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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나님의둥지 원문보기 글쓴이: ♣양무리™
온유한자의 복 (마태복음5장5절)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은 성격이 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느린 사람이 있습니다. 그 성품에 따라서 환영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환영을 받지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성격이 얼마나 좋으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람은 원래 성격이 어떠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격이 달라져 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은 사랑이 많고 좋게 대하려고 하여도 성격이 급해서 금방 노하고 성질을 부리고 나서 “왜 내가 그랬을까?” 하고 후회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짜증을 부리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환영을 받지를 못 합니다. 사람들이 만나면 “안녕하세요?”라고 습관적으로 대하는 사람과 “아이고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를 진실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가정에서도 자녀들이나 손자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하며 습관적으로 못마땅하게 ”잘 다녀오셨어요.” 라고 인사를 하는 것과 “아버님 오늘 수고 많이 하셨어요. 어서 오세요.” 반가이 맞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부류에 속하시나요? 나는 전자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빨리 고치시기를 바랍니다. 동물도 개체수를 가지고 있으며 오래 살면서 평온함을 가지는 동물들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초식동물이나 양서류입니다. 즉 양이나, 기린, 거북이등입니다. 이러한 동물들은 욕심 없이 여유 있게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만 먹고 자라기 때문에 온유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동물들 가운데 육식을 좋아하는 동물들은 오래 살지 못하고 개체수가 적습니다. 그래서 이 땅을 넓게 오랫동안 정복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바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오래 사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복되게 살아가는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온유한자의 복”이란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온유의 의미를 알아야합니다.
1) 온유는 무능하고 약한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얼핏 생각해 보면 온유하다는 것은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온유는 약함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온유한 사람은 여유가 있습니다. 반면에 약하고 무능한 사람은 매우 조급합니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이시지만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거역하거나 침범할 수 없었던 가장 강하신 분이었습니다.
2) 온유한 성품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비롯됩니다.
사람의 성품은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이 있습니다. 이중 선천적인 성품을 '천성'이라고 하며 후천적인 것을 '습관'이라고도 합니다. 사람의 모든 성품이 이 두 가지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유는 천성이 아니고 습관도 아닙니다. 온유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지고 계신 성품으로 우리가 그의 제자가 될 때만이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명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마 11:29). 온유한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고 그를 배우며 닮아 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가 온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처음부터 온유한 성품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훈련을 통하여 온유한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로서 베드로는 어떠하였습니까? 베드로는 성질이 급하고 덤벙대며 남보다 행동이 빠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실수도 제일 먼저 많이 하고 신앙고백도 제일 먼저 하였으므로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어 순교를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항상 언행이 다른 제자들보다 먼저였습니다. 주님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바다 위를 걸어 가려던 것도, 변화산에서 초막 셋을 짓겠다고 제안한 것도, 주의 수난 소식을 듣고 죽어도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한 것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사장의 종의 귀를 칼로 벤 것도,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재판 광경을 보러 간 것도, 주님이 부활 후 디베랴 바다에 나타나셨을 때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자 겉옷을 두른후에 바다로 뛰어내린 자도 그였습니다. 그는 또 예수가 제자들에게 중대한 질문을 했을 때 제자들의 대변자로서 입을 엽니다. 즉,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주는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여 주님으로부터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사도의 지도자적 지위를 확인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 주님이 수난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듣자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라고 간하다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는 신랄한 책망을 받았습니다(마 16:23,24). 이런 장면을 보면 그는 `반석'이란 이름을 붙일 만한 강한 성격의 소유자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극히 감수성이 풍부하고 충동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주님 수난의 전날 밤만 하더라도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라고 호언하던 혀끝의 침이 채 마르기도 전에 주를 모른다고 부인했으니 말입니다. 그런가하면 곧 회개하여 울었습니다(막 14:66-72). 그러나 그의 주를 사랑하는 열정은 어느 누구 못지않았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요한은 주님이 사랑하신 제자이고, 베드로는 주를 사랑한 제자였다"라고 말한 것은 일리 있는 말입니다. 대중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오해하고 실망하여 떠나고, 제자들의 대부분이 역시 떠나버렸을 때, 주님은 12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물으셨다. 이 때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리오까"라고 그는 대변했습니다(요 6:67,68). 그만큼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 후에 변화되어 온유한 사람으로 사용을 받게 된 것입니다.
2. 하나님께 대한 성도의 온유
1)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순종은 복종과는 달리 강제성을 띠지 않습니다. 순종은 따르는 자의 자발적인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온유한 자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양정숙집사님은 김세진이라는 아들을 입양을 하기 전에 보육원에서 미혼모가 버린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를 하였습니다.
