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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19
후대를 위한 기도 / 성경 벌레
지난 주일에는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이 히스기야는 다윗과 함께 최고로 존경받는 한 인물이었습니다. 다윗 이후에 300년 만에 등장한 경건한 왕이었고 또 여호사밧 왕과 더불어서 종교 개혁을 단행했던 아주 훌륭한 그런 왕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이 히스기야의 계획이 얼마나 철저했던지 모세가 만들었던 놋 뱀까지 이 느우스단이라고 해 가지고 다시 말하면 놋 조각이라고 해 가지고 완전히 깨뜨리고 부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언뜻 생각하면 그 과정들이 뭐 별로 어렵지 않았다고 그렇게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히스기야는 그때 당시 왕이었습니다. 왕이었다는 말은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권력을 가지고 얼마든지 그런 모든 일들을 단행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쉽게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때 당시에 이 놋 뱀을 척결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히스기야가 왕이 된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왕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말은 지금 정치적 기반이 아직까지 완전하게 성립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대통령이나 어떤 왕들이 자기의 어떤 생각을 개혁으로 그렇게 단행할 때는 거기에 신하들이나 각료들이 함께 힘을 싫어 줘야됩니다. 함께 돕고 함께 의지를 같이 모을 때에, 그때에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히스기야가 왕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말은 그만큼 정치적 기반, 이 입지가 약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중요한 사실은 이 놋 뱀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때 당시에 정신적, 나아가서는 신앙적 기둥과도 같은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이 놋 뱀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 뱀에게 물려서 완전히 멸망 직전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이 모세가 자기 손으로 직접 놋 뱀을 만들어서 높은 장대에 매어 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놋 뱀을 쳐다보는 모든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서고 살아났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놋 뱀에 대해서 얼마나 애착이 있었겠습니까! 심지어는 그 놋 뱀이 '자기들을 광야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다!' 그렇게 해서 열심히 섬겨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히스기야가 이 놋 뱀을 깨뜨리고 부수고 종교개혁을 단행했다! 이런 차원에서 봤을 때에 많은 백성들이 또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킬 엄청난 소지가 함께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생명을 담보로 이런 종교 개혁을 단행을 했던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침공 시에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앗수르의 산헤립 주로 랍사게 이런 인물들이 막 협박을 가하고, 또 하나님의 이름을 조롱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완전히 멸망 직전으로 그렇게 몰아넣었을 때에 그때에 히스기야가 이런 협박편지를 받아들고 하나님의 전에 나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엎드려 간절히 기도함으로 통해서 그 날 밤에 앗수르 군사 18만 5천명이 완전히 송장이 되어져 나가는 이런 역사들을 체험을 했던 것입니다.
또 그 개인적으로는 어떻습니까!
사형 선고가 떨어졌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제 당신이 죽고 더 이상 살지 못한다. 오늘 이시간부터 당신의 집안을 정리해라!'
이런 사형 선고가 떨어졌습니다.
그때에 이 사형선고가 떨어졌을 때에 이 히스기야는 면벽 기도를 합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벽을 향해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나라를 어떻게 하시렵니까! 내 후대를 어떻게 하시렵니까!' 어쨌든 이런 사형선고 앞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던 그 사람이 히스기야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응답의 결과로 15년이나 생명의 연장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에 히스기야는 그야말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위기와 문제를 무엇으로 풀어 나갔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오직 기도로 말미암아 이런 문제와 사건, 모든 위기를 완전히 풀어 나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에게도 순간, 순간 문제가 오고 때로는 예상치 못했던 그런 위기들이 얼마든지 찾아 올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때에 저와 여러분들이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그렇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진정으로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하는 마음에 중심이 되어진다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위기를 완전히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이 신앙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문제는 히스기야 자신은 이처럼 믿음과 기도의 삶을 살았지 만은, 그 아들은 므낫세는 어떻습니까? 이 므낫세 왕은 그의 아버지 아하스와 함께 가장 악한 그런 왕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이 본문을 보십시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얼마나 악한 왕이었느냐 이 사실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먼저 3절을 읽겠습니다. "그 부친 히스기야의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 왕 아합의 소위를 본받아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여 섬기며"
아버지 히스기야는 그렇게, 그렇게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몸부림 쳤습니다. 항상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엎드렸던 그런 의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 므낫세는 어떻습니까? 아버지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고,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세우고, 더 나아가서는 하늘의 일월 성신을 섬기고 숭배를 해왔다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철저하게 우상을 섬겨나갔습니다.
