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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쳤으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 겨워하노라”
이성계 정도전의 역성 쿠데타를 거부하고 고려의 멸망을 애닲아하며 낙향해 은거한 고려 유신(遺臣) 길재와 원천석이 각각
작자다. 안동시 풍산읍 소산마을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시(詩)다. 나라를 이끌던 인물들의 못자리 역할을 했던 소산이
요즈음은 한적한 시골마을로 옛 영화는 온데 간데 없다.
안동김가는 신라 왕족인 신라김씨로 고창 성주였던 김선평 태사 이후 후손들이 방방곡곡에 살지만 안동 풍산의
소산리는 대표적인 안김(安金) 마을이다. 같은 신라 종성인 상락김씨(경순왕의 손자를 시조로 하는
세칭 구안동김or선안동김)도 소산리에 일부 살고 있지만.
소산리에서 태어난 보백당 김계행, 그리고 김계권의 아들로 문호이자 세조의 왕사(王師) 학조대사가
초기 인물들이다. 조선시대 중기에는 그 후손인 김상용과 김상헌이 대표적. 김상헌이 청원루에서
가르친 (양)손자 영의정 김수항, 김상용의 손자 김수홍 등 '3수(三壽)‘, 그 증손들 김창집 김창협 김창흡
김창업 김창즙 김창립 ’6창(六昌)'이 안김의 최전성기 인물들. 조선시대 말과 구한국시대에도
6창의 먼 후손 중 정조의 고명대신 김조순(金祖淳)을 비롯해 '순'자, '근'자, '병'자 항렬 안김들이 나라를 이끌었다.
흥선대원군의 정적 찬성 김병기, 영의정 김병학, 영의정 김병시(총리대신)뿐만 아니라 김옥균 김가진 김좌진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들이 소산이 뿌리다.
지금 이 시대에 소산리에 연원을 둔 역사적 인물들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공(功)과 과(過)를 분석해
교훈으로 삼고 특히 그들이 추구했던 올바른 긍정적인 정신은 계승해야 할 것이다.
김빈이 짓고 청음 김상헌이 이름 지은 청원루(淸遠樓)는 길안면 만휴정(晩休亭)과
함께 조선 유가와 안동김의 정신을 말해주는 문화재다. 청나라를 멀리한다는 뜻이라고
흔히들 쉽게 해석하지만, 인의예지 향기의 맑고도 멀리 퍼지는 '향원익청'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송나라 주자가 쓴 향원익청(香遠益淸)이 동아시아 유자(儒者)의
이상이기 때문이다.
소산 청원루에 앞서 전라도 부안의 누(樓)에도 이계동(李季仝)이 청원루라고 이름 붙였고,
예천 용궁에 여말에 지은 청원청(淸遠亭)도 같은 뜻이다.
안동예천이 합동으로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답게 ‘청원(淸遠) 축전’을 열어
정신문화 패스티벌을 했으면 좋겠다.
: 예천군 용궁면 무이리 소재 청원정은 고려말 국파 전원발 선생께서 노년에 휴거하신 곳이다.
역사를 따지자면 안동 소산의 청원정보다 앞선 건축물임을 명심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