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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함 속에 감추셨다가 같은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
자, 이제, 어떤 사람들은 너무 멀리 가서 광신자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그들은 한 쪽으로 쏠립니다.
그들은 그저 자기들이 펄쩍펄쩍 뛰거나, 어떤 종류의 감정이나 느낌을 받았다거나, 방언을 했다거나, 옳게 증명된
예언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성령이라고 생각하고, 성령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성령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날에 많은 이들이 내게 와서 이르기를, ‘주여, 내가 당신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당신의 이름으로
많은 일들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지 아니 하였나이까?’하리니”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게서 떠나거라.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게 성령의 증거는 아닙니다. 그게 증거는 아닙니다, 친구들. 그렇기 때문에...방언을 하는 것이 증거입니까?
저는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성령을 가졌다는 유일한 증거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가 그 증거입니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자, 아시다시피, 그래서 저는 “만일 방언을 하면, 그는 성령을 가진 것이다”라고 말하는 오순절교 형제들의
운동과는 달리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달리 생각합니다. 그것이 성령을 가졌다는 표시는 아닙니다. 아시겠죠?
저는 마귀도 너무너무 빠른 방언을 하는 것을 들었고, 사람의 해골에서 나오는 피를 마시고는 마귀를 불러내는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저는 애리조나 주에서 인디언들이 뱀을 자기 몸에 칭칭 감고는 비춤을 추면서, 양손을 이렇게 올리고 빙 빙 빙
도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마법사가 창으로 자기 몸을 찌르고 나와서는 연필로 모르는 방언을 쓰고 그 해석을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니까, 제게 그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저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성령의 열매는...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열매로,”방언이나 감정이 아니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것은 겸손과 부드러움으로 매일 똑같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과 늘 함께 하는 사람은 그것을 느낍니다.
그는 말씀을 깨달을 때마다, “아멘”으로 그 말씀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그것은...그는 말씀을 믿습니다, 아시겠죠. 맞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우리가 말씀으로부터 너무나 멀리가 광신적인 뭔가에 의지하게 되면 사탄이 그 사람들 사이에 들어갑니다.
그것이 사탄의 사업입니다. 사탄은 훌륭한 사업가입니다. 그리고 사탄은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서 그들이 그저 펄쩍
펄쩍 뛸 수 있으므로 자기들이 전부를 가진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이웃을 미워합니까?
아닙니다. 아시겠죠? 방언으로 아주 멋지게 말하고, 그와 같은 것들.
그런데, 진짜 성령의 방언을 하고도 성령을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나니. 나는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13장. 아시겠죠? 그러므로 여러분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감리교는, “소리를 질렀을 때, 우리는 성령을 받았습니다.”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을 받지 않았습니다.
나사렛 교인들은 “거룩하게 살 때, 성령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령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순절교인들은, “방언을 하면 우리는 성령을 받습니다.”하고 말합니다. 아시겠죠? 아시겠죠?
그러나 그들은 성령을 받지 않았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시는데, 감흥 속에 나타내시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저...물론 성령과 감흥이 동반되기는 합니다. 여러분 그 위치를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을 정도로 성령을 아주 겸손하게 받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만일 여러분이 성령 안에다 여러분의 생각을 집어넣으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자, 오, 저는 너무나 많이 적어 와서 몇 가지는 그냥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시간이 없습니다.
에덴이후로, 메시야가 오리라고 예언되어 왔습니다. 메시야는 어떤 사람일거라고 미리 예언이 되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아십니다, 메시야가 어떠하겠고, 어떤 사람일 지. 모세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그 메시야는 선지자일 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가질 사역이 선지자의 사역임을 알았습니다. 모든 선지자들이 메시야가 무슨 일을 할지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선지자들은 그 말을 상징으로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머리 위로 지나가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아래로 지나갔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아시겠죠? 어떤 사람에게는 머리 위로, 어떤 사람에게는 아래로. 아시겠죠?
메시야가 시간의 노상에 나타나게 될 때가 되어서 예언되어진 그대로 사람들에게 보내졌을 때,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상상적인 해석으로 메시야가 어떤 사람일 거라는 자기들 자신의 해석을 갖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이 말하는 것을 말하고, 그것에 머무르는 까닭입니다, “성경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감리교인들, 침례교인들, 오순절교인들이여, “그것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런 뜻입니다.”하고
말하면서, 그 말씀에 여러분들의 지적인 해석을 넣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말씀은 이미 말한 그대로를, 아주 정확하게,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그것이...할 수 있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할 지 모릅니다. 그 말을 하는 것은 제가 아닙니다, 아시겠죠,
그것을 책임질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 말씀을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지 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의 말씀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이 메시야는 예언되어왔습니다. 선지자들은 메시야가 어떻게 오겠고, 와서 무슨 일을 하실 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해석들로 인해 메시야를 영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토록 단순함 가운데, 단순한 방법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 단체가 그것으로 인해 넘어졌습니다.
그 말이 맞습니까? [회중이 “아멘”한다.--주] 거기서, 가르침을 받은 그 사람들은 모두...걸려 넘어졌습니다.
어떤 특정한 혈통, 즉 레위 지파에서 태어나지 않고는 교사나 제사장이 될 수 없었습니다. 생각 좀 해 보십시오.
그의 할아버지, 증조, 고조, 사대, 오대, 육대, 칠대 할아버지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들은 밤낮으로, 성전에서, 그 말씀만을 보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교회들에게 있는, 대대로 물려 내려온 카톨릭 사제나 성직자와 같습니다.
“내 증조 고조 할아버지께선 감리교 감독이셨습니다. 제 할아버지는 주교였습니다.” 기타 등등. 아시겠죠?
그들 모두가, 말씀을 읽고, 연구하며 살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의 방법을 형성시켰습니다. 그들의 자손들은
그 조상이 가르쳐준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마침내, 그 조상이 진짜 길에서 많이 벗어난 대로 가르쳤어도,
그것에서 조직을 만들고, 성령이 진리를 제시해 보여 주려고 할 때, 그들은 그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례한 말 같지만, 제 말은 맞습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너무나-복잡하게 만들어--다른 길을 만듭니다. 그들은 가르치기를... “하나님은 손주가 없다”고
하는 말이 맞습니다. 여러분 그 사실을 아셨습니까? 하나님은 아들들이 있습니다, 딸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손자들과 손녀들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똑같은 값을 지불하고 똑같은 길로 와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버지가 하신 그대로, 여러분도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무나 단순했습니다. 이 메시야가...사천 년 동안, 모든 선지자들이 그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다윗은 그에 대해서 노래를 지어 불렀고, 그 다음에도 쭉 그랬습니다. 그런데 메시야가 정작 왔을 때에는,
사람들은 “그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할 것이다.” 라는 자기들 생각을 축적해 두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은 다 설명이 되고, 그것을 도표에다 다 그려서, 그래서 그가 그런 정말로 단순한 방법으로 왔을 때,
그것은 그냥--그것은 그저 그들의 신학을 망가뜨렸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 분은 말씀에 이르신 그대로 오셨습니다. 자,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메시야가 어떠어떠한
방법으로 오겠다고 말씀한 것을 믿으십니까? 시간이 더 있다면 그런 것들을 다 살펴보고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설명할 수 있을텐데 안타깝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 일이 어떠했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메시야가 오리라고 성경은 말씀하셨고,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하고 말씀하셨으며, 거기서부터 계속해서 메시야가 어떻게 행하고 무엇을 행할지. 아시겠죠?
그런데 그분은 너무나 단순하게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 위대한 학자들은 그것을 너무나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침내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말씀과는 반대로 오시지 않았음을
아실 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이르신 대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해석에는 어긋났습니다. 그렇죠?
예수님은 교회의 가르침과는 반대되는 것들을 가르쳤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들은, “메시야가 오실 때, 분명히 그 분은 성전으로 오셔서 ‘가야바야,’ 대제사장 되는 사람더러,
‘내가 도착했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는 수만만 천사들의 경례를 받으며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래
있는 사람들아, 좋다. 너희들은 정말로 거대한 교회이다. 너희들은 내 백성이다. 나는 여기로 크랭크를 돌려서
하늘의 복도를 내리겠다. 오늘 아침, 나는 너희들에게 메시야를 보내노라. 나는 그것을 그 뜰에 내리게 해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둘러서게 하겠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하길, ‘아무개 박사님, 아무개 박사님,
당신들 모두 우리들 맨 앞에 서서 그 분과 맨 먼저 인사를 나누십시오, 아시겠죠,’라고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마도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말일 것입니다. 글쎄, 저는 그 말이 약간
“지나친” 말로 들리리라는 걸 알지만 저는 그저 ... 제 말 뜻을 전하고자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또 계속 말하기를 “그게 앞으로 일어날 방법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일이 그런 방법으로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맞지 않습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입니다. 아시겠죠? 만약 그것이 우리들 식으로 똑같게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적그리스도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수만만의
천사들이 악대를 이루어 내려올 것입니다. 그들은 솔로몬이 지은 성전 뜰에, 오, 모두 이 넓은 뜰에 꽉 차게,
성도들과 성자들이 죽은 이 거룩한 장소에, 착륙할 것입니다, 기타 등등!”
