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체육관 앞마당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 피해자는 서울 중앙은행 외환부 차장 민준수, 42세. 사인은 독극물 중독으로 추정되었다.
현장에는 세 가지 특이점이 있었다.
첫째, 시체 주변에 고양이 네 마리가 모여 있었다. 둘째, 피해자의 손에는 참새 깃털이 쥐어져 있었다. 셋째, 주머니에서 발견된 메모지에는 "1,487"이라는 숫자만 적혀 있었다.
강력계 형사 이준혁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직감했다. 이것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다.
"고양이들이 왜 도망가지 않았을까요?"
신입 형사 강유진이 물었다. 준혁은 고양이들을 바라보며 답했다.
"사람이 죽는 걸 봐도 도망가지 않을 만큼 익숙했다는 뜻이야. 이 녀석들, 매일 여기 있었을 거야."
준혁은 체육관 직원을 불렀다.
"이 고양이들, 자주 보셨습니까?"
"네, 거의 매일 있어요. 길고양이인데 온순해서 다들 좋아했죠. 참새들도 많이 와요. 옆에 공원이 있어서."
"민준수 씨는요?"
"아, 그분… 한 달 전부터 다니셨어요. 주로 저녁 시간에 오셨죠."
준혁은 고개를 끄덕이고 현장을 다시 살폈다. 참새 깃털. 그것이 핵심이었다. 피해자는 왜 참새 깃털을 쥐고 있었을까?
감식반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깃털에서 지문이 나왔습니다. 피해자 본인 것입니다. 그리고 독극물은 청산가리로 확인됐습니다."
"청산가리라…"
준혁은 메모지를 다시 봤다. 1,487.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음 날 아침, 준혁은 중앙은행으로 향했다. 민준수의 사무실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외환부는 조용했다. 직원들은 동료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준혁은 민준수의 직속 상관인 부장을 만났다.
"민 차장, 최근에 이상한 점 없었습니까?"
"글쎄요… 일주일 전쯤부터 좀 예민해 보이긴 했습니다. 환율 관련해서 뭔가 고민이 있는 것 같았어요."
"환율요?"
"네. 요즘 원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고 있잖아요. 민 차장이 그 부분을 담당했거든요."
준혁은 메모장을 꺼냈다.
"1,487이라는 숫자,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
부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건… 달러 환율입니다. 정확히는 1월 13일 종가예요. 민 차장이 돌아가신 그날."
"환율이 왜 중요한 겁니까?"
"우리가 예측한 것보다 너무 빨리 올랐어요. 누군가 인위적으로 조작한 것 같다는 의혹이 있었죠."
준혁의 눈이 빛났다.
준혁은 민준수의 컴퓨터를 분석했다. 삭제된 파일들을 복구하자 이메일 몇 통이 나왔다.
발신자는 "Sparrow". 참새.
**"민 차장님, 우리의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1,500까지는 문제없이 갈 것입니다."**
**"고양이들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계속 진행하십시오."**
**"마지막 거래는 1월 13일 오후 7시. 체육관 앞에서 만납시다."**
준혁은 유진을 불렀다.
"고양이와 참새. 이건 암호야."
"무슨 암호입니까?"
"금융 시장에서 매파를 '매(Hawk)', 비둘기파를 '비둘기(Dove)'라고 부르잖아. 여기서 참새는 환율 조작에 가담한 내부자일 거야. 그리고 고양이들은…"
준혁은 민준수의 통화 기록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한 번호를 발견했다. 금융감독원 조사관의 번호였다.
"고양이는 감시자들이었어. 민준수는 내부 고발자였던 거야."
준혁은 체육관 CCTV를 다시 확인했다. 1월 13일 오후 7시, 민준수가 앞마당에 도착했다. 그는 벤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7시 23분, 한 남자가 나타났다. 얼굴은 모자와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다. 두 사람은 5분간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남자가 커피 한 잔을 건넸다.
민준수는 그것을 마셨다.
7시 35분, 민준수가 쓰러졌다. 남자는 재빨리 사라졌다.
"범인은 은행 내부자예요."
유진이 말했다.
"맞아. 그리고 이 사람은 환율 조작으로 막대한 이익을 봤을 거야. 민준수가 고발하려 하자 제거한 거지."
준혁은 은행 직원 명단을 다시 살폈다. 그리고 한 이름에서 멈췄다.
외환부 부장, 박태준.
"부장이었어. 그가 Sparrow야."
준혁은 박태준을 소환했다. 박태준은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당신이 민준수 차장에게 독이 든 커피를 건넸습니다."
"증거가 있습니까?"
준혁은 봉투를 꺼냈다.
"당신의 차에서 나온 커피 전문점 영수증입니다. 1월 13일 오후 6시 52분. 민준수가 죽기 31분 전이죠. 그리고 이 영수증의 주문 내역, 아메리카노 두 잔. 하나는 당신이 마셨고, 하나는 민준수에게 줬습니다."
박태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당신의 계좌 내역도 확인했습니다. 최근 3개월간 해외 선물 거래로 23억을 벌었더군요. 환율이 오를 걸 미리 알고 베팅한 겁니다."
"그건…"
"민준수 차장이 당신의 불법 거래를 알아챘고, 금융감독원에 제보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그를 죽인 겁니다."
준혁은 또 다른 봉투를 꺼냈다.
"참새 깃털을 기억하십니까? 민준수는 죽기 직전 당신에게서 깃털을 뽑아냈습니다. 당신의 코트에서요. 그 깃털에서 당신의 DNA가 나왔습니다."
박태준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사건이 종결된 후, 준혁은 다시 체육관 앞마당을 찾았다. 고양이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참새들도 곡식을 쪼고 있었다.
"환율을 조작하고, 사람을 죽이고… 인간은 왜 이렇게 복잡할까."
준혁은 벤치에 앉았다. 회색 고양이가 다가와 그의 발치에 앉았다.
"너희는 좋겠다. 환율도, 욕심도, 배신도 모르니까."
준혁은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따뜻했다.
신문 기사는 며칠 후 1면을 장식했다.
**"중앙은행 환율 조작 사건, 부장급 직원 구속"**
숫자는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드러났다.
준혁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참새 한 마리가 날아갔다. 자유롭게.
그는 중얼거렸다.
"적어도 너희만큼은 자유롭게 살아라."
고양이가 야옹, 하고 울었다. 마치 대답하는 것처럼.
사건은 끝났다. 하지만 세상의 욕심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준혁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이 마당의 평화가 그에게 위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