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김 선생
李秀珍
대학교 4년 동안 자취 생활을 하며 나는 늘 집밥이 고팠었다. 유독 크림 스파게티보다 콩국수를, 고소한 콘 스프보다 진노란 단호박죽을, 샐러드와 계란이 버무려진 베이컨이 들어간 샌드위치보다 삶은 양배추에 엄마표 쌈장에 쌀밥을 싸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토종 한국인’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다.
그런 토종 한국인이 대학교 3학년에 당차게 떠난 2주간의 유럽 여행 중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당연히 음식이었다. 대부분 식사는 탄산과 빵, 피자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피자처럼 달고 맵고 짠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 아닌 그저 짜고 기름진 피자에 혀를 찼다.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숙소에 돌아와 컵라면으로 햇반과 깻잎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나를 보며 친구는 할머니라며 놀려댔다. 결국 이탈이아에 도착하자마자 한식집을 찾아 자장밥, 비빔밥, 떡볶이로 10만원을 넘게 써버렸다.
집밥에 열광하던 나는 대학생활을 하며 주로 학교 주변의 불족발, 국물닭발, 엽기떡볶이, 불닭볶음면 등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들을 새벽에도 찾았다. 그만큼 내 입은 어느새 삼삼한 엄마표 밥보다 자극적인 MSG에 길들여 있었다.
자취생은 몸을 보양할만한 음식을 찾지도, 필요치도 않다 생각한다. 음식을 챙겨먹기 귀찮은 날에는 하루 종일 굶거나(엄마께서 아신다면 뒷목을 잡으시겠지만), 대학 행사 뒷풀이에서의 폭음이 나의 건강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두려움 없이 주변 인스턴트를 끊임없이 흡입했다. 환기가 되지 않는 자취방에서의 생활과 닭갈비집에서의 알바 탓인지 평소에 달고 살 일 없던 마른기침을 해서 주변 사람들의 걱정에 평소에 갈일 없던 내과에 다녔었다. 난 아직 20대라는 이유,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내 몸을 이리저리 학대하고 있었음을 나는 모르고 지냈다. 짧게는 이주, 길게는 한 달 마다 올라오는 엄마의 반찬과 얼린 국들이 아니었으면 이미 나는 병이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살이 찌는 체질이 아니라는 생각에 먹어치운 야식들과 술로 나는 무려 4kg이나 포동포동 쪘다. 고향에 내려오면 아빠부터 할머니까지 주변 사람들은 내 얼굴에 살이 오른 것에 자취생인데 잘 먹나보다 라며 박수를 치며 웃었다. 건강한 음식들로 찐 살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대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하고 고향에 내려왔다. 자취하면서 먹지 못하는 음식들을 쉽게 맛볼 수 있었다. 여름에는 한창 엄마 아빠와 콩국을 진하게 탄 콩국수를 먹으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내 또래와 콩국수를 먹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또한 저녁마다, 요리 하는 엄마 옆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엄마의 손짓을 가만히 보고 있는 것은 나의 또 다른 큰 재미였다. 공부를 하다 지친 나는 엄마의 칼질 소리가 들리면 의자를 빼고 앉아 가만히 지켜본다. 김치를 쫑쫑 썰어 밀가루에 퐁당 넣어 휘휘 저어 팬에 두른다. 그러나 이내 김치로는 아쉬운 듯 엄마는 부추도 쫑쫑 썰어 넣고 부친 전을 동그란 접시에 부쳐 내면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조용히 막걸리를 가져와 콸콸 쏟아 넘기신다.
어제 청국장 세 덩어리를 얻어 오신 엄마는 적당히 비개가 붙은 돼지고기, 김치, 두부를 볶아 물 조금에 청국장 덩어리를 부셔 팔팔 끓여 진한 청국장을 만들어주셨다. 진한 청국장 국물에 밥을 쓱싹 비벼 저번 주에 김장한 김치를 올려 먹으면 치킨, 피자 저리가라다. 보통은 몸에 좋은 음식은 맛없이 일쑤인데 우리나라 음식은 어찌 이리 다 맛 나는지.
