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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있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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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서양문명 스크랩 살라미스해전
최영태 추천 0 조회 547 13.03.02 13:4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세계 4대 해전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우리나라의 임진왜란 중 충무공 이순신 제독께서 완승을 거두신 한산대첩을 비롯해서 역사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해전을 엄선하여 세계 4대 해전으로 명명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시간 순서 순서에 의해 먼저 살라미스 해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운명을 바꿔 놓은 살라미스 해전은,
영화 ‘300’ 으로도 유명한 테르모필레 협곡 전투와 이어진 해전입니다.
BC 530년 페르시아 제국은 통일을 계기로 그리스 정복을 결심합니다.
총 3차에 걸친 원정 전쟁이 시작 되었는데..
BC 492년, 1차 원정은 페르시아 함대가 폭풍을 만나 좌절되었고
2년 후, 2차 원정은 마라톤 전투(마라톤이 생겨나게 된 유명한 전쟁이죠^^)에서  패했으며...
BC 481년에는 페르시아의 왕이 직접 30만의 대군으로 3차 침공에 나섭니다.
살라미스 해전당시 페르시아 대군을 이끈 왕은 바로 크세르크스!!!!

영화 ‘300’에서 가장 관대한(?^^;) 왕으로 나오죠~~
사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스 왕은 그 시대의 ‘엄친아’ 였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다소 미개 부족의 족장처럼 묘사되는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면...
페르시아는 그리스를 침공을 위해 1,000여 척이 넘는 해군과 육군을 이끌고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그리스는 400여 척이 안되는 규모의 해군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단순 척수만 비교해 보면 페르시아 해군이 2~3배 가량 많은 군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대규모의 해군이 이동하다 보니 당연히 항구 안에 정박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 했습니다.
그리하여 바다에 그냥 떠 있다가 그리스와 맞붙기도 전에 200여척의 군함이 풍랑에 휩쓸려 버리는 손실을 입게 되지만 800여척의 군함들이 건재했기 때문에 전쟁을 치르기엔 충분한 병력이었습니다.

영화 ‘300’에서도 페르시아 해군이 폭풍에 침몰되는 장면에서 스파르타 군인들이 환호성치며 좋아하는 장면이 나오죠...
참고로 그렇게 침몰이 많이 되어도 그 다음날 어마어마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페르시아 군에 놀라는 장면도 있었답니다.^^;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그리스 연합군의 육군이 궤멸되었기 때문에 아르테미시온에서 벌어진 해전에서도 그 여파로 해군들이 패배를 하고 살라미스 섬 근처로 물러나게 됩니다.
그 당시 그리스 연합군의 사기는 거의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내부의 여론도 분분하여 도저히 전쟁을 할 수 없을 정도였죠.

이 때, 그리스 연합군 중 테미스토클레스라는 걸출한 장군이 있었는데 기막힌 재치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수 있게 하였습니다.
테미스토클래스는 몰래 페르시아 왕에게 첩자를 보내 지금 그리스 연합군이 분열 조짐이 있고 일부는 대열에서 이탈하여 철수하려고 하니 포위를 해서 공격하면 승리할 수 있을것이라 전합니다.
이에 페르시아 왕은 곧 살라미스 섬 부근으로 병력을 옮겨 그리스 연합 해군을 포위하게 되었고, 테미스토 클래스는 이를 이용하게 됩니다.
‘이왕 이렇게 포위된거 죽기살기로 싸워 보자’며 그리스 연합군을 독려하였고 이에 그리스 엽합 해군은 결국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좁은 살라미스 해협은 페르시아 해군이 병력의 양적 우세를 장점으로 활용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 연합 해군은 질적인 측면에서 페르시아 해군보다 훨씬 뛰어났습니다.

위 사진은 그리스 연합 해군의 삼단 노선인데, 뱃머리 부분에 충각이 부착돼 있고 여기에 청동을 입혀 페르시아 배를 들이받는 전술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는 BC 8세기경부터 도시국가를 건설하고 페니키아인들로부터 조선술과 항해술을 익혀 해양활동에 능숙했을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해군의 군함보다 규모가 작고 더 신속하게 기동할 수 있었습니다. 테미스토클레스라는 걸출한 지휘관과 그리스 연안의 홈그라운드(?) 장점을 살려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페르시아의 2차 침공 실패 후 반드시 페르시아가 다시 침공해 올것이라 예상하고 해군력을 신장시키기 위해 군함을 건조하고 미래의 전쟁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충무공 이순신 제독과 같이 선견지명이 뛰어나신 것 같습니다.^^
 결국 그리스는 적은규모의 함정으로 무려 3배에 가까운 페르시아 함대를 격파하였고 그리스 함대의 주력이었던 아테네는 문명의 황금기가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편에선 스페인 무적함대와 영국의 해전인 칼레 해전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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