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사(靑龍寺)는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산4-1번지 모악산(母岳山)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청룡사의 창건은 1079년(고려 문종 33) 금산사 주지로 부임한 혜덕(慧德) 왕사가 금산사를 크게 중창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혜덕 왕사는 금산사 중창과 더불어 모악산 내에 40여 개의 암자를 세웠는데, 이 때 청룡사의 전신인 용장사를 창건하였다.
그 뒤의 연혁은 알려진 것이 없는데, 근대에 와서 1954년에 용봉 스님이 금산사 주지로 부임한 후 용장사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청룡사로 절 이름을 바꾸었다. 이 때 관음전을 건립하고 완주군에 있는 옛 봉서사에서 관음보살 좌상을 모셔와 관음전에 봉안하였다. 그 뒤 붕괴 직전에 놓인 관음전을 1974년에 지금의 월정 주지스님이 전면 해체 복원하였다.
청룡사 안내석
산 중턱에 자리한 청룡사는 넓은 도량과 확트인 전망이 좋은곳에 자리하고있다.
청룡사 요사채
흰 배롱나무와 붉은 배롱나무가 멋지게 어울리는 청룡사 관음전
화사하게 꽃을 피운 배롱나무꽃
청룡사 수조
청룡사 관음전
전각은 앞면 4칸, 옆면 2칸이며, 원형 주초 위에 두리기둥이고 주심포양식을 하고 있는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내부에는 지방문화재 제156호 관음보살좌상을 모시고 있다. 관음전 내부에는 닫집 아래 화려한 수미단 위에 비로자나삼존불이 있으며, 그 앞에는 법상이 놓여 있다. 불화로는 왼쪽에 주칠 금분으로 그린 신중탱, 아미타9품탱, 오른쪽에는 칠성탱, 산신탱이 있다. 이곳이 용천암 이었음을 알려주는‘용천암중창기’(불기 2520년, 1975년)에 시주자 명단이 있다.
흰 배롱나무 꽃
김제 청룡사 관음전 삼존불
주존불로는 내부에 비로자나삼존불이 있다. 주존불은 비로자나불좌상이고 좌우의 협시보살로는 대세지보살과 관음보살이 모셔졌는데, 보살상은 둘다 호분을 칠하여 하얗게 되어 있다.
청룡사 관음전내 칠성탱
관음전내의 동종
청룡사 전경
청룡사에서 바라다본 금산사
금산사 부도전
금산사에서 청룡사 가는 동쪽 길을 약 300m 쯤 오르면 왼쪽 산기슭에 부도전이 있다. 이곳은 원래 고려시대에는 봉천원 구역이었는데 고려시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금산사를 거쳐 간 고승들의 묘탑들이 모셔져 있으며, 보물 제24호로 지정된 혜덕왕사진응탑비(慧德王師眞應塔碑)도 이곳에 있다.
부도전
나지막한 돌담 안에 2기의 비와 12기의 부도가 "ㄷ"자로 모여있는데,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 금산사의 고승들의 묘탑이다. 당호(堂號)가 확인되는 부도의 주인공을 열거하면 소요당대사(消遙堂大師), 용봉대선사(龍鳳大禪師), 남악당(南嶽堂), 백곡당(白谷堂), 해운당(海運堂), 서봉당(西奉堂), 벽허당(碧虛堂), 인봉당(仁峯堂) 등이며, 1984년에 진표율사(眞表律師)의 부도탑이 건립되었다. 또한 최근에는 명문당 부도가 세워졌다.
혜덕왕사진흥탑비
보물 제24호
부도군의 3번 부도비가 보물 제24호로 지정된 혜덕왕사진응탑비(慧德王師眞應塔碑)이다. 고려 예종 6년(1111년)에 세운 것이다.
현재 탑비는 귀부와 비신만이 남아 있고 비의 머리부분은 결실되었다. 대리석의 비신은 높이 2.78m, 너비 1.5m로서 심하게 손상되어 비문은 판독하기 어렵다. 그러나 다행히 『해동금석원』등에 그 내용이 전한다. 비문의 글씨는 약 2cm의 크기로 구양순의 해서체인데 활달하고 쾌적한 멋을 지녔다. 비의 앞면에 43행 77자씩으로 스님의 출생과 교화활동, 입적 등을 적었으며 그 둘레는 당초문으로 장엄했다.
서자(書者)와 찬자(纂者)의 이름은 판독할 수 없고 각자(刻者)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해동금석원』에 의하면 이오가 짓고 정윤(鄭允)이 썼으며 비음(碑陰)은 채추탄(菜推誕)이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금속고』에서는 비음을 채추탄이 쓴 것으로 밝히고 있다.
귀부는 방형의 지대석위에 놓였는데 신체는 장대하나 머리는 작은 편이다.
등에는 육각의 갑문(甲文)을 새기고 등위에 비신을 얹는 삽입부를 마련했다.역동적인 발과 비늘의 표현이 마치 살아 있는 듯하여 고려시대의 탑비 가운데 우수한 작품임을 알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