예수님께서는, “그렇도다, 외식하는 자들이여! 마귀의 자식들아! 너희는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을 죽이고 넣어
놓은 무덤을 광내고 있구나.”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다. 그렇죠? “의인들과 선지자들을 얼마나 많이 너희에게
보냈는데, 너희들은 그들을 모두 죽였도다!” 아시겠죠? 그러나 그 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의롭다”고 하십니까?
사람들이 “광신자나 괴짜”라고 부른 자들입니다. 그렇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메시야는 그런 식으로 오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처녀에게 잉태되어, 냄새나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서 그저 평범한 목수를 양부로 두고, 무명의 처녀를.
보십시오, 대제사장의 딸이나, 그런 사람의 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나사렛이라는 보잘 것 없는 옛 시골에서 살고
있던 자그마한 여자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어떤 평범한 홀아비가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죽었습니다.
그는 자식들이 있었고, 요셉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정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튼 그는
처음부터 오명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사생자로 태어났다고 말했습니다. 오, 이런 세상에!
그것은 그들의 빛나는 지혜를 무참하게 때렸습니다. 그렇죠? 그들의 교육과 윤리학은 그것을 삼킬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성경 해석은 그것에 대해서 하나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몸이 떨립니다. 그리고 똑같은 일이 다시 재현되고 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변할 수 없습니다.
벌써 12시이군요. 그만 할까요 더 할까요? [회중이, “아뇨. 계속하세요.”한다.--주] 감사합니다.
그냥 잠시만 조용히 앉아 계시면 됩니다, 아시겠죠. [“계속 말씀하세요.”]
자, 이것은, 저는 앞으로 할 설교 말씀을 위해서 여기 기초를 좀 쌓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을 되도록
빨리 나가실 수 있게, 아마 10분이나 15분 후에, 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길 빕니다.
보십시오, 자, 그것은 너무나 단순했기 때문에 그들의 표적을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표적을
맞추었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말씀을 맞췄습니다. 그는 자신이 말한 그대로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일에 대한 그들의 해석은 틀렸습니다. 모세의 때에도 사람들이 가졌던 구원자에 대한 해석은
틀렸었습니다. 노아의 때의 해석도 틀렸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대로 오십니다.
그 다음엔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것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당신이 메시야이거든, 이러이러한 일을 해보라,” 아시겠죠.
“만일 당신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지금 그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시오.” 아시겠죠?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들을 위해 어릿광대짓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만 기뻐하시고 올바른 일들을 하십니다.
그들은 그러한 분은 분명히 천사들의 경례를 받으면서 와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장 낮은 모습으로 겸손하게 마구간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세련된 윤리학에 비추어보면,
전능하신 하나님, 이 땅을 소유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위대한 권능의 여호와께서 자기의 아들이 냄새나는 말구유
위 외양간보다 더 좋은 장소에서 태어나도록 장소를 마련하실 수 없는 분이라고 보통 인간이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사람들의 훌륭한 학식 있는 지혜는 어떻게 그런 곳에서... 아시겠죠?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단순함 속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것이 그를 그렇게 위대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렇죠, 윤리학 교육은 그처럼 자신을 낮출 수 없습니다, 그렇죠, 그것은 그렇게 되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셔서 자신을 그 정도 아래까지, 자기 아들을 입힐 옷조차도 없게, 낮추셨습니다.
그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세상은... 여관에는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구간으로 들어갔습니다.
언덕에 파인 굴 같은 곳으로. 거기 짚 침대 위에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습니다.
오, 그것은 저 위에서...만나는 것과는 엄청나게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육신의 어머니는 결혼도 하기 전인데도 엄마가 될 사람임이 밝혀졌었습니다. 그렇죠?
그녀는 엄마가 될 처지에 있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그것이 이런 식으로 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속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밤에 주의 천사가 찾아와서, “요셉아, 너는 다윗의 아들이다.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 일은 나쁜 일이 전혀 아니니라. 그 일은 다만 성령에 의한
일이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걸로 일은 마무리 됐습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은 하나님과 그토록 가까운 교제를
나누고 있어서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실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교회라는 옷을 너무 단단히 두르고 있어 우리들이 속해 있는 교회 단체 말고 외부에서는
아무 것도 우리들에게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귀에 거슬리는 과격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그쯤 해 둬야겠습니다. 보십시오. 하지만 여러분들은 제 말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외양간은 세련된 그들에게는 우스운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단 하루라도 학교에 다녔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열 두 살의 나이에, 평범한 소년은 그의 가르침으로, 성전 안에 있는 제사장들을 어리둥절하게 했습니다.
이런, 세상에!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자기 자신을 단순한 방법으로 숨기시는...하나님이셨습니다.
저는 지금 꽤 종교적이 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자기 자신을 헛간 속에 감추신 하나님이십니다.
한 어린 아이 속에 자신을 감추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나 잠시 후에 이 사실이 나타나는 것을 지켜보십시오. 그는 해야 했습니다.
예수가 거리로 나갔을 때, 다른 부모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이렇게 얘기하고 말했을 것입니다.
“저 애하고 놀지 말아라. 저 애하고는 상종도 하지 말거라. 그 애의 엄마는 창녀라는 걸 누구나 다 안단다,
아시겠죠. 그리고 그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 애는 태어나기 전에...그들이 실제로 결혼도 하기 전에 태어났단다.
그녀는 미혼모가 될 처지에 있었어. 저 애하고는 상종도 하지 말거라.”
마리아가 생각했던 것은! 그러나 다 함께, 외부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지, 마리아는 이런 모든 일들을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그 사실을 마음속에 숨겼습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말들을 대꾸할 어떤 것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그의 사람에게 말씀하시고는,“가만히 있거라. 그것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하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제 집회에서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아니, 당신이 그리스도의 종이라면, 당신은 이런 일이 거기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아실 겁니다.”합니다.
물론, 저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거라. 그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하고 말씀하시는데, 여러분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저는 몇몇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책에서 보여주었습니다.
“몇 해 전에, 뭔가가 말했던 것들입니다.”라고 저는 말했습니다.
그들은, “음, 저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제 아시겠습니까?” 바로 그 책에는, 거기서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있었던 모든 것이 다 적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 책에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 일이 이런 식으로, 저런 식으로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말하기를, “아니, 당신은 왜 그것에 대해서 좀 뭐라고 말씀해 주지 않았습니까?”합니다.
그것은 그런 식으로 일어나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다르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애기가 누구의 애기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도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합니다.” 나무를 켜고 문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아멘. 그는 어머니더러, “이제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해야할 때가 됐음을 이해하지 못하십니까?”하고 말했습니다.
자,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이 작고 약한 아이가...” 사생아로 태어난 아이가 어쨌든 좀 요상하고 흥미를 자아내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자 보십시오, 아시겠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숨기시고 계셨습니다.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더럽고, 부패하고, 사생아”라고 생각하는 것 속에 자신을 감추고 계셨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나오게 하려고 죽은 씨의 부패함 속에 자기 자신을 감추십니다. 아시겠죠?
그걸 이해하시겠습니까? [회중이 “아멘”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한 평범하고 작은 파출부 안에 숨기십니다. 또는 도시락을 팔 옆에 끼고 나가는 한
평범한 남자 속에, 자기 아내와 아이들에게 입 맞추고 헤어져 나가는, 그런 남자 속에 어쩌면 자신을 감추시고
대주교는 알지도 못할 어떤 일을 하게 하실 지도 모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양각나팔을 불고 그것을 내보내는 것을 듣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어쨌든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단순한 자들이 그것을 듣고 기뻐합니다, 그렇죠.
하나님은 한 갓난 애기의 단순함 속에 자신을 감추셨고 평범한 가족의 단순함 속에 자신을 숨기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런데 성직자들과 유명인들과 지성인들과 천재와 그들 모두는, 그리고 그 당시의 헤롯왕이라든지
네로왕이라든지, 다 그것을 간과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함 속에 숨어 계십니다.