그 뒤에 5절입니다. "또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단들을 쌓고"
얼마나 못된 짓을 했습니까!
여호와의 전 마당이라! 그랬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그 성전 앞에다가 일월성신, 하늘에 해와 달을 섬기는 그런 단들을 함께 만들어놓았다는 것입니다.
또 6절입니다. "또 그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격발하였으며"
하여튼 우상이라는 우상은 모두 받아드립니다.
심지어는 박수 술객 점쟁이를 다 불러들이고 그들을 신임했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이 지금 므낫세 왕은 얼마나 못된 짓, 이런 우상숭배를 그렇게 천명하고 또 그렇게 행하며 나아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때 당시 당대에 최고의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로부터 시작해서 자기 대에까지 계속해서 활동했던 하나님이 선지자가 한 사람 있습니다. 그 유명한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이 이사야 선지자를 톱으로 켜서 죽였습니다.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우상 숭배를 반대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해 가지고 지금 이 므낫세가 이사야 선지자를 그냥 죽인 것이 아니고 톱으로 켜서 그렇게 이사야 선지자를 죽였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왜 이런 일들이 벌어 졌습니까!
최고로 믿음 좋고, 경건하고, 기도의 왕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생명 걸고 종교개혁을 단행했던 이 히스기야 왕 앞에 왜, 최고의 악한 므낫세가 탄생을 했습니까!
그것도 이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로 얻은 그런 아들이었습니다.
그런 아들이 지금 최고의 악을 그렇게 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분들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차라리 이 므낫세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을,
히스기야의 모든 업적에 있어서 이 므낫세처럼 최고의 고통스러운 사건이 없습니다.
차라리 이 므낫세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히스기야가 더욱더 위대한 왕으로 추앙 받지 않았을까!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어쨌든 지금 므낫세는 최고의 악한 왕으로 그 시대 속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믿음 좋고 신실한 목사의 가정에 타락한 자녀들이 생겨납니다.
일평생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충성한 장로의 가정 안에 이런 문제아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진실하고 그렇게도 참되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성도님들의 가정 속에 폐륜아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아버지도 믿음 좋고 그 어머니도 믿음 좋고, 그런데 그 자녀들이 악을 행하고 타락하는 이런 가정들... 얼마나 지금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히스기야의 가문에도 똑 같은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왜 경건한 아버지 밑에 이런 악한 왕이 일어났습니까!
그렇게 기도하고 믿음대로 살려고 몸부림쳤던 이런 경건한 사람 밑에 왜 이렇게 악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런 아들이 태어났을까요?
오늘 우리는 이 문제의 해답을 얻어야 합니다. 여기에 답을 얻지 못하면, '내가 믿음대로 살려고 이렇게 몸부림치는데 왜 이런 문제가 왔느냐?' 얼마든지 낙심하고 좌절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그 앞에 지난주에 읽었던 열왕기하서 20장으로 한번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이 열왕기하서 20장은 히스기야가 사형선고를 받고 기도하여 병이 낳은 사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히스기야에게 바벨로 신하들이 병 문안을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병 문안을 왔던 바벨론 신하들에게 왕궁의 모든 은금 보화를 보여다 줍니다.
또 자랑을 합니다.
