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베껴쓰기_77] 골든타임 허비하는 政(정사 정)治(다스릴 치) / 예진수 논설위원 / 문화일보 / 2015.01.06
통신의 속도는 지난 30년 사이 1억 배가 빨라졌다. 향후 30년은 더욱 아찔한 속도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빠른 속도를 추구하는 경기는 테니스와 야구, 펜싱 등이다. 이들은 1000분의 1초인 밀리 초의 세계에서 경쟁한다. 이젠 산업계도 밀리 초 경쟁 시대에 진입했다.
유독 굼뜬 곳이 정치권이다. 지난 연말 국회에서 '클라우드 컴퓨팅 발전법' 통과가 무산됐다. 클라우드 컴퓨터는 개별 PC에 소프트웨어를 저장할 필요 없이 대형 서버에 저장했다 온라인으로 불러내는 시스템이다. 미국의 민간 기업들은 공공기관 클라우드 프로젝트를 테스트베드(시험지역)로 삼아 세계 시장 점령에 나서고 있다. 미국, 영국 등보다 5년쯤 뒤처진 클라우드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미래창조과학부가 지난 2013년 10월 국회에 '클라우드 컴퓨팅 산업 활성화법'을 제출했다. 2017년까지 정부 부처와 대학 등 공공기관들은 15% 이상이 민간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막힌 규제를 뚫어주는 특별법이다. 이 법안은 1년이 넘도록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당초에는 국가정보원 개입 우려 등으로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반대했다. 정부가 국정원 개입 가능성이 있는 부분을 수정하겠다고 밝혔는데도 연말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서비스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 통과가 미뤄진 것과 함께 뼈아픈 실기[ 失(잃을 실) 機(틀 기, 여기서는 때, 시기 의미로 사용) ]가 아닐 수 없다. 정보통신분야에서 '간발[ 間(사이 간) 髮(터럭(몸에 난 길고 굵은 털) 발) ]의 시간'은 10년 미래 경쟁력을 좌우한다. 세계가 전광석화의 속도로 경쟁하는데, 우리 정치권은 미래 신수종 산업 발전을 위한 황금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다. 여야는 큰 선거가 없는 올해가 노동, 공공개혁의 적기라는 지적 역시 포퓨리즘에 몰두하는 정치권에 대한 호된 질책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경제는 정치인들이 잠자는 밤에 성장한다"는 말까지 있다.
간발의 시간을 허비하다가 중국에 추격의 기회를 허용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인터넷 기업 알리바바와 스마트폰 제조업체 샤오미의 성장을 보면, 정체 상태에 머무른 듯하지만 어느 순간 스포츠카처럼 속도를 내는 중국 산업계의 저력을 잘 알 수 있다. 기가의 시대에 또다시 '간발의 시간'을 놓치면 그 간극은 더 크게 벌어질 것이라는 점이 두렵다. 2013년 6월 발의된 '데이터베이스산업진흥법'도 1년 반 가까이 국회에 볼모로 잡혀 있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중국의 소프트웨어 산업 경쟁력이 강화되면서 한국 중간재 산업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소프트웨어 불공정 행위에 뿌리를 도려내지 못했고, 국내 소프트웨어 분야는 변두리 산업으로 밀려날 위기다. 소프트웨어 업계 스스로 이른바 3D에 꿈마저 없는(Dreamless) 4D 업종이라고 자조할 정도다.
올해는 양의 해다. 양은 노마드(유목민적 삶)의 상징적 동물이다. 노마드 사회에 적합한 클라우드 산업을 뒷받침하는 것이 소프트웨어 분야다.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한류 콘텐츠를 소프트웨어화하고, 클라우드를 통해 세계에 확산하는 데 의지와 역량을 결집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정부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