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속에 가려진 화엄늪을 찾아 헤메다. 1, 개요. 언제: 07년 3월29일(목) 어디로: 내원사~내원사계곡~천성2봉~알바~원효산~화엄늪~원효암~무지개폭포~주차장 누구랑: 친구들 5명 날씨: 흐림, 산위는 구름속. 산행거리: 12.2KM, 산행시간: 8시간23분 평균이동속도: 1.5KM/H 2. 산행기 3월의 마지막 날 새벽이다. 그냥 노래가 듣고 싶어 무심코 컴퓨터를 켜고 “김영태”님이 부른 “내가 부를 너의 이름”을 듣고 있다가 며칠 전 산행한 결과물이라도 정리 하고 싶어진다. 잔잔한 노래와 함께 그 구름 속을 헤매고 온 그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본다. 하늘은 잔득 흐려있다. 아니 근방이라도 한줄기 비가 내릴 것만 같다. 동천에는 봄이 왔다. 앙상한 가지에 각가지 꽃들이 피었다. 안개꽃들이 화단을 수놓고. 그렇게 할 일없이 꽃구경하며 차오기를 기다린다. 8시50분 봉고차에 몸을 싣고 출발한다. 문수고에서 마지막 승차함으로서 모두 5명의 전사들이 비가 올 것 만 같은 기상조건에서도 출발한다. 차창으로 보이는 영남알프스 산들은 구름 속에 가려져있다. 내원사 도착, 주차비 2천원, 일인당 문화재 관람비 2천원. 그리고는 내원사 바로 아래 주차장까지 오른다. 오늘 산행대장님은 산행코스를 변경한다. 내원사 경내를 지나 화엄벌로 올라 원효산~제2봉~진달래 구락지~내원계곡으로 수정한다. 경내를 들어서니 비둘기 한 쌍이 처마 밑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다. 물도 한모금마시면서 간단히 경내를 둘려보고 등산로처럼 보이는 길을 가니 이것은 아니다. 다시 경내로 들어와 총무실 쪽으로 올라 서러니 스님이 저지한다. 결국 내원사 계곡을 선택하고 오른다. 작년에도 스님이 등산로 잘못 가러쳐 주는 바람에 멧돼지 길로 올랐든 기억이 난다. 계곡 길은 등산객들을 위해 단정하게 정비가 되어 있다. 서서히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무릎, 윗옷을 한 꺼풀 벗어 제친다. 그리고 자갈길을 걸어 조금 가니 통나무로 등산로를 만들어 놓은 곳. 오르막길이다. 계단은 자연스럽게 생긴 돌들로 되어 있지만 끝도 없이 펼쳐져있는 것만 같다. 약 2KM를 급경사로 오른다. 제2봉까지는 계속 되는 가파른 오르막길 이다. 오르면 오를수록 우리는 구름 속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다. 이슬을 잔득 머금은 진달래가 예쁘게 피어있다. 아직 꽃망울을 피우기에는 이린지 앙증맞은 꽃 몽우리들이 빨간 얼굴을 감추고 있다. 전망 좋은 바위위에 올라서도 주위 조망은 모두 구름뿐이다. 사람도 없다. 이 넓고 웅장한 산에 우리 5명뿐이다. 그래도 서로 앞서그니 뒷서거니 하며 힘든는 줄도 모르고 산을 오른다. 참나무 군락지를 지나고 간혹 키큰 진달래 군락지도 지나서 다시 가파른 언덕을 지그재그로 오르니 눈앞에 거대한 암벽이 가로 막고 있다. 여기가 천성 2봉이다. 로프를 잡고 2봉에 오르니 왜 아저씨 두 분이 식사를 하네. 산행 2여시간만에 처음 마주치는 사람들이다. 역시나 주위는 안개뿐이다. 안개가 아니라 구름속이다. 다시 화엄벌을 향해 나아가지만.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이 안된다. 임도를 옆에 끼고 걷다 참나무숲속으로 들어서 길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잘가고 있는지 판단이 되질 않는다. GPS는 무용지물이다. 왜냐면 천성산을 가볍게 보고 등산로를 입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도 고파 온다. 2봉을 지날 때가 12시 조금 넘었고 30분만 더 가서 먹기로 한 점심. 하지만 길 찾는다고 신경을 써다 보니 더 고프다. 아무 곳에서나 자리 잡고 도시락 꺼낸다. 옆에서는 라면을 끓이고, 앞에는 상추와 다시마와 쌈배추, 갓김치도 나오고. 오늘의 별미로 짜짜로니. 소주도 두 병 있다. 웃음이 끄니지 않고 마냥 즐겁기만 하다. 먹는다는 것은 즐거운 것이다. 짜장과 라면 그리고 밥과 소주까지 먹어치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다시 길 나선다. 그러나 이제 만난 임도는 미타암으로 가는 길이다. 목적했든 길과는 반대로 와버렸다. GPS와 지도를 동원해서 다시 원효산 찾기에 나선다. 이젠 모든 것 포기하고 갈수 있는 길을 찾아내려 서니 마치 하산길 같다. GPS도 바로 앞에 계곡을 가르킨다. 아마 무지개 산장으로 가는 길 같다. 한참을 가다보니 이정표가 나온다. 오른쪽 능선을 오르면 화엄산이란다. 직진은 산장으로 가는 길. 