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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 로
전창수 지음
들어가기 앞서서 : 이 소설은 철저하게 허구에 바탕을 둔 것으로 여기에 나오는 신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일컫는 것이 아님을 밝혀 드립니다. 다만, 하나님과 관련이 있을 수는 있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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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ngelpoeple of 12
“뭐라고, 지상으로 내려가고 싶다고?”
“네, 지상에 있는 저 분에게 제 마음을 빼앗겼어요. 뺏긴 마음을 찾으러 가야겠어요.”
“뭐라고? 그렇게 중요한 걸 빼앗겼어. 네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고?”
태초에, 선인이 살고 있었다. 나는 지금부터 그들이 어떻게 지상에 왔는지, 그들이 지상에서 무엇을 하였고, 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하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이야기가 모두 거짓말이고, 엉터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진실임을 밝힌다. 그것은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마치 어린왕자의 이야기에 감동을 하듯이, 이 이야기가 독자 여러분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기를 나는 소망한다. 이 이야기는 지상에 있는 어떤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한 남자 사위의 이야기다. 사위란, 천국에서 지상에 있는 사람을 다스리는 이들이다. 신은 아니지만, 사람도 아니다. 사람의 모습을 한 천사라고 할까. 엄밀히 말해 다스린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들은 사람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사위는 열 두명의 사위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사람의 몸 중 오른손에 영혼이 들어있는 창수라는 사위다. 열두명의 사위가 있고, 그들이 "아빠“라고 부르는 선인이 한 명이 있어, 실질적으로 사위는 열 세명이지만, 사실상, 아빠는 다른 열둘의 사위와는 달리, 사람의 몸이 아니다.
2. 지옥의 문지기
지옥의 문지기가 지옥으로 들어온 한 여인에게 반했다. 그녀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차마 지켜보지 못하던 문지기는 그녀를 다시 살려보내고 자신도 인간으로 지상에 내려보내 준다면, 반드시 그녀를 천국에 갈 사람으로 만들겠노라 다짐하며, 신께 간청하였다. 그러나, 지상세계에 이미 그녀의 인연이어야만 할 <진짜창수>가 있었으니, 신은 고민에 빠졌다. 만약, 지옥의 문지기가 인간이 된다면, 그와 삼각관계가 되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한편, 12인의 사위는 지옥으로 떨어진 그녀를 찾고 있었다. 일단, 그녀가 어디있는지 알아야만 그녀를 살릴 수도 있을 것이고, 진짜 창수와 맺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젠제는 가짜창수는 12인의 사위를 알지만, 진짜창수는 그들을 모른다는 데에 있었다. 진짜창수가 자신들을 믿어야만 이 인연은 맺어질 수 있고, 그래야만 거꾸로 된 세상을 바로 돌려놓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필사적으로 그녀를 찾고 있었다. 어느 몸이 지옥으로 떨어진 진짜 몸인지 그들을 알아야만 했다.
제 1 사위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린다. 내 마음이 악마에게 물들으면, 그야말로 세상은 그 자체가 지옥이 될 것이다. 나는 요즘 한 여인의 유혹에 시달린다. 그녀는 너무 섹시하고, 너무 아름답다. 나는 그녀에게 빠졌다. 하지만, 나는 이러면 안 된다는 게 너무 힘들다. 나도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는 것일까. 그녀를 온전히 나만 소유할 수 없는 것일까. 나는 내 능력을 이용해, 그녀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세상은 악마의 세상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나도 안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이냐. 그녀를 갖지 못하는 내 마음은 어쩌라구.
<12인의 사위들>
“숨이 멈추었습니다. 일시적인 것인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 때문에 숨을 멈추었는지 원인조차 모르겠습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 보네요. 질병도 없고, 외상도 없고, 그렇다고 탈수가 심한 것도 아니고, 심장발작도 아닙니다. 좀더 지켜봅시다.”
한참을 그렇게 망연자실하게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나 지났을까. 그의 손가락에 미세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의사가 그를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숨은 멈추어 있는 상태였다. 조금 후 그의 눈꺼풀에도 미세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그러나, 숨은 여전히 멈춘 상태였다. 의사가 신기해 하면서 그를 바라보았고, 조금 후 그는 헛기침과 함께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숨을 다시 쉬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숨을 쉴 뿐, 아직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비가 되었나? 의사가 다시 그를 살펴보았지만, 그가 마비된 것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의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를 지켜보는 것 뿐.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는 다시 정상인대로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몸이 조금씩 살아나는 듯 했다. 발가락을 움직이더니, 팔을 움직였으며, 각 관절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로소 그가 말을 했다. “물...”
그렇다. 12인의 사위는 이미 죽은 그를 살려내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 호흡을 막았고, 숨이 끊어진 지 며칠이나 지난 상태였다. 가족들이 그를 발견했을 때, 그가 죽어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12인의 사위들은 그를 살려내기 위해 며칠 동안 심혈을 기울인 작업을 하였고, 가족들이 그를 발견했을 때는 숨만 안 쉴 뿐, 거의 살아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의 오장육부를 치료하였고, 못 쓰는 팔다리를 쓰게 하기 위하여 자기가 맡은 부분에 들어가 살기로 한 것이다. 눈, 코, 입, 귀, 머리, 얼굴, 팔, 다리, 배, 가슴, 심장, 엉덩이. 이제, 그는 무적의 인간이 된 것이고, 사람들도 또 그 자신도 사위의 존재를 몰랐다. 그저, 가족들과 사람들은 그가 살아있다는 것에 기뻐했고, 이제는 그에게 '외로움‘이란 고통을 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르는 그들의 활약은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평온하다. 과거에도, 지금도, 또 앞으로도 그들은 절대 모를 것이다. 이 평온한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평온이 어떻게 유지되는지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아주 잘 아는 진실. 그 진실은 영원히 비밀에 묻힐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도 알고 나도 아는 진실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 내가 어떻게 자라왔는지, 어떤 설움을 겪어 왔는지 알고 있는 나의 친구들은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는 것 뿐만 아니다. 드디어, 내게도 애인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진짜 현실에서 있던” 단 하나의 진실은 그녀도 모를 것이고, 몰라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녀가 있었기에 이 세상을 구할 수 있었고, 비로소 나도 사랑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그녀는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이 행복의 끝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나는 이제 그 행복의 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행복 과 우리의 행복, 또 서로 경쟁하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 돕는 사회를 건설해 나가는 우리의 노력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 “행복한 사회”의 건설은 결코 멀지 않다. 살아있는 이들 뿐 아니라, 죽어가는 이들, 또 이미 죽은 이들까지도 행복해하는 세상. 지옥이 없는 세상. 그 세상이 진짜 현실이고, 그 현실은 꼭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그녀를 보며, 말없이 웃는다. 오늘도 나는 미친 놈처럼, 행복에 겨워, 깔깔깔거리며 그녀를 대한다. 그녀 역시, 그런 나를 보며 재밌어한다. 소박한 웃음이 나를 더욱 흥겹게 한다. 비로소, 나의 “진짜 행복”이 시작된 것이다.
