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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수 목사
일반적으로 성도님들께서는 교회에 나오면 모두다 신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교회의 안에도 알곡이 있고 가라지 가 있다고 했습니다. 양이 있는가 하면 염소도 있다고 했습니다. 또 교회 안에는 믿음이 어린 육신의 사람도 있고 믿음이 성숙한 신령한 성도도 있다고 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믿음이 바르게 잘 자라서 성숙한 성도로 자라야 하는데 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자라고, 기도하면서 자라고, 묵상하면서 자라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성령의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지면 비로소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부터 삶의 가치관이 바뀌게 됩니다. 은혜 받고 변화되는 가정에는 변화의 과정이 있습니다. 맨 먼저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 무엇인가하면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게 됩니다.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들을 때에 저 말씀은 나를 보고 하는 말씀이구나 하고 느껴지면 자신의 허물이 드러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되고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와서 기쁘다라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아직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분들은 참으로 예배시간이 기쁘고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제가 청년시절에 저의 집사람을 처음 보았을 때에는 그저 보통의 아가씨였지마는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게 되어질 때부터는 만나면 참으로 좋고 기뻤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분들은 교회에 나와도 아무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진정으로 나의 주님으로 모셨을 때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 다음 단계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옛사람이 새사람으로 변화되고 여러분의 악한 성품이 변화되어 선한 성품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주님 안에서 은혜를 받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인생을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되고 여러분의 가치관이 달라지게 됩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본문을 보면 솔로몬 왕이 일평생 부귀영화를 다 누렸습니다. 온갖 것을 다 가졌습니다. 모든 것을 소유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 얻은 결론이 모든 것이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헛되다고 생각한 것이 어떤 것인지 보십시오. 1장 14절을 보면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일이 헛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돈을 벌려고 아무리 애를 쓰고 남보다 더 올라가려고 애를 쓰지만 끝에 가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헛된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헛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2장 15절에는 사람들의 지혜가 헛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천문학, 동물학, 식물학을 통달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혜의 마지막은 바람과 안개와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젊을 때에 문학 책이나 철학 책도 읽었습니다마는 시대가 변하니 그러한 것들도 변합니다. 오늘 우리가 가진 컴퓨터는 해가 다르게 바뀌어 집니다. 지난날에 386 컴퓨터를 가지고 배웠던 것도 윈도우가 나오게 되니까 소용이 없게 됩니다. 지식은 나날이 변하고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재물도 헛되다고 5장 10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을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요즈음 우리 현대그룹의 정주영회장께서 아들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 주었습니다. 시대가 가니까 회사도 다 넘어가야 되지 않습니까? 얼마나 헛됩니까? 자녀들이 그 많은 재산을 받았는데 불구하고 자녀들이 이만하면 되었습니다 라고 했습니까? 동생이 형님에게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더 많이 가지겠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설득해서 동생이 회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동생이 아버지께 저에게는 형님이 계시니 형님에게 회장자리를 물려 주시고 이정도만으로 만족합니다.라고 말했으면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정확합니까?
우리가 읽은 5장 10절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뿐만 아니라 6장 2절에는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많이 가졌지만 사용하지 못하고 한 생을 마치는 것입니다. 이것도 헛된 것입니다. 그리고 젊음과 그 힘도 헛되다고 하였습니다.
전도서 11장 10절에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
청년들이 아무리 큰 꿈을 가지고 있어도 다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 부모님들은 젊은 자녀들을 두고 얼마나 기대가 큽니까? 이 놈이 커서 훗날에 무엇이 될건가?것 하며 기대를 잔뜩 겁니다.
너무 기대를 크게 갖지 마십시오.