그렇게 우리는 화엄산을 오르는 마지막 오르막길을 찾아내고 마냥 좋아한다. 억새밭 사이를, 구름 속을 평온하게 걷는다. 옆 군부대 울타리 표시인지 시멘트 말둑앞에서서 여기가 어느쪽이냐고 묻는다. 정상석 하나 세우자면서. 그래서 또 한 번 웃는다. 철망으로 가로 막힌 화엄산 정상가는 길. 그리고 등산로 안내판앞에서 다시 우리가 갈 길을 정한다. 화엄벌은 통과해야 하기에 화엄벌을 지나 원효암, 무지개폭포로 하산하기로 한다. 그리고 대기 하고 있는 기사에게 산에서, 구름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무지개 산장으로 내려간다고 사기(?)치고는 무지개산장으로 오란다. 이곳도 꽃이 피기에는 이르다. 화엄늪은 구름 속에 꼭꼭 숨어있다. 우리는 그 화엄늪을 옆에 두고 좌측 능선을 따라 잡목들 사이로 숨어든다. 그냥 평범한 등산로라서인지 조금은 지루해 진다. 여기서도 잠시 알바 한다. 길 잘 가다 원효암을 한 구비 남기고 아래쪽으로 빠졌다. 그래서 한번 다리쉼을 하고는 다시 산을 올라 구비 돌아가니 바위돌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 바위를 타고 넘으니 원효암이다. 원효암도 구경하고 종각 앞에서 사진도 찍고 다시 하산 한다. 임도를 따라 조금 가니 원효산 오르는 갈림길, 철망으로 차량 통행을 막고 있다. 우리는 다시 등산로 따라 숲속으로 내려선다. 뒤에서는 뭐가 그리 좋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아까까지만 해도 바로 뒤어 오는 사람도 보이지 않든 구름속이 이제는 서서히 거치고 있다. 시계가 조금 확보된다. 무지개폭포로 내려서는 길을 또 잘못 들어 바위를 타고 내린다. 무릎까지 쌓인 낙엽에 빠져 보기도 한다. 무지개 폭포, 개구리 알 발견하고는 또 장난이다. 그리고 부지런히 걸어간다. 더넓은 계곡과 암반들을 넘어서, 화사한 벚꽃과 복사꽃이 핀 농장을 지나니 산행 날머리다. 따뜻한 커피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기사님 커피까지 준비했다. 3. 맺는 글. 또 한 편의 산행기를 이렇게 쓴다. 그날의, 모두들 얼굴을 생각하며. 마냥 즐겁기만 한 산행. 마지막 차 안에서도 웃음은 멈추지 않는다. 동네 어귀 어느 민가에 하얀 목련이 떼거리로 피었고, 떼거리로 심어져있는 말에 모두들 배꼽을 잡고 넘어진다. 최유라가 진행하는 라디오도 한목을 한다. 비록 보이지 않고 어두운 안개 속을 6시간이나 헤매고 돌아오지만은 마냥 즐겁다. 집으로 돌아와 자료들을 정리하고 밀린 숙제도 해야 하는데. 두편의 산행기가 남아있었다. 가지북서능과 봉서산 삼겹살 들고 떠난 등산. 그러나 포기하고 출근한다. 어제 저녁 숙제 마치고 오늘 새벽. 이 꼭두새벽에 이 글을 정리한다.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 아무리 가벼운 산이라도 웃습게 보지 말자는.... 하여간 같이 산행 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언제 또다시 함께 하기를 바라며 이글을 마친다. 07년 3월31일에 쓰다. 내원사[內院寺]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 천성산 중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의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다. 〈송고승전 宋高僧傳〉에 기록된 창건설화에 의하면 673년(문무왕 13) 원효가 당나라 태화사에 모인 1,000명의 대중이 산사태로 매몰될 것을 미리 알고 '효척판구중'(曉擲板求衆)이라고 쓴 판자를 날려 보내자 이를 보고 신기하게 여긴 사람들이 법당에서 뛰어나옴으로써 산사태를 피했다고 한다. 그뒤 1,000명의 중국 승려가 신라로 와서 원효의 제자가 되었는데, 그들이 머물 곳을 찾던 중 현재의 내원사 산신각 자리에 이르러 산신이 사라지자 이곳에 대둔사(大屯寺)를 창건하고 상·중·하내원암과 89개의 암자를 세웠다고 한다. 그뒤 1646년에는 의천(義天)이, 1845년에는 용운(龍雲)이, 1876년에는 해령(海嶺)이 중수했으며 1898년 유성(有性)이 수선사(修禪社)를 창설하고 절 이름을 내원사로 고친 뒤 선찰(禪刹)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6·25전쟁 때 완전히 소실된 것을 1955년부터 주지 수옥(守玉)이 13동의 건물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선나원(禪那院)·심우당(尋牛堂)·불유각(佛乳閣) 등이 있다. 전국의 대표적인 비구니 수도선원 가운데 하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