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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uck vs Bell
"멍청이는 3세대면 충분하다“
“Three Generations of Imbeciles are Enough”1)2)
이 말은 1927년 미국 버지니아에서 주법에 따라 캐리 벅(Carrie Buck)3)이라는 여성에게 강제 불임수술을 시행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묻는 대법원판결에서, 당시 대법관이던 올리버 웬델 홈스 주니어(Oliver Wendell Holmes Jr.)4)판사가 했던 말이다.
캐리 벅의 어머니 에마 벅(Emma Buck)에겐 자녀가 셋 있었는데 모두 아버지가 달랐다. 에마 벅은 부도덕하고 매춘을 일삼으며 매독에 걸렸다는 ‘혐의’로 ‘버지니아주 간질 및 정신박약자 수용소(Virginia State Colony for Epileptics and Feebleminded)5)’에 수감되었다. 지금도 어려운 매독 진단6)7)은 과거엔 더 부정확했지만, 의학적 의미와 함께 성적 문란을 나타내는 도덕적 징표로 작용했고,8) 매독을 진단받은 사람은 몹쓸 병을 전파한다는 구실로 정신박약 수용소에 수감되거나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9)
양육할 부모가 없던 캐리 벅은 초등학교 6학년 이후 위탁가정10)에 맡겨져 학교에 다니며 집안일을 도왔는데, 그녀가 17세 되던 1923년 위탁부모의 조카에게 강간을 당하고 임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캐리 벅이 조카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낀 위탁부모는 그녀가 음란(promiscuity)하고 정신박약(feebleminded) 하며 비정상적인 행동(incorrigible behavior)을 한다며 그녀의 어머니가 수감되었던 수용소로 보냈다.
수용소의 초대 소장이자 우생학을 신봉하는 외과 의사로 불법적 강제 불임수술을 일삼던 앨버트 시드니 프리디(Albert Sidney Priddy)11)는 1924년 버지니아주 의회를 통과한 우생학적 불임수술법12)이 최고 법률인 헌법13)에 위배되는지 알고 싶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한 시범케이스로 캐리 벅의 강제 불임수술을 계획하고 이를 수용소 이사회에 청원했다.
벅과 그녀의 보호자는 이러한 결정에 불복하여 프리디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벅의 강제 불임수술의 합법성에 대한 재판이 진행됐다. 하지만 그녀의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 어빙 화이트헤드(Irving P. Whitehead) 또한 우생학 신봉자였기에 변론에 성실히 임하지 않았고, 그 결과 벅은 1심과 2심 재판에서 모두 패했다. 그녀는 대법원에 상소했고, 상고심 재판에서 대법원은 1대 8로 버지니아의 강제 불임수술법이 미국 헌법에 위배되지 않음을 확인해주었다.
이 판결로 이전까지 불법으로 시행됐던 우생학적 불임수술은 비로소 합법적인 의료행위가 되었다. 오리건주와 캐롤라이나주를 비롯한 20여 개 주에서 뒤따라 유사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이후 32개 주로 확산하여 미국의 강제 불임수술은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14) 벅은 판결이 내려진 지 약 5개월 후인 1927년 10월 19일 불임수술을 받았고, 우생학적 불임수술이 합법화된 뒤 공식적으로 수술을 받은 최초의 버지니아주민이 되었다.15)
올리버 판사는 판결문에서, 국가의 힘을 약화하는 이들에게 이 정도의 희생도 요구할 수 없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며, 최고의 선인 공공의 복지를 실현하고, 국가의 미래가 무능한 인구에 압도당하는 일을 막기 위해 이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무능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이 범죄를 저질러 처형을 당하거나, 유전된 무능함으로 스스로 굶어 죽도록 내버려두는 대신, 사회가 나서서 이들의 생식능력을 끊는 것이 전 세계를 위해 더 이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이 수술이 수용소에 수용된 소수에게만 국한되고 외부의 다수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공공복지를 위한 노력은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며, 최대한 빨리 외부의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여 경계선상에 있는 이들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그들이 수술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도 말했다.