<가짜 현실에서는...>
때로는 빨리 깨어나고 싶은 꿈이 있다. 너무나 무서운 꿈. 목이나 심장이 짓눌리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는 꿈. 그러나, 그렇게 깨어나고 싶은데도 절대로 깨지 않는 악몽이 24시간 지속되는 곳이 있다. 우리는 그곳을 ‘지옥’이라 부르고, 그 지옥을 다스리는 것은 악마의 대장 ‘루시기’다. 악마의 대장 루시기는 현실이란 곳에서 죽은 사람들을 달콤한 말로 유인해 영원한 고통의 굴레 속에 가둔다. 루시기는 죽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한다. 죽어도 죽은 게 아닌 세상. 우리는 그곳을 ‘가짜 현실’이라 부른다. 그곳에 빠진 사람들은 이 고통은 곧 끝날거야 라는 희망을 가져보지만, 그러나, 고통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조금만 지나면, 진짜 현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신음하지만, 실제 처한 현실은 지독하기만 하다. 지옥을 다스리는 루시기에게는 12명의 수호마귀가 있는데, 그들은 12가지의 형벌을 담당한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그러나, 루시기에는 거대한 목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 ‘가짜 현실’뿐만 아니라, 진짜 현실도 자신이 다스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짜 현실에서도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을 보는 것이다. 이 세상에 ‘행복’이란 단어가 없어지고, 자신이 지배하는 현실. 루시기는 그 현실을 ‘절대현실’이라 부른다. 인간도 신도, 진짜현실도 가짜 현실도 모두 자신에게 복종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루시기의 진짜 목표다. 루시기는 절대현실을 만들기 위해 그의 수하들과 회의를 하는 중이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서, 인간의 몸으로 죽어야만 절대현실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이 우리의 통로가 되어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몸에 들어가서 10개월을 견뎌낼 맷집이 있어야만 합니다. 장차 태어날 아기의 태아를 죽이고, 대신 그 속에 저희가 들어가 있으면 저희는 진짜 현실에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인 것처럼 착하게 살아가다가 죽으면, 그 영혼은 진짜현실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더군요. 먼저, 우리가 가서 길을 구축하면 대장님께서는 마지막에 저희를 따라 오시면 됩니다.”
“지옥에 남아서 지켜야 할 누군가는 있어야 하지 않느냐?”
“그 점은 걱정마십시오. 고통에 신음하는 저들 중 한명을 대리로 임명하면 됩니다. 이곳을 지켜야 한다고 명하면, 아마 우리보다 더 끔찍하게 죽은 자들을 고문할 것입니다. 적임자가 있습니다. 루시야라고, 인간세상에서는 인간들이 자신을 신처럼 모셨다고 합니다. 그에게 이곳을 맡긴다면, 이곳은 걱정 안하셔도 될 듯 합니다.”
“그래, 너희들의 활약을 기대하겠다.”
<진짜 현실에서는....>
때로는 깨고 싶지 않은 꿈이 있다. 내가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칠 때, 깨고 싶지 않은 꿈은 나를 사로잡는다. 그러나, 그것이 한낮 꿈이 아닌 진짜 현실이 될 때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진짜 현실’이라고 부른다. 깨고 싶지 않은 꿈. 너무나 행복한 꿈. 그 꿈을 꾸기 위하여,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는 진짜 현실로 들어가는 것을 ‘죽음’이라 부르지만, 진짜 현실에서는 그 때에야 비로소 진짜 삶이 시작된다고 한다. 진짜 현실에서는 24시간 오르가즘이 지속되는 황홀경에 빠져들고, 또한 슬픔도 절망도 없다. 오로지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그러나, 이 ‘진짜 현실’에도 서서히 위기가 닥치기 시작했다. 악마의 대장 ‘루시기’가 진짜 현실에 들어가기 위해 인간세상에 자신의 수하들을 파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을 통해야만 진짜 현실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잉태가 된 아기의 몸에 자신들의 영혼을 주입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마귀가 들려 태어난 아기들은 인간세상을 지배하기 위하여, 또한, 진짜 현실로 가기 위하여, 인간들을 현혹하면서도 ‘착한 척’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진짜 현실에 들어가서 진짜 현실을 그들이 점령하는 것. 진짜 현실에서는 ‘루시기’를 막기 위하여 그들 중에서 한 명을 인간세상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고 다시 또 인간세상에 나아가 희로애락을 경험해야 하는 것이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진짜 현실을 다스리는 신 ‘머기야’는 진짜 현실을 지키는 수호천사 12인 중 한 명을 인간세상에 내려보내기로 결정한다. 우리는 그들을 12인의 사위라 부른다. 12인의 사위는 인간이 태어날 때 지니는 몸의 한 부분을 지킨다. 눈, 코, 입, 귀, 머리, 목, 손, 발, 엉덩이, 가슴, 배, 성기. 그리고, 각각의 부분은 자연의 한 부분을 담당한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연스럽게 설명하겠다) ‘머기야’는 이 12인의 사위 중 한 명에게 이 임무를 맡기려 하는데, 누가 적임자일지 고민이 되었다. 이때 사위 중 하나인 ‘창살’이 머기야에게 청하였다. 머기야는 눈을 지키는 사위로, 지상에서는 빛과 어둠을 다스린다.
