빈칸은 너란다. 알맞은 온도란 이런 것일까 계속해서 아이들이 태어난다. [생략] 라며 시인은 고통을 고통스럽지 않게 슬픔을 슬프지 않게 따뜻한 호명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시인이 시를 쓸 때, 작품에 얼비치는 모든 현상과 사유는 그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좌절의 틀 안에서 한계를 가지기 마련 아닐까? 그래서 시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변형동물, 즉 아메바 같다는 생각을 한다. 시가 무엇이다 정의하기에 앞서 시의 개방성을 염두 해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시의 항구성은 시의 정의 이전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임시인의 시편들은 자유롭다. 때문에 틀의 경계가 불명확하다. 이름 없는 사건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당겨와 재생산 한다. 살아서 꿈틀 거린다. 그러나 넘치지 않는 감정의 물결이 잔잔하고 따뜻하다. 그래서 나는 임승유 시인의 시집을 아직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책상/ 임승유
엎드렸다 일어나면 온도가 심어진다 체온을 나누다 헤어진 너희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얘들아, 부르면 한꺼번에 달려오겠지만 여기서만 얘들인 얘들아 앉아만 있던 테두리가 피부가 된 얘들아 이번 시간에는 줄을 맞추자 우리가 가장 잘하는 걸 하자 나는 좌석표를 만들게 아직 못 온 애 빈칸은 너야 잘 우는 애 칼자국을 내는 애 꽃을 사러 갔다가 꽃이 되어 돌아온 애 빨갛고 노란 미열이 생긴다 엎드렸다 일어나면 꽃집 앞에서 서성이는 기분이 들고 알맞은 온도란 이런 것일까 흘러내린 얼굴을 주워 담듯 계속해서 아이들이 태어난다 빈칸을 다 채웠는데도 아직 다 오지 못한 애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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