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언
얼마 전 대전에 가려고 전철로 수서역으로 가고 있었다. 도곡역에서 할머니 한 분이 두 손에 짐을 잔뜩 들고 타더니만 경로석에 있는 아주머니 곁으로 가면서 '여자 있는 데로 가야제'했다. 아주머니도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겼다. 할머니는 앉자마자 아주머니께 '이 차가 어디로 가요?'고 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아주머니는 할머니께 되레 '어디로 가시느냐?'고 물었다. 할머니가 수서라고 말하자 아주머니는 자기 핸폰으로 지하철노선도를 찾아보더니만 '여기 그대로 계시다가 네번째 역에서 내리시면 된다'고 했다. 두 분의 대화를 상세히 들을 수는 없었지만 웃으며 나누는 모습이 퍽이나 정스러웠다. 호기심 많은 아주머니는 할머니 보따리를 들어다보더니만 '이렇게 무거운 것을 왜 가지고 다니셔요? 돈을 가지고 다니시면 편리할텐데요'했다. 할머니는 '우리딸들이 안 입는 옷이라고 버린다는 것을 내가 싸오요. 농사 일하는데 오만가지가 필요하거든요'했다. 짐을 보아하니 차먼지털이 같은 것도 삐죽이 나오고 보따리도 울퉁불퉁했지만 그 분은 아무련 구애를 받지 아니했다. 아주머는 여전히 못믿어운지 열차가 대모산역에 오자 다음 역에서 내리시라고 다시 말했다. 수서역에 거의 왔을 때 성건진 내가 두 여자 앞으로 다가가서 젊은 여자에게 '차~암 친절하시네요'라고 덕담을 건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하고는 큰 보따리를 잡았더니 할머니는 나에게 '많이 무거운데요'하면서도 보따리를 쉽게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그 여자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는데 할머니는 '참말로 고맙쏘야'했고 아주머니는 '할머니 저 양반 잘 따라가셔요'했다. 나는 내 짐은 왼편 어깨에 둘러메고 오른 손으로는 할머니.보따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나란히 걸어가면서 대화를 이어갔는데 할머니는 청력이 엄청 좋았고 막힘이 없었다. '연세는 어떻게 되세요?'묻자마자 '8학년3반이요'했다. 내가 '아주 건강하시네요 어디로 가시나요?'했더니 '전라도 광주로 가요'했다. '나도 거기 사람인데요'했더니 엄청 반가와하면서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이어서 '광주에서도 어디요?'했더니 '화정동이요'하면서 나더러 '그라면 아자씨도 광주로 가요?'했다. 나는 '오늘은 다른데를 가는데 명절이나 부모님 제삿날에는 광주에 갑니다' 했다. 내가 '송정역에 내리시면 지하철을 타세요'. 했더니 할머니는 통크게 '택시 타면 금새 가요'했다. 이어서 '그러면 차표는 끊었느냐?'고 물으니 '자석들이 다 샀다고 합디다'했다. 몇 시 차를 타시는지 물었더니 12시차라고 했다. '인자, 열시가 조금 넘었는데 오래 기다리시겠네요'했더니 할머니는 '사람구경도 하고 일도 없다'고 했다. '자녀분들은 몇이나 되요?'했더니 '딸 셋에 아들이 둘'이라고 하면서 맨 큰 자석은 환갑을 지냈다고 했다. 이어서 '5남매 키우느라 힘들고 정신도 없었지만 애들이 바르게 커주어서 정말 감사할 일'이라고 했다. 후렴으로 '나는 교회는 안 다녀도 감사는 잘하요'했다. 둘이서 moving walk를 타고 가면서도 대화를 이어갈 때 뒤편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두리번 거리니까 할머니는 귀가 얼마나 밝은지 뒤쪽에 따라오는 젊은이를 쳐다보면서 '고양이도 대화를 하고 싶은갑소'했다. 대합실에 거의 다 왔을 즈음 할아버지를 물으시니 '오래 전에 다시 오기로 하고 먼저 가셨다요'했다. '그러면 혼자 사시는데 외롭지는 않으셔요? 했더니 그게 제일 힘들다고 하셨다. 그래서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봄이면 텃밭에다 푸정거리도 심고 사람들 불러모아서 일도 함께 하고 막걸리도 한잔씩하고 지낸다요. 그리고 자석들 집에 일 있으면 이집 저집 돌아 다니내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더러 '술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물론 좋아한다고 하면서 '젊어서 너무 많이 마셔서 지금은 자숙한다'고 했더니 ‘술 좋기도 하고도 나쁘기도 한 음석이여라오’했다 대합실에 들어오니 사람들이 북적거려서 마땅히 앉을 자리가 없었다. 할머니는 누군가 자리에 놔둔 가방을 밀쳐내고 냅다 앉았다. 내가 자석들이 어디 보이요?'했더니 '때가 되면 나오겠지요, 뭐!'했다. 자석들이 눈에 들어오는지 두리번거리는 할머니께 '저는 지금 차 타려가야합니다. 조심해서 가세요'했다. 할머니는 헤어짐이 아쉬웠던지 두 손으로 내손을 꼬옥 감싸잡으며 '아이고 이렇게 입도 못 다시고 가셔서 어쩐다요'했다. 할머니와 잠깐 만났지만 건강하고 여유안만하게 사는 모습이 자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