“머기야님, 지상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제 눈에 띄었습니다. 저는 그 여인을 흠모하게 되었습니다.”
“머기야? 지상에 있는 인간과 사랑에 빠졌다는 말이기야? 넌 수호천사기야. 그럼, 안되기야. 어떻게 사위가 그럴 수 있기야? 말도 안되기야. 그걸 집착이라 하는기야!”
“아닙니다. 물론, 그 여인은 착하지도 예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뭔가 모르게 끌립니다. 그리고, 그 여인만이 ‘진짜 현실’의 위기를 구할 수 있을 것이란 느낌이 듭니다. 저도 이유는 모릅니다. 저를 지상에 보내 주십시오. 반드시, 우리의 ‘진짜 현실’을 악마로부터 구하겠습니다.”
“느낌이기야? 그렇기야. 느낌 좋기야. 그렇다면, 말리지 않기야. 하지만, 기억해 두기야. 네가 지상에서 사람의 몸을 빌려 살아간다면 너는 ‘진짜 현실’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게 되기야. 기억을 못하게 되는 거기야. 그러므로, 네가 지상에서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지 않을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되기야. ”
그때 머리를 지키는 햇살이가 나서서 머기야에게 고하였다. 햇살이는 머리를 지키고, 또한 인간세계에서 발명과 발견에 관련된 모든 기억을 다스린다.
“머기야님, 그럼 제가 머리를 써서, 창살이가 기억하게 해 두는 것은 어떨까여?”
“안될 얘기기야. 루시기놈은 영악해서, 우리가 분명 누군가를 보낼 거라는 것도 계산에 두었을 거기야. 만약, 창살이가 빌려 들어간 사람이 머리를 써서 뭔가를 하려 한다면, 그놈들은 분명 햇살이를 없애기 위하여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이려 할 거야. 진짜 현실을 기억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놈들에게서 우리를 숨길 필요도 있기야.”
그때 손을 지키는 ‘한살’이 머기야에게 나아가 고하였다. 손을 지키는 한살이는 인간세계의 나무와 꽃을 다스린다.
“머기야님. 머리로 안 된다면, 몸으로 기억하게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창살이가 빌려 들어가는 사람의 손에 제 손에 있는 능력을 심어준다면, 그놈들에게 들킬 염려도 없을 듯 합니다.”
“맞는 말이기야. 창살이의 손에 한살이의 능력을 보태면, 자신의 몸을 지킬 수도 있고 그놈들에게 들킬 염려도 없을 거야. 그러나, 기억을 못하게 되면, 그 여인도 알아볼 수 없게 되기야. 그래도 괜찮기야?”
“진심이면 통할 거랬습니다. 마음이가.”
마음이는 가슴을 지키는 사위로, 인간세상의 사랑과 결혼, 연애 등을 주관한다.
“그래, 알겠기야. 우리는 인간의 몸을 빌려야 한다는 걸 기억할 거기야. 우리는 그 사람의 인생을 빌릴 거기야. 그 사람은 혼란스러울 거기야. 자신이 무엇인지, 자신이 누구인지 혼란스러워 할 것이고, 평생을 방황하며 보낼 거기야. 우리는 그 사람에게 빚을 지는 거기야. 한 사람 안에 두 영혼이 공존할 수 밖에 없는 혼란스러움. 잘 극복해야 할 거기야. 그리고, 충분한 보상을 그 사람한테 해 주고 돌아와야 할 거기야. 지금부터 적합한 사람이 있는지 알아 볼 거기야.”
<결론>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평온하다. 과거에도, 지금도, 또 앞으로도 그들은 절대 모를 것이다. 이 평온한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평온을 어떻게 유지되는지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아주 잘 아는 진실. 그 진실은 영원히 비밀에 묻힐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도 알고 나도 아는 진실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 내가 어떻게 자라왔는지, 어떤 설움을 겪어 왔는지 알고 있는 나의 친구들은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는 것 뿐만 아니다. 드디어, 내게도 애인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진짜 현실에서 있던” 단 하나의 진실은 그녀도 모를 것이고, 몰라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녀가 있었기에 이 세상을 구할 수 있었고, 비로소 나도 사랑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그녀는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이 행복의 끝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나는 이제 그 행복의 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행복 , 또 우리의 행복, 또 서로 경쟁하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 돕는 사회를 건설해 나가는 우리의 노력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 “행복한 사회”의 건설은 결코 멀지 않다. 살아있는 이들 뿐 아니라, 죽어가는 이들, 또 이미 죽은 이들까지도 행복해하는 세상. 지옥이 없는 세상. 그 세상이 진짜 현실이고, 그 현실은 꼭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그녀를 보며, 말없이 웃는다. 오늘도 나는 미친 놈처럼, 행복에 겨워, 깔깔깔거리며 그녀를 대한다. 그녀 역시, 그런 나를 보며 재밌어한다. 소박한 웃음이 나를 더욱 흥겹게 한다. 비로소, 나의 “진짜 행복”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살아있다>
나는 오랫동안을 백수로 살아왔다. 그 일이 있은 후, 다시 취직하기는 힘들었다. 과연, 신은 나에게 어떤 일을 하도록 부추기려는 것일까. 나는 그 일을 소설로 쓰기로 마음 먹었다. 사람들이 그것이 진짜로 믿을지는 모른다. 그저, 소설일 뿐이라며 현실을 부정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그게 진짜 현실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믿음은 개인의 선택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은 분명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죽음 후에 그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아직도 백수다. 백수이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으며, 나는 이 소설이 세상에 알려져서, 반드시 우리의 영혼을 파먹은 악마같은 마음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악마는 마음 속에 있다. 우리의 적은 상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그것이 진실이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마련이다. 나는 반드시 그 진실을 밝힐 것이다. 내가 경험했던 그 수많은 아픔들과 악몽들이 지워지기 전에, 그리고 내가 구한 이 세상을 알리기 위해 글을 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 지금 이 순간, 글을 쓰는 이 순간. 나는 온전한 자유로움을 느낀다. 나는 살아있다!
