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복음교회, 2023년 6월 25일 주일예배
♱기도로 마음을 모읍니다♱
[찬 송] 10장(전능왕 오셔서)
[공동체 고백] 사도신경
[성시 교독] 교독문 69번(이사야40장(2))
[찬 송] 93장(예수는 나의 힘이요)
[강 론]
“최선을 주시는 하나님(삼상9:16)”
믿음의 여정은 아브람부터 시작됩니다. 그 여정은 가나안 복지를 향한, 그래서 ‘하나님나라’를 향한 여정이지요. 오늘 우리도 그 바통을 이어 받아 경주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내려가듯 우리도 가난으로 세상과 타협할 때도 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도 이스라엘백성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이죠.
울부짖는 노예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그들을 해방시키십니다. 이 사건이 출애굽사건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민족은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하나님나라는 자유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의 나라는 광야를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도 진리입니다.
애굽(세상)에서 살 때가 광야생활보다 더 나았다는 원망이 들리듯 합니다.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 자유인으로 광야를 헤매는 것 보다 더 나아 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자유인으로 광야를 헤매고 있는 제게도 이스라엘의 원망과 불신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제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 원망과 불신은 더 긴 광야와 방황을 허락할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왜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에는 광야보다 더 나은 학교가 없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우리는 예배공동체로 살아야 합니다. 그 새로운 공동체의 구성원 명단에 저와 여러분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세상입니다. 그 세상이 지구 안이든, 지구를 넘는 또 다른 세상이든! 그 세상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어야 합니다. 십계명을 비롯한 하나님의 법은 신명기에 잘 나와 있죠. 하나님나라 시민인 우리는 그 법을 삶의 지향으로 삼습니다. 그 불완전하던 율법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해 집니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죠. 자기사랑과 그 사랑과 같은 무게의 이웃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법을 실천해 가는 과정이 믿음의 여정, 하나님나라 운동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새로운 전쟁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것이 ‘경제 전쟁’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이 전쟁이 때로는 공산주의와의 싸움이기도 했지만 오늘날은 자본주의와의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변질시키는 자본으로부터 ‘자유’라는 가치를 지키고 ‘민주(인권)’라는 소중한 것을 지켜 나가는 것도 하나의 전선입니다. 어둠의 세력, 세상을 지배하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와의 싸움이 아브라함 때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를 비롯한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서 승리했고, 가나안에 정착합니다. 그들은 이 소중한 경험을 하고도 가나안복지에서 하나님이 아닌 우상(자기 자신 혹은 토착신들)을 숭배함으로 큰 비극을 자초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 그토록 기다리고 투쟁해서 얻은 것이 가시와 올무가 되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사례들입니다.
사사기가 왕이 없는 세대에 있을 수 있는 비극에 관한 기록이라면 ‘사무엘서’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이스라엘백성들의 한계와 인간왕의 등장을 기록한 것입니다(사울과 다윗). 열왕들의 기록인 ‘열왕기서’와 ‘역대기서’도 인간 왕들의 한계 속에서 진정한 왕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대망하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늘 최선을 주신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뿐 아니라 우리 자녀들에게도 최선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핍이 많아 보이는 자녀의 모습에서 최선을 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탁하신 천사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두 딸이 더 좋은 부모에게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그러나 사무엘이야기는 우리에게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엘리의 두 아들과 사무엘의 두 아들을 보십시오. '어린 사무엘'에 비해 최상의 조건에서 결핍 없이 자라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 많은 결핍 속에서 자란 사무엘이 더 훌륭하게 잘 자랍니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말입니다. 결핍은 우리 자녀들을 더 성숙하고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울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결핍이 자녀를 성숙하고 훌륭하게 자라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한나와 같은 믿음과 결단입니다. 