사춘기만 되면 다 떠나버립니다. 그 때쯤 되면 부모가 별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춘기가 되면 자기의 친구가 더 좋고, 자기의 이성친구를 더 좋아 합니다. 우리도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결혼합니다. 그 때 부모를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세상 것들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만큼 그렇게 의미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이것을 다 겪어보니 “헛되고 헛되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후에 결론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12장 13절과 14절을 읽읍시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솔로몬의 입장에서 볼 때에 모든 것이 헛되고 다 헛된 것들이었지마는 그 헛된 것들이 헛되지 않게 되는 비결이 있다라는 말입니다. 그 헛된 것들의 허물을 극복하는 결정적인 비밀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하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면 세상적으로 헛된 모든 것들이 헛된 것이 아닙니다. 영원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날에 심판대앞에 섰을 때에 그것은 성적표에 모든 것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구체적인 표현이 무엇인가하면 그것은 바로 선을 행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1장 1절에 “너는 너의 식물을 물위에 던져라 여러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라고 했습니다.
식물은 먹는 음식입니다. 음식을 물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던져라는 말은 선행을 행하라는 뜻입니다.
제가 오늘 읽은 11장 1절에서 8절까지 현대적인 표현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너 음식을 물 위로 띄어 보내라.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는 그것이 너에게로 다시 돌아올 것이니라. 네 재물을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 네가 이세상에 사는 동안 무슨 재난이 닥쳐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구름이 많이 뜨면 비가 쏟아지고 나무가 쓰러질때는 그 방향이 남쪽인지 북쪽인지를 가리지 않고 기우는 데로 쓰러져서 그냥 그 자리에 남아 있는다. 바람은 피하다가는 씨도 뿌리지 못하고 구름을 살피다가는 추수도 못한다는 말처럼 완전한 조건이 갖추어 지기를 기다리다가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불던지 영혼이 태아의 몸 속에 어떻게 들어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세상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우리는 모른다. 그러므로 아침 일찍 일어나 씨를 뿌리고 저녁 늦게까지 부지런히 일하고 이것이 잘 자랄지, 저것이 잘 자랄지, 아니면 두가지 다 똑같이 잘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살아 있다는 것은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다.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아라. 앞으로 새싹이 살 날이 많다고 하여도 슬픈 날이 기쁜 날보다 더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미래에 닥칠일들은 모두가 허망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오늘 전체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제가 이해하기 쉽도록 읽은 것입니다.
그러면 영혼과 연결되는 삶은 무엇입니까?
바로 나누어 주는 삶인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삶인 것입니다.
왜그렇습니까?
그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세상에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포기할 때에 하나님은 나의 보배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욥기서 22장 24절에 말씀하시기를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가의 돌에 버리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신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그 것을 버릴 때에 하나님이 그 때 비로소 나의 보배가 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보배로 삼기 위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것으로 알고 숨겨놓은 모든 보배를 버려라. 그러면 하나님이 나의 보배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지켜 주시고 더 많이 채워 주시고 그리고 또 잘되게 해주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것왜 너는 주머니에 넣었는데 자꾸 새어 나가는가? 왜 모았는데 모아지지 않느냐? 그것은 내가 불어 버렸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어 버리면 여러분의 수고가 헛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가진 것을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것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사용하겠다.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살겠다고 할 때에 하나님은 여러분의 보호자가 되셔서 여러분을 축복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아-멘
두 번째로는 선행을 베풀어 사용한 것만이 진정한 나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도 내 것은 아닙니다. 도둑 맞을 수도 있고 그것이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한 일을 행한 것만이 하늘의 통장에 예금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했습니다. 나누어 주는 삶. 그것이 자기를 준비하는 삶입니다.
제가 평신도 시절에 알고 있던 어떤 은행 지점장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의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수고하여 번 돈을 모아 내가 살아간다는 그런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동생이 어려운데도 도와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동생이 고생하고 있는데 도와주지 않습니까? 라고 물어 보았더니, 하는 대답이 내가 왜 도와줍니까? 자기가 벌어서 자기가 사용해야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밑에 있던 한 대리는 해마다 가을이 되면 시골에 가서 쌀을 트럭 가득 싣고 와서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이것을 먹고 돈이 생기면 갚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제가 직접 보지는 않았고 그 지점장이 전해준 말입니다. 그래서 한 번은 그 대리를 불러다가 그 애써서 모은 재산은 왜 그렇게 사용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 대리가 하는 말이 지점장님, 지점장님의 재산이 없어지면 굶어도 나는 내가 망할지라도 죽지 않습니다.라고 했답니다.
