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야 물 만나듯
진지하고 피나는 노력 헛되지 않다
어떤 사람이 먼 길을 가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래, 내가 평소 그곳에 가려고 했지.” 이렇게 의욕을 일으킨 그는 결심하고 집을 나섭니다.
집을 나선 뒤 부지런히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열심히 걷겠다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다 그렇듯이 얼마 가지 않아서 꾀가 납니다. 다리도 아픈데다 아무리 걸어도 목적지와는 가까워지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애초에 내가 왜 집을 나섰는지 그 이유도 불분명해지고, 반드시 도착하겠다고 했던 목적의식도 흐릿해집니다. 하지만 이내 뜻을 다잡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처음에 떠나겠다는 뜻을 일으키기(欲),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가기(精進), 머뭇거리거나 머물지 않도록 스스로를 자꾸 격려하기(不放逸). 이 세 가지가 다 정진입니다.
<대지도론>제15권에서는 “부처님은 전진에 대해 어느 때는 의욕(欲)이라 말씀하실 때도 있고, 정진이라, 혹은 불방일이라 말씀하실 때도 있다. 그러므로 알아라. 욕구에서 정진이 생기고, 정진이 생기기 때문에 불방일하게 되고, 불방일한 까닭에 온갖 좋은 법들이 생겨나고 나아가 불도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온갖 선하고 착한 일과 지혜의 완성도 정진이 없으면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대지도론>에서는 “정진은 근본이다.”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정진은 비와 같다고도 합니다. 좋은 밭에 좋은 씨앗을 뿌렸더라도 촉촉하게 비가 내려주지 않으면 싹이 트지 않습니다. 그처럼 전생에 아주 큰 복덕의 인연을 지었다고 해도 이번 생에 정진이 없으면 싹을 띄지 못하니, 이렇게 정진하지 않으면 금생의 이익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사람이 어찌 정진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아예 이렇게 단정 짓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정진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다.”(<대지도론>제15권)
정진은 산스크리트로 비랴(virya), 팔리어로는 비리야(viriya)입니다. 단순히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저돌적이고 용감하게 나아간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대지도론>에는 정진하는 사람의 마음가짐, 몸가짐을 몇 가지 비유로 들고 있습니다. 첫째, 기름이 가득 찬 그릇을 높이 치켜들고 대중 한 가운데를 걸어가듯 마음을 모아 정진하여 큰 이익을 얻는다. 둘째, 기울어진 집에 밧줄로 매달리거나 험한 산길을 산양을 타고 지나듯 마음을 모아 정진하여 악한 세상에서 몸이 편안해지고 명예와 이익을 얻는다. 셋째, 흐르는 물이 커다란 돌도 능히 뚫듯 게으르지 않는 마음으로 정진하여 번뇌라는 거대한 산을 부순다.
하지만 이런 세 가지 비유보다도 그 다음에 등장하는 구절이 내 눈길을 끕니다. “보살은 세 가지 생각을 해야 한다. 첫째, 내가 하지 않으면 과보를 얻지 못한다.(若我不作 不得果報) 둘째, 내 스스로 하지 않으면 다른 데에서 오지 않는다.(若我不自作 不從他來) 셋째, 내가 하는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若我作者 終不失) 이와 같이 생각하여 불도를 이루기 위해 정진하니, 부지런히 노력하되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 합니다. 그래야 물을 만납니다. 남이 파줄 때를 기다려서는 물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다 설령 내가 물을 만나지 못했더라도 그 진지하고 피나는 노력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보살은 여기서 살포시 한 걸음을 더 내밉니다. 설사 자신의 목마름이 급하지 않더라도 이웃들의 목마름을 달래주기 위해 우물을 파는 노력정진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살의 정진바라밀이라고 <대지도론>제15권에서는 말합니다.
[불교신문2953호/2013년10월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