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형주성은 관우의 성이다 삼국지에 보면 유비가
이 성을 빌렸다가 돌려주지 않고 그곳에 터를
잡아 촉나라의 기반을 다져 유명해진 성이다..
삼국이 무너지고 형주성은 서진에게 넘어갔고
당시 이곳 양양현의 태수로 온 이가 바로 ‘양호’이다
양호는 어진 태수였다..
그는 힘으로 상대를 제압한 것이 아니라 덕으로
제압한 사람이다..
상대 오나라 군대와 싸움약속을 하면 반드시 기일을
지켰으며 단 한번도 비밀습격을 하지 않았으며
적이라도 포로는 되 돌려 주었다..
오나라의 장수는 육항이었는데 한번은 육항이 병이
들자 양호는 그에게 약을 보냈다.. 육항의 부장들이
적이 보낸 것이니 독이 들어있을지 모른다고 하자
육항은..
“양호가 어찌 독으로 사람을 죽이겠는가?‘라고 하며
그 약을 먹고 병이 나았다..
육항은 ‘양호의 덕은 연나라의 명장 악의나 촉의 제갈량
보다도 뛰어나다‘라며 칭찬했다..
그렇듯 양호는 상대에게 조차 인정을 받을 정도로
어질고 정정당당했다..
그래서 중국의 많은 문헌들에서 고을을 다스리는
어진 현령의 롤모델이 되는 이가 양호이다..
당시 오나라가 손호의 폭정으로 형편이 어려워지자
수많은 오나라 백성들이 살기 위해 형주성으로 넘어
왔다.. 그러자 양호는 문을 개방하여 오나라 백성들에게도
진나라 백성과 똑같은 대우를 해주었다
그러자 더욱 더 양양현으로 넘어 오는 오나라 군인
과 백성들이 늘어갔다..
그러면서도 부장들이 지금 오나라가 피폐해 있으니
전면전을 하자고 건의해오자
상대 육항이 뛰어난 지도자라 전면전을 하면 양측에
너무도 많은 사상자가 날것을 생각해 전면전을 묵살
하고 때를 기다리며 덕으로 민심을 쌓고 남는 병사
들에게 농사를 짓게해 양양현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서 자연스레 상대를 스러지게 만들었다..
‘옷을 가볍게 입는 양호’ 이것이 그를 가리키던 말이다
이 말은 무섭고 권위적이지 않는 지도자라는 말이다..
그렇듯 양호는 민초들과 똑같이 생활하며 늘 어질었고
한결 같았다고 전해온다..
말년에 그가 병을 얻어 낙향하자 그는 두예장군을 천거
하여 결국 동오정벌을 완성하게 한다...
그리고 그가 죽은 후 사람들은 그의 고향인
현수산에 ‘양태부묘’를 만들고 공덕비를 세운다..
이후 수많은 민초들이 이곳을 찾아서는 ‘양호’의 어진
다스림과 은덕을 기려 눈물을 흘렸으니..
이 후 이 비를 눈물을 흘리는 묘비라 하여
'타루비(墮淚碑)라 부르게 된다..
(현수산 타루비)
이 타루비 이야기는 민초를 사랑하는 지도자의 표상이
되어 중국 전체의 다스림의 롤모델이 되었다..
놀랍게도 우리나라에도 이 타루비가 있다..
여수에 가면 이순신장군을 기려 부하 수군들이 ‘양호’
의 타루비를 본받아 타루비를 세워 이순신장군의 은덕과
공을 기렸다..
(여수 이순신 장군의 타루비)
말로는 어짐으로 민초들의 눈높이에 맞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막상 힘을 갖게 되면 가난하고
힘없는 민초를 바라보기 보다는 자신의 찬란한 행적
부풀리기에 급급하다..
얼마전 유엔사무총장을 하고 계신분이 차후 대통령이
되고 싶으신지 뜬금없이 방문하여 휘젓고 간 일이있다
세계적인 큰 일을 했으면 이후는 지구촌 인류를 위한
좀 더 대승적인 일을 하며 삶의 매조지를 지으면 더
멋질텐데 하는 순진한 생각을 하다간
문득
진정 민초들을 위해 살다갔던 옷이 가벼운 ‘양태부’가
생각났다..
세상일이란 것은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으니
열 중 일곱 여덟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 양 호 -
첫댓글 이번 달도 회보만드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세상살이를 연상시키는 이달의 시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형님 시나 글의 특징중 하나 같습니다. 인간사 지지고 볶으면서 그래도 같이 가야 한다 는 엄청난 진리 말이죠. 전 좀 생각이 다르지만 말입니다 ㅎ. 서산대사의 시를 예전엔 외웠었는데 이젠 다 잊어버렸네요 ㅎ '청허' 가 서산대사의 호인건 오늘 알았습니다 ㅎㅎ 법명이 휴정인건 알고 있었지만... 다 형님 덕분이죠^^
서산대사 = 휴정 = 청허
사명대사 = 유정 = 송운
특히 청허스님은 시를 잘 써서 시로도 일절이라 칭할수 있다니..
언제 소개 할 때가 있으려니와
만해와 함께 청허스님의 시도 아주 좋아하는 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