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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도 평창 흐르는 강물 옆 벼랑길에서 물매화의 새로운 자생지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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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연휴를 시작으로 지리산에서 강원도 오지마을까지 다섯 번이나 찾아갔다. 봄부터 자주 들락거렸지만 모터사이클을 타고 불원천리 강원도까지 뻔질나게 달려간 것은 순전히 가을야생화 때문이었다.
화무십일홍이라, 열흘 붉은 꽃이 없다던 선인들의 지혜가 아니더라도 가보고 또 가보아도 야생화들은 지고 또 피는 것이었다. 그러니 열흘 늦게 가면 이미 그 야생화는 져버리고, 다시 그 꽃을 보려면 최소한 1년을 기다려야 하니 언제나 마음이 달뜰 수밖에 없었다.
가을의 전령사이자 지상 최고의 가을꽃 물매화
틈만 나면 카메라를 메고 지리산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며 둘러보다 보면 채 1주일도 지나지 않아 강원도에 또 다른 꽃이 피었다는 화신(花信)이 도착했다. 물론 아무도 그 소식을 알려 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오래 마음을 주다 보니 이제는 감으로 알게 되었다.
더구나 가을야생화는 올해의 마지막 꽃들이 아닌가. 단풍과 더불어 마지막으로 불타오르고 나면 한겨울의 상고대나 설화·빙화가 아니고서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야생의 꽃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마치 현몽이라도 하듯이 꿈속에서도 지리산과 강원도의 어느 골짜기가 문득 환하게 보였다. 장자의 꿈처럼 내가 야생화인지, 야생화가 나를 부르는 것인지 헛갈릴 정도가 된 것이다. 너와 나의 분별지가 사라진 상태, 이런 경험은 참으로 오랜만이 아닐 수 없다. 첫 마음으로 시를 쓰던 시절, 그 문학청년기에 맛보았던 열정을 30년 만에 조금이나마 되찾았다고나 할까.
이 모든 것이 ‘올해의 선택과 집중’으로 초미의 관심을 두었던 이 땅의 야생화들 때문이었다. 그동안 일로매진했던 사람과 현실과 환경 등의 운동마저 잠시 밀쳐놓고 선택한 이 배수진의 과정과 결과가 뜻하지 않게도 내게는 엄청난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일단 결핵성늑막염 등의 후유증에서 벗어나 건강을 되찾게 해주었다. 그리고 새롭게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고, 남은 인생마저 더 잘 보이게 하는 구원자 혹은 구세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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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은 립스틱 물매화. 이 가을의 전령사이자 지상 최고의 꽃이다. 암술은 붉은 립스틱을 요염하게 바르고 수술들은 보석과 이슬방울들을 매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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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어찌 이 땅의 모든 야생화들을 경배하지 않을 수 있으며, 또한 이 야생화들이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 야생화들이 피고 또 지고 다시 피어나는 한반도 금수강산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올 가을에 내 생애 처음 제대로 만난 야생화들 중에서 나를 가장 감동시킨 것들은 물매화와 금강초롱, 그리고 정선바위솔 등이었다. 물론 야생화를 두고 휘귀성이나 그 아름다움만으로 인간세상처럼 상대적 등위를 매길 수는 없다. 절대적으로 존재 그 자체가 모두 미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리산과 황매산, 그리고 강원도 평창이나 정선 등지에만 사는 물매화는 나를 완전히 사로잡고 말았다. 섬진강의 봄을 알리는 전령사가 매화라면, 가을의 전령사이자 지상 최고의 가을꽃은 물매화라고 단언하고 싶을 정도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처음 물매화를 만나고, 다시 강원도 평창의 물매화를 만나러 가는 길은 마치 첫사랑이라도 시작한 듯이 너무도 가슴 설레고 벅찬 일이었다. 올 가을에 이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찌 견뎠을까 아찔하기도 하다. 이 여인 때문에 살맛이 나고 입맛이 돌고 생기가 났다. 추석 연휴를 이 매력적인 여인에게 푹 빠져 지내는 등 한 달 동안 무려 다섯 번이나 그 머나먼 천리 길을 달려갔던 것이다. 그렇게 먼 길을 달려가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았다. 해질 무렵까지 보다가 이른 새벽에 다시 가보아도 새로운, 보면 볼수록 미치지 않고는 못 배길 그런 야생화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붉은 립스틱’ 물매화는 압권이었다. 물매화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붉은 립스틱은 ‘연지물매화’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수술들이 투명하거나 연초록의 보석 같은 방울들을 단 채 암술을 에워싸고 있다. 바로 그 암술이 마치 어여쁜 여인이 붉은 립스틱을 요염하게 바른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냥 봐도 정말 아름다운데 접사렌즈를 들이대고 찍어 보면 이 연인에게 흠뻑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이른 아침 수술의 보석들 주위에 이슬방울들이 맺혀 있을 때 햇살이라도 살짝 내리비치면 환상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물매화 찾다 벼랑에서 강물로 떨어지기도
