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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마태복음 5:44-45)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19-21)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누가복음 23:34)
1. 르상티망(Ressentiment)과 복수의 철학 : 타락한 인간의 위장된 정의
인류의 역사를 지배해 온 가장 견고한 윤리적 철학은 바로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입니다. 고대 바벨론의 함무라비 법전부터 현대의 사법 체계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질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Lex Talionis)"라는 동해복수법의 토대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내가 받은 피해만큼 상대방에게 고통을 되돌려주는 것, 그것을 우리는 '정의(Justice)'라고 부르며 합리화합니다.
우리의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십시오. 누군가 나의 명예를 짓밟고, 나의 재산을 빼앗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을 때, 우리의 심연에서는 활화산 같은 분노가 터져 나옵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타인에 대한 시기심과 복수심이 내면에 깊이 쌓여 독이 된 상태를 **'르상티망(Ressentiment, 원한)'**이라고 불렀습니다. 상처받은 인간은 이 르상티망의 노예가 되어, 원수가 파멸하는 상상을 하며 쾌락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잔인한 복수심을 '공의의 실현'이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포장합니다.
세상의 철학은 나에게 잘해주는 자에게 선대하고, 나를 해치는 자를 철저히 응징하는 것을 처세술의 기본으로 가르칩니다. 인간의 에로스(Eros)적 사랑은 철저히 '상호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게 유익을 주는 한에서만 사랑하는 이 얄팍한 조건부 윤리의 세계에서, '원수'란 내 생존을 위해 반드시 제거해야 할 암적인 존재에 불과합니다. 상처받은 인간의 내면은 결코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용서라는 거룩한 꽃을 피워낼 수 없는, 지독하게 메마르고 굳어버린 황무지와 같습니다.
2. 에크드로스(Echthros)를 향한 아가페 : 이성을 산산조각 내는 벼락같은 명령
바로 이 복수와 증오의 쳇바퀴가 맹렬하게 돌아가는 세상 한복판에서, 마태복음 5장의 예수님은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철학자도 감히 입에 담지 못했던 가장 혁명적이고 미친 선언을 터뜨리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여기서 예수님이 지칭하신 '원수'라는 헬라어 단어는 **‘에크드로스(Echthros)’**입니다. 이 단어는 나와 의견이 조금 맞지 않아 껄끄러운 사람이나 일상에서 마주치는 얄미운 이웃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크드로스는 뼛속 깊은 증오를 품고 나의 존재를 능동적으로 파괴하려 달려드는 적대자, 내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가해자를 뜻합니다.
주님은 이 '에크드로스'를 향해 소극적으로 무시하거나, 속으로는 미워하되 겉으로만 용납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명령은 **'아가파테(Agapate, 아가페로 사랑하라)'**입니다. 이는 감정적 동의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의지적으로 결단하여 상대방의 가장 최고의 선(Highest Good)을 구하고 축복해 주라는, 인간의 본성을 철저히 거스르는 초자연적인 요구입니다. 이 명령 앞에서 인간의 알량한 도덕과 윤리적 우월감은 처참하게 붕괴됩니다.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고, 거짓말하지 않으며, 구제하는 일은 어느 정도 흉내 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원수를 아가페로 사랑하라는 이 절대적 명령 앞에서는, "주여, 나는 할 수 없는 철저한 절망의 존재입니다"라고 항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3. 우리가 바로 그 에크드로스(원수)였다 : 십자가, 원수 사랑의 신학적 기원
왜 예수님은 이토록 잔인할 만큼 불가능한 명령을 우리에게 주셨을까요? 우리를 도덕적인 완벽주의자로 훈련시켜 윤리적 우월감을 갖게 하려는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절대적이고도 유일한 신학적 근거는, 우리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던 그 극악무도한 '에크드로스(원수)'였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 10절에서 우리의 과거를 향해 끔찍한 사형 선고를 내립니다. "우리가 원수(Echthros)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호흡으로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이 주신 지성으로 창조주를 조롱했으며, 내 삶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던 바로 그 폭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정에서 우리는 가장 참혹한 저주를 받고 영원한 불못에 던져져야 마땅한 원수 중의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위에서 우주를 뒤흔드는 파격이 일어났습니다. 살과 뼈가 찢겨나가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못 박는 로마 군병들과 조롱하는 유대인들을 내려다보시며 피 묻은 입술을 여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위대한 청교도 신학자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은 십자가의 이 경이로운 장면을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은혜는 복수를 용서로 바꿉니다. 