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05
시어머님을 형님께서 방치하다시피 해
보다 못해 모시고 온 지
3년이라는 막내며느리 그녀
볼수록 드문 여자다
치매증세를 보이는 어머니는
아기 같아져서
누가 뭐 먹는 기척이면
얼른 방문을 열고 나오신단다
방금 드시고 안 드신 것처럼
밥을 또 달라고 하시고
TV 속 사람들이 안가고 있으니
같이 나눠 먹어야 한다며
더 달라고도 하시고
같이 살면서 어른을 미워하고
갈등하는 것이
죄짓는 것 같아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라며
눈을 내리 뜨며 하는 말이 진솔하다
어제 밤 1시가 넘은 시간
주무시지도 않고 거실에 나와
마늘 깐 것 어디 있냐고
국에 넣어야 한다고
엉뚱한 소리로 소란스럽게 하시니
그녀 곁에 자던 남편 가슴이
움찔 하는 것을
미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자기 어머니라 잠결에도
그토록 신경이 쓰이나 싶어
가운데에서 곤란한 남편의 입장이
이해가 되며 측은하더라고 한다
"자꾸만 마음을 비워야 해"
그녀가 자주 주문처럼 하는 말이다
"여보세요? 언니 !"
전화선을 통해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밝다
시어머님 모신다 해서
예상과 달리 건들면 터질 것 같은 울화를 담고 있지 않다
실제 얼굴을 봐도 그다지 그늘이 없다
"언니!
우리 집에 노인분이 계신다고
어려워해 이웃에서 차 마시러
잘 안 오잖아요
그런데 모처럼 몇 명의 엄마들이 오기로 해서
어머님이 염려스러워 먹고 마실 것
쟁반에 받쳐 방에 가져다드리며
어머님 오늘 손님들 오시니
이것 드시고
방에만 계셔야 해요"
"응 알았다..."
뇌물 공세로 나오시지 않도록
미리 신신당부하며 다짐을 받았어요
이윽고 마실 온 세 명의 이웃들과
식탁에 앉아 이야기 하고 있는데
철석같은 나와의 약속을 잊은
어머님이 방문 열고 나오셔서
떡 하니 한자리를 차지하고
합석을 하시더라고요
난감했지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혼자 심심하시니 그것 까지는 참았지만
드디어 우리들 이야기에 끼어드셔서
"집이 나이는 몇이슈...? 어디 사슈...?
애들은 몇이나 뒀수? 애 아범은 어디 갔나?"
눈치 없이 이것저것
캐묻고 그러시잖아요
같이 어울려 놀고 싶으셨던가 봐요
그러니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맥이 끊겨 참다 못해 내가
"어머니 손님들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자꾸 말 시키면 안 돼요" 그렇게 해버렸더니
당장 뾰로통해지시며
징한 남도 사투리로 한 소리 하신 것이
" 니미지비 지랄염병하네
지들은 애미애비들도 없다냐..."
통화 중에 말하던
그녀와 듣고 있던 나는
폭소를 터트렸다.
그 자리에서는 참으로 난감했겠지만
지나고 나니 그녀도 웃는다
"언니!
집에 퇴근한 우리 신랑에게
모처럼 우리 집에 놀러 온
누구누구 엄마들 있는 자리에서
어머니가 민망하게 욕을 하더라고 일러줬어요
그랬더니 자기 어머니가 욕을 한 것이 아니고
그건 일상적인 말인 거래요……. 호호!''
정신이 맑지 못한 어르신이 귀엽기(?)도 하고
모셔 보지 않은 사람들이 어찌 알랴!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렵고 고독한 사연들을..
하지만 비결이 뭔지 잘 꾸려나가며
사는 그녀가 대견스럽다
물론 고개를 떨구며 상심도 하지만
장한 그녀를 보면 자기 할 도리를 하는
사람만이 가지는 떳떳한 기운이 느껴진다
내심으로 나라면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되고
내가 하는 며느리 노릇은
부끄러워 내놓을 수가 없다
어느 집 며느리이기도 하고
이제 나는 어른이기도 해서
두 입장이 모두 절절히 남의 일만이 아니다
''마음을 비워야 해''
그녀의 좌우명이자 주문이
신통력이 있어서 힘이 돼주길 바란다
나도 빌려다 써야겠네
그녀의 등이라도 쓸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