야생화 전문가들에게만 알려진 강원도 평창 모 사찰 근처와 정선의 오지마을 등지를 몇 번 가보고 마음을 오래 오래 주며 다니다 보니 새로운 자생지 두 곳을 찾아내는 행운도 맛보았다. 차마 밝힐 수 없는 그 강변의 벼랑에서 뜻밖에도 물매화를 다시 만난 순간 너무 벅찬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벼랑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강물로 처박히기도 했다. 머나먼 타지에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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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쟁이단풍과 어울려 있는 정선바위솔을 벼랑에서 겨우 발견해서 사진 두 장을 찍고 일주일 만에 다시 가봤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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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미끄러지는 와중에도 다행히 카메라는 바위틈에 밀어 넣어 강물에 빠뜨리지 않았다. 새로 발견한 물매화의 개체수도 꽤 많았으며, 암술과 수술도 다양했다. 야생화 전문가들에게 알려진 곳 말고도 이렇게 강물이 굽이치는 멋진 곳에 살아 있다니 참으로 고맙고 고마운 일이었다. 자생지가 알려지는 순간 해오라비난과 칠보치마처럼 멸종되거나 훼손되는 일이 빈번했으니 내게도 일평생의 ‘기쁜 비밀’이 하나 생긴 셈이다.
그러나 처음 사흘간 2,000컷이 넘는 사진을 찍었지만 이 귀하고 아리따운 모습을 제대로 담지 못했다. 흥분을 채 가라앉히지 못해 미적 거리가 너무 가까운 탓도 있고, 아직 턱없이 사진 실력이 모자란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그때부터 장비 탓을 한 것도 사실이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싸구려 카메라 탓을 했다. “사진은 실력보다 장비”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붉은 립스틱 물매화의 매혹적인 모습에 빠지자 나 또한 장비의 욕망이 한없이 꿈틀거리는 것을 제어하지 못했다. 실력은 금방 느는 것이 아니니 일단 장비라도 바꿔 보고픈 욕구가 생긴 것이다. 이미 지난여름에 강원도 만항재와 함백산에 갔다가 카메라를 망가트리는 바람에 오래전의 낡은 카메라를 사용했었다.
그리하여 결국 카메라 본체를 중고로 업그레이드하고 렌즈도 하나 장만해서 달려가고 또 갔던 것이다. 다섯 번을 찾아가고 수천 컷의 사진을 찍은 덕분에 다행히 아주 마음에 드는 접사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수많은 작가들이 물매화 사진을 찍어 왔지만 그에 못지않은 사진이라 자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른 아침 이슬방울들을 흠뻑 머금은 붉은 립스틱 물매화는 전문가들의 인터넷 공간에서도 만날 수 없는 올 가을의 화룡점정이었다.
돌이켜보면 쉰 살이 넘도록 나는 야생화들에게 해준 게 없는데, 나는 그들에게서 너무 많은 것들을 받았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고 도처가 아수라지옥의 시절, 내가 올 가을에 물매화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찌 견뎌낼 수 있었을까. 수천 번 무릎을 꿇고 호흡을 멈추며 오체투지의 자세로 땀을 뻘뻘 흘려도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었다.
그리고 또 나를 감동시킨 야생화는 ‘강원도의 힘’을 느끼게 해준 금강초롱이었다. 금강산과 강원도 북부지역의 높은 산에만 사는 희귀야생화인 금강초롱은 그 오묘한 보랏빛 색감만으로도 보는 이를 압도했다. 보일 듯 말 듯 초록의 숲속에 내걸린 보랏빛 초롱들은 보색대비에 가까운 환상 그 자체였다. 지리산에서는 볼 수 없는 꽃이니 더욱 그러했다. 그중에서도 흰색의 금강초롱이 있다지만 아직 만나지 못했다. 다만 내년 숙제가 하나 더 늘었으니 그마저 뿌듯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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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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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높은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금강초롱을 실컷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노랑물봉선과 흰물봉선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노랑물봉선을 따로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흰물봉선도 함께 서식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물봉선의 기본인 연보라 혹은 분홍빛 물봉선까지 한 곳에서 가족처럼 살고 있었다. 지리산의 어느 깊은 고개에서 흰물봉선을 만나고, 덕유산에서 노랑물봉선을 처음 만났을 때도 너무나 감격했었다. 그런데 이 물봉선 3종 세트를 한 곳에서 만나게 되었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것도 바로 옆자리에 어깨동무를 하고 피어난 이 3종 세트를 촬영하는 축복까지 받은 것이다. 굳이 명절 화투판 용어로 치자면 ‘1타3피’가 아닌가.
