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1) 섬길수록 더 귀하게 보이는 주님 (야고보서 1장 1절)
< 가까울수록 존중하십시오 >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믿음을 강조하다가 실수 한 마디 합니다. “행위를 강조하는 야고보서는 지푸라기 서신이다”라는 말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야고보서는 행위를 강조한 책이기도 하지만 믿음을 로마서 이상으로 강하게 피력한 성경책입니다. 이 말이 진실임을 이제 야고보서를 보아 가면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제 야고보서를 통해서 행위와 믿음이 함께 가는 ‘균형 잡힌 신앙인의 길’을 함께 개척해 나아보기로 할까요?
여러분! 먼저 1절 말씀을 보십시오. 특이한 말씀이 나오지 않습니까? 1절을 보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란 말이 나옵니다. 이 구절에서 무엇인가 느껴지는 바가 없습니까? 야고보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한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의 서신을 보면 거의 대부분의 ?탓【?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종이라고 한 것과 야고보가 종이라고 한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왜 차원이 다를까요?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도 바울은 완전히 남입니다. 그러므로 큰 은혜를 입고 ‘당신의 나의 주입니다’라는 고백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동생으로 오랜 기간 같이 한 집에서 죽 살아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형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다고 해도 형님이신 예수님보고 “당신은 나의 주입니다”라는 고백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야고보는 참된 보화를 발견할 수 있는 겸손한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정생활을 하다 보면 “내 자녀가 얼마나 소중한가? 내 남편, 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가?”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본성상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리고 가까워질수록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존경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비교적 가깝게 지내는 두 명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한 명은 친한 척 하면서 함부로 합니다. 그러다가 도가 지나칩니다. 반대로 다른 한 명은 친하지만 항상 조심스러워 합니다. 어느 누가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갖추고 있을까요?
가까운 사람을 더 존중하고 더 조심스럽게 대하려는 자세가 참된 성도의 자세이고, 그러한 자세를 위해서 우리는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알면 알수록,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태생적으로 함부로 행동하려는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본성을 잘 극복하는 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사람들은 가까워지면 조심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을 조절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상처도 덜 받고, 사는 데 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사람은 멀리서 봐야 한다”는 속담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가까이 하면 나쁜 점만 드러나는 데 그렇게 하면 이익 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속담은 결코 옳은 속담이 아닙니다.
정말로 좋은 사람은 가까이 갈수록 좋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사람과 오래 사귈수록 더 좋은데...”라는 말이 나와야 하고, “그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더 좋은데...”라는 말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 인격이 되어야 참 인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있는 뭔가 잘못된 부분을 감추려고 하는 성향 속에 “사람은 멀리서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면 그 속담은 분명 우리의 삶의 지표로 삶아야 할 바람직한 속담이 아닙니다. 사람은 힘써 가까이 하려고 하고, 가까이 하며 할수록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 성공적인 삶을 위해 필요한 덕목 >
야고보는 자기 형님이신 예수님의 일상적인 삶을 거의 보아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 형님에게 ‘나의 주, 나는 종’이라는 고백을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의 인격에 대해 유추해 볼 때 예수님의 인격이 얼마나 훌륭한 분이셨는가 하는 것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위해서 필요한 2가지 덕목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 하나는 '야고보의 눈'입니다. '야고보의 눈'은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보화를 발견하는 눈입니다. 사람마다 단점이나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사람은 다릅니다. 그때 좋은 것을 보아야 합니다. 좋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행복도 주어지고 축복도 주어집니다.
세상에 가장 불쌍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칭찬을 하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가장 행복한 사람은 칭찬을 할 줄 알고 칭찬 받는 사람입니다. 칭찬해 보십시오. 많은 좋은 친구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그냥 떨어지지 않습니다. 대개 사람을 통해서 옵니다. 그러므로 칭찬하면 사람도 얻고, 축복도 얻게 됩니다.
칭찬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칭찬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칭찬은 사람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립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칭찬하는 사람을 칭찬해주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칭찬하는 문화가 약합니다. 이때 우리가 칭찬의 작은 씨를 뿌려 칭찬하는 문화를 더욱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우리 가정에도 칭찬이 넘치게 해야 합니다. 항상 칭찬을 많이 해서 내 주위를 밝고 맑게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2) 또 하나는 ‘예수님의 삶’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알면 알수록 더욱 존경스럽게 비춰지는 삶입니다. 우리는 멀리서도 좋게 보이는 사람이 되고 가깝게 사귀면 더욱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야고보의 눈’과 ‘예수님의 삶’이 구비되어 있습니까? 우리 주님을 섬기면 섬길수록 더 귀하게 보이고, 우리 주님이 귀하기에 주님 안에 있는 형제들도 귀한 보인다면 그 사람은 ‘야고보의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또한 주님을 가까이 하고 섬길수록 더욱 귀하게 여기지기에 신앙생활을 할수록 주님의 삶을 더 닮고 싶은 거룩한 열망이 생긴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의 삶’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처럼 야고보의 눈과 예수님의 삶이 겸비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사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성공적인 삶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