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반하다]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합천군 초계면 양떡메마을
이웃과 눈인사도 힘든 요즘,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꿰뚫고 있는 마을이 있다. 합천군 초계면 양떡메마을 사람들은 담장 너머의 이웃집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타지에 나가 있는 자녀들이 연락이 닿지 않는 부모의 행선지를 다 물을 정도라는데…. 이들은 어떻게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됐을까? 글 백지혜 사진 유근종 합천군 초계 분지 속 아담한 마을 합천읍 소재지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양떡메마을. 드넓은 들녘 한가운데 소담하게 자리한 이 마을에는 50가구 100명의 주민이 산다. 주민 상당수가 60대 이상인 고령층으로 여느 시골과 다를 바 없지만 알고 보면 평범하지 않은 마을이다. 전국에서 마을 기업으로 유명한 이 마을의 아침은 마을 공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침 8시. 일찍이 출근한 직원들은 마을 공장에 도착하자마자 작업복으로 갈아입는다. 마을 주민이라 출근길은 고작 몇 걸음이 전부지만 공장에 도착하면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갓 나온 두부가 뜨끈하고 새하얀 김을 내뿜고 다른 곳에서는 떡가래가 줄줄이 이어져 나온다. 2016년 6월, 마을 소유의 땅을 마을기업에 출자해 42가구를 주주로 하는 ‘양떡메 영농조합법인(성영수 위원장)이 설립됐다. 마을에서 직접 생산, 판매하는 주요 제품은 양파즙, 떡국 떡, 메주 총 3가지. 앞글자만 따서 ‘양떡메마을’이라 이름을 바꿔 달고 연 5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공동 급식으로 시작된 마을 화합 소박한 마을에서 억 단위의 매출을 올리게 된 배경에는 그들만의 스토리가 있다. 예전 이장들은 주민들에게 알릴 사항이 있으면 으레 마을 회관으로 가서 마이크를 잡고 방송을 했지만, 합천군 최초 여성이장을 맡은 성영수 위원장은 몸소 찾아가 마을 사안을 나눴다. 가서 보니 부녀자들은 농사일이 바빠 밥과 된장으로만 대충 먹고, 배우자와 사별하고 혼자 사는 70~80대 어르신들도 아무렇게나 먹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성 위원장은 마을에서 주민들에게 밥을 제공해 준다면 이런 애로사항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하고 결정했다. ‘마을 주민 전면 무상 점심 제공’이라는 파격적이고도 신선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말이다.
공동체 생활로 확 달라진 양떡메마을 식사 준비는 부녀회원들이 도맡았다. 각자 가져온 식자재와 주민들이 기증한 품목으로 음식을 마련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밥을 먹은 뒤로는 가장 먼저 어르신들 삶이 활력을 얻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어두운 방에서 TV와 시간을 보냈던 분들이라 옷을 차려입고 식당으로 나들이하는 자체를 신나 하셨다. 주민 박병환(66) 씨는 “예전과는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니까요. 같이 밥 먹는 게 제일 좋아요. 밥 혼자 먹어 뭐합니까. 같은 반찬이라도 나눠 먹어야 제 맛이지!”라며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마을 정보와 소식이 그때그때 공유됐고 아프거나 가정사가 있어 식당에 나오지 못하는 주민이 있으면 관심을 가지고 서로 챙겼다. 도시에 나간 자녀들도 마을 식당이 생긴 뒤부터는 고향 부모의 칠순, 팔순 잔치를 그곳에 마련했다. 자녀들은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좋았고, 부모는 마을 사람들에게 한턱 낼 수 있어 뿌듯해했다. 돈독해 질 수밖에 없는 주민들 사이는 공동 급식을 중심으로 탄탄해져 갔다. 더불어 사는 삶이 주는 긍정적 영향 이웃 간에 화목하고 우애 좋게 지낸다는 농촌 마을의 이야기는 이미 과거 이야기다. 각종 분쟁으로 고소, 고발까지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양떡메마을에는 전혀 분쟁이 없다. 귀농·귀촌인도 12가구나 되는데 원주민 중 누구도 텃세를 부리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장, 노인회장, 개발위원장 등 중요 지위를 내어주며 함께 마을을 이끌어 가고 있다. 매일 같이 밥을 먹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주민들 간의 친밀감과 유대가 강하게 형성된 덕분이다. 아랫마을에 사는 신민엽(56) 씨는 “점점 변해가는 이 마을이 얼마나 신기한지 몰라요. 빈집만 있어도 이사를 올 텐데 이 마을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줄 서 있어 엄두도 못 내요. 저도 이곳에서 함께 더불어 살고 싶어요”라며 양떡메 마을을 부러워했다. 코로나로 2020년부터 2년간 공동 급식이 중단됐지만, 식당 문이 곧 다시 열릴 거라고 모두 믿고 있다. 함께 살며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을 ‘식구’라고 한다. 식구처럼 밥을 나눠먹는 건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이미 가족이나 다름없는 양떡메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뜨겁게 응원한다. 문의 055)931-7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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