침례 요한은, 말라기3장. 여러분, 모두, 그 곳을 적어 두십시오. 이사야40장은, 여러분 시간이 좀 있으시다면
잠시 동안만 그것을 읽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회중이 “아멘”한다.] 잠시만, 읽어봅시다.
1.너희 하나님이 말하노라. 너희는 위로하라.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탄생하기 712년 전이었습니다. 여기서 선지자는 그 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2.너희는 위로하면서 예루살렘에게 말하며 그녀에게 외치되, 예루살렘의 싸움이 끝났으므로 그녀의 불법은
용서받았나니 그녀가 자기의 모든 죄로 인하여 주의 손에서 두 배를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3.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기를,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을 위해
큰 길을 곧게 만들라.
4.모든 골짜기가 돋우어지며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구부러진 곳이 곧게 되며 험한 곳이 평탄하게
될 것이요.
오, 이런 세상에!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겠습니까! 그렇죠? 이제, 저와 함께 말라기3장을 폅시다.
1.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주가 갑자기 자신의 성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가 기뻐하는 언약의 사자라. 보라, 그가 임하리로다.
이곳도 요한에 대해 말하는 구절입니다. “내 길을 예비하라고 내 앞에 내 사자를 보내리라.”
예수님께서는 그것에 대해서 마태복음11장:10절에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말씀하시기를:
10.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지를 네 얼굴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하신 말씀이 가리키는 자가 곧 이 사람이니라.
아시겠습니까? 모두 다 한결같이! 700년 후에야,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한 예비자가 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와 같은 단순함으로 나타났을 때, 그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를 놓쳤습니다.
그는 제사장의 아들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가 자기 아버지의 직분을 좇아 신학교로 돌아가지 않은 것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보십시오. 그러나 그가 맡은 일은 너무나 중대했습니다. 아홉 살이 되자, 그는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말씀을 전하러 나왔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놓쳤습니다. 그는 아주 단순해서, 너무나 단순했습니다.
그들의 빛나는 교육이 그런 것을 믿기에는 너무나 복잡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사람이 나왔을 때 생각했습니다.
“모든 고지가 낮아지고 모든 저지가 높아질 것이며 모든 험한 곳이 평지가 되리라”는 말씀은 어떻게 된 거지?
다윗은 그것을 보고는 “산들은 어린 양같이 뛰놀고 잎사귀들은 손뼉을 쳤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씀이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 일이 그 당시 실제로 일어난 일일까요?
어떤 교육도 전혀 받지 않은, 수염이 텁수룩한 늙은 사람이, 양가죽을 두른 사람이 유대 광야에서 비틀거리며
나와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노라. 그리고 너희 뱀들아, ‘너희는 나는 어떤 조직에 속해 있다’고 말하려고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능히 이 돌들을 가지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에!
그런데 지혜로운 서기관들 제사장들 등등은 “글쎄, 그 사람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아닙니다, 그 사자는 바로 요한이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는 길을 깨끗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바로 그 때가 그 험한 곳들이 평지가 되었던 때였습니다. 바로 거기가 고지가 낮아진 데입니다.
“속으로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라 하지 말라. 하나님은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것이니
그와 같은 소리를 나에게 하지 말라.” 높은 곳들이 낮아졌습니다. 오, 세상에! 바로 그겁니다. 그렇습니다.
그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그는 그것이 바로 일어날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말씀대로 왔을 때, 그들은, 이런, 세상에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만일 그가 자신들의 해석과 자신들의 조직으로 온다면 그를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와 같이 단순한 방법으로 왔기 때문에. 하지만, 그 성서 구절을 그대로 해석하면서 오셨으므로,
그 높은 곳은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길 원치 않았지만, 그들은 낮아졌습니다.
이런, 그는 그들의 지적인 교만을 다 깎아버렸습니다. 그는 그들의 정체를 다 벗겨 버렸던 것입니다.
말하기를, “너희 독사들아! 너희 풀밭의 뱀들아! 내가 말하노니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 열매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나는 너희를 물로 침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그는 너희를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서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태우시리라.”고 말했습니다. 아멘.
바로 그 때에 험한 곳들이 평탄케 되었던 것인데, 그렇죠, 그 당시의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예언되어진 말씀과 딱 들어맞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이 이른 그대로였습니다.
그 말씀은 너무 단순해서, 사람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놓쳤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제발, 그렇게 눈멀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그렇게 눈멀지 마십시오. 그래서 이제, 들어 보십시오.
그들은 그것을 놓쳤습니다. 요한은 그가 어떠한 사람일거라는 그들의 일상적인 믿음에 비해서 너무나 단순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놓쳤던 것입니다. 다시금, 무엇이었습니까?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단순함 속에 감추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칼라를 뒤로 젖힌 옷을 입은, 영리한, 교육을 받은 제사장들에게 나타내신 것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도 그들에게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왔을 때,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하고
물으셨습니다.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제사장복을 입은,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을
보러 갔더냐? 그런--그런--그런--그런 종류의 설교자를 보러 갔더냐?” 예수님은, “그걸 보러 갔더냐?”하셨습니다.
그는 말씀하시길,“아니다. 그런 류의 사람들은 애기들에게 입 맞추고,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죽은 자를 매장이나
시키느니라. 그들은 전쟁터에서 두 손으로 부리는 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느니라. 그들은 그들의 지적인
연설을 하러 키와니스 클럽 같은 실업가 단체나 그런 곳엘 갈 뿐이니라.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들은 그런
곳에서는 아무 탈이 없이 잘 있겠지만, 밖에서 전쟁을 대면해야 할 때가 되면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느니라. 그들은--왕궁에 있느니라. 그들은 그 유명인사들 같은 사람들과 함께 빈둥거리며 지내느니라.”
하지만 그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러 나갔더냐.?”라고
말하는 사람, 누군가 요한에게, ‘있잖아요, 당신은 단일성설교에 속합니다. 하지만 여기 하나님의 성회에 오시기만
한다면, 제가 어떻게 할지를 말씀드리죠. 우리는 이렇게 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할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휴우! 요한은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었습니다. 아니에요, ‘만일 당신이 우리에게 와서 사두개인이 되고 바리새인이
되지 않는다면,’이라든가 그런 말들로? “너희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사람을 보지 않았느니라. 요한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형제여. 그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다면 너희가 무엇을 보러 갔더냐? 선지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은 선지자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는 말씀하시길... 그것이 선지자의 증거였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의 말씀이 그와 함께 있는 것이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매번, 선지자에게 옵니다. 그렇죠?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보러 갔더냐. 선지자냐?” 말씀하시길, “그렇다, 맞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는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이니라, 이는 그가”
왜 그가 선지자보다도 더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언약의 사자였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그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율법과 은혜 사이의 길을 연결했습니다. 그는 선지자들이 그에 대해서 말한 내용 중 요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이 사람은 선지자가 말했던 사람이다. ‘보라,’ 말라기 3장,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라.’” 아시겠습니까?
오, 그는 너무나 단순했습니다. 다시 단순함 속에 숨으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그가 무엇을 했나 지켜보십시오. 그는 위대한 그리스도의 강림을 열렬히 설교했습니다.
“그는 자기 손에 키를 들고 있다. 그는 ...할 것이다, 그는 그의 길을 키로 까부르고 있다. 정말, 다시 말해서,
그는 그의 타작마당을 완전히 깨끗케 할 것이다. 그는 쓰레기들을 모아서는 저 쪽에 쓸어다가 태울 것이다. 맞다.
그는 알곡은 모아서 곡간에 들일 것이다.” 보십시오, 그는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셨을 때, 그들은 위대한 뭔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제자들은, 우리들도 아시다시피,
모두 위대한 뭔가가 나타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세상에! 오, 그 분이 오고 계십니다. 그 일 밖에
남지 않았어요. 정말, 그 분은 강력한 힘을 가진 분일 것입니다. 그는 이 땅에서 로마인들을 다 물리칠 것입니다.
저런! 그 분이 오시면 헬라인들과 로마인들을 모두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실 거에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왔을 때, 그는 자그마하고 겸손한 사람, 이쪽에서 저쪽으로 밀리는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단순함 속에 자신을 감추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오, 세상에!
그리고나서 예수님께서 그의 가르침을 끝내는 시점에 이르자 서서, “누가 나를 죄 있다 정죄할 수 있느냐?
모든 성서가 내가 하리라고 말한 것을,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 때에는 나를 정죄하라.