'내 지금 왕궁 안에 이렇게 많은 은금 보물이 있다! 우리 군대도 든든하다!' 그런 식으로 지금 바벨론 신하들이 병 문안을 왔을 때에 이런 자기의 육신적인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한번 보십시오. 열왕기하서 20장 12절 13절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저에게 보낸지라"
그런데 사실은 이 바벨론 왕이 이렇게 예물과 편지와 사신을 보낼 때에 우호적인 마음으로 온 것이 아닙니다. 그때 당시 이스라엘 나라! 이 남 유다를 집어삼키기 위해서, 그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이렇게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도 모르고 히스기야가 어떤 반응을 취합니까?
13절입니다. "(왕하 20:13) 히스기야가 사자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 군기고와 내탕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에게 보였는데 무릇 왕궁과 그 나라 안에 있는 것을 저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으니라"
히스기야가 자랑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전략 노출입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 바벨론 신하들이 그렇게 우호적인 마음으로 그렇게 병 문안 온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이 남 유다를 집어삼킬 것이냐?
그런 작전을 가지고 그런 마음, 그런 내심을 가지고 이렇게 찾아왔는데, 그런데 내탕고, 군비고, 심지어는 왕궁 안에 있는 금은보화 다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그들 사신들의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빨리 쳐들어와서 이것을 빼앗아 가야 되겠다!' 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이런 사건을 두고 이사야 선지지가 히스기야에게 경고를 했습니다.
'왕이시여, 왜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했습니까! 왜 이렇게 답답한 일을 행했습니까!
그러면서 히스기야가 무슨 말씀을 했습니까! 20장 16절에서 18절입니다. 또 한번 제가 읽겠습니다. "(왕하 20:16)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왕하 20:17)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무릇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을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말이 좋아서 옮긴바 되죠, 빼앗긴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18절에 더 엄중한 그런 경고가 나타납니다.
"(왕하 20:18)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17절에서는 당신의 모든 은금 보화들이 하나도 남지 않겠다! 다 빼앗긴다는 말입니다. 심지어는 18절에 보시면 당신의 아들들에게 엄청난 문제가 옵니다! 그 자녀들에 대한 어떤 저주가 선포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 말을 들었을 때에 히스기야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지금까지 기도했던 그런 사람이라면, 또 그 자리에 엎드려야 됩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내가 육신적인 자랑을 했습니다. 내가 잘못되었나이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엎드려서 그렇게 회개를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이사야의 경고를 들은 히스기야가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습니다.
19절에 보십시오.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의 전한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가로되 만일 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여러분 이게 무슨 말입니까?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않으리요!'
이 말은 '내가 사는 동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괜찮지 않느냐!' 그 말입니다.
지금 땅을 치고 회개해야 됩니다.
'하나님 내가 잘못을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병도 낫고,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 나라가 이렇게 강성하게 되었는데, 얼마나 감사합니까!'
겸허한 모습으로 엎드려야 되는데, 그런데 바벨론 신하들이 찾아왔을 때 온갖 자랑을 다 합니다.
자기의 속속들이 그런 내부 사정을 다 알려줍니다.
그래서 그런데 대한 경고로 이러한 모든 보물이 다 빼앗기고 심지어는 아들들에게도 문제가 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잘못을 빌어야 됩니다! 기도해야 됩니다!
그런데 '내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이것이 어찌 선하지 않으리요!' 쉽게 말씀을 드리면 '내가 사는 동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괜찮지 않느냐!' 그 말입니다.
여러분 히스기야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앗수르가 쳐들어오고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아서 죽을 시점에서는 그렇게, 그렇게 기도했던 히스기야! 그런데 '아들이 망한다!'는 이 소식을 듣고는 전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사는 동안에 전혀 문제가 없으면 괜찮다는 겁니다. 히스기야는 태평성대이후 기도를 잃어 버렸습니다. 금은보화를 자랑은 했지만, 모든 것을 자랑은 했지만 기도가 그 속에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 속에 기도가 사라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힘들고 어려울 때에 그렇게 눈물을 흘려가며 기도했던 여러분들의 모습!
이런 모습들이 지금 문제가 해결되고 편안해 지니까, 어느 순간에 인가 기도가 사라지고 자꾸만 인간적으로 육신적인 모습으로 변하지 않습니까?
