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 역사에서 1980년대 말, 특히 1988년과 1989년은 꽤 의미심장할 것이다. 이때 등장한 신인 가수들과 발표된 노래들은 기존에 없던 스타일을 선보이며 1990년대를 주도하거나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활동하던 여자가수들은 '신세대 가요'를 주도한 인물로 여겨지며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당시 최고의 여자가수로 자리 잡은 김완선을 비롯해 조갑경, 이상은, 안혜지, 지예, 이지연, 김혜림, 양수경, 원준희 등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들 여자가수는 1988년과 1989년 사이에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그 호응을 기반으로 남자가수들과는 다른 감수성으로 1990년대 가요 트렌드를 이끌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들의 대중성이 당시 10대들을 기반으로 했다는 사실이다. 그때 그 아이들이 지금은 30대가 되었다. 다음은 그때의 소년소녀들을 설레게 만든 노래들이다.
글 /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웹진 'weiv' 에디터)
[1988년 동아일보] "가수생활 생각보다 화려하지 못해요" 여고생 가수 이지연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와 '바람아 멈추어다오'로 1980년대 말의 가요계를 장악한 이지연은 데뷔 당시 18세였다. 데뷔 직후 전국DJ연합회 차트 1위를 차지하고 가요톱텐 상위권에 오른 그녀를 소개하는 이 인터뷰에서 재밌는 대목은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열심히 일해야 하는 반면 수입은 생각보다 훨씬 적다. 공연장의 환호성이 활력소는 되지만 가수로서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는 가늠자는 아닌 것 같다는 대목이다. 가수가 어떤 직업이며 자신이 어떻게 되고 싶은지에 대해 냉정하게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당시 이지연의 가창력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은 '미숙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위의 기사에도 언급되듯이 이지연의 매력은 기교를 부리지 않고 나오는 그대로의 목소리에 있었다. 바이브레이션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발성은 지금 들어도 굉장히 모던하게 들린다. 이런 발성이 돋보인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와 '바람아 멈추어다오'의 연속히트로 이지연은 강수지 이전에 10대 남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자가수가 될 수 있었다. 이지연의 히트곡들이 전영록 작사, 작곡이라는 점 또한 화제였는데 그로 인해 루머가 떠돌기도 했다. 1990년에 돌연 미국행을 결행, 결혼과 함께 가요계를 떠난 그녀는 2008년 이혼, 현재 미국에서 화려한 경력(2008년 전미 요리대회 2위 수상)의 요리사로 활동 중이다.
[1989년 동아일보] 가수 나애심의 딸 가수 데뷔, 김혜림의 신곡 '디디디'
김혜림은 1950~60년대에 활동한 가수 나애심('과거를 묻지 마세요'가 대표곡이다)의 딸로 1989년에 데뷔했다. 데뷔와 함께 [젊음의 행진]의 진행자로도 발탁된 그녀는 당시 새로운 스타일의 가요에 열정적으로 호응한 10대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었다. 어머니를 그대로 닮았다는 평을 듣는다'고 소개한 기사는 그녀에 대해 '허스키한 음색에 음역이 넓은 가수'라고 소개한다.
김혜림의 데뷔곡 '디디디'는 당시 새로운 방식의 전화(Direct Distance Dialing : 장거리직통전화)를 지칭하던 용어로 미래적이면서도 세련된 뉘앙스를 풍겼다. 전기기타의 록킹한 인트로와 허스키한 목소리, 장거리 연애를 잇는 매개체로서의 뉴미디어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 당시 신세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요소였던 셈이다(스마트폰이 등장하는 댄스곡을 생각해보라). 당시 10대들에게 김혜림의 인기는 김완선을 위협할 정도로 파급력이 컸는데 1991년 2집 수록곡인 '이젠 떠나가볼까'가 역시 히트하며 1990년대 초반까지 가요계의 대표적인 여자 댄스가수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1989년 경향신문] 가요계의 앙팡테리블, 원준희
1989년 '사랑은 유리 같은 것'으로 데뷔한 원준희는 등장과 함께 무서운 기세로 차트에 진입했다. 이 기사는 당시 원준희와 함께 데뷔한 신인 여자가수들을 묶어 가요계의 앙팡테리블(무서운 아이들)로 지칭되는 이들은 조갑경, 안혜지, 전명희, 원준희 등이라고 소개한다. 그중 원준희에 대해선 '다이내믹한 창법과 블루스적인 분위기 등 양면성을 가진 개성파'라고 언급하며 소녀취향의 곡과 댄스뮤직으로 다양한 음악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다.
사실 원준희는 1989년에 등장한 원히트원더(one-hit wonder)의 대표적인 가수다. 그녀의 인기는 단아한 목소리가 돋보인 '사랑은 유리 같은 것'의 서정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TV에 등장한 그녀가 긴 생머리의 순수한 소녀 이미지를 가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런 대중성을 토대로 1990년대 초반까지 인기를 누리던 원준희는 결혼과 함께(남편은 가수 현미의 아들이다) 활동을 쉬다가 2008년에 디지털 싱글 [Return]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복귀했다.
1980년대 말의 모던한 가요들 사람들은 흔히 1990년대야말로 가요계가 급변한 시기라고 얘기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단순한 설명은 1980년대 말에 등장한 가요들을 간과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요가 음악적으로 변화한 과정은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꾸준히 진행되었다. 요컨대 가요의 모더니티가 이뤄진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가 중요한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 10대들이 가요 팬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한국의 1990년대가 '10대 시장의 발견과 심화'라는 맥락에서 중요하게 거론될 때 1980년대 후반으로부터 그 근거를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 언급한 여자가수들은 그 시절의 가요에 대한 단서일 뿐이다. 중요한 건 그때 이 노래들과 가수들을 선망하고 즐겨듣던 소년소녀들이 지금은 30대가 되었단 사실이다. 때문에 우리는 2010년에 출현한 노래들로부터 1980년대 혹은 1990년대 가요의 감수성을 흔히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면 20년 후에는 또 2010년의 가요가 반영된 노래를 듣게 될까? 분명히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지금 이 시간을 제대로 즐기자.
첫댓글 기억하지요...우리 세대였음에...감합니다.
이지연 세월가도 변함없이 아름답군요...
예쁜분이 노래도 잘해서 참 많은 인기가 있었던 기억이있네요.
오랜만에 추억의 노래
감사합니다.
늘 좋은노래 많이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