그러나 만일 성서에서 내가 하리라고 한 것을 내가 하지 않은 것이 있느냐?” 아시다시피, 죄는 불신입니다.
“누가 나를 송사할 수 있느냐? 내가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를 내쫓거든, 너희는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행하고
있는지 내게 보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순함입니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죽음에까지 굴복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부활절 날 아침에, 할렐루야, 그때가 그가 타작마당을
깨끗케 한 때였습니다. 그는 모든 쓰레기를 말끔히 청소했습니다, 형제여. 자매여, 네, 정말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밀은 곡간 속에 인침을 받았습니다. 영생을 안에 가지고, 땅 속에서 쉬고 있으면서,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주님 오시는 날을 기다리고 있고, 그 생명은 살아날 것이고, 우리들은 그 부활 때 일어날 것이며, 공중에 들림을
받아 주님을 만나, 곡간으로 모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쓰레기들은. 저기에서 불태워질 것이고, 둘러싸고 있고,
이리 저리 당길려고 애를 쓰고 있는 그 죽정이들 껍데기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질 것입니다. 아멘.
오, 주님은 훌륭한 분이지 않습니까![회중이 “아멘” 한다.--주]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단순함 속에 계신 하나님을 말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왜 그랬습니까?
왜냐하면, 그는 절대로 종교적인 단어로 설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코 설교자처럼 설교하지 않았습니다.
아시겠죠? 그는 하나님의 단순함을 지닌 용어들을 사용했습니다, 이를테면 “도끼가 놓여졌다.”라든가 “나무”라는
용어나 “뱀들”이라는 말들을 사용했습니다. 오늘날의 종교계에서처럼 어떤 신학교 선생이나 신학박사나,
박사 아무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딘가에 있는 나무꾼처럼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는 도끼니 나무니 뱀이니 그런 것, 밀이니 곡간이니 그런 것을 얘기했습니다. 그는 제 생각에는, 가두 연설하는
설교자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 그는 “그루터기 설교자”로 알려졌다고 생각합니다.
요단 강 옆에 있는 그루터기 위에 올라서서 말씀을 전하는 사람 말입니다.
아마...세상의 지혜로부터는 숨으시는, 단순함 속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자 알아봅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여, 당신께서 이런 것들을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배우려고 하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그것을 나타내실 것에 대해서 감사하나이다.” 아시겠습니까?
단순함으로, 그리스도 안에 숨어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단순함으로, 요한 안에 숨어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을 좀 생각해 보십시오. 단순함 속에 계신, 세상의 지혜로부터 자신을 감추시는 하나님을...
보십시오, 잠시 멈춥시다.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하고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가 거하고 있는 작고 낡은 초라한 곳에 내려 오셔서
아픈 자들을 고치시는 때입니다. 부유하고 교만하고 많이 배운 사람들은,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어. 하나님의 병 고치심 같은 것은 없어.”합니다.
제가 떠나는 날 아침, 이 곳 건너편에서 다윗과 골리앗에 대해서 설교한 말씀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말하기를, “브래넘 형제님, 당신은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저 바깥 교육받은 세상을 어떻게 상대하려고 하십니까?”
저는, “어떻게 상대할지 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셨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그게 전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말씀입니다. 그 분께서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지금이 그 때입니다.
오는 유월로 서른 해 전인가 서른 세 해 전에, 그 날 여러분이 저기에 있는 사진에서 보시는 천사가 오하이오
강에 내려왔을 때, “침례 요한이 보냄을 받은 것처럼,” 오천여 명의 사람들 앞에 나타나, “네 메시지가 세상에
퍼질 때가 왔다”고 말씀했습니다.
그 때 얼마나 많은 비평들이 쏟아졌었는지를 기억하고 계시죠. 로이 슬로터나 여기 앉아 계신 몇 분은 그 날을
기억할지도 모릅니다. 스펜서 부인이나 여기 계신 어른들은, 조지 라이트나 몇몇 분은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아십니까, 그것이 어땠는지.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회중이 ”아멘“]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것이 거절당하는 가운데서, 말하기를, “그것은 정신통일로 고치는 것이야.”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돌아서서 한 늙은 말 못하는 주머니쥐를 그 안으로 들여보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낫게 만드셨습니다.
라일 우드와 뱅스는, 우리가 저기에 앉아 있을 때, 하나님이 입증한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죽은 피라미 새끼 한 마리가 물에 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의 영광을 보이시겠고 그것에 대해 뭔가를
하시겠노라고 성령은 그 전날 말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그 날 아침, 거기에 서 있었을 때 였습니다.
배 안에 성령이 내려오셨고, 저는 일어나서 그 물고기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물고기는 아가미와 창자가
입 밖으로 끌려나와 약 삼십 분 동안 죽은 채 물에 떠 있었습니다. 그 물고기는 살아나서 다른 물고기들과 똑같이
헤엄치며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단순함 속에 자신을 감추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머니쥐든 물고기든 어느 것이라도
낫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메시지를 주셨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믿으려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주머니쥐를 세워서라도 믿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죽은 물고기를 살리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주머니쥐를 살리실 수 있습니다. 그는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이 세대를 향한 얼마나 호된 책망입니까? 그들이 그것 때문에 넘어지고 그것에 대해서 논쟁을 벌이고,
“당신은 이것을 아니면 저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할 때, 하나님은 한 마리의 단순한 동물을 들여보내셨습니다.
그렇죠? 얼마나 호된 꾸중입니까!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자신이 위대하다는 것을 보이시는,
단순함 속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런, 세상에, 불신하는 이 세대의 이런 사람들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것은 자기네 식으로 반드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 만일 하나님의 치료하심 이라는 게 있다면...” 며칠 전 날 밤, 한 카톨릭교인이신 남자분이 제게 이것을 얘기
했습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아십니다. 에어즈가, 말하길, 저는 그의 아들을 보러 휴스톤으로 갔었습니다. 그는,
“아니 그렇다면,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은사라면, 그것은 우리 카톨릭교회에 와야만 했을 것입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아시겠죠? 네, 감리교인들은 그것은 자기네 교회로 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오순절교인들도 그것은
자기네 교회로 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들 아무에게로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며 오십니다. 맞습니다. 정말, 그분은 그렇게 하십니다.
네. 그냥 그것을 지켜보십시오. 그것을 흘려버리지 마십시오.
그것을 여러분 마음속에 잘 간직하고 그것을 명심하십시오. 마음속으로 그것을 숙고하십시오.
자기네 방식으로 와야만 하고, 자기네 교파로부터. “그것이 이런 식으로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 방식대로 오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심리학이다, 아니면 그것은 마귀이다. 그건—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만일 하나님이라면 “그것은 우리네 식으로, 우리가 해석한대로” 와야 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식으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와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그런 식으로 되어야만 했습니다.
아시겠죠? 만일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신다면, 그들은 그 분은 어떤 분이어야 하는가를 다 해석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의 해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들은 “그는 메시야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생아이고, 뭔가 였고 그는 바알세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함 속에 숨어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실 예비자는 어떤 특정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뭐랄까,
의심할 바 없이 목사들을 임명하고 그들을 사람들에게 선교사로 내보내어 매년마다. “이 사람들 중에서 앞으로
나올 예비자가 있을 것이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신학교나 그런 것은 전혀 없는
광야에서 예비자를 일으키셨습니다. 아시겠죠? 겸손함과 단순함 속에 자신을 감추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린 이 말을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단순한 메시지를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의 단순한 방법을 거절하는 것은,
영원히 멸망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도로...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단순한가를 많이 얘기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음, 그들은 그것을 비웃고 그것 위로 달려가고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그것을
다룰 수도 있지만, 그 일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 것입니다.
노아의 시대에 죽었던 사람들은, 그의 메시지를 듣지 않은 사람들은, 다 멸절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가 부활하시기 전 그가 죽음 가운데서 어두움의 사슬에 묶여있는 그들에게 가셔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는 지옥으로 가셔서, 한 단순한 사람에 의해서 하나님의 단순한 메시지가 전파되고 있었을 때,
노아 시대의 오래 참음 동안에 회개치 않은 옥에 있는 영들에게 말씀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는 그곳에 가셨습니다.
