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설(逆說, paradox)
민근홍 언어마을
# 역설(逆說, paradox)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논리의 모순이지만, 그 속에 참뜻(진리)이 숨어 있음.
# 모순형용
역설의 기교 중에서 '수식어+피수식어'의 관계가 서로 의미상 호응이 되지 않으나,(논리의 모순) 자세히 살펴 보면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 작품에 참신성을 부여하는 문학적 표현 기법
예) '찬란한 슬픔, 소리없는 아우성, 텅빈 충만, 작은 거인' 등등
# 역설의 예
고은 시 <기(旗)> 중
우리에게 이 어둠이 얼마나 환희(歡喜)입니까?
☞ 화자는 어둠을 역설적으로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곧 현실 극복의 의지적 표현임
구상 시 <초토의 시>8 중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다.
김수영 시 <폭포(瀑布)> 제5연
높이도 폭도 없이 / 떨어진다.
☞ 높이도 폭도 없는 폭포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의 폭포는 객관적 위치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 위치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김영랑 시 <두견>
너 아니 울어도 이 세상 서럽고 쓰린 것을 / 이른 봄 수풀이 초록빛 들어 풀 내음세 그윽하고 / 가는 댓잎에 초승달 매달려 애틋한 밝은 어둠을
김영랑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현승 시 <눈물>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박두진 시 <묘지송> 중
향기로운 주검의 내도 풍기리 // 살아서 섧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 삶에 대한 강한 긍정을 내포하고 있다. 죽음(주검)이 음산하고 허망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서정주 시 <견우의 노래>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상과 / 물살 몰아 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신경림 시 <농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거나 /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 자조와 한탄이 신명으로 전환되고 있다. 겉으로는 흥겨움이지만 분노의 감정이 역설적 상황 속에서 표출되고 있음
윤동주 시 <십자가>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 고통스럽게 죽어간 그리스도가 행복할 리는 없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고통을 감내한 그리스도가 '나'에 비해서는 행복한 것이라고 견주어 역설적으로 말한다.
유치환 시 <깃발>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윤동주 시 <또 다른 고향> 제2연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 온다.
이육사 시 <절정> 제4연(마지막연)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일제의 억압(겨울)이 강하면 강할 수록 극복의지도 강해짐.
정지용 시 <유리창1>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 서로 상반된 정서(별과 같은 '아름다움', 죽은 아들에 대한 '서글픔')를 수식관계로 표현하는 모순형용, 곧 역설.
조지훈 시 <승무> 중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한용운 시 <님의 침묵>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얐습니다."
☞ '보내지 않았다함'은 지금 내 곁에 사실은 없지만 언젠가 돌아올 줄 확신하기에 마음 속에 있는 것과 같다는 표현.
한용운 시 <복종>
남들은 자유를 좋아 한다고 하지만 /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한용운 시 <찬송>
님이여, 당신은 의(義)가 무거웁고 / 황금(黃金)이 가벼운 것을 잘 아십니다.
이형기 시 <낙화>
분분한 낙화...... /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 지금은 가야할 때.
이은상 양장시조 <소경 되어지이다> 전문
뵈오려 안 뵈는 님 눈 감으니 보이시네 / 감아야 보이신다면 소경 되어지이다.
신경림 시 <목계장터>
석삼 년에 한 이레쯤 천치(天痴)로 변해 /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 하네
☞ 천치가 되어 아무 고달픔 없이 살고 싶은 마음의 역설적인 표현
한용운 시 <이별은 미의 창조>
☞ 이별이 있어야만 아름다움이 있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세계관의 반영
박종홍 논설문 <학문의 목적>
진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말로 표현하듯이 ......
☞ 道可道 非常道(도가도 비상도) -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영구불변의 도가 아니다.
박지원 문집 <열하일기> 중에서
삼류하를 건너서 냉정(冷井)에서 아침을 먹다. .... (중략)
말을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아, 통곡하기에 참 좋은 곳이로고!" 한번 통곡할 만하구나!" 했다.정 진사가 "이렇게 천지간의 위대한 광경을 만나서 갑자기 통곡하고 싶다니 웬 말씀이오?" 한다.
☞ 사람은 칠정(七情)이 극에 달하면 모두 통곡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 다음 대답으로 미루어 참뜻이 숨어 있음.
장용학 소설 <요한 시집> 중
☞ 작품 속의 누혜는 "자유의 길을 막고 있는 벽(壁)을 뚫고 나가기 위해 자기 자신을 전쟁에 던져 포로가 되었다. 포로수용소에서 그는 하나의 각성에 도달하는데, 그것은 "부자유(不自由)를 자유주의로 받아 들이는 이 제3노예가 현대의 현대의 영웅이라는 인식"이었다. 자유라는 것도 참된 인간이기 위한 최종의 장소가 아니라 그 뒤에 올 참된 것을 위한 가상에 지나지 않는다. 자유도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누혜는 철조망에 목을 매고 죽는다. 여기서 철조망은 역설적으로 '자유'를 상징한다.
하근찬 소설 <수난이대>
갑판 위에 올라가 보니 하늘은 활활 타오르고 있고, 바닷물은 불에 녹은 쇠처럼 벌겋게 우쭐렁거리고 있었다. 지금 막 태양이 물 위로 뚝 떨어져 가는 것이었다. 햇덩어리가 어쩌면 그렇게 크고 붉은지 정말 처음이었다. 그리고 바다 위에 주황빛으로 번쩍거리는 커다란 산이 둥둥 떠 있는 것이었다. 무시무시하도록 황홀한 광경에 일동은 딱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만도는 어깨마루를 버쩍 들어올리면서, 히야-하고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나 그처럼 좋아할 건덕지는 못되는 것이었다. (박만도, 섬에 도착함. 전개부)
☞ 일몰의 놀라운 광경에 도취된 상태이며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더위, 강제노동 등)과는 내용상으로 대조를 이룸
# 기타
1)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마태복음] 산상수훈(山上垂訓) 중 )
2) 유마의 한 침묵이 만 개의 뇌성소리니라 ( [유마경] )
3)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엘리어트 [황무지])
4)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이다.
5)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6) 철학은 일상적이면서 비일상적이다.
7) 공공연한 비밀
8)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