어린 사무엘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믿음과 결단 말입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의 품안에서 자라도록 돕는 것이 최고의 자녀교육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한나와 다윗의 심정으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이 권면을 자녀들에게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래봅니다. “다윗이 죽는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2:1-3)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우리의 원망과 불평까지도 기도가 됩니다. 또, 우리가 힘들어서 한숨짓고 울부짖는 것도 기돕니다. 원망과 불평으로 광야 길을 연장시킬 것인가, 믿음과 감사로 가나안 복지로 들어갈 것인가는 우리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늘 최선을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감사하는 광야 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민족은 광야에서 원망과 불평으로 일주일이면 통과할 길을 40년이나 헤맸습니다. 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기도를 드립니다. 다른 나라들처럼 인간 왕을 요구한 것입니다(삼상8:5,20). 이스라엘에게는 왕이 있었습니다, 여호와하나님이십니다. 그 왕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예로 고통 할 때 그들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자유인이 되었지만 광야를 40년이나 떠돌아야만 했을 때 신실하게 인도해 주시며 그들의 필요를 채우셨습니다, 약속하신 가나안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나라의 기틀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시와 올무로 고통당할 때는 사사를 통해서 그들을 구원해 주시기도 하셨고, 사무엘도 그 사사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에게 다른 왕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처럼 인간 왕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우상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요구를 사무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8:6하,7 10:19), 그 결말이 어떠할지를 알기에. 하나님께서는 왕정 국가의 폐해를 사무엘을 통해 설명하게 하시지만 이스라엘은 고집을 꺾질 않습니다. 하나님은 “엄히 경고”하십니다(8:9). 아들들은 전쟁으로 희생되고(11이하), 딸들은 왕과 관리들의 사치를 위해 동원될 것이며(13이하), 백성들은 좋은 것들을 왕과 관리들에게 가져다 줘야 할 뿐만 아니라(14) 십일조와 같은 세금을 내게 될 것입니다(15,17). 또한, 백성들이 왕으로 인해 부르짖게 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지 않겠다(18)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말을 듣고도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들처럼 인간 왕을 요구합니다(20). 만인이 평등하다는 하나님나라 이상은 잊혀지고, 계층과 계급이 이스라엘공동체에 생기는 안타까운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그 뜻에 거스르는 기도를 듣고도 응답해 주십니다. 사무엘을 통해서 사울을 왕으로 허락하시죠. 후에, 사울이 실패한 왕국을 다윗을 통해서, 솔로몬을 통해서, 열왕들을 통해서 펴고 싶어 하셨습니다. 결국,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그 이상을 이루십니다.
자녀를 이기는 부모는 없다는 말처럼 하나님아버지는 이스라엘에게 져 주십니다. 이스라엘공동체에 왕을 허락하시죠. 그것도 최선으로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선택된 사울을 보십시오(삼상9장). 그 외모는 출중했고(1,2), 그 성품은 신실하고(3-5) 겸손했습니다(20,21). 하나님께서 배은망덕한 이스라엘에게 최선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최선을 주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거스르는 기도다하더라도 말이죠.
말씀 마치려합니다. 부모에게는 자녀의 미래가 제일 큰 기도제목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사무엘서는 말합니다. 자녀의 결핍 때문에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그리고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 품에 자라도록 하는 믿음과 결단을 하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자녀교육법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또, 본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기도를 드린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최선을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라고 말입니다.
‘에베소서’를 읽으셨습니까? 바울은 그의 편지에서 이 믿음을 가지고 서로의 종이 되어 섬기라고 우리에게 권면하는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또, 성경은 우리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나라는 자유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성령의 종이 되어 섬기라는 가르침도 성경의 주장입니다(갈5:13).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인 우리도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엡5:29)! 부부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의 종이 되어 섬기며 살기를(5:21,22), 자녀가 부모께 순종하며 공경하기를(6:1), 종은 상전에게 순종하고 상전도 하늘에 주(主)가 계신 것을 잊지 말고 살기를(6:5-9) 바울은 권면합니다. 사람을 섬긴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생각으로 서로를 섬긴다면(6:7) 주께서는 그만한 상급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6:8).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서로의 종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찬 송] 435장(나의 영원하신 기업)
[공동체 기도] 주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