판결의 말미에서 그는 1905년 강제 예방접종을 합법으로 인정했던 ‘야콥슨 대 매사추세츠(Jacobson v. Massachusetts)16)’ 사건을 예로 들어, ‘강제 예방접종을 지지하는 헌법의 원칙은 나팔관 절제술을 포함할 만큼 광범위하다’고 말하며, ‘멍청이는 3세대면 충분하다’는 역사적 판결문을 남겼다.17)
이 사건은 원래 ‘벅 대 프리디(Buck v. Priddy) 사건’으로 명명됐으나 재판이 끝나기 전 프리디가 사망하자, 후임 소장으로 우생학자이자 외과의사인 존 H. 벨(John Hendren Bell)18)이 부임하여 재판을 이어받아, 후대에는 ‘벅 대 벨(Buck v. Bell) 사건’으로 알려졌다.19)
2. Public Education
우생학적 강제 불임수술의 합법화를 선언한 올리버 웬델 홈스 주니어는 1841년 생으로 25세에 하버드 로스쿨(Harvard Law School, HLS)을 졸업했고, 61세부터 91세까지 약 30년간 대법관을 역임했다.20)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법과대학인 하버드 로스쿨은 1817년 노예 상인이면서, 노예를 부려 일군 설탕 농장으로 거부(巨富)가 된 아이작 로얄 주니어(Isaac Royall Jr.)21)의 기부금으로 설립되었다. 1870년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랭델(Christopher Columbus Langdell)22)이 학장으로 취임하면서 1년제였던 학제는 3년제로 변경되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미국의 판사, 변호사 등 법률가를 양성하는 주요 교육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이 학교 졸업생들은 미국 대법원, 고등법원 및 여러 사법 기관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했고, 단순한 법률 실무의 차원을 넘어 미국 사회에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23)24)
산업화와 함께 대규모의 인구가 산업도시로 이동하면서 이전까지 권세를 누렸던 귀족과 토지 부호, 종교 지도자들은 차차 권력의 중심부에서 멀어졌고, 그 힘은 자연스럽게 기업을 소유한 대도시 자본가에게 옮겨갔다. 산업화한 도시는 경제활동의 중심지가 되었고, 새롭게 형성된 권력 계층인 자본가들은 자유주의 경제 정책25)을 옹호하며 사업을 확장함과 동시에, 경제적 불평등26)으로 발생하는 노동자와의 갈등을 무마하며 부와 권력을 지켜나갔다.
도시의 과밀로 발생한 범죄와 폭력, 빈곤과 각종 사회 불안 요소들을 관리하기 위해 정치 및 경제 권력은 점점 더 중앙 집중화되었고, 대도시엔 사회 통제를 위한 경찰청이 설립되었다.27)28)29) 부가 자본가에게 집중되고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절대적 다수의 노동자와 극소수의 자본가 간 갈등이 고조되었고, 이러한 긴장 속에 마르크스30)와 엥겔스31)의 사상, 즉 재산의 사적 소유를 부정하고 생산 수단의 공적 소유를 주장하는 사회주의32) 및 공산주의33) 이론이 노동자들 사이로 확산했다.
