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물과 꽃이 있는 산소도시, 강원도 태백
글, 사진 노 옥 분 (시인, 수필가)
내 기억 속 태백은 늘 겨울이다. 민족의 영산 태백산도립공원 일원에서 펼쳐지던 눈꽃세상과 빛과 얼음의 축제에 한겨울 짧은 해가 아쉽던 기억이 난다. ‘녹색도시부산21 산과 숲 분과’ 선진지 탐방 장소가 태백으로 정해지고 일정이 변경을 거듭할 때에도 여름 태백을 만나고 싶은 간절함은 변함이 없었다.
가뭄과 역병(MERS)의 불안감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하던 지난 7월 18일, 산과 숲 분과 위원과 실무자 등 14명이 부산시청 주차장 앞에 집결했다. “별 일 없으시죠?” 오랜만에 나누는 안부가 살갑다. 오전 9시, 일행은 2015 탐방지인 산소도시 강원도 태백으로 출발했다.
7월 18일, 토요일
* 구름 위의 산책, 산상의 화원 함백산 만항재 야생화 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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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항재는 태백시 정선군 고한읍과 영월군 상동읍의 경계지점으로 백두대간 최고봉인 함백산 중턱 해발 1330m로 자동차가 오를 수 있는 포장도로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야생화 천국으로 산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으며 봄부터 가을까지는 야생화들이, 겨울철에는 눈꽃과 서리꽃이 잔치를 벌인다.
고갯마루에 소담하게 펼쳐진 ‘하늘숲 정원’ 탐방로에는 만항재에서 촬영한 야생화 사진과, 그 아래에 꽃이름과 유래, 개화 시기, 꽃말 등을 적어놓아 답사의 기쁨을 더한다. 휴식하기 좋도록 나무탁자와 의자가 놓여있어 간간히 다리쉼을 하기에도 좋다.
전국 최대 규모의 천연야생화 군락지인 만항재 주변 4만1천여㎡에는 200종이 넘는 야생화들이 자생하고 있다. 산상의 화원 ‘만항숲길’과 ‘야생화공원’에는 초록 배경 삼아 군데군데 핀 야생화들이 환상적이다. 인위적으로 조성하지 않고 저절로 무성해진 야생화 군락지와 부드러운 흙길은 구름 위를 밟고 가는 듯 천상의 화원을 선물한다.
모만호 위원장은 ‘움직이는 백과사전’이다. 숲길에서 알게 된 야생화의 이름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고사리만도 350여 종이라는 것이 놀랍고 층층이꽃, 노루오줌, 모싯대, 하늘말나리, 솔나물, 물양지꽃, 보랏빛 노루오줌과 순백색 산꿩의다리, 흰까치수염... 풀숲에 가려진 야생화까지도 지나치지 않고 설명을 곁들이니 함께 걷는 길에 재미가 쏠쏠하다.
*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정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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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되었던 용연동굴 답사 대신 정암사를 찾았다. 고한읍에서 만항재로 접어드는 길목에 있는 정암사는 신라 선덕여왕 5년(636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고, 보물 제410호인 ‘수마노탑(水瑪瑙塔)은 적멸보궁 뒤편의 산중턱에 있다. 만항재에서 흘러내리는 지장천에는 천연기념물 제73호 열목어가 서식하고 있어 이곳이 청정자연세계임을 말해준다.
*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역, 추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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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사에서 나와 해발 855m 고지에 있는 추전역으로 갔다.
1973년 태백선 철도가 개통되어 통일호가 하루에 두 차례 운행하며, 한달 평균 10만t의 무연탄이 전국 각지로 수송된다. 이곳을 지나는 환상선순환열차가 1998년 철도청에 의해 개발되자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었다. 역사에는 탐방객을 위해 태백시 관광자원과 태백선을 소개하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연평균 기온이 남한의 기차역 가운데 가장 낮으며 적설량도 제일 많은 역이어서 한여름 외에는 연중 난로를 피워야 할 만큼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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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의 하루가 저문다. 폐광도시에서 벗어나 웰빙관광지로 거듭나는 태백의 변모가 눈에 띈다. 긴 여름해가 기울어질 즈음, 산 속의 섬 ‘설화국菊’에 여장을 풀었다. 20여 분 차로 이동해야 식사가 가능할 만큼 외진 곳이었지만 일상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숙면을 취하기에 안성마춤인 숙소였다.
