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본래 텅 비어 있는데
빛으로 가득찼구나..내 마음도 그와 같구나..!
초의선사 행적을 찾아 일지암에 가다.
남을 시기하는 것은 본래 마음에 없으니
좋다.궂다.하는 말이 어찌 귀에 들어오리
소매속에는 아직 경뇌차가 남아 있으니
구름에 의지하여 두릉천으로 차를 달이네.
초의스님이 남긴 석천전다 한귀절이다.
주인없는 암자에서 초의스님의 불이선不二禪가풍을 전하는 자우홍련사 누각으로 대중들이 좌정하였다.그리고 빈잔을 들어 진공묘유차를 초의선사께 헌다하였다.
초의스님은 다섯살때 물에 빠져 죽게됐는데 지나가던 스님이 구해주었다.그 인연으로 열다섯에 출가하여 의순이란 법명을 받았다.진실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었다.
열아홉살 되던해에 대흥사 가는 길에 영암 월출산을 올랐다.마침 푸른바다로 붉은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서쪽하늘의 노을이 시시각각 변해가는 모습에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장엄한 낙조였다.천천히 몸을 돌이켜 동쪽산을 보니 마침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월출산에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는 활짝 마음이 열려 큰짐을 내려 놓은것 같았다.
마음에 모든 의심이 풀리고 함께 지내던 원수가 가까운 벗이된 기분이었다.그는 뛸듯이 기뻣다.
,달은 본래 텅비었는데 밝은 빛으로 가득차 있구나
.ᆢ내 마음도 그와 같구나.
보름달을 보고 깨우침을 얻은 초의는 불경과 선의 깊은 뜻은 물론 시와 서예.그림.불화.단청.다도에 이르기 까지 깊은 경지에 이르렀다.일지암은 그가 39세에 건립하여 80세 열반할 때까지 40년을 주석한 곳이다.
마침 강진에 다산선생이 귀양을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다.그때 초의 나이 23세 다산의 나이는 47세였다.때는 1809년이었다.
초의는 유서를 빌려 읽고 시를 읽히고 역학을 배웠다.다산은 그의 아들에게도 초의를 소개시키고 친구로 사귀도록 권한다.
그후로 초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일지암은 조선후기 다도문화와 사상의 꽃을 피우는 사랑방 역할을 하게 된다.
그때 초의와 함께 교류한 사람들은 추사 김정희.다산의 아들 유산 정학연.정조 사위인 홍현주형제들.권돈인.자하신위등이다.
초의와 함께한 자리는 다회와 시회가 식순에 따라 진행되었고 시대의 담론을 풀어내는 문화사랑방이 되었다.
옥화한잔 기울이니 겨드랑이 바람일어
몸가벼워 하마벌써 맑은곳에 올랐어라
밝은달은 촛불되어 고요한밤 벗이되고
흰구름은 자리펴고 큰병풍이 되는구나.
동다송 16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