사회주의 이론으로 무장한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반기를 들까 염려하던 정치권과 자본가들은, 전 유럽에 걸쳐 정치개혁과 노동자 권리를 주장했던 1848혁명34)과, 노동자가 파리를 점령하고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했던 파리 코뮌(1871년)35) 등을 겪으며 큰 공포를 느꼈다.36)37)
이후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불만과 사회적 긴장, 그리고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보이는 곳에서는 작업 환경과 근로 조건을 개선하는 노동 개혁을 지지하거나, 노동자 단체와의 협상에 나서고, 자선사업에 참여했으며,38)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노동조합 결성을 방해하는 법률을 입법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파업을 방해하며, 노동자 간 분열을 조장하는 등, 양면작전을 펴나갔다.39)
정치권도 노동자와 자본가 간 팽팽한 긴장감을 풀어 급진적 혁명을 방지하고, 산적한 도시 문제를 해결하여 체제를 안정화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도했다. 공공주택을 건설하고 상하수도를 정비하여 도시의 주거 환경과 공중 보건을 개선했고, 표준 근무 시간을 제정하고 최저 임금제를 도입하여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했다. 또한 실업 보험, 노령 연금 등 사회 복지 프로그램을 창설하여 빈민 구제에 힘썼고, 아동 노동법을 제정하고 의무 교육을 시행하여 아동 착취를 줄이고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했다.40)41)42)43)
이러한 정책들은 도시의 질서를 세우고 사회를 안정화하는데 기여하는 한편, 노동자들의 불만을 어느 정도 진정시켜 자본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띄고 획기적인 효과를 발휘한 정책을 하나만 뽑으면, 그것은 아마도 공교육의 확대가 아닐까 싶다.
19세기 후반 의무화된 영국과 미국의 초등교육은 어린이들에게 사회의 규율과 도덕적 가치를 가르치고, 애국심과 시민의식,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을 고취하며, 권위에의 복종과 사회적 순응을 장려하여,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하고 사회를 안정화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공교육은 아이들을 자본가의 요구에 걸맞은 인물로 키워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고,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을 가라앉히는 데에도 적잖은 효과를 발휘했다.
문맹률이 높았던 노동자와 이민자들은, 읽고 쓰는 능력을 배울 기회가 주어진 것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고, 자본가들은 교육이 노동자에게 가난과 불평등을 벗어날 기회를 제공한다고 홍보하며, 그들이 사회적 신분 상승에 대한 희망을 품도록 유도했다. 이런 희망을 품은 일부 노동자들은 불평등에 대한 집단적 불만을 상향적 계층 이동이란 개인적 열망으로 전환했고, 급진적 사회 개혁운동에 참여하기보다 학습을 통해 개인의 능력을 향상하고자 노력했다.44)45)
공교육이 제시한 학점과 성과 중심의 평가는 학생들에게 능력주의(meritocracy)46)적 이상을 심어주었다. 산업혁명 후 ‘부의 축적’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게 된 사회에서, 이를 내면화한 학생들은 개인적 성공, 즉 부자가 되는 것을 삶의 지향점으로 삼았다. 이들은 개인의 실패, 즉 ‘부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 한정된 재화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임을 깨닫기보다는, 개인의 노력이나 근면성의 차이로 발생하는 개인적 문제라 생각했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란, 분배할 재화(ex 발행한 화폐)가 한정되어 모든 사람이 똑같이 성실해도 동시에 부자가 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들은 마치 재화가 무한하여 근면한 사람은 모두 부자가 될 것 같은 모순된 환상에 빠졌고, 자신이 부자가 아닌 이유를 부족한 재화 탓이 아닌, 개인의 불성실과 게으름에서 찾았다.
이런 사고의 확산은 자연스럽게 인간의 계층적 분류, 즉 사회 계급의 분화를 인정하게 되었고, 자신이 부자 또는 권력자가 되지 못한 것을 자기 잘못이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됐으며, 더 나은 성취를 이룬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에 순응하게 되었다.47)48)49)
3. Private Education
올리버 웬델 홈스 주니어 판사의 아버지 올리버 웬델 홈스 시니어(Oliver Wendell Holmes Sr.)50)는 보스턴에서 활동한 미국의 의사이자 인기 있는 시인이었다. 하버드 대학에서 인문학과 법학을 공부하고 다시 의학을 전공했던 그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명문 사립 중고등학교 중 하나인 필립스 아카데미51)를 졸업했다. 그의 아버지 아비엘 홈즈(Abiel Holmes)는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큰 교회52)의 목사로 1783년 예일대학교53)를 졸업했다.