어느 야생화 전문가는 이 사진을 보더니 “천왕봉 일출을 보듯이 삼대가 덕을 쌓았나 봐요” 라며 거듭 축하했다. 야생화 사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봐도 “사실 아직 그 누구도 물봉선 3종 세트를 한 사진에 담은 적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아직 야생화 초보에게는 엄청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다 흰물봉선 중에서도 분홍반점 하나 없이 완전히 하얀데다 연노랑만 살짝 가미된 미색의 지리산표 ‘처진물봉선’까지 만났으니 물봉선 4종 세트를 올 한 해 다 만나본 셈이다.
정선바위솔 일주일 만에 흔적도 없어
10월 중순의 강원도행에서는 그 아름다운 물매화가 지고 있었다. 경북 청송의 주왕산 어느 골짜기에서는 벼랑 위의 둥근잎꿩의비름이 지고, 그 대신 마침내 정선바위솔 등이 피어나고 있었다. 강원도 전역과 경북, 그리고 충북지역을 넘나들며 자주쓴풀, 포천구절초, 단양쑥부쟁이, 동해안의 해국 등 금수강산에 마지막 피는 꽃들을 만나고 왔다.
일단 올해의 야생화 농사는 마무리에 접어든 셈이다. 내년에 다시 만나자고 기약을 하면서도 막 지기 시작하는 물매화를 보니 왠지 모르게 울컥하기도 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때를 안다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 오면 가고, 가면 오고 시절인연을 제대로 알아차리려면 무애와 무욕이 아니고선 힘들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런 와중에 어렵게 찾아낸 정선바위솔이 이제 막 피기 시작해 그 시름을 달래 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선바위솔뿐만이 아니라 와송으로 널리 알려진 바위솔 종류 모두를 만나기 힘들게 되었다. 암을 이기는 기적의 식물로 알려지면서 야생의 바위솔들이 무차별적을 채취되기 때문이다. 충북 영동에서 딱 한 포기 바위솔을 만나 사진을 찍는데 어느새 바위솔 채집자들이 나타나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정선의 몰운대에서 간이휴게소를 운영하는 할머니는 “아예 밧줄을 가지고 다니며 벼랑 꼭대기의 와송도 뽑아간다”며 한숨을 쉬었다. 아직 어린 것들조차 싹쓸이로 뽑아가니 전국의 모든 자생지는 발견 즉시 멸종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재배가 된 지 오래인데 야생의 효력 때문이든, ‘업자들’의 돈 욕심 때문이든 이 땅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는 야생 바위솔들이 수난기를 맞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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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경북 청송 주왕산에서 만난 둥근잎꿩의비름. 2 고택의 지붕 위에 사는 바위솔. 3 강원도의 힘을 느끼게 해준 금강초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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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군이 입간판까지 세워놓은 그곳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어린 것들 빼고는 발견하기 어려웠다. 정선군에서 아직 어린 것들만 겨우 몇 송이를 보란 듯이 전시용으로 심어놓은 듯했다. 벼랑과 너덜지대를 뒤지고 뒤지다 단 두 포기를 겨우 찾았다. 그중에서도 모델이 좋은 것을 일단 인증샷을 찍어 놓고 꽃이 더 피기를 기다렸다가 일주일 만에 다시 가봤더니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나의 사진이 그 정선바위솔의 마지막이었다니 가슴이 먹먹했다.
그 근처에서 찾아낸 또다른 모델을 겨우 사진에 다시 담을 수 있었지만 내내 마음이 불안했다. 얼마나 더 버티며 그 벼랑 그 바위 위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처했기 때문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겨우 사람의 눈에 덜 띄게 다른 바위로 슬쩍 가려 주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늦게 숙소에서 잠을 자려다 벌떡 일어나 한밤중에 다시 달려가 그 정선바위솔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미친놈처럼 한밤중에 벼랑과 너덜지대에 올라 카메라 플래시도 없이 랜턴을 활용해 겨우 정선바위솔과 별밤 사진을 담기도 했지만, 이 또한 그 바위솔의 마지막 사진이 되고 말았다.