<12인의 사위들 - 조그만 변화>
그가 눈을 깜박인다. 그가 한번 눈을 깜박일 때마다 현실에서는 조그맣게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나, 그 변화가 너무 작아서 사람들은 쉽게 알아챌 수 없었다. 귤박스에 있는 귤이 몇 개 더 늘었다던가, 간판의 글자가 조금 바뀌는 등. 평소에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들은 대개 그 물건의 주인인데, 주인들도 뭔가 이상하다 라는 느낌만 가졌을 뿐,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미세한 변화는 크게 문제될 것 없었다. 문제는 그가 자신의 눈깜박임을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제 무엇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었다. 또한, 인간의 자연스런 생리적 현상인 눈 깜박임을 멈출 수도 없었다. 현실은 계속 변하는데, 그는 그저 그 변화를 지켜봐야만 했고, 계속 바뀌어가는 세상 속에서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두려워하던 사실이 현실이 되고, 그 현실이 악몽이 되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는 머리 속이 멍해졌고, 길가에서 휘청거렸다. 이대로 또 쓰러지는 것인가. 쓰러져야만 하는 것인가. 아무리, 자신을 붙잡으려 해도 붙잡을 수 없었다. 쓰러지지 말아야지, 라는 의지는 잠시일 뿐, 그는 또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 다음 세상. 그 다음 세상은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궁금증과 두려움이 계속 그를 감쌌고, 그는 그 두려움 속에 아득히 멀어져가는 세상을 느껴야만 했다.
<나는 진짜 창수다>
- 끝없는 싸움과 속임 속에서...
내 안의 다른 목소리에게 나는 말했다.
“지옥에 있는 그들도 당신의 백성 아닌가여? 그들도 구원해야 진짜 구원인 거 아닌가요? 왜 지옥이란 곳을 만들어서, 이같은 불란을 만든 건지요? 그들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을 만든다면, 이 싸움은 자연스럽게 없어질 거 아니에요? 왜 싸우고 그러지.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는 없는 건가여? 내가 너무 무지한 건가여?”
“나를 통해, 이 싸움을 멈출 수 있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당신들에게 속아줄 거요. 나는 당신들의 내면 어딘가에 선한 곳이 있다고 믿으니까요. 처음부터 나쁘게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고 난 믿어요. 마찬가지로, 죽음에 속한 영혼들이 무언가 나쁜 일을 하고 있다면, 거기엔 반드시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거에요. 전, 믿어요. 이 싸움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진실한 마음 밖에는 없다는 것을.”
<나는 진짜 창수다>
내가 있는 곳은 한평 남짓의 조그만 방이었다. 내가 어쩌다가 여기로 들어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나 스스로를 조종하고 있었다. 나는 알몸 상태였다. 옷 하나 걸치지 않았고 방에는 입을 옷도 없었다. 다만 베개 하나만이 둥그러니 놓여 있었고 출입문조차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나갈 길은 없었다. 베개를 베고 누웠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천정을 가리켰다. 그때 내 손가락에서 날카롭고 가느다란 빛이 하늘을 향해 뿜어댔다. 이게 대체 무엇일까? 그 빛은 천정을 타고 흐르더니 방안 가득 흐르기 시작했다. 그 빛은 일렬횡대로 돌고 돌더니 다시 내 손가락으로 이어졌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이게 대체 무엇일까? 그 빛은 한동안 그렇게 흐르더니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빛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형상이 보였다. 그녀는 그 빛 속에서 웃고 있었다. 그녀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대체 어느 세계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언제쯤이면 그녀를 찾을 수 있을까? 빛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웃고 있던 그녀의 형상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빛이 사라지니 방안이 시끄러워졌다. 이런, 난 옷도 안 입었는데. 사람들이 나를 보고 뭐라 할까? 도대체 나는 또 어느 곳으로 데려가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여기는 남자목욕탕이었다. 물의 온기가 느껴졌다. 서서히 물이 바닥부터 차오르기 시작하더니 곧 내 가슴을 덮었다.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건다.
“어이, 등 좀 밀어 줘!”
친근한 목소리다. 그런데 누군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게 반말하는 걸로 보아 분명히 아는 사람 같은데 누군지는 모르겠다. 그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시킨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누군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이, 뭐 이렇게 정신이 나가 있어? 무슨 생각 해? 등 좀 밀어달라니까.”
“네!”
“갑자기 왜 그래? ‘네!’라니? 친구, 무슨 생각하고 있길래 그래?”
친구라니? 내가 이 사람의 친구였나? 그 사람의 나이는 30대 중반쯤 보인다. 그렇다면 나도 그쯤 먹었다는 이야기인가?
“아, 미안. 요즘 통 정신이 없네. 타올 줘.”
“어 이 사람 참? 지금 들고 있는 건 뭐야. 진짜 요즘 왜 그래?”
“아 그렇구나.”
어느 새 손에 타올이 들려져 있다. 나는 그 타올로 그 친구라고 하는 사람의 등을 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친구. 자네 이름이 뭐였지?”
“허, 이 사람 장난치나? 고복이. 매일 부르는 친구의 이름을 까먹으면 어떻게 해?”
“아, 그랬었지. 요즘 깜빡하네.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 될 거 같아.”
“하하, 이 사람 안 하던 농담까지 다 하네. 별 일이야. 별일.”
나는 그 친구의 때를 밀어주고 그 친구와 같이 목욕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고복아. 내가 내 옷을 어디에 뒀었지?”
“아구, 이 사람. 그것도 까먹었어. 하하. 나랑 같이 사물함에 넣었잖아. 따라오게.”
그 친구를 따라서 갔더니, 그 친구가 내 옷을 꺼내줬다.
짙은 파란색 청바지에 분홍색 티셔츠. 내가 좋아하는 옷들이다. 나는 그 옷을 입고 여전히 그 친구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술 한잔 하겠나?”
“술?”
“아직도 술이란 게 있어?”
