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과학과 제국의 결혼(2)
정복의
사고방식
근대 과학은 유럽 제국 덕분에 번창할 수 있었다. 근대 과학이 고전시대 그리스, 중국 ,인도, 이슬람 등의 고대 과학 전통에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독특한 성격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초기에 이르러서였다. 이 과정은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러시아,네덜란드 이 제국주의적 팽창과 나란히 일어났다. 근대 초기 동안 중국인, 인도인,무슬림,아메리카 원주민,폴리네시아인은 계속해서 과학혁명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애덤 스미스와 카를 마르크스는 무슬림 경제학자들의 통찰을 배웠고, 아메리카 원주민 의사들이 개척한 치료법은 영국의 의료 문헌에 자리를 잡았으며, 학자들이 폴리네시아인들로부터 얻어낸 정보는 서구 인류학에 혁명을 가져왔다.
하지만 20세기 중반까지, 이런 방대한 과학적 발견을 수집, 분석하고 그를 통해 과학적 학문을 창조한 것은 세계적 유럽 제국을 지배하는 지적 엘리트들이었다. 극동과 이슬람 세계에도 유럽 못지않게 지적이고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1500년에서 1950년 사이에 이들은 뉴턴 물리학이나 다윈 생물학에 비슷하기라도 한 것 조차 전혀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것은 유럽인들이 과학을 잘하는 독특한 유전자를 지녔다거나 이들이 물리학과 생물학을 영원히 지배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슬람교가 아랍인 독점으로 시작되었지만 이후 터키인과 페르시아인도 믿게 된 것처럼, 현대 과학은 유럽인의 전문 분야로 시작했지만 오늘날은 다민족의 사업이 되고 있다.
무엇이 현대 과학과 유럽 제국주의 사이의 연대를 구축했을까? 19세기와 20세기에는 기술이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근대 초기에는 기술의 중요성에 한계가 있었다. 핵심요인은 식물을 찾는 식물학자와 식민지를 찾는 해군장교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데 있었다. 과학자와 정복자는 둘 다 무지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이들은 "저 밖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이들은 둘 다 밖으로 나가서 새로운 발견을 해야겠다는 강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새로운 지식이 자신을 세계의 주인으로 만들어 주기를 둘 다 희망했다.
유럽 제국주의는 역사상 존재했던 다른 모든 제국주의 프로젝트들과 완전히 달랐다. 과거의 제국 추구자들은 자신들이 이미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고 추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정복은 단지 '그들의' 세계관을 활용하고 퍼뜨리는 것에 불과했다. 예를 들어 아랍인들은 이집트나 스페인 혹은 인도를 정복했지만, 자신들이 모르고 있던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로마인, 몽골인, 아즈텍인들이 탐욕스럽게 새 땅을 정복한 것은 권력과 부를 찾아서였지, 새 지식을 찾아서는 아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럽 제국주의자들은 새 영토뿐 아니라 새 지식을 획득한다는 희망을 안고 먼 곳의 해변을 향해 떠났다. 이런 생각을 한 최초의 탐험가가 제임스 쿡은 아니었다. 15~16세기 포르투갈과 스페인 항해자들도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포르투갈의 항해자 엔히크 왕자와 바스코 다 가마는 아프리카 해안을 탐사하고 그 과정에서 섬과 항구의 지배권을 강탈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하자 즉각 스페인 왕의 통치권을 선포했다.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세계 일주 항로를 찾아냈고, 이와 동시에 스페인이 필리핀을 정복할 기초를 놓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식의 정복과 영토의 정복은 점점 더 긴밀하게 합쳐졌다. 18~19세기 유럽을 출발해 먼 나라로 향한 주요 군사탐험대는 거의 모두 과학자들을 배에 태우고 있었다. 이들의 목적은 전투가 아니라 과학지식의 발견이었다. 1798년 나폴레옹은 이집트를 침공하면서 165명의 학자를 데려갔다. 이들은 많은 일을 해냈지만, 무엇보다도 이집트학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학문을 구축했고, 종교, 언어, 식물 연구에 중요하게 기여했다.
1831년 대영제국 해군은 측량선 비글호를 보낸 남아메리카 해안과 포클랜드 섬, 갈라파고스 제도의 지도를 작성하게 했다. 해군은 남미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그런 지식이 필요했다. 아마추어 과학자였던 선장은 탐험 도중 만나게 될 지형을 연구하기 위해서 탐험대에 지리학자를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전문 지리학자 여러 명이 그의 초청을 거부하자, 선장은 케임브리지를 졸업한 22세의 찰스 다윈에게 이 업무를 제안했다. 다윈은 영국 국교회 성직자가 되기 위해 공부했으나, 성경보다는 지리학과 자연과학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두었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그 이후는 알다시피 역사가 되었다. 선장이 군사 지도를 그리느라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윈은 실증적 자료를 수집하고 통찰력을 형성했으며, 이것이 종국에는 진화론으로 꽃피었다.
1969년 7월20일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은 달 표면에 착륙했다. 탐험에 앞서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은 몇 개월간 달과 환경이 비슷한 미국 서부 사막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 지역은 여러 아메리카 원주민 공동체의 고향인데, 우주비행사들과 한 원주민과의 만남을 담은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느 날 훈련 중이던 우주비행사는 늙은 아메리카 원주민과 우연히 마주쳤다. 남자는 우주비행사들에게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달을 탐사하기 위해 곧 떠날 원정대의 대원들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노인은 잠깐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자신을 위해 부탁을 하나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무엇을 원하세요?" 그들은 물었다.
"우리 부족 사람들은 달에 신성한 정령들이 산다고 믿는다오. 그들에게 우리 부족에서 보내는 중요한 메세지를 당신들이 전해줄 수 있을까 해서".
"그 메세지가 뭔데요?" 우주비행사들이 물었다.
남자는 자기 부족의 언어로 뭐라고 말했고, 우주비행사들에게 그 말을 정확히 외울 때까지 계속 되풀이해서 말하게 시켰다.
"그게 무슨 뜻이지요?" 우주비행사들은 물었다.
"그건 말할 수 없어요. 이 말의 뜻은 우리 부족과 달의 정령들에게만 허락된 비밀이랍니다."
기지로 돌아온 우주비행사들은 그 부족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한 끝에 마침내 통역할 사람을 찾아내어, 비밀 메시지를 해석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들이 암기한 내용을 되뇌자 통역자는 껄껄 웃기 시작했다. 웃음이 잦아들자 우주비행사들은 무슨 뜻인지 물었다. 통역자는 비행사들이 조심스럽게 암기한 문장을 이렇게 번역했다. "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은 한 마디도 믿지 마세요. 이들은 당신들의 땅을 훔치러 왔어요."
첫댓글 유럽 제국주의의 프로젝트...새로운 지식의 획득 + 새로운 영토의 획득... 마지막에 있는 늙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말에 마음이 가는 까닭은 뭘까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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