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행동하는 기도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성직자가 왜 정치에 관여하느냐고 비판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렇게 비판하는 사람도 실상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논리로 성직자의 사회참여에 대하여 비판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할 뿐 아니라 실상 자기 탐욕을 감춘 채 그럴싸한 논리로 포장한다. 얼핏 들으면 맞는 논리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전혀 타당하지 않다.
그들이 말하는 ‘왜 정치에 관여하느냐?’라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성직자의 사회참여는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부조리와 불의를 고발하는 목소리일 뿐이다. 그것이 정치 영역이든 경제 영역이든 사회 어떤 영역이든 성직자는 불의와 거짓을 향하여 외치는 시대의 목소리여야 하는 것이다. 성직자들의 목소리 때문에 불편한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왜 정치에 관여하느냐?’며 과거의 아픔을 들쑤신다.
우리 민족은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을 겪었다. 지금까지도 그 아픔이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 나라를 빼앗겨 식민 지배를 받았던 때에도, 이데올로기로 인한 남북전쟁 때에도 소수의 사람은 자신의 영달을 추구했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민주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소수의 반사회적인 사람들은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교묘하고 은밀하게 자신의 탐욕을 감춘 채 자신의 영달을 꾀한다. 이러한 거짓의 교묘함은 정치, 사회, 문화, 종교 등 제반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의외로 다수의 사람이 소수의 거짓에 놀아나고 있다. 교묘해진 거짓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신의 현실과 미래를 내주는 꼴이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자신의 선택으로 자신은 물론 자녀들의 미래까지 넘겨주는 꼴인 줄도 모르고 그렇게 살 수 있다.
지금의 사회는 정의로운 사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의로운 지식인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거짓이 너무 지능화되어 가기에 단순한 의협심만으로는 그것에 대항하기가 부족하다. 게다가 사회의 공기(公器)인 언론마저 거짓의 하수인이 되어가는 마당이니 예리한 통찰력이 아니고서는 무엇인 진실이고 참인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의 사회의식을 갖추었다면 좋으련만, 지금의 역사도 어느 정도는 그런 절차를 밟아가고는 있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를 보면 정의로운 지식인, 통찰력 있는 지식인이 아쉽다. 지식인 대다수는 높은 연봉으로 팔려나가는 것이 현실 있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에 의한 조작된 사회 현상은 이미 여러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정권교체가 사라진 사회가 되었고, 일부 국가에서는 사법과 행정을 장악하여 권력의 정당성을 유지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탐욕적인 대중을 선동하여 새롭게 등장하는 파쇼적 정권은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일부 국가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유야 어쨌든 최근의 사회는 일반 대중이 다중화되어 가고 있다. 세대 간이든 지역 간이든 계층 간이든 다중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정의와 진리를 실현하고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를 만든다는 일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예전에는 옳고 그름만 따지면 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서로 상충하는 이익이나 욕구를 조절해야 하는 이중과제를 준다.
지식인이나 전문가의 의견도 이제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진영이 나뉘고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중화되어버린 사회에서 어떤 이해관계에도 중립적이라 할 수 있는 성직자들만이 마치 최후의 보루로 남아있는 것 같다. 이미 일부 종교인 또한 세력화, 진영화 되어 버려 그 의미가 크게 쇠퇴했지만,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성직자들의 목소리는 우리 사회의 최후 보루가 되었다. 여기에 통찰력 있는 지식인들이 다수의 군중에게 빛이 되어주고 소금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
우리 교회는 세상 끝날까지 통찰력 있는 지식인과 함께 세상에 외쳐야 한다. 우리가 바르게 서 있지 않은 한, 민족의 화해도 평화 통일도 허상에 불과하다. 거짓의 세력들이 민족의 화해 문제마저도 자신의 영달을 위해 이용하려 든다. 수많은 거짓의 논리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장악하려 든다. 정말로 정신 차려야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매국노, 앞잡이, 밀정들이 횡행했다면, 오늘날 현재에도 여전히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매국노들, 권력 앞에서 스스로 고개 숙이며 동조하는 앞잡이들, 국가 공권력을 사유화하여 정적(政敵)을 제거하는 새로운 밀정들이 나타났다.
위기는 기회다. 우리 민족에게 주신 이 위기에서 지혜롭게 기회를 만들어가는 우리 사회가 되길 기도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행동한다. 나의 기도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