“이 사람 무슨 얘기 하는 거야. 자네 나랑 매일 술 마신 거 기억 안 나? 아, 아무래도 안 되겠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뭔가 이상이 왔나 보다. 병원 가서 진찰부터 받아야겠네. 이제부터 술 딱 끊는 게 낫겠네. 나도 자네처럼 될까봐 두려워”
그 친구에게 이끌려 병원을 갔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나이에 비해서 아주 건강한 편입니다.”
“다행이네. 무슨 이상 생긴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그래도 술을 마시면 또 다시 이상이 생길 수 있으니 이 기회에 두 분 다 끊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안 그래도 결심을 한다 한다 하면서 못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친구, 이제 집에 가세”
“그런데 자네는 왜 내 이름을 안 부르나?”
“이 친구야. 네 이름이 친구잖아? 이제 자네 이름도 까먹었나?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놀림 많이 받았지. 그래서 상처도 많이 받은 거 내가 많이 위로해 줬지. 기억 안나?”
“아 그랬었지. 요즘 기억력이 많이 안 좋아진 거 같긴 하네.”
“그래, 이제 집으로 가세나. 설마 집도 까먹은 건 아니겠지?”
“솔직히 기억이 잘 안 나.”
“아구, 진짜 큰일 났네. 마눌님한테 혼나겠어.”
마누라? 마누라라고? 그녀를 혹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내가 바래다 줄테니 어서 가세.”
고복이를 따라 우리집이라고 하는 곳에 갔다. 고층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도심. 그리고 정신없이 오가는 차들. 대체 여기는 몇 년도란 말인가. 얼마나 지났을까. 고층아파트를 지나니 한적한 산길이 나왔다. 고복이는 더 이상 그 이상은 차가 갈 수 없다며 나를 바래다주겠다며 차에서 내렸다. “어딘지만 알려주면 내가 알아서 갈게.”
“안돼 이 친구야. 내가 걱정되어서 마눌님한테 인도하고 가야겠어.”
“그래, 고마워.”
산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가도가도 집 하나 보이지 않았다. 좁디좁은 산길. 여기에 무슨 집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언제나 끝은 있는 법. 몇 시간을 걸은 끝에 지붕이 삼각모양으로 지어진 별장이 하나 나왔다. 정면에서 창문이 세 개 보이고 커다란 문이 하나 보인다. 별장을 둘러싼 울타리 같은 것은 없었고 대신에 주위를 둘러서 풀과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고복이가 그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제수씨, 저 왔어요. 이 친구 하도 이상해서 제가 데리고 왔어요.”
문이 열렸다. 그녀일 거라는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었는데 실망을 금할 길이 없었다.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왜 이 사람과 결혼을 했지? 라고 할 정도로 다른 사람. 그러나 그 여인은 나를 아주 따뜻하게 받아 주었다.
“여보, 어서 와요. 오늘 하루종일 연락이 안 되어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어서 들어와요. 고복씨도 같이 저녁식사하시고 가세요.”
“아니, 저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빨리 가 봐야 돼요.”
“아니, 또 몇 시간을 어떻게 걸어가시게요? 자고 내일 가세요.”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셋이서 저녁식사를 했다. 이 상황이 너무 불편했다. 왜 그녀가 아닌 사람하고 결혼을 했으며 대체 여기는 어느 세상인가? 그런데 희한한 상황이 발생했다. 저녁식사를 하고 잠을 자는데 방이 딱 세 개이고 그것도 일자로 누울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합방은 불가능했다. 합방을 하려면 마루에서 자야 하는데 손님이 왔을 때는 절대 마루에서 자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나는 내일도 여기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곳으로 가 있을까. 이 알 수 없는 여행은 언제쯤 끝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서서히 잠으로 빠져들어갔다.
<나는 진짜 창수다>
- 사랑의 시작 -
“시희야. 내 머리 속에서 하는 말 들려?”
“응, 들려.”
“그럼, 묻지 말고 손가락을 벽에다 갖다 대고 가만히만 있어. 그거 절대로 떼면 안 돼.”
“절대 안 뗄게.”
사방이 막힌 방. 전에 왔던 방이다. 신이 나를 조종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나에게 공격을 퍼부어대자 나는 어느 새 이 방에 와 있다. 벽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려져 있는 그림은 그녀의 손가락과 나의 손가락이 맞닿아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녀와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시희야. 너도 막혀있는 방이야?”
“응, 여기도 문 없어. 나 계속 여기 있었어. 계속 여기서 너 기다렸어.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배가 고파서 힘들었어. 물은 있는데 밥은 없더라. 물 먹으니까 배가 부르더라. 그런데 신기한 건 물이 먹어도 먹어도 안 줄어.”
“그래? 우리 참 희한한 경험 한다. 그지?”
“그러게”
나 역시 벽에 손가락을 대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시희야. 손가락 대고 눈 감고 무슨 일 일어나는지 보자.”
“그래”
그러나 알 수 없었다. 눈을 감아도 온통 하얀 빛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내 손가락에 살갗이 닿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을 떴다. 그녀가 있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내가 알몸이듯 그녀 또한 알몸이었다. 우리의 손가락이 마주 닿았다. 우리는 그 손가락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은 손가락을 떼면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에 우리는 그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그녀도 베개를 베고 누워 있었고 나 또한 그녀와 같은 자세였다.
“우리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조금 기다려 봐. 느낌이 올 거야.”
눈을 감았다. 그런데 희한한 것이 보였다. 마주 댄 손가락이 보였다. 그 손가락을 기준으로 빛이 뿜어져 나오는데 그 빛은 둥근 원을 그렸다. 그러면서 나를 공격하던 그들이 우리에게 다가오려 할 때마다 그 빛이 그들을 튕겨냈다. 그들은 우리에게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이 녀석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저기 분명히 알몸으로 누워있는 거 보이는데. 왜 갈 수가 없지?”
“도대체 저 녀석들 뭐야? 전에 그 녀석인가?”
“우리가 기억 지운 애? 설마. 저렇게 어리다고? 지금쯤 60은 되었을 텐데.”