공교육이 확대되고, 자본가들은 교육을 통해 노동자나 서민도 신분 상승의 기회를 얻게 될 거라 홍보했지만, 실상은 그들의 홍보나 대중의 기대와는 달랐다. 대중은 공교육을 통해 글을 읽고 계산을 할 수 있게 됐지만, 그들이 배운 학문은 대체로 실용적이거나 기능적이었으며, 그들을 사회 지도층이 아닌 ‘더 나은 노동자’로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학교는 그들에게 권위에 대한 복종과,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가르쳤고, 종교적 윤리와 애국심을 고취할 뿐이었다.54)
산업사회의 발전과 함께 한 차원 높은 과학과 기술이 요구되면서 학문의 세분화와 함께 부문별 기술자 및 전문가가 필요했고, 무역이 확대되고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자본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경제학자 또는 금융 전문가가 필요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개인, 단체, 기업 및 국가 간 분쟁이 늘어나자 이를 중재할 법률가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구가 비위생적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집단 질병이 발생하자 공중보건, 위생 및 의료를 담당할 보건 전문가 및 의료인의 확충이 시급했다.55)56)57)58)59)
큰 규모의 산업도시가 지역별로 분산되어 중앙 정부의 관리가 어려워지자, 중앙 및 지방행정을 담당할 고급 관료를 키워야 했고, 나날이 발전하는 학문과 연계 지식의 범위가 확대되자 이를 가르칠 전문 교육자가 필요했다. 사회의 발전 속도가 급박해지면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소식을 전달할 미디어와 전문 언론인의 필요성이 가중됐으며, 문해력의 성장과 함께 대중의 사회 인식 수준이 높아지고 참정권이 확대되자 여론을 어루만지고 정치적 담론을 형성할 대중 지식인의 필요성이 커졌다.60)61)62)
이러한 산업사회의 시대적 요구와 함께, 과학자 및 엔지니어, 경제학자 및 금융인, 법률가 및 행정관료, 의료인 및 보건관리자, 교육자, 언론인, 대중 지식인 등의 새로운 직업군이 생겨났고, 자본가들은 이들을 키울 대학을 설립하거나, 기존의 대학에 새로운 학부를 신설하여 사회에 필요한 인적 자원을 직접 길러냈다.
미국의 코넬대학교(1865)63)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1861)64), 스탠퍼드대학교(1885)65), 시카고대학교(1890)66), 존스 홉킨스대학교(1876)67) 등은 모두 이 시기 자본가들에 의해 설립된 대학이며, 영국의 임페리얼 칼리지(1907)68)와 런던 경제대학(1895)69), 스위스의 ETH 취리히(1865)70), 독일의 뮌헨 공과대학(1868)71) 또한 각국의 자본가에 의해 설립되었다. 앞서 설명했던 하버드 로스쿨과 1908년 하버드대학 내에 설립되어 수많은 기업가와 전문 경영인을 배출한 하버드 비즈니스스쿨(Harvard Business School, HBS)72), 그리고 1912년 컬럼비아대학 내 설치되어 다수의 유력 언론인을 배출한 컬럼비아 저널리즘스쿨(Columbia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Journalism)73)도 이들 중 하나였다.
