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고등어
오덕렬
오늘은 4일, 옥과장날이다. 읍내의 건물들과 거리의 분위기와 오일장터 풍경들이 잘 어울린다. 지난날과 현대의 숨결이 다정하다. 장터 골목을 막 들어서자 저쪽 가게가 살아 있다.
"어메, 뭣 좀 사실라우?
"멋?"
"간고등에……."
어물전 아줌마의 언사가 좋다. 허리 굽은 할머니를 어머니라고 살갑게 부르는 걸 보면 능간이 여간 아니다. 할머니도 '큰딸이 부르는갑다.' 하는 태도다. 사고파는 흥정도 아니지만 알은체하며 오가는 말들이 다습다. 장을 보러 가는 것도 큰 출입이던 할머니 시절, 오늘도 머리 곱게 빗고, 정갈하게 차려 입었다. 무얼 사려는지 둘레둘레 눈을 주며 둘러보는 모습에서 지난 세월을 다시 만난다.
옥과장은 전남 곡성군 옥과면 이문리에 서는 5일장. 새로 지은 건물의 지붕을 덮씌운 점포에는 철물전,장판전, 옷가게,신발가게 등이 들어앉았다. 골목에 늘어앉은 할머니들도 그냥 땅바닥에 전을 벌리는 일은 없다. 네모지기 자리를 펴고 풋고추, 오이, 가지, 토마토, 강냉이 등 집에서 가꾼 것들을 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장터는 북적거리는 맛이 있어야 한는데 날씨는 덥고 농사철이라 그러는지 장꾼이 귀하다. 주차장도 넓게 마련되어 있는데……. 재래시장을 살려보려는 행정력이 구석구석에서 눈을 부라리는 것만 같다.
농촌 인구가 철철 넘쳐나던 지난날, 농사철에는 간고등어가 대접을 받았다. 생각보다 훨썩 많은 통소금을 배아지에 담고서 장터 좌판에서 농부들의 손에 들려갔던 것. 모내기를 앞두고는 장은 봐야 했던 시절이었다. 해도 거반 석양으로 타고 있을 때, 간고등어 한 손쯤 지겟다리에 매달면 농찬(農饌) 걱정은 덜었다. 그 한 손의 넉넉함은 어디다 댈 것인가. 이쯤에서 탁배기 한 잔 걸치면 시오리 길도 거뜬했다.
이제 막 캐낸 감자를 굵직하게 썰어 고춧가루 듬뿍 치고, 자글자글 끓여내면 조림이 일품이다. 은빛 고등어는 검푸른 바닷물을 못 잊는지 눈을 감지 못하다가 등 푸른 어족의 지조를 맛으로 보여주는 것일까. 통통한 가운데 토막의 담백한 맛, 그 육질과 감자의 포근포근한 감촉.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던 그 시절, 놉들은 간고등어의 감칠맛 덕분에 고봉밥을 가무렸던 것이다.
이런 고등어는 전남 방언에서는 '고등에'로 불린다. 홍어가 홍에로, 붕어가 붕에로 발음되는 것도 같은 모음 변이 현상. 고기 이름에 붙은 '어(魚)'는 모두 조음(調音)의 편의에서 전설모음 '에'로 발음되고 만다.
방언은 그 지방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은 언어 유산. 산 넘고 물 건너면서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달라졌던 소리. "간고등에……."는 전남 방언의 한 특징이다.
( 2013. 1.)
첫댓글 존경하는 김경옥 평론가님에게!
본 작품은 아시는 것처럼 오덕렬 수필집(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상작가 작품집)<항꾸네 갑시다>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작품의 이해와 후배 문학도들를 지도 한다는 의미에서 <작법공부>의 형식을 빌려 평론 하여 주실것을 부탁드립니다. 금쪽같은 시간을 할애 하여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키도키. 오케이. 고맙슴다.
이 작품 평은 <창작문예수필>-작품과 작법 특집호(2013. 여름호)에 이관희 샘아저씨의 평이 실려 있습니다. 참고하셔요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