물론 여러분 당대에는 괜찮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고통이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미친다면 그 결과를 어떻게 감당하시겠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우리 자녀들을 돌아봐야 됩니다. 나 혼자 믿음 좋은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고, 내가 믿음대로 살면 되죠!' 물론 좋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신들만 믿음대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지금 죽어 가는 우리 자녀들, 타락한 문화권 속에 빠져있는 이런 자녀들을 살려내고 건져내야 됩니다!
그 자녀들을 위한 기도가 터져 나와야 됩니다!
어떤 분들은 '나 혼자 사역을 잘하면 되지!' 이래가지고 열심히 뛰어다닙니다.
물론 사역을 감당해야 됩니다. 하지만 지금 내 가정 속에 있는 자녀들이 어떻게 지금 변질되어가고 있느냐? 지금 내 자녀들이 타락한 문화권 속에 빠져가고는 있지 않느냐? 이런 문제들이 뭔가 진지하게 확인이 되어져야 됩니다.
오늘 이 시대에 가장 절실하고 시급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엇보다도 부모들의 기도가 회복되어져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후대를 살리고 후대를 일으키는 이런 기도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가 말로는 'Remnant 살리자! Remnant 살리자!' 늘 '그루터기 살리자!'
그렇게 말은 많이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이런 그루터기, Remnant를 살리는 후대를 위한 본격적인 기도가 되어지고 있느냐? 이게 되어져야 됩니다.
말로는 '주일학교!' 하지말고 진정으로 그 주일 학교 아이들을 위한 우리의 헌신적인 기도, 그들을 위한 진심으로 어린 그런 기도들이 함께 일어나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한나를 보십시오.
이 한나가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한나 시대는 사사시대입니다.
이 사사시대는 우상으로, 또 죄악으로 완전히 타락을 했습니다.
그때 당시에 참다운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영적으로 완전히 무능해졌습니다.
그때에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 땅에는 남자다운 남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행할 남자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살리고 이 민족을 살릴 수 있는 참다운 남자 나실인을 주옵소서!' 한나의 기도는 진짜 후대를 위한 바른 기도가 되어졌습니다.
물론 한나도 처음에는 이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아들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차츰차츰 깨닫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그렇습니다.
'지금 이 땅에는 참다운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그런 남자들이 없는데 그렇다면 이런 아들을 내게 주옵소서!'
그래서 한나의 모든 기도의 제목은 '나실인을 주옵소서! 하나님의 능력을 바로 행하는, 그리고 영적으로 타락한 이 시대를 살릴 수 있는 그런 남자를 주옵소서!' 기도제목이 올바르게 섰던 것입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있습니다.
이 요게벳이 모세에게 젓을 물릴 때에 그냥 물렸겠습니까?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게벳이 젓을 물릴 때에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모세야, 너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모세야, 너는 하나님의 언약의 사람이다! 모세야, 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 애굽의 고통에서 건져내야 된다! 하나님의 능력을 행할 아들이다!' 계속해서 젖을 물릴 때마다 그렇게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런 기도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믿음의 사람 야곱은 어떻습니까?
이 야곱은 마지막 임종하기 직전까지, 숨을 거두는 그 날까지 계속해서 기도를 합니다. 열두 아들들을 한자리에 다 불러 놓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 하나 하나에 손을 얹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 재능을 따라서 얼마나 기도를 했습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기도했던 아버지가 누구냐?
그게 야곱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영감의 아버지 밑에 열두 지파라는 이스라엘의 모든 기둥들이 그 속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신약에 넘어오면 디모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디모데를 향해서 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네가 지금 이렇게 일꾼이 된 것은 네 외조모 로이스, 어머니 유니게의 기도가 있었다!'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기도가 있는 자녀, 부모들의 진실한 기도가 있는 자녀, 결국은 그 자녀들이 승리하게 되어있습니다.