이러한 대학의 졸업생들은 산업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동력원이 되었고, 위로는 자본가들과 철학을 공유하며 체제에 순응하고, 아래로는 시민사회의 규율을 결정하고 대중을 통제하는 지식 엘리트(이하 전문가)74)가 되어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중간 계층을 형성했다. 이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옹호자이자 설계자가 되었고, 기업의 지배 구조와 규제 정책을 결정했으며, 자본주의 체제를 안정화하고 지속적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했으며, 체제의 지원 속에 획득한 부와 권력을 자기 노력의 결실이라 여기며 우월감에 심취해 대중 위에 군림했다.75)76)
공교육이 확대된 사회에서 누구나 공부를 열심히 하면 명문 대학에 진학하여 전문가 집단에 합류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집단의 진입 장벽은 생각보다 높고 견고했다. 앞서 열거한 대학을 가기 위해선 먼저 명문 사립학교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쳐야 했는데, 올리버 웬델 홈스 판사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부자77)78)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79)가 졸업한 미국의 필립스 아카데미(앤도버)80)나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81)가 졸업한 필립스 엑스터 아카데미82), 프랭클린 D. 루즈벨트83)와 존 F. 케네디84) 전대통령이 다녔던 그로튼 스쿨85), 영국의 윌리엄 왕자86)와 소설가 조지 오웰87)이 졸업한 이튼 칼리지88), 윈스턴 S. 처칠89) 전 영국 총리가 다녔던 해로우 스쿨90)과 같은 명문 사립학교는 일단 학비도 대단히 비쌌지만 집안이 부유하거나 성적이 우수하다고 해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학교도 아니었다.
평균 입학 경쟁률이 5~10대 1 정도였던 명문 사립학교들은 입학 기준이 매우 까다로워, 경제적 수준과 학업 성적, 스포츠 및 기타 과외 활동 능력, 인성과 리더십, 가족 관계와 사회적 네트워크를 중요하게 여겼고, 일부 학교는 졸업한 동문의 자제에게 우선권을 줬으며, 성별과 인종에 제약을 두어 대부분 백인 남성이 학생의 주류를 이루었다. 공교육을 받는 학생들과 달리 사립학교의 학생들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우고, 철학과 고전을 읽었으며, 역사와 지리를 배우고, 스포츠를 통해 체력을 키우면서 동시에 경쟁심과 팀워크 훈련을 받았으며, 대중 연설법과 리더십 훈련을 하고, 옥스퍼드, 하버드, 케임브리지, 예일 등 명문대 진학을 위해 준비했다.91)92)
공교육을 받은 노동자와 일반 대중이 범접할 수 없었던 전문가 집단은 명문 사립학교와 유명 대학 출신들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절대적 다수의 노동자 계층과 극소수의 자본가 사이에서 계층적 완충지대를 만들었다. 그들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발생하는 사회적 마찰을 중재하고 완화했으며, 근본적인 사회구조를 변혁하지 않는 선에서 대중의 표면적 불만을 해소하거나 흡수하고 또 관리함으로써, 대중의 반발로부터 자본가를 보호하고 체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이러한 역할의 대가로 힘든 노동으로부터 제외되었음에도 상당한 사회적 지위와 권력, 부와 직업적 안정성을 보장받았다. 또한, 그러한 특권과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모순이나 사회적 불평등, 계약적 불공정을 확인하더라도 그것을 비판하거나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못 본 척 눈 감거나, 자기의 지식과 전문성을 활용하여 모순을 합리화하고 불평등을 정당화하여 전문 지식이 부족한 대중을 설득했다.93)94)95)
그들과 같은 권위와 권력, 부를 누리지 못하고, 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개인의 실패로 내면화한 대중은, 성공한 전문가 집단이 자본가들의 요청에 따라 대중에게 이치에 맞지 않는 설명을 하거나, 상식적이지 못한 요구를 하더라도 그들의 오류를 지적하거나 요구를 거부하기보다는, 그들의 지적 우월성과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며 그들의 요구를 말없이 따랐다.96)
이렇게 굳어진 사회 구조는 한편으론 대중에게 편리와 안정이라는 순응의 대가를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사회적 불평등과 불공정, 비상식적 요구를 경험하더라도, 전문가 집단이 이를 자연적 과정이나 과학적 결과 또는 공익적 희생으로 규정할 경우, 이조차 ‘옳은 것’으로 여기고 받아들여야 하는 불편함 또한 제공했다.97)98)99)
결론이 확정되지 않은 불확실한 가설임에도 일부 전문가가 과학적 사실로 합의했다는 이유만으로, 백신의 부작용을 호소했던 국민에게 강제적 예방접종을 허용했던 ‘야콥슨 대 매사추세츠 사건’100)과 아무 죄 없는 가임기 여성에게 강제 불임수술을 허용했던 ‘벅 대 벨 사건’101)은 전문가 집단의 무리한 요구에 대한 대중의 순응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며, 이것이 바로 사회의 성공한 계층이자 유능한 전문가 집단이라 일컫는 당대의 저명한 법률가, 의료인, 과학자, 정치인, 언론인,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 경쟁체제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주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불황의 원인을,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거나,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제공받지 못한 사회적 약자의 탓으로 돌리고, 공익을 위해 그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지지했던 우생학의 탄생 배경이었다.