7월 19일, 일요일
* 매봉산 풍력발전단지와 고랭지채소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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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30분, 숙소를 나와 매봉산 풍력발전단지와 광활한 고랭지배추밭으로 향했다.
한강발원지인 검룡소와 삼수령(피재)을 오르며 에어컨 대신 차 문을 열었다. 초록 촘촘히 배인 바람을 만지는 동안 저만치 고랭지배추밭의 풋내가 달려와 우리를 마중한다. 매봉산 정상부 능선을 따라 오르니 초록과 아침안개가 아직도 밀애 중이다. 질서정연하게 심어진 배추밭을 위풍당당한 풍력발전기 8개가 보초를 선다.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노력에 경의가 표해지는 아침이다. 고랭지배추밭을 찾기엔 8월 초순이 적기다. 이후엔 배추를 뽑느라 어수선하다고.
초록천지의 주변엔 태풍 ‘낭카’의 영향인지 개망초의 몸짓이 제법 요망하다. 곧지도 심하게 휘청대지도 않으며 보는 이의 마음을 환장시킨다. 햇볕도 쨍쨍하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으니 어제처럼 태양을 피할 일도, 우산을 받쳐야하는 수고도 필요치 않을 것 같다.
* 황지연못과 구와우마을 해바라기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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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와우마을 해바라기 밭으로 가는 길에 ‘황지연못’에 들렀다. 연못은 독특하게 시내 한가운데에 있어 볼수록 신기하다. 낙동강 1,300리 발원지로서 상지와 하지로 구분되며 어떤 가뭄에도 연못이 마른 적이 없다고 한다.
매봉산 진입로가 시작되는 삼수령 아래에 태백시 황지동 구와우마을이 있다.
소 아홉 마리가 배불리 먹고 누워 있는 형상을 가진 평화로운 마을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곳은 해발 800~900m에 위치한 고원자생식물원이다. 목장과 고랭지배추밭이던 이곳에 해바라기 밭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다. 해바라기 밭은 16만㎡(5만 평)에 이르며 동양 최대 규모 고원자생식물원을 자처한다. 식물원 초입에 펼쳐진 작은 밭(1만 평)을 돌아 야트막한 구릉 너머에 큰 밭(4만 평)이 또 있다. 축제시기보다 이른 방문이어서 그럴까. 상상했던 해바라기 밭은 어디에도 없다. 구릉 너머 큰 밭 답사를 포기하고 마을 내 미술전시관을 둘러보았다. 예술단체 ‘할아텍’에서 전시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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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의 선진지 탐방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여름 태백의 새로운 발견이 즐겁다. 백두대간의 일부인 태백산과 함백산, 고랭지채소밭과 세 강의 발원지, 동굴과 생태탐방, 천연야생화와 해바라기!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와 소의 몸통은 보지 못하고 다리만 만지작거리다 온 구와우마을 해바라기 밭을 제대로 답사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폐광과 겨울의 이미지에서 탈출한 뜻 깊은 여행이었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과의 즐거운 시간이 가져다준 긴 여운이 황홀하다.
올여름 휴가지로 바람과 물과 꽃이 있는, 산소도시 강원도 태백을 강력 추천한다.
첫댓글 덕분에
편안히 앉아서
여행을 했습니다.^^
저도 명은애 샘 옆에 나란히 앉아서 여행했습니다.고맙습니다.ㅎㅎㅎㅎㅎ
명은애, 정미선 샘!
그러셨나요? 다행입니다.
가이드는 제대로 해드렸나 모르겠네요.
여름 태백은 제게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ㅎㅎㅎ
튼튼한 누님의 다리가 부럽습니다.ㅎㅎㅎ
내가 내세울거라곤 튼실한 다리뿐인 걸.
그래서 못 빌려줍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