비록 타락하고, 비록 문제가 많고, 지금은 안 되는 그런 자녀들이라 할지라도 여러분 그 자녀들을 위해서 계속해서 기도하십시오.
여러분들의 기도의 무릎이 계속해서 쌓아질 때에, 그 자녀들을 향해서 눈물의 기도가 그 속에 있어질 때에, 여러분들의 자녀가 살아나는,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살리는 그런 일꾼으로 발돋움하게된다는 사실입니다. 절대로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신학교에 다닐 때에 참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제가 처음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에 나이가 21살 때의 나이였습니다.
그때 이제 이런 저런 친구들하고 어울리는데, 이 불신 친구들도 있고 믿는 친구들도 있는데, 그때에는 거의 다가 이 술도 먹고 담배도 하고 주로 이제 그런 시대 아닙니까! 젊은 혈기 때문에 '세상 것도 경험해야된다!' 이래가지고 일부러 술을 먹는 그런 친구도 있고, 또 불신 친구들은 또 좋아서 먹기도 하고... 그래서 이렇게 한번씩 어울리다 보면, 자꾸만 저에게 이제 핀잔을 줍니다.
'아이고 병신 같은 놈! 젊은 놈이 술도 한잔 못 마시고 너는 그래서 세상 무슨 재미로 사냐!' 그런 식으로 자꾸만 저를 핀잔하고 놀리더라 구요.
또 그러면서 제 나름대로 또 고민이 생겼습니다.
'하나님, 내가 진짜 목사를 해야 됩니까!
장로를 하면 돈도 벌고 또 하나님께 더 많은 물질을 바칠 수 있는데, 꼭 목사가 아니더라도 장로해서 내가 돈 많이 벌어 가지고 하나님 교회를 위해서 충성하겠습니다!'
그런 마음이 들더라 구요. 이런 와중에서 조금 힘들고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에, 엄청난 갈등이 왔습니다. '하나님 마셔야 됩니까, 마시지 말아야 됩니까!' 계속해서... 왜? 다른 젊은 친구들은 조금만 뭐 어긋나면 한잔 마시고 털거든요. 그런데 죽었다 깨어나도 저는 그게 안됩니다.
그리고 그때 당시에 이제 신학교 다닌다는 이런 입장이, 뭔가 또 경건의 삶을 살아야 되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가지고 좀 차별된 그런 생활을 해야 되니까, 욕도 한마디 제대로 못하죠. 술도 못 마시죠. 때로는 좀 음침한데 들어가고 싶어도 또 그것도 안 되죠. 그러니까 이 젊은 혈기가 너무 답답하더라 구요. '하나님 내가 이래서 되겠습니까! 아이고 나도 한번 해 보렵니다...' 그런 온갖 생각들이 다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식구들하고 같이 저녁을 먹는데, 어머님도 같이 앉아 계셨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불쑥 그런 말을 던졌습니다. '어머니 내가 목사 안하고 장로 되어 가지고, 돈 많이 벌어 가지고 좀 교회를 위해서 충성하면 안 되겠습니까!' 이런 이야기를 그냥 쉽게 던졌더랬습니다. 그때는 별로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러고 난 후에 저녁에 이제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한참 자는데 머리맡에서 좀 이상한 생각이 들더라 구요. 그래서 놀라 가지고 눈을 떴는데요. 깜깜하니까 뭐 그렇게 잘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 머리맡에 어머니가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엉엉 우시더라 구요.
그러면서 이제 정확한 내용은 듣지 못했습니다 만은, 제 생각에 '하나님, 이 아들 어떻게 하렵니까! 하나님, 이 자식 어떻게 하렵니까!' 뭔가 그런 막 우는 소리로 기도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 얼마나 가슴이 아프더라 구요. 그래서 뭐 인기척을 내지 않고 누워서 저도 울고 어머니도 울고... 그러고 난 후에 제 마음속에 다짐을 했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내가 목사 안 한다는 소리는 절대로 안 하겠습니다!'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 쭉 지내오면서 한번도 목사가 된 것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축복의 자리에 서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렇게 기도가 나옵니다. 어쨌든, 어머니의 그 기도 덕분에 제가 지금 이렇게 설교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진짜 자녀를 위한 기도가 있습니까?