“그럴 리가 없지? 그런데 저 녀석은 왜 안 잡히지?”
“다른 방법을 써야겠어. 일단 철수하자”
그들이 멀어져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멀어지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녀가 놀라면서 물었다.
“너 왜 안 하던 짓 하고 그래?”
“여기서 나가야 돼.”
그녀에게 입을 맞추자마자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움직이더니 곧 공중으로 붕 뜨는 듯한 느낌이 났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던 방안에서 옷을 비롯해서, 침대 식탁 식기까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어깨에 얇은 끈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알몸이던 그녀의 몸에서 베이지색 블라우스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녀와 같은 색깔의 옷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탈출에 성공한 것인가? 그러나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그들은 나를 계속 찾아다닐 것이고 나는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그들을 없애지 않는 한은 나는 계속 쫓겨 다닐 것이다. 그녀도 안전하지 않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빌기 시작했다. 이 난관을 해결하게 해 달라고.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느낌이 왔다. 그래, 바로 그거다! 해결할 수 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 잡은 손을 절대 놓지 말라고 그녀에게 주의를 주고 또 다른 여행을 준비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그 녀석들. 이제는 절대 나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나는 진짜 창수다>
간절히 원하면, 간절히 원하면 정말로 이루어질까. 내가 꿈꾸는 세상이 올까. 서로 돕기만 하는 세상. 서로 미워하는 이가 없는 세상. 서로가 서로를 속이려 애쓰지 않는 세상. 오늘 한끼를 먹기 위해 고민하지 않는 세상. 그저, 서로 바라보면서 웃기만 하는 세상. 그런 세상이 과연 올까. 단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행복에 겨워하는 세상. 그리하여, 우리가 죽을 때에 결코 슬퍼하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이 정말로 올까? 그런 세상이 올 수 있다면, 지금의 고통쯤은 견뎌내리. 내가 너희들(악마)한테 속음으로 인해서, 그런 세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나는 끝까지 나를 내던지리. 너희의 마음이 나로 인해 바뀔 수가 있다면, 나는 너희에게 기꺼이 내 몸을 내던지리라.
<나는 진짜 창수다>
그가 눈을 깜박인다. 그가 한번 눈을 깜박일 때마다 현실에서는 조그맣게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나 그 변화가 너무 작아서 사람들은 쉽게 알아챌 수 없었다. 귤 박스에 있는 귤이 몇 개 더 늘었다던가, 간판의 글자가 조금 바뀌는 등. 평소에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들은 대개 그 물건의 주인인데, 주인들도 뭔가 이상하다 라는 느낌만 가졌을 뿐,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미세한 변화는 크게 문제될 것 없었다. 문제는 그가 자신의 눈깜박임을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제 무엇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었다. 또한, 인간의 자연스런 생리적 현상인 눈 깜박임을 멈출 수도 없었다. 현실은 계속 변하는데, 그는 그저 그 변화를 지켜봐야만 했고, 계속 바뀌어가는 세상 속에서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두려워하던 사실이 현실이 되고, 그 현실이 악몽이 되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는 머리 속이 멍해졌고, 길가에서 휘청거렸다. 이대로 또 쓰러지는 것인가. 쓰러져야만 하는 것인가. 아무리, 자신을 붙잡으려 해도 붙잡을 수 없었다. 쓰러지지 말아야지, 라는 의지는 잠시일 뿐, 그는 또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 다음 세상. 그 다음 세상은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궁금증과 두려움이 계속 그를 감쌌고, 그는 그 두려움 속에 아득히 멀어져가는 세상을 느껴야만 했다.
<나는 진짜 창수다>
- 선물
“죽음은 신이 주신 축복이지요.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는 슬퍼할 이유도 없고, 더 이상 육체의 고통이란 것도 없죠.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면 되지요. 하지만, 그러한 선물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상에서 꼭 각자가 해야 할 일을 마쳐야만 합니다. 그 해야 할 일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그 고통이 크면 클수록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받게 될 선물은 그만큼 크지요. 당신은 그 선물을 받기 위해서 지금의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무척 고통스럽고 혼란스럽겠지만, 우리는 당신에게 줄 큰 선물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조금만 견디어 내세요. 지금 당신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무척 아프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당신이 해야 할 일인 걸요.”
한줄기 눈물이, 나의 뺨을 타고 흐른다. 그렇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고통으로 인해, 이 세상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행복한 세상으로 바뀔 수 있다면, 그리하여 지옥의 고통이 더 이상 없어진다면, 나는 이 고통을 이기어 내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나는 진짜 창수다>
한참만에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인가. 내 양손이 허리 뒤로 묶여 있다. 그리고, 저벅저벅저벅. 살기가 느껴지는 발자국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그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굵은 음성을 가진 남자의 말소리가 들린다.
‘저 녀석인가?’
‘네, 분명 맞습니다. 저 녀석이 바로, 그 악마의 반지를 낀 녀석입니다.’
‘여기서 탈출할 수는 없겠지?’
‘전설에 나오는 마법사가 아니라면, 절대 탈출이 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저기서 탈출한다면, 그건 시간이동이나 공간이동이 가능한 초인이라는 얘기입니다. 저 녀석은 그냥 평범한 사람입니다. 악마의 반지를 끼고 있다고 해서, 그런 능력이 발휘되는 것은 아닙니다. 악마가 저 녀석을 잡아놓기 위해서 끼워놓은 것 같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저 녀석이 우리의 정체는 알고 있나?’
‘아마, 모를 겁니다. 저 녀석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악마의 반지는 어떻게 했나?’
‘뭔가 조치를 취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도무지 빠지지를 않습니다. 대장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 빠진단 말이지? 흠... 아직은 좀 기다려. 저 녀석에겐 도대체 무슨 능력이 있는 건지 좀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아. 도망을 치지 못한 걸 보면, 우리가 모르는 초능력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야. 저 녀석이 우리 애들을 죽인 거 확실한가?’