말씀하기를, “노아가 내가 이곳에 오리라고 설교했는데, 내가 여기 왔다.”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 선지자의 메시지를 듣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고, 불기둥으로 적절하게 입증을 받아 광야로
이끄심을 입어 나온 모세의 메시지를 듣지 않은 사람들은 일어나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조직을 만들려고 했지만,
그들은 멸망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그 바리새인들은 너무나 눈이 멀어서 그것을 볼 수가 없었고, 그래서 그들은 뒤를 돌아보며,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만나를 먹었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그들은 다 죽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불기둥의 빛 가운데서 걸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 하는 곳에서 걸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이 그들을 위해 마련하여 걷게 한 곳들을 통과하며 걸어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잃고 지옥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 죽었느니라.” 여러분이 그 단어를 찾아보시면, 그것은 하나님의 존전으로부터의
“영원한 분리”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모두 다 죽었느니라.” 아시겠습니까?
예수님을 거절한 사람들은 다 멸망당했습니다. 제 말 알아들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그 단순함을 거절한 것입니다!
그것은, “아니, 제가 잠시 실수를 했습니다.”하고 말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그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영원히, 멸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뭔가를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적절하게 증명되어야만 합니다, 아시겠죠,
그리고나서, 만약 증명이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죠?
오! 그들 시대의 모세를, 엘리야를, 침례 요한을, 예수님을 거절한 사람들처럼.
여기서, 저는 사소한 얘기를 하나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나서, 저는 여러분의 기분이 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며칠 전에 저는 특별사면을 요청하기 위해서 텍사스주 휴스톤으로 와 달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 젊은이와 젊은 아가씨를 위한 특별사면 요청서에 서명하기 위해서 몇몇 사람들을
그 곳에 불러서 말씀을 전하려고 몇몇 사람을 모았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그 문제에 휘말리게 되었음을 알고
계실 겁니다. 저는 여러분이 신문에서 그 사건에 대해서 읽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젊은이는 에어즈씨의 의붓아들이었습니다.
에어즈씨는 여러분이 저기에서 보시는 주님의 천사의 사진을 찍은 사람입니다. 그는 로마 카톨릭교인이고 그의
아내는 유태인입니다. 그는 이 유태인 아가씨와 결혼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종교에 대해서는 얘기를 나누려
하지 않고 그렇게 지냅니다. 그와 함께 일을 하는 테드 키퍼만은 더글러스 스튜디오를 경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거기로 왔을 때, 베스박사는, 침례교회의 목사인 베스박사가 보스워쓰형제의 코에 주먹을 들이대고
흔들면서, “지금, 이런 모습을 찍으시오”하고 말했습니다.
“나는 이 늙은이의 껍데기를 찍어서 하나님의 치료하심의 기념으로 내 서재에다 매달아 두겠소”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텍사스주 휴스톤에 가기 전에 주 하나님께서는 제게 거기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기에
주님의 이름으로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다 그 때의 논쟁과 사건에 대해서 아실 것입니다. 그것을 책에서
보셨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 저는 겸손하게 행하려 맘먹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글쎄, 그 사람들은 일자 무식쟁이들이야”하고 말했습니다.
베스박사는, “그들은 일자 무식쟁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병을 고친다는 그 따위 것을 믿는 그런
사람들은 다시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형편없는 자들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단순함 속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아니, 그 사람은 중학교 교육도 받지 않은 사람이야.”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가질 수 있는 학위들은 다 가진 세련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쨌든 보스워쓰형제를 거뜬히 누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부딪히자, 그는 보스워쓰형제와는 싸움 상대도 되지 못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보스워쓰형제는 그가 서 있는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곳에 앉아계신 분 중 많은 분들이 그 날 그 논쟁하는 곳에 계셨습니다. 그 때 말입니다.
거기에서 그는 우리가 무식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내뱉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것을 믿지도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보스워쓰형제는,“잠깐만 기다리시죠. 이 도시에 사는 분들 중 몇 분이나, 그 날 밤 우리들처럼 앉아 있는 사람들은
약 삼만 명이 있었는데, “이 크고 좋은 침례교회들을 다니시는 이 도시에 사는 분들 중 브래넘형제가 이 도시에
온 이후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이 나았음을 의사의 진술로 증명할 수 있는 분은 여기 몇 분이나 됩니까?,
일어나 보십시오.”하고 말했고, 그러자 삼백 명이 일어섰습니다. 보스워쓰형제는, “어떻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함 속에 숨어 계셨습니다. 그러고나서 그는, “형제님...”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그는, “그 신성한 병 고치는 자를 데리고 와 보시오.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 최면을 거는 것을 좀 봐야겠소.
그리고 그 사람들을 오늘부터 일 년 동안 지켜봐야겠소.”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테드 키퍼...그 사진을 찍었던
당사자인 에어즈는 거기에서, “브래넘씨는 최면술가가 아닙니다. 저는 목에 이렇게 혹이 있는 어떤 여자를 보았습
니다. 그는 브래넘씨가 그 여자에게 최면을 걸었다고 말했는데, 그 다음 날 제가 그 여자에게 얘기를 했는데,
그 혹이 없어졌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베스박사는, “그 사람은 그녀에게 최면을 걸었소.”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조롱했습니다. 그는 제가 그 도시에서 내쫓겨야 할 사람이라며, 자기가 그 일을 해야 할 사람이라고
말하며, 아시겠죠, 그와 같이. 휴스톤 크로니클 지(誌) 일면에 대서특필로 실었습니다.
저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아버지의 일을 하려고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그 말씀과 함께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절 그리 보내셨으므로 그건 그분이 처리해야할 일이었습니다.
저는 거기로 내려가서, “저는—신성한 병 고치는 자가 아닙니다. 만일 누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저는 병 고치는 사람이라고 불려 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여기 계신 베스박사님이 구원에 대해서
설교를 하신다면, 그는 신성한 구원자라고 불려 지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다면 제가 하나님의 병 고치심을 설교한다고 해도 저는 신성한 병 고치는 자로 불려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도 자기가 신성한 구원자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분명히 그는 구원자가 아닙니다. 또한 저도 병 고치는
자가 아닙니다. 저는 다만,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는 말씀을 향해 가리키고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러자 그는, “그 말은 허튼 소리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는 이리저리 걸어 다녔습니다.
저는 말하길,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하나님의 이 은사, 이 주님의 천사가 문제라면 그것은 증명될 수
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 때, 그가 선회하며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는 말할 필요가 없겠군요.
그 분은 이미 저를 대신해서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걸어 나왔습니다.
저는 갔습니다, 그 큰 도시, 휴스톤은 이 나라에서 가장 좋은 도시들 중의 하나입니다.
며칠 전 그 곳에서 걸어 다녔을 때, 그 도시를 쳐다보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거리들은 더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텍사스 거리에 있는 그 곳의 카운터들은, 저는 영화배우들이 투숙하곤 하는
라이스 호텔로 들어갔는데, 그 곳 지하에 식당엘, 내려가 보니, 천정이 떨어져 내려오고 바닥에는 회반죽과 오물과
먼지와 제 평생 들어 본 적이 없는 설교자들 사이의 혼란이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됐습니까? 빛을 거절하면 어둠 속에서 걷게 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죽음을 기다리는 행렬 속에 그들의 자녀들이앉아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이 내려오셨습니다.
단순함이 나타내지고 거절 당했을 때, 그 때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단순함으로 보이셨습니다.
바로 거기서 그들이 전 세계를 휩쓴 그 사진을 찍었습니다. 과학자들조차 그것은 전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사진에
찍힌 유일한 초자연적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진은 워싱턴 디 씨에 있는 종교 예술 회관에 걸려 있습니다.
그 사진은 하나님의 표명된 단순함인 것입니다. 아시겠죠? 아시겠습니까?
단순함 속에 자신을 감추시고, 그 다음에는 자신을 단순함으로 나타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시겠습니까?
자, 하나님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감추셨습니다. 그러나 부활로 자기 자신을 표명하셨습니다.
오, 이런! 그리고는 또, 우리는 그저...우리는 할 수...거기에는 끝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계속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입니다, 아시겠죠.
햇빛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지하실로 들어가 눈을 감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먼저 옳은 것을 거절하는 것이 틀릴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하십시오. 아시겠죠?
그래서 눈뜨기를 거절하신다면, 여러분은 어둠 속에서 살게 됩니다. 그렇죠? 만약 여러분이 보는 것을 거절한다면,
여러분 어떻게 보겠습니까? 그렇죠? 단순한 것들을 잘 살피십시오. 여러분이 하려고 애쓰고 있는 큰일들이
중요한 일이 아니라 여러분이 하지 않고 남겨둔 작은 일들이 중요한 일입니다. 이런, 세상에!
그 다음에는, 여기를 보십시오. 이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마태복음11장 1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이 사람이 그로다.” 아시겠죠?
