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예전 학교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입니다. 청각장애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어린이 문장으로 썼지요)
요사이 학교 홈페이지에 늘 야구 이야기를 썼지요.
세상에는 야구 말고도 참 이야기꺼리가 많은데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습니다.
한 사나흘 전일 거예요. 학교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하다가 갑자기 어떤 충동을 느꼈지요.
뭔가 허전해서 어디론가 막 떠나버리고 싶은 거 있죠.
"그래, 바다로 가야지'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차를 원주쪽으로 운전해갔어요.
원주에 가면 동해바다로 가는 영동고속도로를 탈 수가 있어요.
차를 타고 가는데 비가 억수 같이 내리더군요.
그래서 "이거 잘못 떠난 건 아닌가"하고 후회하면서도 그냥 바다를 향해서 차를 운전해 갔습니다.
원주를 지나 한참을 가니 평창 휴게소가 나오더군요. 이미 날은 어두워졌고 비는 계속 내렸어요.
이쯤 되면 좀 으스스한가요? 무슨 괴기영화 스토리를 상상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는데 사실은 전혀 그 쪽이 아니예요.
평창휴게소에 들러서 커피를 한잔 마셨어요.
휴게소 안에는 비오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동해바다로 가는 피서객들이 꽤 많이 모여 있더군요.
그 때 어떤 작은 여자아이들이 우동을 시켜 먹다말고 놀라 비명을 지르는 거였어요.
왜 그런가하고 보았더니 우동 먹는 테이블 아래로 까만색의 상당히 큰 물체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데
커다란 나비 아니면 나방 같더군요.
빗물이 번져있는 바닥에서 퍼덕거리는 까만 나비는 사실 내가 보기에도 좀 징그러워 보였지요.
아이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니까 휴게소에서 일하는 청년이 달려왔어요.
청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어려서 아마도 고등학교 이 삼학년 쯤 되어 보이더군요.
얼굴이 하얗고 키가 훌쩍 컸는데 신세대답게 귀걸이를 하고 있었어요.
나는 그 남학생이 나비를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어요. 아마도 파리채 같은 것으로 때려잡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면 더 잔인하게 발로 꾹 밟아버릴지도 모르겠지요.
우리도 가끔 그런 때가 있잖아요. 방안에 나방이 날아 들어오면 십중팔구 그렇게 하지요.
생명을 죽이는 일인데도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지요.
드디어 귀걸이 청년이 나비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하얀 손에는 냅킨 한 장이 들려 있더군요.
"저 친구는 나비를 냅킨으로 잡아서 둘둘 말아서, 꾹 눌러서는 화장실 변기나 아니면 지저분한 쓰레기통에 쑤셔 던져버릴 것이다." 이것이 나의 짐작이었어요. 그런데 좀 놀랄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친구는 하얀 냅킨으로 나비의 날개를 아주 조심스럽게 잡더니 그걸 들고 가서는 창밖에 놓아주는 거였어요.
나비는 날갯짓을 하며 밤이 오고 있는 숲속으로 훨훨 날아가더군요. 청년은 나비를 살려 보내준 거였어요.
나비는 그 하얀 얼굴의 젊은이가 자기에게 한 부드럽고 예의바른 행동을 아마도 기억할 거예요.
그 순간의 느낌은 감동이었습니다. 귀걸이를 한 그 청년은 혼자 귀퉁이 테이블에 앉아서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더군요.
휴게소를 나오면서 그 아름다운 청년의 등을 한번 두드려주었습니다.
나는 그날 바다에 가지 않았습니다. 기분이 많이 좋아졌고 그래서 그냥 차를 돌려서 집과 학교가 있는 충주로 돌아 왔습니다.
올 때도 비가 억수 같이 내리더군요. 나비는 어느 숲속 고마운 나무 아래 날개를 접고 앉아서 비를 피하고 있겠지요.
나는 앞으로 남자아이들이 귀걸이를 한다고 해도 흉보지 않을 생각입니다.
바다에는 한번 가기는 가야겠어요. (2005년 7월 )
첫댓글 가슴 따뜻한 일화입니다. 저도 앞으로 귀걸이를 하거나 피어싱한 젊은 청년들을 보면 곱게 날려버린 나비가 생각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