부들부들한 삶은 양배추에 참기름, 양파, 간마늘과 고추장과 쌈장을 적당히 섞은 엄마표 양념장은 어느 샌드위치보다 내 입을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흰쌀밥에 삶은 양배추 하나면 밥 두 그릇은 뚝딱이다.
시장에서 알타리무가 너무도 실하다며 한 봉지를 사온 엄마는 내가 공부하고 이층에서 내려올 때까지 풀을 쑤고, 김치를 양념에 버무리셨다. 엄마 몸보다 커라단 대야에 끙끙거리며 김치를 버무리는 엄마를 보며 본인의 음식을 먹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가족을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이 보여 코끝이 찡해졌다.
공부를 하며 밖의 음식보다 집밥에 길들여지면서 나는 엄마 아빠와 함께 식사하는 포근함에 스트레스를 날렸다. 아침부터 각자의 몫을 해내고 얼굴을 마주대하는 우리 세 가족은 먹느라, 말하느라 입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아빠가 유독 어두운 날이면 엄마와 내가 재롱떠느라 바쁘고, 엄마가 유독 쳐진 날이면 무뚝뚝한 아빠는 엄마 눈치 보느라 눈동자가 바쁘게 돌아간다. 내가 유독 지쳐 보이는 날이면 바람 쐴 겸 외식으로 기분을 맞춰주시는 부모님을 보며 이런 가족 사이에서 공부할 수 있음에 그로 인해 덜 우울한 수험생활에 절로 감사가 느껴진다. 책상 앞 인강(인터넷강의)으로 하루를 시작해 끝내면서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식사는 음식뿐만 아니라 그분들의 사랑과 관심을 함께 내 속에 채우는 느낌이랄까. 이것이 같은 메뉴를 하루 종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이유인 것 같다.
집밥을 먹은 만큼 이제는 내가 보여드릴 차례. 늘 따뜻한 밥 한 끼를 위해 일 끝나고 장봐 오시는 아빠, 졸린 눈을 비비며 다음날 아침을 위해 밤 열두시까지 국을 끓이시는 엄마를 생각하며 내년에 좋은 결과로 그분들의 수고로움에 보답해드리고 싶다.
** 2년 전에 대학교 휴학하고 시험준비를 하고 있는 秀珍이가 작은 잡지에 게재했던 수필입니다.
내용이 신선하고 재미있어서 올립니다. 어렸을 때 부터 글쓰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로 상을 많이
탔습니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예쁘다고 한다지요? 그리고 秀珍이는 먹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
아주 중요하다고 합니다. 글에서 보듯이~~~문우님들, 힐링하시어요^^**
첫댓글 자질과 재질이
페밀리안 쉽 은 효의 시작이요 .마침이랍니다 .잘 커주고 키워주셨네요
내내 행복 하시기를
인강은 젊은 사람들만 알아요 우리시대에는 인터넷이 없었어요
네.
인강(인터넷강의) 첨부하여 수정했습니다.
나는 이들이 지온님의 학창시절 글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다 읽고 보니 따님 이수진양의 글을 보니 넘 좋습니다
요즘 학생느낌이아닌 오래전 제가 살던 고향 생각이 났습니다
지온님이 음식을 그렇게 잘하시는군요
작가 李秀珍을 잘 안보고
당연히 지온님인줄 알고
언제 지온님 집밤먹어보고 싶네요
어머님이 해주시는 것보다 맛있는 식사~~ 밥이 이세상이 있겠어요
아마도 없을것입니다
글을 이렇게 잘쓰는것 보면 지금 무엇을 하고있을까? 궁금해집니다
덕향문학에 등단(혹시 다른곳에서 작가로 활동하시면?) 시켜주세요
귀한 젊은 세대의 동참이 덕향문예에 뭔가 다른 꿈을 꾸게할것 같아요
아빠가 딸을 사랑하는게 느껴지고
엄마가 딸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알게되었습니다
가족의 모습이 잘 소개되어 있어서 한편의 영화을 보는듯합니다
라디오 방송에서 한밤에 들려지는 가족드라마 같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히야~~~
댓글이 감동 그 자체입니다.
감사합니다.
秀珍이에게 보여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