“내 앞에 보내어진 사람이 바로 그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어느 날 그것에 대해서 예수님께 묻기를, “어찌하여 서기관들이...하나이까”라고.
예수님은, “인자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라. 나는 죄인들의 손에 넘기어지겠고 그들은 인자를 죽일 것이다.
인자는 죽을 것이고 삼일 만에 다시 일어나리라. 저 위에서 본 환상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하셨습니다.
그 제자들은, 자 그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침례 요한과 함께 지내고, 얘기하고, 광야에서 함께 먹던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둑에 앉아서 말하기를, “어찌하여 선생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하나이까? 당신은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러 올라가겠고 다시 일어나리라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메시야이고 보좌에 앉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서기관들은...여기에 모든 성경구절들은 분명하게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오리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네. 아시겠죠?
예수님께서는, “엘리야는 이미 와 있느니라. 그런데 너희들은 그 사실을 몰랐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자, 그 사람들은 누구였죠? 제자들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잠깐 동안만 여러분을 좀 마음 아프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심이 아닙니다, 아시겠죠,
잠시 몇 분간만, 아시겠죠, 여러분이 확실히 이해하실 수 있도록. 제 말이 들리십니까?[회중이 “아멘”한다.--주]
보십시오! “어찌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했던 그들이, “어찌하여 성서는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그런데 그들은 침례 요한이 개심시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를 알지도 못했습니다.
“왜 서기관들은 말합니까?” 제 말 뜻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왜 성경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침례 요한과 함께 행했던 그 제자들이었습니다. “왜 성서는 엘리야가 이 모든 일 이전에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해야한다고 말합니까?” 침례 요한은 약 여섯 명의 사람에게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이 전부였습니다. 아시겠죠?
그들만이 그것을 영접하도록 되어있는 전부였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보도록 미리 정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이미 왔으되 너희들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성서에서 그가 하리라고 한 일들을 그대로
다 행했다. 그는 그들을 회복시켰는데, 그들이란 나를 영접하고 믿는 너희 모두를 말한다. 그는 성경에서 그가
하리라고 한 일들을 그대로 다 행했다. 그리고 그들도 성서에서 그들이 하리라고 한대로 그에게 행했다.
그는 이미 왔지만 너희들은 그것을 몰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준비됐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에게 약간 충격을 주고 싶습니다. 휴거도 마찬가지로 그런 식이 될 것입니다.
휴거는 너무나 단순해서, 의심할 여지없이 같은 식으로 될 것입니다, 휴거가 어느 날 올 것인데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전혀 모를 것입니다. 자, 제발 지금 일어나지 마십시오, 일어나지 마세요, 몇 분만 더 알아보십시오.
저는 정말로 끝내겠습니다. 휴거는 그토록 단순한 방식으로 올 것이므로 심판이 내리고, 그들은 인자를 보게
될 것이고, “이러이러한 일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지 않았습니까? 엘리야가 우리에게 보내져야 되지 않았습니까?
휴거가 일어나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하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휴거는 이미 일어났다,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단순함 속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런데, 자, 잘 보십시오. 휴거는, 아주 적은 숫자가 그 신부에 속할 것입니다!
자, 말씀 전하는 교사들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도표들을 갖고 있는데, 가서 만약 그가
감리교 목사라면, 천만 명의 사람들이 휴거할 것인데 그들 모두가 감리교인들 일거라고 보여줄 것이고, 만약 그가
오순절교 목사라면, 모든 오순절교인들이 들어갈 거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은 휴거의 진리와 거리가 멀 것입니다.
아마 한 사람이 제퍼슨 빌을 떠날 겁니다, 그저 누군가가 실종될 것입니다. 그들은 말할 것입니다,
“어, 결코...” 남은 사람들은 모를 것입니다. 조지아 주에서 떠나는 사람이 한 사람 있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아프리카에서 떠나는 사람이 한 사람 있을 것입니다. 생존해 있던 500명의 몸이 변화하여 간다고 해 봅시다.
그런데, 그것은 전 교회가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교회가운데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올라갈 것이지만, 그것은 다음 번 부활에서 있을 일입니다.
“그들은 천 년 동안 살지 못하더라.” 아시겠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부 안에서는, 만약 바로 이 순간에 500명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떠난다고 하면,
세상은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이 자고 있는데, 내가 한 사람은 데려
가고 한 사람은 남겨 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밤 시간입니다. “들에 두 사람이 있는데,” 지구의 반대편
에서, “내가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 두리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일은 아주 평범할 대로 평범하게 진행될 것입니다. 광신적인 메시지는 지나갈 것이고,
여러분이 먼저 아셔야 될 것은, “이 목사님은 어딘가 가셨어. 그런데 아직도 돌아오질 않으시네. 숲으로 사냥을
가셨을 거야. 그런데 돌아오시지 않는구먼. 이 사람은 어딘가 갔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세요? 제 생각에는,
그 젊은 아가씨는 어딘가로 불려간 게 틀림없는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누군가가 그녀를 데리고 나가서 폭행을
하고는 강 속에다 던져 버렸는지도 몰라요. 그녀는 실종됐어요.” 그녀를 아는 사람이 없다면, 수억 명 가운데서
한 사람쯤이 그 일에 대해서 뭔가 좀 알 겁니다, 말하기를, “아니, 그녀는 실종됐어요.
아니, 저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녀는 이렇게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데.” 아닙니다.
사람들은 “무덤이 열릴거다.”라고 말하는데. 한데 어떻게 무덤이 열리겠습니까? 저는 그 얘기로 들어가고 싶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저는 그냥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단순하심을 보여 주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칼슘과 칼륨과 모든 것은, 여러분의 몸속에 있는 모든 물질들인데 그런 모든 것을 다 합치면 한 숟가락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면, 그것은 영과 생명으로 다시 환원됩니다.
하나님이 그냥 말씀만 하시면, 휴거는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밖에 나가서, 천사들이 내려와서 무덤을 파헤쳐,
여기에서 오래전 죽은 시체를 나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 몸은 처음부터, 죄에서 태어난
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새로운 몸은, 그 몸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진 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이 몸을 가진다면, 우리는 다시금 죽을 것입니다. 그렇죠? 아무도...사람들은, “무덤이 열릴 것이다.
죽은 자들이 걸어 나올 것이다.”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일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열린다고
말하는 식의 열리는 것은 아닐 겁니다. 아시겠죠? 맞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중에 오는 도적같이 오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것은 비밀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것을, 휴거를, 말씀하셨습니다. 휴거가 있고 난 후에는 심판이 내리칠 것입니다,
죄와 재앙과 질병과 모든 것들이. 그 때, 사람들은 죽음이 그들을 해방시키기를 간절히 원할 것입니다.
“주님, 당신은 휴거가 먼저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저희에게 이 심판을 내리십니까?”
그는, “휴거는 이미 일어났으며, 너희들은 그것을 몰랐노라.”하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단순함 속에 자신을 감추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에! 좋습니다. “그것은 이미 일어났는데, 너희들은 그것을 몰랐다.”
왜 믿는 자들은 그의 오심의 단순한 징조들을 믿지 않습니까?
그들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즉 달이 내려가겠고 태양이 한낮인데도 내려가겠고, 그런 온갖 일들이 있으리라는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 시간이 좀 더 있다면 좋겠는데... 여기에 그것에 대해서 적어온 메모들이 있는데, 아시겠죠,
그것들이 무엇인지 보여주려고. 우리는 어쨌든 이번 주에 이 인들을 떼면서 그것을 알아보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거기에서 그것은 이미 지나갔지만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보십시오.
주의 천사가 우리에게 그 일곱 인을 떼어 줄 지. 그것은 그들 일곱 신비스런 우뢰로 인쳐져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그런데 말입니다, 왜 사람들은 겸손한 사람들과 하나님의 표적들의 음성의 간단한 단순성을 믿지 못할까요?
왜 그들은 그것을 믿지 못합니까? 언제나 그래왔던대로 입니다, 참 하나님의 말씀이 표명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나 영리하고 너무나 교육을 많이 받아서 글자로 된 말씀의 단순한 형태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거기에다 그들 자신의 해석을 붙이고 싶어 합니다.
“그 말씀은 이런 뜻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아시겠죠? 그 말씀은 그런 뜻입니다.
