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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눅 2:1-7)
오래 전 연예인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주일 오후 연예인들이 모여 성경공부를 했답니다. 목사님께서 동정녀 마리아 사건에 대하여 열성을 다하여 가르쳤는데 뒤에서 한 젊은 연예인이 손을 번쩍 들더니 "목사님, 농담하지 마세요. 어떻게 처녀가 아기를 낳아요? 그런 얘기는 그만하시고 예수님께서 좋은 일을 많이 하셨잖아요. 다른 말씀을 가르쳐 주시지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께서는 더 열정적으로 예수님의 동정녀 마리아 탄생에 대하여 가르쳐 주니까 이 젊은 연예인이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계속 질문을 했답니다. 갑자기 성경공부 분위기가 이상해지니까 그 때 연예인 장로님이 벌떡 일어나 상기된 얼굴로 그 후배 연예인을 향하여 "야, 임마! 마리아 신랑 요셉도 믿었는데 네가 뭔데 안믿어?"라고 했다고 합니다.
요즈음은 과학이 발달되어 체세포 복제를 하는 것을 보면 동정녀 탄생이 과학적으로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 하늘나라의 영광을 버리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분은 여인의 후손으로 오셔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창3:15에서 여인의 후손이 와서 뱀의 머리를 깨트릴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야는 죄악의 씨를 통해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하여 세상에 오셔야 했습니다. 그분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죄없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속죄의 제물이 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예수님이 어디에 오셨습니까?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은 어디입니까? 베들레헴의 마굿간의 구유입니다.
구유라는 것은 우리 말로 하면 짐승의 밥그릇입니다. 왕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사실 하나님이 오시기에는 왕궁도 초라하지요. 아무리 좋은 호텔도 하나님을 모시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가장 낮고 천한 마굿간에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메시야가 베들레헴에 태어났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 예루살렘 사람들이 메시야가 태어났다고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정작 메시야를 찾아가 경배한 사람들은 그들이 아니라 저 동방의 박사들과 저 베들레헴 성밖에서 밤새도록 양을 지키던 목동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에서는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외면했습니다. 태어나실 방 한 칸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은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미리 지시하셨더라면 누구든지 기뻐하며 방을 내어 드렸을 텐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말구유에 탄생하신 그 자체에 깊은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1. 이는 당시의 영적상태를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어느 날 갑자기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천 년 전부터 메시아가 탄생하실 것을 거듭거듭 예언하셨습니다. 탄생하실 장소와 지명까지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저 동방에서 별을 연구하던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찾아왔을 때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메시야는 바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이땅에 오신 메시야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그토록 메시야를 기다린다고 떠들며 외쳤ㅈ지만 실제로 예수님을 찾아가 경배한 사람들은 멸시당하고 소외당했던 베들레헴 들녁에 목동들과 동방박사들뿐이었습니다.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도 못했고, 환영하지도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10-11의 말씀에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는 천군 천사가 나타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찬송을 불렀고, 이상한 별이 나타나 먼 나라 동방의 박사들이 선물을 가지고 찾아와 경배까지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자의 탄생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은 그러한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1-12) 하셨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생명의 말씀이 곳곳에 충만합니다. 수많은 교회들마다 시간 시간 생명의 말씀이 증거되고 있습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하여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 가장 귀한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형식은 있는데, 그리스도는 말구유 천한 자리에 버려 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종차별이 심할 때입니다. 어느 흑인이 백인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주님께 예배하기 위하여서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흑인은 예배 드릴 수가 없으니 나가 달라고 하여 쫓겨났습니다. 다음 주일에도 교회가 그리워서 그 교회를 찾아갔으나 역시 같이 예배드릴 수가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성전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울고 있는데 주님이 나타나셔서 묻습니다. "너는 왜 울고 있느냐.", "예배 드리고 싶어서 교회에 왔으나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울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너는 두 번 쫓겨났다고 울고 있느냐. 나는 이 교회에서 40년간이나 쫓겨났다. 나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단다." 그러더랍니다. 물론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우리는 예수님을 어디에 모셨습니까? 마치 뒷방 늙은이처럼 모셔놓지는 않았습니까? 교회당에 모셔 놓고 가끔 찾아와서 예배드리는 종교의 교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우리 주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이 땅에 구경꾼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역사의 주인으로 창조자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여 주님이 최고로 만족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여러분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비천한 죄인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왕궁 높은 곳에 탄생하셔서 상아 침대에 누워 계셨다면 양치는 목동과 같은 천민이 어떻게 접근할 수 있었겠습니까? 동방에서 온 이방인들이 어떻게 주님을 만나 뵙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의 예물을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기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시되, 죄 많은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누구든지 가까이 나아와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시고자 말구유에 탄생하셨습니다.
