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 3막17장 (2부)
체육시간이었다.
4명이 1조가 되여 100m 달리기를 하였다.
100m는 운동장 모퉁이에 흰색으로 선을 그어 놓았고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추어 4명은 단거리 선수처럼 쏜살같이 달음질을 하였다.
100m 도착시점 가서는 1~4위까지 선별이 되었다.
승패에는 상벌도 없었으나 우리들은 열심히 뛰었다.
승부욕의 발동이 나선가 아님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려는지 모두들 단거리 선수처럼 열심히 달린것이다.
나는 그당시 100m를 13초대에 달리고 있었다.
지금과는 달리 바싹 마른 체구에 뜀뛰기 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동네 축구로 다져진 달음질은 자신이 있었다.
내차례가 다가왔다.
" 다음 4명 나오세요"
하는 체육선생님의 호령에 맞추어 나는 다른 3명과
100m 출발지점에 섰다.
"준비"
하는 말과 동시에 선생님은 호루라기를 힘차게 불었다.
우리들은 달리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나의 조를 이룬 학생들은 나의 적수가 되질 못하였다.
저체질에 스포츠와는 담을 쌓은 아이들 같았다.
중반지점 지날때는 내가 10m을 앞서 달리기 시작하였다.
다른 친구들은 나를 쫓아오느라 난리가 났다.
얼마후 나는 여유있게 1등으로 골인지점에 들어갔다.
체육선생님은 저멀서 흡족해 하는 표정이 보였다.
그때였다.
누가 성큼성큼 나한테 다가온 것이다.
지휘봉같은 나무 몽둥이를 쥔 모습과 꾹 눌러쓴 모자가 잘 어울리고 매서운 눈매를 가진 중년분이 다가온 것이다.
"거기 방금1등으로 들어온 학생 이리와 보세요?"
나는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 방금 1등으로 들어온 것은 난데 ...
그럼 나를 불렀단 말인가?)
"저요?"
나는 손을 번쩍 들며 말하였다.
"그래"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하였나
긴장감에 나를 부른 중년분한테 다가갔다.
그러자 그 중년분은
"씨익"
하고 웃으며
"그래 뜀박질 잘하는군."
나는 멋적어 뒤통수를 긁었다.
"아닙니다. "
"너 시간되면 오늘 방과후 동대문아이스링크장에 한번 와라"
그 중년분은 휘문교의 아이스하키부의 감독이었던 것이다.
그 감독이 은근히 나한테 호감을 가지며 스카웃 제의를 한 것이다.
나의 뛰는 모습을 보고 나를 지목한 것이다.
"저는 스케이트 잘 못타는데요"
"스케이트 타는것은 중요하지 않아 그것은 금새 배울수 있으니까"
나는 나에게 호감을 갖는 것이 무척 신기하고 부담스러웠다.
" 너 대학교 갈 자신있냐?"
순간 나는 선생님의 질문에 답변을 미루고 머묵 거렸다.
그렇다.
그당시 아이스하키를 운영하는 대학교는 연세대와 고려대 그리고 경희대 정도였다.
그래서 선수층이 넓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이스하키를 하는 고등학교는 휘문교를 비롯 몇몇 학교밖에 없었던 것이다.
슆게 이야기하여 고등학교에서 조금만 아이스하키를 하여도 연고대는 갈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뜻밖의 감독님 제안에 한참을 고민하다.
"부모님들과 상의하고 말씀드리겠읍니다"
하고 답변을 드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부모님에게 상의를 하였다.
부모님들은 내가 스포츠를 한다니까 마음에 내키질 않은 눈치였다.
복싱선수들은 뭇매 맞으며 먹고살고 레스링선수 또한 육체의 고통으로 먹고사는 것을 본 부모님들은 스포츠를 하류층의 생계형 정도로 보고 계신것 같았다.
물론 지금은 스포츠가 각광을 받아 스포츠만 잘해도 돈과 명예를 거머쥔 대스타가 되는 일이나 그당시에는 스포츠에 대한 이미지가 그렇게 좋치 않은 시국이었다.
나는 고심끝에 그날 저녁 동대문 아이스 링크장을 가질 않았다.
그일이 있고 나서는 감독님은 나를 포기하고 만것이다.
오판이었나.
인생일대의 실수를 범한것은 아닌가
후회하고 또 후회하였다.
들어온 복덩이를 발로차고 만것이다.
만약 그때
내가 동대문아이스링크장에 갔었다면 나의 인생은 어떻게 변했을지 알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