‘예, 확실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였는지는 모릅니다. 우리 애들이 죽어갈 때, 저한테 확실하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 녀석, 무섭다고요. 저 녀석 때문에 우리 다 죽었다, 라고 말하는 걸 분명히 들었습니다.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총이나 칼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한 건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저도 사실은 저 녀석이 무섭습니다. 그래서 반지를 빼는 것도 허락을 구한 것입니다.’
‘그래? 흠...그렇다면, 뭔가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겠군.’
“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지? 그때, “나”의 머릿속에서 어떤 울림이 나에게 속삭였다. 생각하지 마. 입을 조금만 벌려. 그리고 너의 몸을 흐르는 대로 맡겨. “나”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치키치키 축축 치치치치 추추추추 축추축. 나는 발을 동동 굴리면서, 맨 땅을 차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확인해 봐.’
‘네, 대장님.’
발자국 소리가 내게 가까워질수록 나의 발차기는 더욱 빨라졌고, 이상한 신음소리는 더욱 더 속도를 더해졌다.
‘대장님, 저놈이 뭔가 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쪽으로 와 보십쇼.’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빨라졌다.
‘안돼! 저놈 잡아. 저놈 뭔가 분명 있어. 도망치지 못하게 꽉 잡아.’
그게, 칼이었는지 총이었는지 모르겠다. 뭔가가 나를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대로 기절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한참 후 나는 잔디가 만발한 어느 공터에 누워 있었고, 묶여 있던 손이 풀려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주변 사람들이 누워있는 나를 힐끗 쳐다보긴 했지만, 별 관심 없다는 듯 이내 제 갈 길을 갔다. 여기는 대체 몇 년도의 어디란 말인가? 나는 또 무슨 주문을 했던 것인가. 나는 언제쯤 나의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죽은 것인가, 죽지 않은 것인가. 나는 사람인가, 사람이 아닌가. 나의 궁금증은 갈수록 더해지기만 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 나는 모든 것을 느낄 수 있고, 살아있다는 느낌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 나는 살아있기에 또 다시 여행을 떠나야만 한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돈 한 푼 없지만, 길을 계속 걷다보면, 해결책이 나올 것이다. 지금은 내 두 손이 멀쩡하고, 아직까지 숨을 쉴 수 있음에 감사하자. 나는 일어나서 바지를 털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에게 씌워진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서. 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나는 진짜 창수다>
“추억 따위, 만들지 않기로 했어요. 추억을 만들면 만들수록, 마음만 아파지니까요.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왜, 그런 걸 만들면서 매번 슬퍼해야만 하나요? 누군가를 만나면, 우리는 모두 헤어지게 되어 있잖아요. 언젠가는요. 언젠간 헤어져야 할 거잖아요. 그런데, 왜 추억을 만들어요? 사는 게 의미 없어요. 추억을 만들면 아프고, 그렇다고 그냥 살아가자니 무료하고. 죽자니, 죽어가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고. 전, 어찌해야 하나요? 사람은 왜 태어나고, 왜 죽는 건가요? 죽을 건데, 왜 자꾸 사람을 만들죠? 무엇 때문에요? 무엇을 위해서요? 신은 왜 인간을 만들었나요? 왜 만들어서 이 고생을 하게 해요? 네?“
그는 슬픔을 소화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 또, 기쁠 때 마음껏 기뻐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도 박탈당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렇다. 그에게 인생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그런 이에게 신은 과연 무슨 말을 해 줄까. 나는 궁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무조건 ‘너는 왜 자기 인생에 만족하지 못하니?’라고 책망한 할 것인가. 그렇게 무책임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신을 만난다면, 그는 다른 말을 할 것이다. 그 말은 과연 무엇일까? 정말로, 궁금하다
<나는 진짜창수다>
“악마의 아우라가 내 몸을 휘감고 있다. 아마도, 저들은 나를 잡아서 죽이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는다. 나는 그들에 의해 죽지 않는다. 내 몸이 죽는 그날까지 그들과 함께 하리라. 그러므로 나는 죽지 않는다. 그들의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하리라. 상처가 뭉치고 뭉쳐서, 치유할 수 없는 정도로 뭉쳐서 그들은 악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상처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내어, 그들의 마음을 보듬으리라.
“세상에 악마는 오직 하나. 마음속에 있는 악마. 그 악마는 상처가 만들어내지. 그러므로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할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치료해야 할 사람이 있는 거야.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죄의 대가로 지옥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신이 자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만든 세상에 불과해. 그러므로 지옥은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니야. 죽어서도 회개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만 해. 그래야 우리가 사는 이 현실세계가 더욱 더 편한 세상이 될 거야. 그러나 나는 믿어. 신은 반드시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해 주실 거라고. 지옥은 어쩔 수 없이 만들었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신의 뜻에 부합한다면 반드시 지옥은 없어질 것이라고. 살아서도 천국이고, 죽어서도 천국인 세상. 그게 진짜일 거야. 그런데, 나는 자꾸 궁금해져. 죽음 이후의 세계에 무엇이 있는지. 천국과 지옥은 왜 만들었으며, 삶과 죽음은 왜 만들었는지. 너희가 그것을 안다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 주지 않을래? 내가 가서 신을 만나봐야겠어. 그리고 나의 말을 전할 거야. 내가 너희를 구원해 줄게. 살아있는 현실세계와 죽음 이후의 진짜 현실. 모두가 소통할 수 있고, 또한 서로 도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넌 가장 중요한 걸 잊어버렸구나. 그러기 위해서는 네가 먼저 행복해야 돼. 네가 먼저 행복하지 않으면, 죽음 이후의 세계도 삶의 세계도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아. 우리는 그것을 알리러 온 거야. 그러니, 지금 네가 사는 현실의 삶에 충실히 살아가.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야. 우리는 네가 오는 그 날을 기다릴게. 삶의 세계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찾아봐. 우리는 아직 너를 데려갈 수가 없어. 너를 데려가기 위해서는 너를 죽여야만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못해.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죽여서 데려갔지만, 너만은 안 되겠어. 너를 데려가면, 우리는 정말로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거야. 그러니, 현실에서 꿈을 꿔. 때가 되면, 저절로 우리에게 올 수 있을 거야. 우리는 너의 약속을 믿어. 그때가 되면, 우리는 너를 환영할 거야. 우리도 저승세계에서 우리 할 일에 충실할게. 그동안 정말로 고마웠어. 우리 같은 악마를 이해해줘서. 너의 마음이 우리를 감동시켰어. 그걸 꼭 기억해. 이제, 다른 누군가가 너를 지켜주러 올 거야. 하지만, 그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리지는 마. 우리는 저승세계에서 할 일이 있어. 그러기 위해서, 너와 우리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이 비밀로 해야만 돼. 이것만은 꼭 기억해, 진짜 악마는 하나야. 그 악마를 잡기 위해서는 악마가 되어야만 해. 네가 악마가 될 수는 없어. 그러니, 때가 되면 우리가 그 악마를 잡을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이에서 있었던 일은 모두 비밀로 해야만 해.”