===================(27편에 계속)
[참고문헌]
1) https://supreme.justia.com/cases/federal/us/274/200/#207
Buck v. Bell, 274 US 200(1927)
2) https://www.law.cornell.edu/supremecourt/text/274/200
BUCK v. BELL, Superintendent of State Colony Epileptics and Feeble Minded.
3) https://en.wikipedia.org/wiki/Carrie_Buck
캐리 벅, Carrie Buck
4) https://en.wikipedia.org/wiki/Oliver_Wendell_Holmes_Jr.
올리버 웬델 홈스 주니어, Oliver Wendell Holmes Jr.
5) https://en.wikipedia.org/wiki/Virginia_State_Colony_for_Epileptics_and_Feebleminded 버지니아주 간질 및 정신박약자 수용소, Virginia State Colony for Epileptics and Feebleminded
6)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4999316/
매독 진단 검사
7)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8451404/
매독의 실험실 진단
8)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1044890/pdf/brjvendis00068-0097.pdf
성병이 제기하는 몇 가지 도덕적 문제
9) https://www.jstor.org/stable/44442643?read-now=1#page_scan_tab_contents
성병 전파에 대한 형사 처벌: 매독으로부터의 교훈
10) https://en.wikipedia.org/wiki/Foster_care
위탁보호, Foster care
11) https://en.wikipedia.org/wiki/A._S._Priddy
앨버트 시드니 프리디, Albert Sidney Priddy
12) https://en.wikipedia.org/wiki/Virginia_Sterilization_Act_of_1924
1924년 버지니아 불임수술법
13) https://en.wikipedia.org/wiki/Constitution_of_the_United_States
미국 헌법, Constitution of the United States
14) https://teachingamericanhistory.org/document/chapter-19-the-progressive-era-eugenics/
제19장: 진보적 시대: 우생학
15) https://exhibits.hsl.virginia.edu/eugenics/3-buckvbell/
Buck v. Bell: 버지니아의 우생학적 불임 수술법에 대한 시험 사례
16) https://en.wikipedia.org/wiki/Jacobson_v._Massachusetts
야콥슨 대 매사추세츠 Jacobson vs Massachusetts
17) https://supreme.justia.com/cases/federal/us/274/200/#207
Buck v. Bell, 274 US 200(1927)
18) https://encyclopediavirginia.org/entries/bell-john-h-1883-1934/
존 H. 벨(1883–1934)
19) https://en.wikipedia.org/wiki/Buck_v._Bell
벅대 벨, Buck v. Bell
20)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Oliver-Wendell-Holmes-Jr/The-Common-Law
올리버 웬델 홈스 주니어, Oliver Wendell Holmes, Jr.
21) https://en.wikipedia.org/wiki/Isaac_Royall_Jr.
아이작 로얄 주니어, Isaac Royall Jr.