자녀를 위한 기도가 되어지면 그 가문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문제 속에 있다가도 그 기도 때문에 자녀들이 돌아오는 이런 엄청난 축복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기도의 비밀을 꼭 회복하십시오.
우리 자녀들을 살리는 그 길은 기도밖에는 없습니다.
기도가 있느냐? 하나님의 역사 속에 들어가게 되어있습니다.
기도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받게 되어있습니다.
오늘 우리 부모님들이 이 기도를 꼭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되 무조건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그 속에 언약을 심는 기도를 꼭 하시기 바랍니다.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늦게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54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죽기 12년 전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계산을 해 보면 히스기야 42살에 얻은 아들이 이 므낫세 였습니다.
이렇게 늦게 아들을 얻었으니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 가문에 대가 끊어질 그런 찰나였습니다. 그런 순간에 아들을 얻었으니까, 그보다 더 귀한 아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사랑은 다 베풀었을 것입니다.
아들이 하고싶은 데로 또 해 달라는 데로 그야말로 애지중지! 그렇게 이 아들을 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무엇입니까?
사랑은 베풀었지만 그 아들 속에 언약을 심지 못했습니다.
그때당시 북 이스라엘이 왜 멸망했습니까?
지금 남 유다가 계속해서 징계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징계를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적으로 말하면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이 그토록 싫어하시는 이 우상숭배!
그래서 이 우상 숭배하다가 그 아버지가 망했습니다.
그리고 우상 숭배하는 아버지 밑에서 히스기야 성장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아들 므낫세에게 우상의 심각성, 이 우상에 대한 경고를 분명히 해야 됩니다.
'봐라! 너희 할아버지 아하스가 우상 숭배하다가 망했다!
그리고 내가 우상을 완전히 척결했다가 하나님께 축복을 받았다! 그래서 너도 이 우상을 멀리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믿음의 사람이 돼라!' 그래서 그 아들의 마음속에 진정한 언약을 심어 줬어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귀하게 얻은 아들이다 보니까, 이 사실을 놓쳤습니다.
여러분 육신적인 사랑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세상이 무엇이며 우상이 무엇이며 그리스도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우리 자녀들 속에 심어줘야 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참 성도의 삶이냐? 이 중요한 사실을 아이들에게 심어줘야 되는데, 그런데 지금 오늘날의 부모들이 어떻습니까?
세상 적으로는 많이 줍니다. 어쨌든 세상 적으로 성공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투자를 합니다.
지금 요즘 현실을 보십시오.
얼마 전에 TV를 보니까요. 불과 3살, 4살 된 이런 아이들! 외국어 언어 교육을 시킵니다.
그것도 3가지, 4가지 일본어, 중국어, 영어 그리고 또 불란스어 이래가지고 지금 전혀 알지도 못하는 그런 아이들에게 지금 4가지, 5가지 그런 의무교육을 시킵니다.
그 말은 '뭔가 세상 적으로 우리 아이들 한번 성공시켜 보자!' 그 말이거든요. 물론 좋습니다. 세상 지식도 안겨줘야 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비밀! 바로 그리스도가 그 속에 심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가 심어지지 못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만 문제가 옵니다.
어떤 사형수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죽기 전에 어머니를 접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를 만나자 말자 이 사형수가 그 어머니께 달려들어서 어머니의 혀를 물어뜯었습니다.
그것을 본 주위의 사람들이 너무 놀랐습니다.
'저런 죽일 놈이 있나! 저런 놈은 죽어도 싸다!' 그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그 아들 사형수가 이런 말을 외쳤습니다.
'내가 사형수가 된 것은 다 저 어머니의 혀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잘못된 길을 걸어갔는데 한번도 나를 징계하지 않았다! 한번도 내가 그르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의 혀를 물어뜯었다!'