우리가 우리의 가장 끔찍한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축복할 때, 우리는 우주에서 가장 위대하게 하나님을 닮아가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원수 사랑은 윤리적 실천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 같은 원수를 위해 창조주가 피 흘리셨다'는 이 압도적인 복음의 사실이 내 영혼을 완전히 산산조각 낼 때 비로소 터져 나오는, 십자가 생명의 유출입니다. 내가 원수였을 때 받은 그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의 빚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영원히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준 자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4. 선으로 악을 이기라 : 십자가의 윤리가 가져오는 폭발적 전복
로마서 12장 19절에서 바울은 눈물 어린 호소로 우리를 권면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내 손으로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심판자의 자리에 오르는 무서운 교만을 범하게 됩니다. 복수는 내 영혼을 갉아먹는 독약입니다. 원수를 향한 증오를 품고 살아가는 것은, 내가 독약을 마시면서 원수가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지독한 어리석음입니다. 바울은 그 무거운 원한의 짐을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넘겨드리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21절에서 십자가 윤리의 찬란한 결론을 선포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누군가 나에게 폭력을 가했을 때, 똑같이 폭력으로 갚아주는 것은 악에게 진 것입니다. 폭력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 마귀의 방식에 굴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를 피로 물들인 이 악순환의 사슬을 끊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누군가 그 악의 공격을 고스란히 자신의 몸으로 흡수하여, 정죄와 복수 대신 용서와 생명의 피를 흘려내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우주적 전복이었습니다. 십자가는 무기력한 패배가 아니라, 선이 악의 심장부를 찌르고 들어가 죽음의 권세를 완전히 박살 낸 가장 폭발적이고 공격적인 승리였습니다.
이 불가능한 삶을 우리가 어떻게 살아낼 수 있습니까? 내 의지를 쥐어짜고 결심한다고 됩니까? 결코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얄팍한 인내심과 도덕성은 상대방의 조롱 섞인 눈빛 한 번에 무너져 내립니다. 이 위대한 원수 사랑의 윤리는 철저히 내 힘의 고갈을 인정하고,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자원에 전적으로 의존할 때만 가능합니다. 성령께서 매 순간 나의 심령에 십자가 사랑의 압도적인 공급과 충만을 부어주실 때, 그 무한한 생명의 폭포수가 내 안의 쓴 뿌리와 르상티망의 찌꺼기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원수의 주린 배를 채워주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기적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5. 결론 : 복수의 칼을 내려놓고 십자가의 제단 앞으로 나아오라
존경하는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계신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영혼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그 '에크드로스'는 누구입니까?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 가까운 이들에게 입은 억울함, 나의 젊음과 인생을 짓밟은 가해자를 향한 그 서슬 퍼런 정죄의 돌을 여전히 손에 꽉 쥐고 계십니까? 속으로는 피를 토하는 증오를 품은 채, 겉으로는 거룩한 종교인의 가면을 쓰고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그 피 묻은 복수의 칼날과 정죄의 돌을 십자가의 제단 앞에 온전히 내려놓으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향해 휘둘렀던 반역의 칼날을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심장으로 받아내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영혼을 파괴하는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을 끌어안고 십자가 밑으로 더 깊이 들어가,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측량할 수 없는 은혜의 공급과 충만 속으로 여러분 자신을 던지십시오.
여러분을 찌른 그 사람의 행위를 정당화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모든 심판을 공의로우신 재판장께 맡겨 드리고, 여러분 자신은 증오의 감옥에서 빠져나와 십자가의 자유와 평안을 누리라는 하나님의 애끓는 부르심입니다. 악을 선으로 갚는 이 십자가의 파격적인 윤리가 우리의 삶과 사역, 그리고 모든 관계 속에 실제가 될 때, 세상은 비로소 교회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전율하게 될 것입니다. 나 같은 원수를 살려내신 그 위대한 십자가의 사랑으로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걸어가시는 모든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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