22) https://en.wikipedia.org/wiki/Christopher_Columbus_Langdell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랭델, Christopher Columbus Langdell
23) https://en.wikipedia.org/wiki/Harvard_Law_School
하버드 로스쿨, Harvard Law School
24) https://hls.harvard.edu/today/the-long-view/
하버드 로스쿨 게시판
25) https://en.wikipedia.org/wiki/Economic_liberalism
Economic liberalism
26) https://en.wikipedia.org/wiki/Economic_inequality
Economic inequality
27) https://en.wikipedia.org/wiki/City_of_London_Police
City of London Police
28) https://en.wikipedia.org/wiki/Los_Angeles_Police_Department
Los Angeles Police Department
29) https://en.wikipedia.org/wiki/New_York_City_Police_Department
New York City Police Department
30) https://en.wikipedia.org/wiki/Karl_Marx
칼 마르크스, Karl Marx
31) https://en.wikipedia.org/wiki/Friedrich_Engels
프리드리히 엥겔스, Friedrich Engels
32) https://en.wikipedia.org/wiki/Socialism
사회주의, Socialism
33) https://en.wikipedia.org/wiki/Communism
공산주의, Communism
34) https://en.wikipedia.org/wiki/Revolutions_of_1848
Revolutions of 1848
35) https://en.wikipedia.org/wiki/Paris_Commune
Paris Commune
36) https://redflag.org.au/article/what-karl-marx-learned-paris-commune?form=MG0AV3
What Karl Marx learned from the Paris Commune
Learning from the barricade: Marx, Engels and the 1848 June Days uprising
38) https://www.historyskills.com/classroom/year-9/industrial-revolution-social-reform/?form=MG0AV3
변화를 위해 필사적으로 투쟁하다: 산업혁명기 사회 개혁을 위한 투쟁
39) https://tempestmag.org/2021/04/the-paris-commune-and-workers-democracy/?form=MG0AV3
파리 코뮌과 노동자 민주주의
The Cambridge Social History of Britain, 1750–1950
41) https://en.wikipedia.org/wiki/Progressive_Era#National_policy
진보적 시대
42) https://socialwelfare.library.vcu.edu/programs/child-welfarechild-labor/child-labor/ 아동 노동
43) https://england.shelter.org.uk/support_us/campaigns/story_of_social_housing 사회주택 이야기
44) https://en.wikipedia.org/wiki/Elementary_Education_Act_1870
초등교육법 1870
45) https://files.eric.ed.gov/fulltext/ED606970.pdf
History and Evolution of Public Education in the US
46) https://en.wikipedia.org/wiki/Meritocracy
능력주의, Meritocracy
47) https://files.eric.ed.gov/fulltext/EJ1377396.pdf
사회적 불평등을 다루는 커리큘럼 연구에 대한 체계적인 문헌 검토
48) https://19thcentury.us/education-in-19th-century-britain/
19세기 영국의 교육: 학습의 변혁적 시대를 엿보다
49) https://ushistoryscene.com/article/rise-of-public-education/#google_vignette
18세기, 19세기 대중을 위한 교육, 초기 미국에서 공교육의 부상
50) https://en.wikipedia.org/wiki/Oliver_Wendell_Holmes_Sr.
올리버 웬델 홈스 시니어, Oliver Wendell Holmes Sr.
51) https://en.wikipedia.org/wiki/Phillips_Academy
Phillips Academy
52) https://en.wikipedia.org/wiki/First_Parish_in_Cambridge
First Parish in Cambridge
53) https://en.wikipedia.org/wiki/Yale_University
Yale University
54) https://files.eric.ed.gov/fulltext/ED606970.pdf
History and Evolution of Public Education in the US
55) https://www.nber.org/digest/202205/engineers-and-industrial-revolution-19th-century-britain
19세기 영국의 엔지니어와 산업 혁명
19세기 동안 물리학이 직업으로 전환됨
57) https://www.mcgill.ca/ssom/files/ssom/MedicalSpecialization.pdf
19세기 의료 전문가의 등장
58) https://www.ajs.org/why-are-lawyers-important/?form=MG0AV3
변호사가 중요한 이유: 사회에서 변호사의 7가지 역할
변호사는 법과 경제에 어떤 기여를 하는가?
