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황제, 나훈아의 귀환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전 용 창
얼마 전 하모니카동아리의 박식한 여사님께서 푸념을 하셨다. 서울에 사는 딸한테 나훈아 콘서트를 꼭 봐야 한다며 추석명절에 내려오지 않아도 좋으니 입장권을 사달라고 했는데, 딸은 컴퓨터가 접속이 안 되어 신청도 못해보고 예매 시작 7분 만에 전 좌석이 매진되어 허탕을 쳤다며 울상이었다고 했다. 딸은 암표라도 구해 보겠다고 했지만 이미 암표 시장도 중간인 S석이 예매 가격 14만 3천 원의 3배까지 껑충 뛰었는데도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훈아가 11년간의 칩거를 마치고 홍시가 열리는 11월 초에 서울 올림픽 홀에서 사흘간 “나훈아 드림콘서트”를 여는데 칠순이 지난 그의 나이에도 이처럼 폭발적인 인기가 있으니 과연 황제의 귀환이 아닐 수 없다. 그에게 남이 갖지 못한 무엇이 있기에 그를 보려고 이토록 장사진을 이룬단 말인가? 흔히들 나훈아를 가왕(歌王)이라 부르기도 하고, 트로트의 황제라고도 부른다. 그는 무대에 오르면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마치 굶주린 사자나 호랑이처럼 노래에 목말라서 포효를 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나훈아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 시절에 부른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라고 시작하는 남국인/작사, 김영광/작곡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노래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노랫말을 쓰는 사람들은 시인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을 어찌나 그렇게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무렵 나훈아의 이 노래 하나가 한창 젊음을 갈구하던 나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사랑이 눈물의 씨앗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매우 신중하게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 것이다.
지금은 ‘청춘을 돌려다오’를 부르고 있다. 오래전 직장생활을 하던 때인 이십여 년 전에 나훈아 리사이틀이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B석 표를 5만 원에 사서 들어갔는데 자리라고 해야 체육관 맨 바닥에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를 빼곡히 놓고 등받이에 번호표를 붙여놓은 게 전부였다. 앞뒤도 그렇고 좌우도 비좁아서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되었다. 게다가 3분의 2가 여성들이어서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었다. 괜스레 들어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꾸며놓고 5만원이나 받는단 말인가? 공연히 화가 났다. 그런데 누군가 인근에서 나를 부르며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돌아보니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수위 아저씨들 몇 분이었다. 나도 반갑게 화답하고서는 이렇게 해놓고 5만 원이나 받는다며 불평하자 그중 한 사람이 피식 웃으며 ‘돈은 벌어서 이런데 써야 합니다!’라고 받아넘겼다. 그들보다 여건이 나은 내가 불평을 한 게 부끄러웠다.
잠시 뒤 공연이 시작되었다. 팡파르가 울리고 현란한 조명 불빛 아래 사오십 명으로 구성된 관현악단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천하의 진시왕도 부러워할 삼십여 명의 무희들을 거느리고 트로트 황제 나훈아가 등장했다. 황제는 하얀 도포자락을 휘감고 나왔다. 일명 오빠부대라고 일컫는 여성 팬들의 고함소리가 체육관을 진동했다. 모두들 일어나서 함성을 지르니 뒤에서는 앉으라고 고함을 친다. 정말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노래는 조용한 곡부터 시작됐다. 한 참을 지나니 내가 좋아했던 <십팔 세 순이>가 나왔다. 어느새 나도 체면 따위는 온 데 간 데 없이 따라 불렀다. ‘살구꽃이 필 때면 돌아온다던/ 내 사랑 순이는 돌아올 줄 모르고/ 서쪽하늘 문 틈새로 새어드는 바람에/ 떨어진 꽃 내음새가 나를 울리네(생략)
이 노래는 본인이 작사, 작곡을 하고 노래까지 하니 얼마나 흥이 났을까? 무희들과 함께 깜박이는 조명 불빛 아래서 춤을 추며 상의를 벗어 던졌다. 떡 벌어진 가슴, 구릿빛 피부, 좌우로 치켜 올라간 굵은 눈썹, 구레나룻 수염, 그의 머리에서 얼굴 가슴으로 조명이 내려가자 객석에서는 극렬 여성 팬들이 어디에 숨겨 와서 꺼내는지 브래지어와 팬티를 집어던졌다. 참으로 가관이었다.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2시간 공연인데 30분 전에 나올 때까지 어찌나 웃었던지 뱃가죽이 아팠다. 머릿속은 맑아지고 귓가에는 함성의 여운이 남아있었다. 관람료 5만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사오십 명의 악사, 삼십여 명의 무희, 조명기사, 무대장치 기사, 등을 거느리려면 그 값이 아니고는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순간 수위 아저씨가 한 말이 생각났다. ‘돈은 벌어서 이런데 써야 합니다!’ 나훈아 리사이틀에는 사회자와 다른 가수도 없었다. 혼자서 정열적으로 모든 것을 다 소화시켜 나갔다. 그의 얼굴에서는 땀방울이 빗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어느 신문기자가 나훈아와 인터뷰를 했는데 기자가 “악사들 말로는 당신이 어찌나 반복하여 힘들게 연습을 하는지 죽을 지경이라는데 트로트 황제가 왜 그리 연습을 많이 합니까?” 라고 묻자 그는 “프로는 연습입니다. 나는 노래를 못하니까 열심히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보통 사람이 하는 겁니다. 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악보만 보고 멜로디를 연주하는 건 고등학교 밴드부도 할 수 있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35년간 노래를 했어도, 전에 노래한 건 정말 모르고 한 겁니다. 지금도 제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이제 막 알기 시작한답니다. 피나게 연습을 해야만 특별한 게 나옵니다. 우리는 노래를 듣는 분들한테 감동을 줘야 하는데 노래 한 곡이 나가는 3분 안에 감동을 주려면 참말로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는 MBC 명예의 殿堂도 어느 대통령이 준다던 勳章도 싫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오로지 노래에만 전념하여 살을 에는 노력을 했기에 그가 200장이 넘는 앨범을 냈고, 2,600곡 이상을 취입했으며, 800곡의 자작곡을 발표했기에 오늘날까지도 트로트 황제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닐까?
(2017. 9. 15.)
첫댓글 전 선생님 ! 나훈아를 그렇게 좋아하세요. 난 노래들은 좋은데 인상은 좀 그래요. 헌데 열심으로 연습한다는 그의말에는
대단하네요. 과거만 조용했으면 참, 훌륭한 가수인데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