들어 보십시오. 지금 빨리 이 말을 해도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기 이곳에서 주시는 환상들조차도, 사람들은
오해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제가 “테이프에서 말한 대로 말하십시오. 환상이 말하는 대로 말하십시오.”하고
말하는 것을 여러분이 테이프에서 듣게 되는 것입니다. 자, 만약 여러분이 말끔히 깨어 있다면, 여러분은 뭔가를
깨달을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을 제 손에 주고 여러분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은...그것은--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말세에 살고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영리하고, 교육받은 자들은 그것을 놓칠 것입니다. 그 단순한 환상--
그것들이 그토록 단순하게 나타내어질 때, 그것은 그저 사람들의 머리 꼭대기 위를 덮어 버립니다. 아시겠습니까?
제가 그 환상을 보고, 거기로 사냥을 가는 것에 대해 설명을 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넘어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실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하나님은 바로 그 목적을 위해서 그것을 보내셨고, 저는 돌아와서
그것을 해석했습니다. 제 어머니가 돌아가실 거라는 것과 그런 것을 보여 주면서. 그리고나서 저는 돌아와서
그것을 미리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하나님께서 되리라 한 그대로 정확하게 일어났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나, 침례 요한은 거기에 나와서 고백했습니다.
그는, “나는 메시야가 아닙니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그들 제자들이 말하기를, “왜 서기관들이 말하기를, 성서는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가르칩니까?” 했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의 단순함은 사람들의 머리 꼭대기를 넘어가 버립니다.
이 말만 하고, 끝내겠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끝내겠습니다. 아시겠죠? 보십시오. 자, 이것을 좀 쪼개 봅시다.
계속 끝내겠다고 말만 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붙들고 있어서 죄송합니다.
보십시오, 단순한 잉크 한 방울을 예로 들어 봅시다.
모든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아침 이곳에 어떤 목적 때문에 모이셨습니다. 촬리, 저는
당신의 집에서 식사했습니다. 넬리, 당신은 제게 어떤 목적이 있어서 저를 위해서 음식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는...이 모든 것은 어떤 목적 때문에 존재합니다. 이 교회는 어떤 목적이 있어서 세워져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목적이나 원인이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제 단순한 잉크 한 방울을 봅시다. 제 말이 들리십니까?[회중이 “아멘”한다.] 단순한 잉크 한 방울을 가지고
그것을 봅시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한 방울의 잉크입니다. 그것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이 잉크 방울을 봅시다.
자, 그것은 검정 잉크입니다. 자, 그 잉크는 어떤 목적을 위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교도소에서 나오도록 저의
사면서를 쓸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사형수의 독방에서 절 나오게 하는 사면서를 쓸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까?
그것은 요한복음3장16절을 쓰고 그것을 믿음으로써 제 영혼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맞습니까?[“아멘.”]
아니면 그것은 제 사형선고장에 서명할 수도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법정에서 저를 유죄로 선고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쓰입니다. 맞습니까? [“아멘.”]
자, 그 적은 잉크를 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봅시다. 자, 그것은 잉크입니다.
그것은 화학원소들이 결합되어 잉크가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검은 색입니다.
여러분 그것을 옷에다 떨어 뜨려 보십시오, 그러면 잉크는 옷에 얼룩을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표백제라는 것을 제조해냈습니다. 여자 분들은 클로락스라는 표백제를 사용하시죠.
제가 그 잉크 한 방울을 가지고 그것을 표백제 통에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그 잉크는 어떻게 될까요? 아시겠죠?
왜 그렇습니까? 표백제는 발명 제조되어, 색채를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분해해 버리도록 만드는 화학원소
들입니다. 그런데, 그 표백제의 일부분은 물입니다.
물은 H2O, 수소와 산소입니다. 수소나 산소는 다 위험한 폭발성 원소들입니다. 그리고 수소와 산소는 사실상
재들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맞습니다. 화학적인 재일뿐입니다. 자, 그것을 함께 결합시키면 여러분은 물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분해시키면, 여러분은 수소와 산소를 얻습니다, 계속 그렇게 반복됩니다.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 그런데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곳에 화학자들이 앉아 계실지도 모릅니다.
화학자들이 제 말을 듣고 계실지도 모르니까? 저는 이 말을 하겠는데, 저는 화학식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식으로 그것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설명 가운데서 자신을 나타내실 거라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그 잉크 한 방울을 표백제에다 떨어뜨렸습니다. 무슨 일이 생깁니까? 그 검은 얼룩은 사라집니다.
여러분은 그걸 다시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라졌습니다. 여러분은 결코 그것을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자, 여러분은 거기에서 아무 것도 나타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못 봅니다.
왜 못 봅니까? 분해됐기 때문입니다.
자, 과학은, “그것은 원래의 산(酸)으로 돌아갔습니다.”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 산은 어디에서 생겼습니까? 아시겠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그것은 어떠 어떠한 것들로부터 나왔다”고
말할 것입니다. 좋습니다. 가령, 예를 들자면, “가스가 산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가스는 어디에서 생겼습니까?
“음, 그것은, 말하자면, 가스는 분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럼 분자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원자에서.” 그럼 원자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전자에서.” 그럼 전자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우주 빛에서.”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다시 옛날 화학자들이 발견해 놓은 것들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물질이고 피조물이라면, 그것은 창조주로부터 나와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기에 우연히 앉아 있는 게 아닙니다. 저는 우연히 여러분을 12:30이나 1:00까지 붙잡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의인의 걸음은 주께서 정하신 거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믿으시는 데에도 무슨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믿지 않는 데에도 무슨 이유가 있습니다. 저 잉크처럼.
그것을 분해해 봅시다. 자, 맨 처음 것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우리는 그것을 분자 상태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자, 분자를 가지고 분자 1 곱하기 분자 9, 곱하기 분자 12. 자, 만일 그것이 11이 되면, 적색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검정색을 만들려면 12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그것을 원자에까지 분해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원자였습니다.
그런데 원자 96 곱하기 +43은 원자 1611과 같게 됩니다. 만약 그것이 1612라면 그 색은 자주색이 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런 다음 그것을 계속해서 분해해 보십시오.
그것은 처음부터 저 뒤에 뭔가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상식일 뿐입니다. 그것은 피조물입니다.
그것은 창조주를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창조주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리고나서 그것은 결정되었고
이런 다른 것으로 혼합되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은 원자 B16 곱하기 12 곱하기 14 곱하기... 몇 번이든지 간에
그렇게,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하셨어야 했습니다.
그리고나서 그것은 원자상태가 될 때까지 형성됩니다, 그 다음에는 과학이 그것을 손대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것은 분자로 나오는데, 그러면 그들은 그것을 더 잘 보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그것에서 다른
어떤 것으로 형성됩니다. 먼저, 그것은 화학원소로 되어, 거기에서 그들은 그것들을 함께 혼합시킵니다.
그런데, 인간이, 인간이 죄를 짓기 전에. 저는 끝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그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켰고, 커다랗게 갈라진 틈을 건너와서,
이 쪽 편에서 사망가운데 머물렀습니다. 인간은 떠났습니다. 돌아갈 길은 없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가 돌아갈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하고나자, 하나님께서는 대속물을 하나 받으셨는데,
그 대속물은 어린 양이나, 염소나, 양이나, 피를 취할 수 있는 동물이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틈의 저 쪽에서 아벨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쪽 편에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자식입니다. 이 땅은 그의 유업입니다.
그는 자연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는 말을 해서 뭔가가 생기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창조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식입니다.
그러나, 그가 건너왔을 때, 그는 아들 신분에서 분리되었습니다. 그는 본성이 죄인이었습니다.
그는 사탄의 손아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피의 화학적인 희생제물을 취하셨습니다. 그러나 소와 염소의 피는 죄와 이혼하게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죄를 덮기만 했습니다. 만약 제가 제 손 위에 붉은 점을 갖고 있고 그것을 흰색으로 덮는다면,
그 붉은 점은 여전히 거기에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것은 여전히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죄를 위한 표백제를 내려 보내셨습니다. 그것은 그 분 자신의 아들의 피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백한 죄가 하나님의 표백제 속에 떨어졌을 때, 그것을 다시금 찾으려고 해 보십시오!
죄의 색채는 중간자들을 통해서 돌아가고 심판의 날까지 고소자 사탄을 치고 그를 누르고 있습니다.
그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그는 다시는 그를 치는 죄를 상기하지 않고, 갈라진 틈의 다른 쪽에 서서
다시 아버지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더 이상 어느 곳에서도 그 얼룩을 찾을 수 없게 됩니다.