산업 혁명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 공장에서 교실까지
여론과 저널리즘
정치적 담론과 정치 인식
63) https://en.wikipedia.org/wiki/Cornell_University
Cornell University
64) https://en.wikipedia.org/wiki/Massachusetts_Institute_of_Technology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65) https://en.wikipedia.org/wiki/Stanford_University
Stanford University
66) https://en.wikipedia.org/wiki/University_of_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67) https://en.wikipedia.org/wiki/Johns_Hopkins_University
Johns Hopkins University
68) https://en.wikipedia.org/wiki/Imperial_College_London
Imperial College London
69) https://en.wikipedia.org/wiki/London_School_of_Economics
London School of Economics
70) https://en.wikipedia.org/wiki/ETH_Zurich
ETH Zurich
71) https://en.wikipedia.org/wiki/Technical_University_of_Munich
Technical University of Munich
72) https://en.wikipedia.org/wiki/Harvard_Business_School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73)https://en.wikipedia.org/wiki/Columbia_University_Graduate_School_of_Journalism Columbia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Journalism
74) https://en.wikipedia.org/wiki/Elite
엘리트, Elite
75) https://www.britannica.com/summary/The-Progressive-Era-Key-Facts?form=MG0AV3
진보주의 시대 주요 사실
76) https://19thcentury.us/19th-century-aristocracy/?form=MG0AV3
19세기 귀족의 흥망성쇠: 엘리트의 삶을 엿보다
77) https://en.wikipedia.org/wiki/George_H._W._Bush
George H. W. Bush
78) https://en.wikipedia.org/wiki/George_W._Bush
George W. Bush
79) https://en.wikipedia.org/wiki/Steve_Jobs
Steve Jobs
80) https://en.wikipedia.org/wiki/Phillips_Academy
Phillips Academy
81) https://en.wikipedia.org/wiki/Mark_Zuckerberg
Mark Zuckerberg
82) https://en.wikipedia.org/wiki/Phillips_Exeter_Academy
Phillips Exeter Academy
83) https://en.wikipedia.org/wiki/Franklin_D._Roosevelt
Franklin D. Roosevelt
84) https://en.wikipedia.org/wiki/John_F._Kennedy
John F. Kennedy
85) https://en.wikipedia.org/wiki/Groton_School
Groton School
86) https://en.wikipedia.org/wiki/William,_Prince_of_Wales
William, Prince of Wales
87) https://en.wikipedia.org/wiki/George_Orwell
George Orwell
88) https://en.wikipedia.org/wiki/Eton_College
Eton College
89) https://en.wikipedia.org/wiki/Winston_Churchill
Winston Churchill
90) https://en.wikipedia.org/wiki/Harrow_School
Harrow School
91) https://link.springer.com/referenceworkentry/10.1007/978-3-030-66959-1_3-1?form=MG0AV3
미국 대학의 입학 정책에 대한 논쟁적인 역사: 쟁점과 전망
합격: 대학 입학 요건의 진화
93) https://19thcentury.us/19th-century-middle-class/
19세기 중산층의 부상: 사회적 이동성과 소비주의 탐구
19세기 미국의 "위대한 중산층"
95) https://en.wikipedia.org/wiki/Society_and_culture_of_the_Victorian_era?form=MG0AV3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와 문화
글로벌 사회사 : 현대 세계의 계급 및 사회 변혁에 대한 재고
97) https://socialconcerns.nd.edu/virtues/magazine/character-responsibility-and-elite-education/
인성, 책임감, 엘리트 교육
상류 계층과 엘리트
99) https://www.independent.org/publications/tir/article.asp?id=1679
엘리트주의의 함정, 미국의 건국 신화가 불평등을 조장하고, 중산층을 해체하고, 엘리트를 삼키는 방식
100) https://supreme.justia.com/cases/federal/us/197/11/
Jacobson v. Massachusetts
우생학: 권력과 영향력의 무서운 결과
첫댓글 !!!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