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이며 영화감독인 마르잔 사트라피는 1969년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0|란 독재정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14세에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보내져 비엔나의 프랑스계 중등학교(Lycée Français de Vienne)에 다녔다. 자전적 그래픽노블 '페르세폴리스'에 따르면 고등학생 시절 동안은 친구집에 거주하면서 비엔나에 머물렀으나, 두 달 간 길에서 부랑자 생활을 했다고 한다, 지독한 폐렴을 앓자 이란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시각 커뮤니케미션을 공부, 테헤란의 이슬라믹 아자드 대학에서 석사 학위을 받았다. 그 시절 사트라피는 친구들이 주도한 불법 정치단체를 다니다가 0|란-이라크 전쟁 참전용사 레자를 만나 21세에 결혼했다. 하지만 3년 뒤 에 사실상 미혼하고 프랑스로 이주, 스웨덴인 마티아스 리파와 결혼했다, 현재 남편과 함께 파리에 살고 있다.
그녀의 주요작품으로는 하비 상(Harvey Awards)과 알렉스 상(Alex Awards), 알프-아르 상(Prix Alph-Art) 등을 수상한 만화 《페르세폴리스》가 마르잔 사트라피의 대표작이다. 이 책에서 마르잔 사트라피는 이란에서 보낸 유년기와 오스트리아에서 보낸 청소년기, 프랑스로 가서 보낸 청년기까지를 담은 자전적 이야기를 이란의 독특한 사회·문화적 배경과 곁들여 전달하고 있다.
만화 《페르세폴리스》는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감독은 뱅상 파로노와 마르잔 사트라피가 함께 맡았고, 컴퓨터그래픽 대신 수작업을 위주로 한 흑백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 특징이다[1]. 이 영화는 2007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고 2007년 밴쿠버 국제영화제에서는 인기상을 받는 등 주요 영화제에서 총 12개 부문에 걸쳐 상을 받았다.
출판물은 이상한 나라의 율리스, Embroideries, 바느질 수다, 자두 치킨 등이 있고
영화로는 페르세폴리스, 나의 사춘기,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 더 갱 오브 더 조타스, 더 보이스, 베를린, 아이 러브 유 등을 연출했다
페르세폴리스 1·2 - 해외파 이란 여성이 본 모국
몇달 전, 미국을 필두로 한 국제사회는 이란과의 핵협상을 타결했다. 이란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그간 부과되었던 경제제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했다. 이란과 오랫동안 반목해온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 사우디아라비아뿐 아니라, 중동국가들과 뿌리 깊은 갈등상태인 이스라엘 등도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바야흐로 세계사적 전환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는 사건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이란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이란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페르세폴리스>를 읽어야 할 이유다. 저자 마르잔 사트라피는 이란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오스트리아 유학을 거쳐, 다시 고국에 돌아간 후 프랑스로 건너가 정착한 여성이다. 그는 아트 슈피겔만의 걸작 그래픽노블 <쥐>를 읽고, ‘나도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이렇게 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고국인 이란이 테러범을 지원하는 나라로만 취급되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동시에 그 이란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겪는 억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마르잔의 눈높이에서 진행되는 이 그래픽노블은 그가 10살이던 1980년에서 출발한다. 1979년의 이란 혁명으로 인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이란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마르잔이 다니던 프랑스계 남녀공학 학교는 폐교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구식 복장을 입고 자유를 누리던 소녀들은 이제 머리카락을 가리는 히잡을 두르고 종교교육을 받아야 한다. 저자의 부모는 모두 유복한 교양인이며, 그들은 세상이 바뀌었다 해도 자신들의 하나뿐인 딸에게 그 억압을 고스란히 느끼게 할 생각이 전혀 없는 좋은 부모였다. 유달리 반항심이 강하고 재능이 특출난 딸을 혁명과 전쟁의 혼란에서 구출해내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보냈다. 예측 가능하게도, 사춘기 10대 소녀는 유럽에서 온전히 적응하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미 자유의 맛을 알아버린 마르잔은 이란에서도 적응할 수 없고 소외되어버린 스스로를 발견한다. 경제적 여건과 가정환경 등에서 마르잔 사트라피는 분명 평범한 이란 사람들과는 다른 지점에 서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독재가 심화되면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질 것을 은연중에 직감한다 한들, 딸을 데리고 3개월간 해외여행을 하는 것은 1980년의 이란 사람들 중 극히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였을 것이다.
근본주의는 자유를 어떻게 억압하는가? 특히 그 억압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강요되는가? 오스트리아 유학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이란에 돌아온 마르지는, ‘집을 나서면서 베일을 제대로 썼는지 고민하고 있는 여자는 더 이상 자신의 발언의 자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게 됨’을 깨닫는다. 서구 친화적이었지만 비밀경찰에 의한 공포정치를 택했던 팔레비 국왕이 물러난 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자, 일군의 여성들은 베일로 머리를 가리지 않을 자유를 위해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스카프 아니면 몽둥이”뿐이었고, 남자들 역시 원하건 원치 않건 턱수염을 길러야만 하며 청바지를 입을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이 사소한 자유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페르세폴리스>를 통해 우리는 이란의 역사를 이해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자유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