바로 여기가 인생의 진리와 지혜가 있습니다.
선행을 베푸는 사람은 반드시 도로 찾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1절 하반 절에 “여러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라고 했습니다.
세월이 지나가면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상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전에 연세대학교 총장으로 계셨던 박태선 박사님은 일본에서 공부를 하셨을 때에 한국에서 온 한 가난한 유학생이 추운 겨울인데도 슬리퍼를 신고 다녔습니다. 너무나 가난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 때 이 박목사님이 자기 신던 구두 한 켤레를 그 학생에게 주었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해방 후에 고국으로 돌아오고 난 후 얼마 안있어 한국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 전쟁때 먹을 것이 없어 굶을 지경이었을 당시 어떤 분이 쌀을 몇 가마 싣고 집으로 찾아왔던 것입니다. 깜짝 놀라 알고 보니 수년 전에 구두 한 켤레 주었던 그 분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분은 귀국해서 사업을 하여 돈을 벌고 있었는데 박목사님의 소식을 듣고 찾아 왔던 것입니다.
선행을 물위에 던지면 반드시 거두게 된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돕는 선행은 물위에 던지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것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지마는 그것을 기대하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치 아니할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믿음의 가정들에게 더욱 할지니라.”갈라디아서 6장 9절-10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반드시 거둔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항상 하나님이 지으신 이 자연의 만물을 보면서 얻는 교훈이 무엇인가 하면 땅이 주는 교훈입니다. 아무 생각도 못하는 이 땅도 거름을 주거나 좋은 씨를 뿌린 것만큼 즉 내가 투자한 것만큼 소출을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이 원리임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고 과도하게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해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한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 잠언 11장 2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적당한 소유 위에 더불어 사는데 있습니다. 남에게 도와주면 참으로 좋고 기쁩니다. 어떤 사람이 악한 사람에게 도와줄 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열매는 사용을 해야 됩니다. 열매를 가만히 두면 썩습니다. 그 자리에 씨가 떨어지면 재 생산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열매를 짐승들이 먹고 열심히 뛰고 사방에 배설을 하면 그 씨앗이 사방에 퍼집니다. 그래서 번성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한 축복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때에 이 축복이 또 씨를 떨어뜨리고 열매를 많이 맺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까?
성경에는 일곱이나 여덟에게 나누어 주어라 라고 했습니다. 폭을 넓혀서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나의 이웃만이 아니라 우리 지역, 나라, 세계로 폭을 넓혀 가면서 우리는 선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골고루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사랑이 필요한 자에게는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물질이 필요한 자에게는 물질을 베풀어 주시고, 관심이 필요한 자에게는 관심을 베풀어 주시고, 기도가 필요한 자에게는 기도를 베풀어 주시고 내가 받은 은혜를 믿음이 약한 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나누는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누어 주는 것이 꼭 돈만은 아닙니다.
주신 은혜가 있습니다.
주신 능력이 있습니다.
주신 달란트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자꾸 사용하십시오. 그래서 나누어 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불신자에게는 복음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믿음이 어린 성도에게는 은혜를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교회에 나오지 않은 성도가 있으면 왜 나오지 않았는가? 하고 살펴 주시고 또 위로해 주셔야 합니다.
목사 혼자만으로는 다 살펴 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주위를 살펴 보십시오. 이것이 나누어 주는 삶입니다.
선교사님들에게는 기도로서 계속해서 후원하여 주십시오.
또 물질의 축복을 받은 분들은 물질로 후원해 주십시오.
그리고 환난의 날이 오기 전에 나누어 주라고 했습니다.
2절을 읽습니다. “일곱에게나 여덟에게나 나누어 줄찌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언제 나에게 재앙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앞에 좋은 기회가 주어질 때에 나누어 주라”고 하였습니다.
