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의 '서장'통한 선공부] <3> 서장 (書狀)
증시랑에 대한 답서(1)
여래의 말은 분별심 치료하는 방편
“다만 세간의 일은 헛된 환상일 뿐 구경법(究竟法)이 아님을 알아서 마음을 이 선문(禪門)으로 돌려 지혜의 물로써 더러운 때를 씻어내고 스스로 깨끗하게 머물며, 단칼에 끊어버려서 다시는 헛된 환상을 이어가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니 앞뒤를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헛된 환상이라고 한다면, 업을 지을 때도 환상이고 과보를 받을 때도 환상이며, 깨달을 때도 환상이고 어리석을 때도 환상이며, 과거·현재·미래가 모두 환상이니, 이제 이러한 잘못을 알았다면 환상의 약으로 다시 환상의 병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병이 나아 약을 치우면 여전히 다만 옛날 그 사람일 뿐입니다. 만약 따로 사람이 있고 법(法)이 있다면 이것은 삿된 외도의 견해입니다."
”만물의 실상(實相)은 둘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실상을 보면 중생이 곧 부처요 번뇌가 곧 보리이다." 이것이 바로 육조 혜능이 <단경>에서 강조한 불이법(不二法)이며, 유마 거사의 불이법문(不二法門)이며, 색즉시공(色卽是空)의 진실이다.
그러므로 중생은 본래 해탈해 있는 것이지 해탈할 가능성을 지닌 속박된 존재가 아니다. 다만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물고기가 물 속에서 물을 찾는다’느니, ‘아쥬냐닷타가 자기 얼굴을 찾아다닌다’느니 하는 비유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번뇌에 싸여 윤회하는 중생이라고 여기는 것은 분별심의 작용에 의한 환상이지 실상이 아니다. 분별심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이미지화 관념화되어 과거·현재·미래가 있고, 중생과 부처가 있고, 업과 과보가 있어서, 삼라만상이 모두 분별되고 대립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이들은 모두 한 마음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환상이다.
그러므로 선의 공부란 이 분별심을 내려놓는 것을 위주로 한다. 그러나 분별심이라고 하여 이 마음 밖에 따로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 이 마음의 작용이다. 즉 분별심을 내려놓는다고 하여 내려놓을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실상에는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는데, 분별심이라는 환상의 병 때문에 스스로를 고통스런 중생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분별심을 내려놓는다는 것도 이미 중생과 부처, 미혹과 깨달음, 분별심과 무분별심을 나누고 있는 분별심에서의 말이다.
그렇지만 분별심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실상을 알 수가 없으므로 분별심을 반드시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므로 분별심이라는 환상의 병을 분별심이라는 환상의 약으로 치료한다고 한 것이다. 따라서 <금강경>에서는 여래가 하는 모든 말은 방편일 뿐이라고 한 것이다.
여래의 말은 진리가 아니라 환상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환상의 약일 뿐이다. 환상의 병을 환상의 약으로 치료하였으므로, 치료하고 난 뒤에도 달라진 무엇은 없다. 물고기가 본래부터 물 속에 있었음을 알았다고 무엇이 달라지며, 아쥬냐닷타가 제 얼굴이 있음을 알았다고 하여 무엇이 달라지는가? 그러므로 병을 치료한 뒤에도 여전히 옛날 그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 분별심은 어떻게 되었는가? 분별심도 여전하다. 다만 이제는 분별심의 실상을 알아서 내려놓았으므로 더 이상 분별심의 노예가 아니라는 점이 다르다. 혹자는 분별심을 내려놓는다는 말이 앞뒤를 가리지 못하고 분별 없이 막된 행동을 하는 것이라든지 아무 생각도 없는 고요함으로 오해하지만, 이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분별 없는 막된 행동이나 생각 없는 고요함은 무분별이라는 분별심에 빠져 있는 것일 뿐이다.
진정으로 분별심을 내려놓았다면 이제 분별심의 정체를 알고 있으므로 이전보다 훨씬 더 적절히 분별할 수 있게 된다. 이전은 분별심의 노예가 되어 영문도 모르고 분별심에 끌려 다녔다면, 이제는 분별심의 주인이 되어 분별심을 적절히 부릴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선이란 다만 분별심을 내려놓는 것뿐이다. 그 밖에 따로 진리를 얻는다든지, 지금의 자신과는 다른 무슨 진인(眞人)이 된다든지 한다면, 이것은 모두 이법(二法)이요 유위법(有爲法)으로서 바른 진리가 아니라 외도(外道)의 견해이다.
김태완/ 부산대 강사.철학
[출처 : 부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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