“알았어. 그런데, 자꾸 생각이 나면 어쩌지? 그럼, 다 들킬 텐데?”
“너의 기억을 없애줄게. 하지만, 너를 보호하기 위해서 너의 몸에다가 뭔가를 기억해 놓아야만 해. 네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너의 본능이 너를 보호해 줄 거야. 하지만, 늘 가슴 한편은 허전할지도 몰라. 기억을 없애면, 너의 추억들도 함께 없어질 테니까. 그래도 괜찮겠어?”
“내가 꿈꾸는 세상이 오는 것에 대한 대가라면, 각오할게. 준비됐어.”
간절히 원하면, 간절히 원하면 정말로 이루어질까. 내가 꿈꾸는 세상이 올까. 서로 돕기만 하는 세상. 서로 미워하는 이가 없는 세상. 서로가 서로를 속이려 애쓰지 않는 세상. 오늘 한 끼를 먹기 위해 고민하지 않는 세상. 그저, 서로 바라보면서 웃기만 하는 세상. 그런 세상이 과연 올까. 단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행복에 겨워하는 세상. 그리하여, 우리가 죽을 때에 결코 슬퍼하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이 정말로 올까? 그런 세상이 올 수 있다면, 지금의 고통쯤은 견뎌내리. 내가 너희들(악마)한테 속음으로 인해서, 그런 세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나는 끝까지 나를 내던지리. 너희의 마음이 나로 인해 바뀔 수가 있다면, 나는 너희에게 기꺼이 내 몸을 내던지리라.
<12인의 사위들-오라, 지구의 멸망이여>
축구공만한 공기방울이 ‘네모’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네모의 몸은 공기방울과 함께 공중으로 툭 튀어올랐다. 네모는 목소리 높여 도와달라고 외쳤지만, 그 소리는 자신의 이명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저, 그가 공중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바라보는 수밖에. 어서 빨리 우리의 구원자가 와 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그러나 당장에 그것을 바라는 것은 무리이다. 참고 견디다보면, 꼭 그가 와 우리를 구원해 주리라. 우리는 그것을 믿는다. 조만간 우리의 몸도 네모처럼 갇히게 되겠지. 우리 12인에게는 더 이상 이 세상을 구원할 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다. 마지막 발악을 해 보았지만, 루시기의 군단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루시기의 웃음소리가 점점 더 커져왔다. 그들이 우리에게로 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모두 잡아가기 위해. 하지만, 우리에게는 숨겨둔 비장의 무기가 있다. 그 무기의 존재를 루시기는 전혀 모른다. 그 점은 정말 다행이다. 그 비밀은 끝까지 지켜져야만 한다. 우리는 끝까지 루시기와 대항하다 그의 공기방울에 잡힐 것이다. 그리고, 그 공기방울은 루시기의 금고에 봉인되겠지. 그러면, 우리가 갖고 있던 각각의 능력은 모두 루시기의 것이 된다. 루시기가 세상을 지배할 날이 곧 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원했던 것이다. 지구를 멸망시켜야 지구가 산다. 그가 얘기했던 것이다. 악마를 잡기 위해서는 악마가 되어야 하고, 지구가 살기 위해서는 지구를 멸망시켜야 하고, 루시기를 잡기 위해서는 루시기가 되어야만 한다. 이제 슬슬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다. 루시기는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하겠지만, 우리는 루시기의 그런 점을 노리고 있다. 오라, 루시기여. 오라, 지구의 멸망이여!
<나는 진짜 창수다>
“그럼 지금부터 시희양과 창수군의 결혼식을 거행하겠습니다.”
결혼식은 간단하게 치러졌다. 그리고 나는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신혼방으로 향했다. 이 솟아오르는 욕망을 더 이상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녀도 옷을 벗고 나도 벗었다. 그리고 황홀한 순간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녀와 나는 드디어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우리의 몸이 하늘로 붕 뜬 것이다.
“눈을 뜨거라.”
어디선가 이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도 편하고 너무도 장엄하고 너무도 거룩한 목소리였다. 그 소리에 이끌려 눈을 떴다. 눈을 뜨니 우리의 몸이 공중을 날고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이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우리의 몸은 여전히 하나였다. 그 모습을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저들 눈에는 너희들이 천사의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너희들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니라”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너무도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신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그토록 간절하게 원하던.
“손가락을 대라”
이 순간에? 이상한 명령이었지만 그것이 신의 목소리란 것을 알았기에 우리는 손가락을 서로에게 갖다 대었다. 빛이 원을 그리고 있었다.
“다 이루었느니라”
그 순간. 지상의 검은 물체들이 하늘로 빨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악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저 녀석 진짜 신이 보낸 녀석이었어. 저 녀석이었어. 저 녀석 때문에 우리 다 지옥으로 끌려가게 생겼어. 저 녀석을 죽였어야 했는데. 저 녀석. 두고 보자.”
그렇다. 이제야 알겠다. 나를 잡으려던 그 물체들은 악마였다. 나를 잡아야지 그들이 끌려가지 않는 거다. 그제서야 나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게 되었다. 그렇다. 내가 그녀를 포기했었더라면 그들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의 뜻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와 합방하는 순간이 최고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보다 더 큰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다. 그녀와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는 그것. 죽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 그곳. 그곳에서 나는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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