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설 마지막이자 최대의 걸작인 「비창 교향곡」은 1893년 10월 28일에 페테르부르크에서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자작의 성과에 대해 그다지 자신이 없어했던 그도 이 곡에 있어서는 ‘나의 일생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이 교향곡이 초연된 이튿날 아침 동생 모데스트와 식탁에 앉아 악보를 들고 곡의 제목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모데스트가 「비극적」이라는 제목을 제안헀으나 마음에 들지 않아 이것 저것 생각하다 동생이 다시 「비창」이 어떠냐고 제안하자 차이코프스키는 무의식 중에 손뼉을 치며 찬성하면서 그 자리에서 악보에 제목을 써 넣었다 한다.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는데다가 동성애자라는 낙인을 벗어나기 위해 1887년에 결혼했던 밀류코바와 갑작스럽게 결혼했으나 그 결혼 생활은 파탄이나 오히려 그의 우울증은 극도로 악화되어 자살기도까지 하게 된다. 결국 차이콥스키가 유럽으로 요양을 떠나면서 그들은 헤어져 살게 된다. 그런데다가 우울한 차이콥스키의 인생에서 그를 지켜준 사람은 9살 연상의 많은 자녀를 가진 부유한 미망인인 폰 메크 부인으로 단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사랑하여 일절 만나지 않는 다는 조건 하나로 매년 6000루불의 연금을 지원해 왔는데, 이것은 음악원 교수 초임의 10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이러한 금전적인 후원 뿐 만아니라 15년 동안에 무려 1200통에 달하는 편지를 보낼 만큼 거의 모든 문제를 상담하던 정신적 지주였던 메크 부인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차이코프스키와의 관계를 끊어 버렸다.
몹시 슬프고 비통한 심정을 이 곡이 대변해 주고 있으니 「비창」이라는 곡명은 아주 곡의 내용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곡 해설 관현악 편성은 2관 편성이지만 특히 금관과 타악기가 충실하게 이용되고, 심벌즈와 탐탐이 효과를 거둔다.
제1악장 Adagio 4/4의 서주를 갖는 소나타 형식. 상단에 pp(아주 여리게)콘트라베이스의 공허한 화음을 배경으로, 파곳이 꿈틀거리는 듯한 어두운 동기를 연주한다. 이것이 그 밖의 악기들에 연결되어 전개된 뒤에 알레그로 논 트로포의 주부로 들어간다. 여기서는 서주와 똑같은 동기가 가벼운 악센트의 리듬을 갖고 저음현으로 나타나 제1주제로 발전되어간다. 집요한 반복과 발전에 의해 악상은 더욱더 불안과 초조감에 휩싸이며 절정을 이루다가 조용히 사라진다. 여기서 악상은 아다지오로 바뀌며, 유려한 슬픔의 제2주제가 현에 의해 제시된다.
차이코프스키의 선율 중에서도 가장 친숙해지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이 주제는 목관에 의한 리드미컬한 악상과 함께 전개 · 반복되어 고조되다가 파곳의 독주로 쓸쓸하게 모습을 감추면, 기다렸다는 듯이 알레그로 비보(Allegrovivo)의 ff(f보다 세게)로 전개부로 들어간다. 두 개의 주제를 중심으로 폭풍과 같은 악상이 전개되어, 금관 악기의 포효와 뒤섞이며 소나타 형식의 전개부가 갖는 극적인 매력을 충분히 자아낸다. 이러한 격렬한 상태대로 재현부에 들어서면 숨막힐 듯한 fff(아주세게)로 제1주제가 재현되어, 듣는 이를 비탄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한다. 이윽고 안단테로 바뀌며 슬픔에 찬 제2주제가 조심스럽게 재현되어 멋진 대조를 이룬다. 안단테 모소(Andante mosso)의 밝고 부드러운 코다가 겨우 안심한 듯한 인상을 주면서 곡을 마친다.
제2악장 Allegrocongrazia D장조 5/4. 세도막 형식. (9:09) 5박자는 2박과 3박을 합친 불안정한 박자로 러시아 민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악장 전체가 익살맞은 왈츠와 같은 인상을 준다. 전체적으로 경쾌한 템포로 진행되면서도 이 익살에서 우울한 애감이 스며나오면서 묘한 매력을 자아낸다. 중간부의 악상은 감미로운 애가(哀歌)를 연상케 해 더욱 감상적 느낌을 준다.
제3악장 Allegro molto vivace G장조 4/4. (8:35) 스케르초와 행진곡을 혼합한 듯한 두도막 형식의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스케르초 주제는 12/8박자로 우선 바이올린으로 연주되지만 이윽고 명랑하게 4/4박자의 행진곡 주제의 단편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중간부 악상과 함께 스케르초와 행진곡의 악상이 번갈아 나타나며, 팀파니의 강타와 심벌즈의 울림 속에서 최고조를 이룬다. 이윽고 행진곡 주제의 단편이 계속 쌓여 가면서 곡상은 강렬한 코다를 향해서 간다. 차이코프스키의 탁월한 기법이 백열(白熱)적인 효과를 거둔 악장이다.
제4악장 Adagiolamentoso b단조 3/4. (12:41) 「비창」의 이름과 어울리는 악장이며 절망적인 우울감을 띤 이례적인 끝곡이다. 2개의 주제와 개개의 발전으로 이루어진다. 첫머리에서 현의 f 로 나타나는 제1주제는 비통한 인상을 주면서 반복되고, 이윽고 투티의 ff 로 고조된 뒤 절망적인 pp 로 빠져들게 된다. 이 부분이 반복되며 ff에서 pp로 음계적인 하강을 하는 파곳의 독주를 지나 애절한 안단테의 제2주제로 옮겨간다.
현의 pp로 연주되는 이 주제는 큰 아치를 그리며 반복되고, 화성적 경향이 짙어지면서 음이 더욱 고조되어 절정에 이른다. 그리고 또다시 절망적으로 하강되며 사라진다. 제1주제가 강한 악센트의 ff로 재현되며 격렬히 고뇌하는 듯이 발전하고 고조되다가 사라지면, 탐탐(징)이 공허하게 울리고 금관이 절망적으로 울려 퍼지며 코다로 들어간다. 여기서는 제2주제가 비통하게 연주되고 피치카토의 여운을 남긴 채 쓸쓸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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