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비를 바라보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랑 >
성가정(聖家庭),
거룩한 가정. 우리 신자들 안에서는
가족 전체가 가톨릭교회의 세례를 받을 때 비로소 ‘성가정이 되었다.’ 말하곤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인은 세례성사를 통해 자신의 모든 죄가 씻기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온 가족이 그렇게 거룩하다면 당연히 성가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많은 교우분들이,
이 성가정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아직 성당에 나오지 않는 가족을 채근하곤 합니다.
때때로 그 ‘거룩한 독촉’에 자못 부작용이 뒤따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열두 살 때 온 가족이 다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축제를 지내러 가신 장면이 나옵니다.
유다인들은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파스카’ 축제일이 오면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를 지내야 했습니다.
이 축제 때는 온 지역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어마어마한 인파가 붐볐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그만, 그 부모님은 어린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루카 복음서가 전해주는 것처럼, 아이를 찾기까지 사흘이 걸렸습니다.
말이 사흗날이지, 그 어린 아이를 예루살렘 북새통에 잃어버린 채로 보낸
그 삼일 간의 시간 동안 부모님의 애간장이 얼마나 녹아 녹아내렸을까요.
마침내, 성전에서 아이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태연히 율법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아이입니다.
시커멓게 타버린 부모의 속은 아는지 모르는지….
이럴 때, 보통의 부모라면 어떻게 할까요.
‘이놈의 자식, 엄마 아빠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기나 하느냐?’
1976년에 작고한 막스 에른스트(Max Ernst)라는 독일의 화가가 있습니다.
그는 1926년에 그린 자신의 한 작품에서, 어린 예수님을 무릎에 올려놓고
그 볼기를 사정없이 후려치는 성모님의 모습을 표현하여 논란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얼마나 세게 후려쳤는지,
어린 예수님의 후광이 바닥에 내동댕이쳐 질 정도였으니까요.
불경한 그림이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한편으로는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보통의 부모라면 그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거룩한 부모님께서는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이 전해줍니다.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51)
사흘 동안, 당신들 속이 정말 시커멓게 타버렸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모님과 성 요셉은
그 순간에 소년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하시는 놀라운 신비를 보셨습니다.
자신의 속 타는 마음보다,
아이 안에서 일어나는 신비를 먼저 바라보고 기다릴 줄 아는
이 거룩한 부모의 사랑에, 어린 예수님 역시도 존경과 순종의 마음으로
당신의 사랑을 부모님에게 표현합니다.
2024년 한 해를 마치며,
서로의 신비를 바라보고 기다릴 줄 아는
이 아름다운 나자렛 성가정의 사랑이,
세상의 모든 가정 안에 깃들기를 기도합니다.
윤웅렬 하상바오로 신부 | 등촌1동성당 부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