그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마치, 그 잉크는 분해되고 다시 환원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잉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가 고백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속에 잠긴 남자분이나 여자분, 그것은 모든 죄의 징후들을
죽입니다. 모든 죄의 분자는 마귀에게 돌아가서, 영원한 종착지가 불못인 마귀를 심판의 날까지 누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갈라진 틈은 다리가 놓아지고, 더 이상 기억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의롭게 되어 서 있게 됩니다. 단순함입니다!
모세는, 소와 염소의 피 아래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단순한 사람을 취하시고
그의 입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넣으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여호와의 종임을 증거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걸어 나가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환상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걸어 나와서 손을 동쪽을 향해 뻗었습니다.
그런데,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가서 손에 있는 지팡이를 동쪽을 향해 펴고 ‘파리가 있을지어다!’하고 말하라.”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 염소와 양의 피 아래서, 거기로 걸어 나와서 그 지팡이를 쥐고는 동쪽을 향해 뻗어,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파리가 있을지어다.”하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파리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는 걸어 나왔습니다. 이미 그 말은 말해졌습니다. 그것은 생각인데, 이제 그 말은 말해졌고, 표현이 되었습니다.
그 때에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입술, 소와 염소의 피 아래 있는 단순한 한 인간의 입술 안으로 왔습니다.
여러분이 먼저 알아야할 것은, 녹색 파리가 날아다니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1 미터마다 2 키로그램이나
되는 파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모세를 통하여 말해진,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피 아래서, 그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서 있었기 때문에, 모세의 말은 그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나님의 교회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개구리가 있을지어다.” 그런데 그 나라 안에는 개구리가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자,
개구리들이 곳곳에 3 미터나 높이 쌓였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한 단순한 사람 안에서 자기 자신을 감추고 계셨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러분에게 물어볼게 있습니다. 만약 소나 염소의 피가 표백제로 사용되어, 오로지 덮을 수만 있었던
피가, 창조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여 파리가 생기게 할 수 있는 위치에 한 사람을 둘 수 있었다면,
여러분은 말을 함으로써 다람쥐가 생기게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표백제로 인하여 어떻게 걸려
넘어질 수 있습니까? 그러지 마십시오, 단순함 때문에 넘어지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으로 남아계심을
믿으십시오. 이런, 세상에! 죄의 사면! 오, 제가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다음에는, 마가복음11장22절에서, “너희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단순함 속에 자신을 감추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까? 어딘가에 뭔가가 잘못됐습니다.
어딘가에 잘못된 뭔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면,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하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단순함 속에 감추십니다. 그것은 너무나 단순합니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과 학자들은, “아, 그것은 정신감응(텔레파시)이야. 아시겠죠. 그것은...”하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시간의 흐름을 자유로이 통과하며 옛날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현재의 여러분의 상태와 앞으로의 여러분에 대해서 정확하게 얘기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것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표백제에 의한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깨끗케 하실 수 있고
그를 표백제 속에다 넣어 표백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만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구하라 그러면 이루리라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라.”
“어떻게 나를 정죄하느냐? 오, 너희들 자신의 율법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자, 선지자들, 너희들은 그들을
‘신들’이라 부르지 않느냐? 그렇다면 어떻게 너희들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데 나를 정죄할 수 있느냐?”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자, 교회여, 오늘밤부터 하는 설교는 꼭 깨달으십시오. 아시겠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보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여러분으로부터 죄를 아주 멀리 가지고 가서, 하나님은 더 이상 그 죄를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 피는 모든 더러움을 없앱니다.
죄는 심홍색 얼룩을 남겼네,
하나님은 그것을 눈처럼 희게 씻었네.
그 때 보좌 앞에서,
나는 그 분 안에 완전한 모습으로 서 있네.
이런, 세상에! 어떻게 제가 완전해질 수 있습니까? 어떻게 제가 완전해질 수 있습니까? 보혈 때문에, 제가 아니고,
하나님과 저 사이에 그 보혈이 서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놓아...
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화학 작용이 죄를 없애려고 가운데 서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를 표백제 속에 있는 물처럼 희게 보십니다. 제 죄는 사라졌습니다.
죄는 희생제물이 거기에 누워있기 때문에, 그에게 미치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의 단순한 말씀을 믿는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만, 그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은 지금 어떤 겸손한 적은 무리들
안에, 단순함으로 자신을 숨기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어느 날엔가는, 하나님은 과거에 항상 해 오신대로,
자기 자신을 표명하실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회중이 “아멘”한다.--주]
주를 사랑해, 주를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내 구원을 사셨으니
갈보리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회중이 “아멘”한다.] 세상에,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 아닙니까? [“아멘.”]
저는 이 설교 메시지가 말씀이 의도하고 있던 것을 산출해내고, 여러분들이 화려한 것이나 유명한 것들을 찾지
않게 되는 경지로 이끌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신다면,
그것이 얼마나 겸손하고 낮은 지를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엘리사가 저 동굴 안에 있을 때, 연기가 지나갔습니다, 피와 천둥과 번개가 지나갔습니다. 아시겠죠,
우리가 가진 모든 이런 종류의 감흥들이 지나갔고, 얼굴과 손에 피가 나고, 감흥들과 기타 등등., 그것들은 그를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냥 거기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미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말씀입니다, 그러자 그는 얼굴을 가리고 걸어 나갔습니다. 보십시오, 바로 그거였습니다.
친구들, 기억하십시오, 크고 위대한 뭔가 유명한 세상에 있는 것들을 찾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하고 큰일들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런, 저런, 아니면 요런 위대하고 큰일들이 일어나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제가 말하고 있는 뜻을 파악하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습니까?
“크고 위대한 일들, 아시겠죠! 그래서 이 일이 이루어질 때, 그것은 이렇게 위대하고, 클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너무나 겸손해서, 여러분은 그 모든 것을 놓치고, 그냥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은 뒤돌아보고, “아니, 그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는데...”라고 말할 겁니다. 아시겠죠,
머리꼭대기 바로 위로 지나갔는데 여러분은 그것을 전혀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냥 지나갔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그렇게 단순합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대하게 표명하시려고, 단순함 가운데...아시겠죠,
단순함 속에 사십니다. 무엇이 그 분을 위대하게 만든 다구요.? 자기 자신을 단순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크고 위대한 인간들은 자기 자신을 단순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는 귀빈이 되어야만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아직 큰 사람은 아닙니다. 그가 충분히 큰 사람이 되면 그는 이렇게 아래로 내려와서, 아시다시피,
자신을 낮추게 됩니다.
시카고에 사시는 연로하신 성도 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온갖 교육을 다 받은 사람으로 올라갔는데,
내려올 때는 재빨리 내려왔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패배한 모습으로 걸어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 성도는,
“그가 내려올 때처럼 올라갔더라면, 내려올 때는 올라갔던 식으로 내려왔을 것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맞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저 겸손하십시오. 자신을 내세우려고 하지 마시고, 그저—예수님을 사랑하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이렇게 말하십시오. “주님, 만일 제 마음 속에 나쁜 뜻이 있다면, 뭔가 잘못된 게 있다면, 아버지,
저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그런 것을 없애 주십시오. 저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습니다. 오,
저는 그 날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그리고 저는 그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압니다.”
여러분은 이 일곱 인들이 열리기 시작하는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우리에게 열어 주신다면.
그런데 하나님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오후 다시 만나기 전에, 우리 목사님께서 여러분에게 하실 말씀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예배가...목사님, 여섯 시 삼십 분에 찬송예배가 시작되죠? [네빌형제가 “여섯시 삼십 분입니다”한다.--주]
그런데 주님의 뜻이라면, 저는 오늘 밤에는, 일곱 인으로 봉해진 책이란 주제로 설교할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월요일 저녁에는, 흰 말 탄 자에 대해서, 화요일 저녁에는 붉은 말 탄 자에 대해서, 수요일 저녁에. 검은 말 탄자,
그리고 청황색 말 탄 자에 대해서. 그리고나서는 여섯 째... 네째, 다섯째, 여섯째, 그리고 일요일 밤에는.
다음 주 일요일 오전에는, 어쩌면 병 고침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전 모릅니다.
이제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주님께, 우리들 자신과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봉헌되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길 빕니다.
저는--한 시간을 더 가졌습니다.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회중이 “아멘”한다.--주] 저—저는, 아시다시피,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저는--이번 주는 여러분과 함께 있고,
그리고는 다시 떠날 예정입니다. 저는 제가 어디로 갈 지 모르지만, 그저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갈 겁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영원히 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에, 가능한 한 모든 순간순간을 바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축복하시길 빕니다. 자, 네빌 형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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