어느 날 갓 난 아이를 돌보는데 기저귀를 갈아주려고 하니 두다리가 없고 손이 한 개가 없는 아이였다고 합니다. 장애아지요... 그런데 그 아이를 보자마자 안아보니 이 아이는 내 아이라고 생각이 들면서 아이가 예쁘고 귀엽게 보이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웬지 불쌍한 생각보다 이 아이가 내 아이였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더랍니다.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양집사님은 “하나님 이 아이를 입양을 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나오더랍니다. 양집사님에게는 정상적인 10살 된 딸도 있는데 김세진 장애아를 입양을 하였답니다. 양집사님은 세진이를 입양하여서 하나님께 늘 기도하면서 강하게 키우고 장애아라는 약한 모습으로 살지 않게 하며 스스로가 할 수 있도록 키웠습니다. 그리하여 그 집사님은 세진이를 스스로 일어설수 있는 훈련과 재활훈련을 시켜서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가르쳤고, 걷고싶었던 세진이는 기도하는 중에 밝은 빛이 보이면서 그동안 걸을수가 없던 아이가 의족을 끼고 한걸음 한걸음 걸을수가 있었답니다. 하나님이 세진이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신것 입니다. 지금은 장애자올림픽대회에 국가대표 수영선수가 되었습니다. 또한 장애인이면서도 록키산맥에도 등반을 하였습니다. 세진이의 꿈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장애인들을 위해 살고 싶다고 합니다. 바로 이렇게 자신을 버리고 희생하며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려고 하니 기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세진이와 양집사님이 되었습니다.
2) 하나님의 뜻에 인내하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약속을 신실하게 믿고 인내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때'까지 인내하지 못함으로 실패하고 좌절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온유한 성품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온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바로 우리는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인지를 찾으며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당장에 기도 응답이 안온다고 하여도 낙심을 하지 말고 오랫동안 참고 기도하면 언제 가는 주님의 때에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벼씨가 싹이 나와서 줄기가 자라서 알맹이를 맺혀가듯이 우리의 믿음도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하면 자라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면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 이웃을 향한 성도의 온유
성을 내지 않거나 분을 내더라도 쉽게 가라앉히는 것입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만큼 상대방을 불안하게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내면적인 불안정과 불편함을 그대로 남에게 신경질적으로 전가합니다. 이런 사람이 가는 곳마다 평화와 질서는 사라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 한다'고 하였습니다(약 1:20). 온유한 사람은 마음의 분을 자제하고 참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감정으로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거나 당황하게 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으로부터 배운 온유함으로 이웃에 대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평안을 심어 주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온유는 겸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온유한 모습으로 살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11장29절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온유한 모습으로 살아가셔서 많은 군중들과 제자들에게 존경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들은 온유한 모습으로 살아갈 때에 믿지 않는 자들이 우리를 보고 예수님을 발견을 하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여유 있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안함으로 조용하게 쉼을 얻으면서 참된 천국을 맛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성도들은 아무리 급한 일일지라도 천천히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살아가면 조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장 짧은 생명을 살아가는 동물이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쥐입니다. 쥐는 하루도 한시도 쉬지 않고 발발이로 빨리 빨리 달려 다닙니다. 그래서 마음이 여유가 없으므로 심장이 고장이 나고 스트레스를 받아 빨리 단명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동물의 왕국에도 보면 사나운 사자나 호랑이는 초식동물보다는 오래 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가장 오래 사는 동물은 바로 거북이가 장수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무병장수를 하기위해서 거북이나 자라등의 중요부분을 먹으려고 한약재로 사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서 성도들은 아무리 급하고 조급한 일이지라도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지혜를 받아서 처리를 해야 합니다. 그 유명한 미국에 16대 링컨대통령은 아무리 급한 일로 누가 찾아와도 기도하는 순간에는 어느 누구도 기도하는시간에는 사람을 만나지를 않았다는것입니다. 바로 나라에 모든 급한 일이라도 기도하면서 여유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일을 처리해 나갔다고 합니다.
우리성도님들도 온유한 마음으로 살아가 이땅에서도 장수하며 천국을 기업으로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온유한 자의 복
온유한 사람은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땅은 인간의 삶에 있어 그 근거가 되는 매우 귀중한 자산입니다. 모든 동식물의 생존의 터전이며 존재의 바탕이 됩니다. 이러한 땅을 차지하기 위해 인류의 역사는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무력으로 땅을 소유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알렉산더나 나폴레옹, 그리고 히틀러 같은 이들이 무력으로 땅을 얻기 위해 애를 써 보았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온유한 성도에게는 그들이 땅을 소유하기 위해 애쓰거나 다투지 아니할지라도 그들을 위해 준비된 땅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호의와 친절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의 영역은 그들을 용납하고 반기는 사람들만큼 넓혀져 나갈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 예가 바로 사울 왕과 다윗 왕과 비교할 수가 있습니다. 사울은 교만해져서 성질을 내고 급한 나머지 식사 중에도 창을 던져서 급하게 죽이려고 하지만 다윗은 사울 왕을 굴에서 사울이 잠들고 있을 때에 죽일 수 있지만 죽이지 않고 하나님이 알아서 하기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돌아옵니다. 삼상26장11-12절에 보면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하고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아무도 보거나 눈치채지 못하고 깨어있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더라” 하였습니다. 바로 다윗은 담대하면서도 여유로운 모습으로 사울을 대하는 모습이 바로 온유한 성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서 누가 이스라엘의 선왕으로 살아왔습니까? 바로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 중에서도 가장 훌륭하고 오랫동안 정권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다스려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송정교회 성도님들은 온유한자의 삶을 살아서 이땅에서도 천국의 복을 받으시고 미래에 천국에서도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