지리산에 돌아와 수천 장의 사진들을 컴퓨터에 저장하고, 마침내 다 저장된 줄 알고 카메라 로우포맷을 했다. 아뿔싸, 그런데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파일 두 개 중 하나가 저장되지 않은 것이다. 그 어렵게 모셔온 야생화들의 태반이 날아간 것이다. 모두가 한순간이었다. 정선바위솔이 사라진 것이나 포맷된 사진을 전문가도 끝내 살려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동해안의 해국과 남한강의 단양쑥부쟁이, 그리고 정선바위솔을 찍으러 강원도를 다시 다녀와야 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잘 저장하지 못한 실수가 오히려 한 번 더 강원도의 야생화들을 만나는 기쁨을 선사한 것이다.
동해 추암 촛대바위의 해국이 지기 시작하자 지리산 형제봉의 용담꽃이 보랏빛 혀를 내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초가을에는 정령치에서 뻐꾹나리를 만나기도 했다. 그때 뻐꾹나리는 첫경험을 한 경상도 아가씨처럼 “마, 지는 이제 당신 것이라예” 하며 얼굴을 붉히는 듯했다. 꽃말이 ‘영원히 당신의 것’이라니 참 고전적인데, 자주빛 점무늬가 뻐꾸기 가슴털 무늬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치 꼴뚜기를 닮았다 하여 꼴뚝나리, 우주선 혹은 UFO를 닮았다 하여 외계화라 불리는데 귀한 야생화인 만큼 이름도 참 재미있다.
밀물 때 갔던 무인도 썰물에 바닷길 사라져
지난 9월에는 강원도가 아니라 남해를 어슬렁거린 적이 있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청명청명 자유인으로 가을길을 달리며 남해군 창선면 왕후박나무를 만나고 오는 길에 보니 늘 흠모하던 무인도가 보였다. 아, 그런데 그날따라 ‘모세의 기적’처럼 100m가량의 바닷길이 열려 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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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계곡 옆에 자라고 있는 까실쑥부쟁이. 2 남한강에서 만난 단양쑥부쟁이. 3 지리산에 처음 발견돼 이름 붙여진 지리바꽃. 4 남해의 무인도에서 만난 층꽃나무. 이 꽃을 찍다가 썰물에 고립될 뻔했다. 5 지리산 노고단의 물매화와 산오이풀. 6 바위떡풀 화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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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구나 좋다, 바이크를 세우고는 걸어 들어갔다. 작은 섬 한 바퀴를 돌다가 층꽃나무와 순비기꽃을 발견하고는 들뜬 나머지 두어 시간 보랏빛 꽃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아, 그런데 느낌이 이상해 뒤를 돌아보니, 그 사이에 썰물이 들어와 바닷길이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말 그대로 하마터면 무인도에서 하룻밤 묵을 뻔했다.
그나마 아직 물이 깊지 않아 다행이었지 바이크 위에 재킷도 벗어놓고 핸드폰도 두고 왔으니 다시 바닷길이 열리는 다음날 오전까지 고립될 뻔한 것이다. 하기야 그랬으면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하룻밤 교교한 달빛 아래 훨씬 더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결국 신발을 벗고 맨발로 첨벙첨벙 겨우 걸어서 나올 수 있었다. 고립돼도 좋고, 탈출해도 좋고 문득 길을 잃는다는 것은 이렇게 아찔해서 좋은 것이다. 이미 16년 전에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이 우주의 완벽한 고아가 되고, 곧바로 지리산의 미아를 자처했으니 더 이상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지 않은가. 다만 절대고독, 입산의 초심만은 잃지 말자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이렇게 야생화에 미치면서부터 문경의 어머님 산소에 벌초할 때도 함부로 야생화를 자르지 못했다. 불효막심한 자, 살아생전 속만 썩이다가 뒤늦게 ‘돌아온 탕자’가 되어 벌초를 하다가 문득 환생한 어머니를 만났던 것이다. 부모님 무덤가에 피어난 도라지꽃 한 송이, 며느리밑씻개, 알며느리밥풀꽃들이 그 자체로 어머니 생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무덤가 졸참나무엔 무당거미가 살고 있었는데 그 또한 아직 이승을 떠나지 못한 어머니가 분명해 보였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연말부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잠시 접었는데, 야생화들을 보며 다시 사람을 그리워하다니! 땅바닥을 기면서 내공을 더 키우고, 더 치열해지다 보면 다시 사람이 꽃으로 보이는 시절인연이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눈길을 주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것이다. 그 흔한 주름조개나물도 역광으로 보니 너무나 아름다웠다. 귀한 꽃만 찾아다니다 잠시 반성하며 두 무릎을 꿇었다. 따지고 보면 귀하고 흔하고, 미시와 거시, 광각과 접사의 세계가 실은 암수한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어떤 간절한 눈빛으로 봐주느냐의 문제가 중요할 것이다. 그리하여 저 야생화들처럼 스스로 자기 자신을 외면하지만 않는다면 이 세상에서 아름답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