기독교는 귀족의 종교가 아닙니다. 가난한 자, 천한 자, 죄 많은 자의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8-19)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6 이하의 말씀에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6-29)하셨습니다.
그 증거로 세계정치사에 가장 위대한 정치인인 링컨의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입니다. 발명왕으로 불리우는 에디슨의 학력은 초등학교 3개월 중퇴입니다. 기독교 사상 가장 위대한 부흥사로 알려진 무디의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약한 자, 무능한 자를 부르셔서 강한 자와 능한 자의 능력을 뛰어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오신 것은 말구유입니다. 말구유는 더러운 냄새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에 오신 것은 바로 우리의 냄새나는 죄악을 제거하고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려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또 말구유는 짐승들이 사는 곳입니다. 오늘 우리 세계를 보면 짐승같은 존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욕심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 짐승입니다.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범죄하는 사람 짐승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람이 짐승입니다. 육체에 사로잡혀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간이 이처럼 짐승으로 전락하고 더러워지고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보시고 인간을 구원하려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짐승은 영혼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기가 전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우리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서 그리스도를 빼버리면 인밖에 남지않습니다. 인은 사람 인 짜입니다. 사람은 죄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떠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없으면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번 성탄절에 여러분의 그리스도를 찿고 여러분가운데 그리스도를 모셔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겸손의 본을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더 이상 낮아질 곳이 없는 곳, 말구유에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막10:45) 말씀하시기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셨습니다, 또한 말씀하시기를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며 배우는 제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낮아지심의 삶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갑니다. 그리고 그 낮은 곳에 쌓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물과 같아서 언제나 낮은 곳에 머물게 됩니다.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낮은 곳에 임하는 것입니다. 구유도 낮은 곳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 높은 곳, 세상의 부귀영광, 성공만 바라보지 말고 겸손하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더 낮아지고 더 낮아지는 성도들이 되실 때 거기에 주님이 계시고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베들레헴에는 콘스탄틴 대제 때 마리아를 기념하여 말구유 자리에 세운 기념 예배당이 있습니다. 지금도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들은 그 예배당을 방문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념 예배당은 꽤 큰데 출입구는 하나뿐입니다. 그것도 아주 좁고 낮아서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출입문을 가리켜 겸손의 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는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는 교훈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4. 주님이 생명의 떡임을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베들레헴의 뜻은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또 구유가 무엇입니까? 짐승의 먹이를 담는 도구입니다. 짐승의 먹이통에 예수님이 누우셨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떡과 관련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하셨으며
(요 6:53-54)"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먹고 마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으로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있으면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가 없으면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우리는 먹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찬식을 통해 그 의미를 되새기고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는 곳에 영원한 생명의 보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의 인치심이 있습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하심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하셨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물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물질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아가면 물질의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1-33)하셨습니다.
물질중심의 삶에 대해 하나님은 경고하시기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9-10)하셨습니다.
인디아나 폴리스에서 1977년 2월 10일 한 부자 과부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5백만 달러(약 55억)의 현찰이 집안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발견되었는데, 심지어 쓰레기통에도 돈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마조리 잭슨이란 이 할머니는 돈으로 가득 한 넓은 집에서 혼자 살다가 죽었습니다. 참으로 웃지 못할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이 많은 사람들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초등학교 아이들은 이 여자를 불쌍하다고 말하고, 고등학생들은 대체로 잭슨 부인을 어리석다고 멸시한 데 비해, 어른들은 오히려 은근히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아기 예수로 구유에 탄생하셨습니다. 구유는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지만 그곳만이 비어 있었습니다. 또 그곳에 오신 것은 바로 가난하고 소외되고 겸손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세상은 늘 저 높은 곳만을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성공하고 잘 살고 똑똑하고 부족함이 없는 왕궁같은 곳을 꿈꾸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것은 아니다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정말 우리가 저 낮고 천한 구유에 오신 메시야를 나의 하나님 나의 주로 영접했다면 오늘 성탄절에 다시한번 그분이 오심을 깊이 생각하고 그분을 진정으로 찾아가서 그분을 경배하고 그분이 오늘에 내 속에 맞이하는 진정한 성탄절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