때를 놓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한번 재난을 당하면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하루 아침에 없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할 수 있을 때에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10년전에 논산에서 수재가 크게 일어났었습니다. 그 때 어떤 집사님의 동생이 논산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교회를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곡식 창고에 곡식을 가득 쌓아 놓았는데 수재가 나서 논산이 모두 물바다가 났을 때 그 창고도 물속에 잠겼습니다. 그래서 그 곡식이 모두 썩어 버렸습니다. 그 동생이 언니에게 하는 말이 언니,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건축헌금이나 할 것을....라고 말했답니다.
여러분, 재물이라는 그렇습니다.
재앙의 날이 오면 모든 것이 나를 떠나 버립니다. 시련이 다가오고, 전쟁이 일어나고, 질병이 내게 닥쳐오는 그 날에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은 사라집니다. 평화의 때에 할 일을 한 사람은 재난이 다가 왔을 때에 다시금 찾는 축복을 경험할 것입니다. 선행은 저축입니다.
수년 전에 우리교회에서 봉사하셨던 박정희 할머니를 여러분은 아실 겁니다.
이 할머니는 젊었을 때에 상류사회에서 활동하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하늘같이 믿었던 아들이 졸도해서 죽었습니다. 손자하나 남겨 놓고 죽었습니다. 며느리는 그 할머니곁을 떠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할머니는 손자한명 데리고 살게 되었습니다. 힘들게 살다가 보니 어떻게 평촌의 임대아파트까지 오게 되어 우리 교회에 나오시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무렵 70회 생신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구역장님께서 70회 기념 예배를 드렸으면 하여 조촐하게 상을 차려 드리고 제가 큰 절을 하였습니다. 이 어른이 얼마나 좋으셨던지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그 분께서 하는 말씀이 생전에 잘 모르는 목사가 와서 70회 생일상을 차려 주고 큰 절까지 해주다니라고 하면서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옛날에 자기가 도와 주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니 괘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가 잘 모르는 목사도 이렇게 와서 상을 차려 주고 큰 절을 하는데 그 사람들은 가만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기를 백배하여 그들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분들이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머니가 이렇게 사시는 줄 정말 몰랐다고 죄송 하다고 하면서 그 때부터 물질의 도움이 여기 저기서 왔습니다. 그 후에 그 할머니가 부자가 되었습니다. 제가 갈 때마다 봉투를 내미는 겁니다. 저는 그 봉투를 받을 수도, 안 받을 수도 없어서 참으로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보십시오. 젊을 때에 베풀었기 때문에 노년에 받을 것이 있는 것입니다.
4절을 읽읍시다. “풍세를 살펴 보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
비가 와서 못 거두고 바람 불어서 씨를 못 뿌리는 핑계를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계산해서만 살지 말고, 환경에 의해서만 살지 말고, 핑계대지 말고, 선한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 저것 따지다 보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남이 도울 때에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은 무엇입니까? 내가 하면 주님이 채워 주신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5절을 읽읍시다.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함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아이가 엄마의 배 속에서 10달동안 자랄 때 우리가 어떻게 자라는 가를 어떻게 압니까? 그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니겠니까? 그러니 우리가 세상을 살아 갈 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 해서 살아야 하지 우리 머리로 계산해서 살지 말라는 겁니다. 내 계산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나누는 삶을 살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 초창기 선교를 시작할 때 가난했습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웠었지마는 그래도 선교를 했을 때에 재정이 모자라지 않도록 해주셨고 지금까지도 채워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건축할 때도 큰 문제없이 지나오게 해 주셨습니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힘이 있을 때에 믿음으로 나누어 주고, 봉사하시고, 섬기시고, 기도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을 도울 수 있을 때에 도와 주시고 베풀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받겠다는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베풀고 나누어 주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만약 재앙이 다가오면 다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있을 때에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에 일평생에 영원과 연결되는 복된 삶을 우리가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이 헛되지만 그 헛된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살아간다면 영원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 갈수 있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출처: 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