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살자의 도피성 1
(수 20:1-3)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오늘은 “오살자의 도피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도피성은 하나님께서 부지중에 살인한 오살한 자를 위하여 그 생명을 보존토록 특별히 구별하신 성입니다. 이 성은 모두 여섯으로 지정되었는데 모세가 요단 동편에서 셋을 지정했고, 여호수아가 요단 서편에서 셋을 지정했습니다.
세부적으로 소개하면 요단 동편에 베셀, 길르앗라못, 바산 골란이요, 요단 서편에는 갈릴리 게데스, 세겜, 헤브론입니다. 이 성들은 모두 레위 지파에 소속된 성들입니다. 도피성의 영적 의미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어떤 죄인도 회개하고 그리스도께 피하면 피해진다는 교훈입니다.
도피성은 예수 안에서 죄인이 구원 받는 원리입니다.
1. 예수님께 피하면 율법이 정죄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도피성이 필요했던 이유는 부지 중에 오살한 자가 피의 복수법 이른바 '탈리오 법'에서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일찍이 노아 때부터 엄한 공의의 법이 있었습니다. 창9:6에 "무릇 사람이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도 이 보응의 사상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출21:12에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출21:23-25에는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했습니다.
이렇게 엄한 율법을 주신 것은 치안이 부족했던 당시에 서로 조심하며 남을 해하지 않고 사랑을 추구하며 살도록 하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처사였습니다. 율법의 의하면 살인을 당한 피해자의 가족이나 친족은 살인자를 보응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었습니다.
살인자는 먼저 재판을 받은 후에 고의로 살인했으면 피의 보복자에게 넘겨져 보수자가 먼저 손을 대면 모든 회중이 돌로 치게 됩니다. 그러나 고의성이 발견되지 않으면 그를 보호하여 도피성으로 보내어 보호를 받게 했습니다. 도피성에 가지 않거나 가다가 잡히면 피의 보수자에게서 보호 받을 수 없습니다.
이 원리는 우리의 영적생활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일이 아닙니다. 오늘도 죄인을 쫓아오는 피의 보복자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은 오늘도 놀라운 보응의 능력으로 죄인을 정죄하고 영적으로 무자비하게 죽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다 더 완전한 율법인 산상보훈을 볼 때 마음으로 범한 죄까지도 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으로 온전하다는 바리새인들도 이 법 앞에서는 자신이 얼마나 죄인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율법에 한 번 걸려만 놓으면 살아날 장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전15:56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했습니다. 율법은 죄가 없는 자 앞에서는 무능하지만 죄인 앞에서는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마치 의인에게는 검찰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죄인에게는 그를 사형으로 기소할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죄인은 율법 앞에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이 율법이 우리 양심 속에 들어와 우리 심령을 정죄하고 찌릅니다. 여기에 걸려들면 365개의 율법의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으로 죽습니다. 대개 율법적인 교회에서 자란 성도들 중에 그런 사람이 많고 복음을 명확히 알지 못한 사람들에게 누구나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필요합니다.
2. 아담의 자손이면 누구든지 피할 수 있습니다.
도피성의 입성 대상입니다. 3절에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했고, 민35:15에 "이 여섯 성읍은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이스라엘 중에 우거하는 자의 도피성이 되리니" 했습니다. 도피성에는 부지 중에 오살자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고의로 짐짓 살인한 자는 그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율법은 고의인가 부지인가를 분별할 좋은 법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 해당되면 도피성에 들어갈 수 없고 들어가도 끌려나오게 됩니다. 지금 사람들이 죄인 줄 알면서도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세상 사람들의 도피성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세상의 죄인들 중에 그리스도께 피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러나 문자적으로는 부지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모든 죄가 부지에 해당된다고 분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아담의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범죄하고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 는 고백했습니다.
이 얼마나 뻔뻔스런 말입니까? 자기가 밧세바를 데려와서 범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계획적으로 전쟁터에 나가 죽게 하고, 이 어찌 용서 받을 부지중의 죄입니까? 율법에 의하면 먼저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이런 죄를 범한 것은 물려받은 원죄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상응하는 다른 보응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했어도 세상의 법에 위배된 것은 세상의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법도 안 지키다간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마5:26) 하신 말씀대로 붙잡혀서 시험을 당합니다.
그리고 알고 지은 죄는 모르고 지은 죄보다 더 큽니다. 그래서 약4:17에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자신의 원죄를 탓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이런 죄를 범하는 것은 원죄 때문입니다. 즉 나도 모르는 순간에 죄인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범죄에 대한 회개 의무가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누구든지 도피성 되신 그리스도께 나올 수 있는 대상이란 점입니다. 그래서 요3:16에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형제가 우리에게 죄를 범하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도피성의 입성 대상의 범위는 인류적입니다. 민35:15에 "이 여섯 성읍은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이스라엘 중에 우거하는 자의 도피성이 되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서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10:34-35) 고 했고, 바울도 아덴에서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행17:30) 라고 전도했습니다.
히10:26-27에는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여기 짐짓죄란 여러 번역성경에서 “일부러 죄”로 변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일부러 죄는 전체적인 문맥으로 보면 예수를 배반하고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별 수 없지요. 도피성은 2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하신 것처럼 예수 안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는 우리의 영육을 파괴하고 지옥에까지 끌고 가는 무서운 죄입니다. 그러나 죄 문제 가지고 방황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로 나오면 어떤 죄든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우리 영혼을 찾는 피의 보수자인 율법에게 잡히지 말고 도피성 되신 예수님께 나아와 용서와 보호와 자유를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