그러면서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착하게 살아라! 열심히 살아라!' 그런 말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 자녀 속에 그리스도 언약이 심어지고 있습니까!
타락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그리스도의 비밀이 있습니까! 우상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있습니까!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언약을 그 속에 심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아들이 너무 귀하다 보니까, 이 중요한 사실을 심어주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이사야 선지자의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위한 기도가 없었습니다.
'지금 당장에 문제가 없으니까, 또 내 사는 삶 동안에는 형통하니까,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런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상 적으로 성공했다고 이제는 부모의 도리를 다했다고 그렇게 안심하지 마십시오.
지금부터 자녀를 위한 본격적인 기도가 진행이 되어져야 됩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2절, 3절입니다.
너무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우리 같이 한번, 다시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21장 2절, 3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서 (왕하 21:3) 그 부친 히스기야의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 왕 아합의 소위를 본받아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여 섬기며"
보십시오.
온갖 우상들, 그 아버지가 척결했던 모든 우상들을 다 끌어들입니다.
저는 오늘 이 사건을 처음 읽어 봤을 때에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히스기야처럼 이렇게 믿음의 아버지 밑에 이렇게 또 악한 왕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렇게 경건한 아버지 밑에 왜 이렇게 악한 왕이 태어났을까?
처음에는 이 사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므낫세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었지만은, 사실은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에게 있습니다.
우상을 쳐서 파하고, 국가적으로 위기를 당하고, 개인적으로도 질병이 찾아왔을 때에 그렇게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던 사람이 히스기야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망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사는 동안에는 별 문제가 없겠다!' 그 아들 위한 기도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부모들의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확인을 해야됩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 자녀를 위한, 자녀들을 위한 기도가 진지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경제적 기반이 좋아지고 먹고사는데는 별 지장이 없으니까! 상대적으로 자녀에 대한 기도도 자꾸만 약해지고 있습니까?
분명한 것은 부모의 기도가 회복되어 질 때에 그 가정도 살고, 자녀도 살고, 모든 가문이 살아나게 되어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귀에 생생한 그런 고함소리가 하나 있습니다.
몇 년 전에 경복 중학교 교목으로 생활할 때, 하루는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올라 갔더랬습니다.
그런데 교무실 문에 딱 들어서는 순간에 저쪽 귀퉁이에서 어머니의 오열하는 소리가 들리더라 구요.
그 목소리가 뭐냐하면,
'내가 뼈빠지게 너를 공부시켰는데, 네가 나를 이렇게 할 수 있느냐!'
깜짝 놀랐습니다.
문을 열고 딱 들어가는데요. 막 고함을 지르는데 한 손으로는 아이의 가슴을 쥐어 잡고 한 손으로는 머리채를 막 내리 때리는데요.
그때에 외친 말이 뭐냐하면,
'내가 뼈빠지게 고생해서 너를 이렇게 세워놓았는데 네가 내게 이럴 수 있느냐!'
뭔가 사고를 쳤습니다.
그래서 지금 근신하는 도중에 있습니다.
그때에 불려온 이 어머니의 심정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여러분 아무리 세상 적으로 잘해줘도 그 아이들의 마음속에 진정한 언약! 예수 그리스도가 심어지지 못하면 반드시 문제가 오게 되어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히스기야 가문의 고통이 우리 속에 반복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믿음 좋은 아버지 밑에 왜, 그렇게 악한 아들이 태어났겠습니까?
지금은 자녀를 위한 기도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타락한 문화권, 이런 흑암문화권, 이런 모든 문화권 속에서 우리 자녀들을 그 속에서 건져내는, 더 나아가서는 그 모든 현장을 정복케 하는 이런 승리의 축복들이 여러분 속에 찾아와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우리 부모님들의 이런 자녀들을 위한 기도가 회복되어져야 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기도로 말미암아, 우리 부모님들이 기도로 말미암아 자녀들이 살고 여러분의 가문 속에 큰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