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머레이 조직신학(합본)』은, 성경에서 '장로'와 '감독'은 동일한 직분을 가리키며, 특정 개인이나 목사가 우월적 권위를 갖는 성직자 위계 제도나 교구 감독제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봅니다. 목사(가르치는 장로)와 치리 장로는 치리권에 있어 완전히 동등하며, 어느 한쪽이 주도권을 독점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교회의 순수한 증거를 해치는 유혹이라고 합니다. 장로는 회중의 투표로 세워지나 그 권위는 회중의 대리인이 아닌 성령으로부터 오며, 장로 또한 양 무리의 일원으로서 자신들이 행하는 치리 질서에 스스로 복속되어야 합니다. 존 머레이의 구분선 아래 설명을 통해서 다음 사항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이 증언하는 장로와 감독의 동등한 직분 원리를 통해, 인본주의적 민주주의나 성직자 중심주의를 배격하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실현하는 장로교 정치의 본질을 배운다. 치리 현장에서 발생하는 권위의 오용과 책임 전가를 경계하며, 성령에 의해 세움 받은 장로들이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 직접 책임을 지는 성경적 직분관을 제시받는다.
신약의 제도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치리하는 기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때로는 장로, 때로는 감독으로 불린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두 경우 모두 동일한 직분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의 발전의 결과로 교회의 정치에서 통용되게 된 교구 감독제는 성경에 어떠한 근거도 없으며, 그러므로 교회의 머리로부터 재가 받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사도행전 20:17, 28을 보면, 동일한 인물들이 17절에서는 '장로들'로, 28절에서는 '감독들'로 불리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또한, 디도서 1:5, 7절을 보면, 동일한 직분을 담당한 사람들이 5절에서는 장로들로 일컬어지고, 7절에서는 감독이라는 이름으로 언급되고 있다는 것은 마찬가지로 명백하다. 그렇지 않다면,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라는 7절에 나오는 진술은 어떠한 의미도 타당성도 없을 것이다.
● 장로의 직분
1) 다수성(多數性).
바울은 밀레도에 사람을 보내어 교회의 장로들을 불렀으며, 디도에게 명하여 각 성에 장로들을 임명하도록 했다. 이것은 본래 평범한 말인데, 역사는 그 말이 지니고 있는 의미들이 너무도 자주 간과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수행되는 치리에 있어서 장로들은 하나 되어 그리고 서로에 대한 동등성 안에서 치리를 수행한다. 치리에 관해서 하나님의 교회에는 주도권이란 있을 수 없다. 장로교회 내에서 이 원칙이 손상되고 종종 거의 배제되어 왔던 방식은, 목사가 교회의 치리에 일종의 우선권 또는 우월성을 갖는 것이 마땅하다는 관념을 실제로 받아들이고 실제로 그렇게 행해 온 것에 의해서이다. 그러므로 치리에 있어서 목사라 불리는 사람은 치리 장로보다 더한 권위나 치리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며, 책임도 장로보다 더 지지 않는다는 것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가르치는 장로로서의 목사는 자신의 구별되는 기능이 있으며, 설교와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에서 고유한 특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치리에서는 치리 장로들과 동등하다. 목사와 치리 장로 모두에게는 이 원칙을 버릴 것을 지시하는 미묘한 유혹들이 있는데, 거기에 굴복하게 되면 그 규정들을 파괴하게 된다. 목사가 받는 유혹은 말씀의 사역자로서의 그에게 속해 있는 권위를 남용하여 그 구별되는 특권을 정치의 영역에까지 확대함으로써 치리의 문제에 어떤 주도권을 요구하거나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경계해야 하는 유혹이며, 장로들이 조장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하는 유혹이다. 치리 장로들의 경우의 유혹은, 목사가 너무도 쉽게 자기 것인 체하는 주도권을 목사에게 부여하고, 그럼으로써 정치의 수행에서 자신의 책임의 상당 부분을 양도하는 것이다.
각각의 장로는 교회의 치리에 존재하는 동등성과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의 동등성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게을리 하는 것은 장로회의 정치 조직뿐만 아니라 복음의 순수한 증거에도 심각하게 유해한 성직자 위계 제도의 길을 열어 놓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 장로교회에서 강조되어야 하는 의무다. 타당한 정치에 대한 모든 침해와 진리 자체의 증거의 붕괴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이 존재한다(참고. 딤전 3:15, 16).
2) 감독.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행 20:28). 신약의 제도에는, 어떤 은사를 부여받고 그것들을 행사하도록 부름받았으며 성령으로부터 치리권을 부여받은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는 치리, 규율, 정치, 감독으로 불리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 한편 신약의 제도는 우리의 교구 감독제를 억제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회원들 전체에 의한 치리를 배척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교회는―지역적인 것으로 인식되든 좀더 포괄적인 것으로 인식되든―자신을 치리하지 않는다. 그러한 의미에서 교회는 순수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장로들이 치리하도록 되어 있다.
심각하게도 우리 장로교회 내에서조차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흔히 다음과 같은 사고 경향에서 나타난다. 장로들은 단지 회원들 전체의 파송된 대표자들이며, 따라서 파송, 즉 회원들 전체의 뜻과 허용에 의해서 권위를 행사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회중의 대다수가 장로들의 정책이나 결정이 그들의 뜻 또는 기호에 반한다고 생각할 때,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회중의 투표에 의해 직분의 보유를 종결시키는 것이다. 물론 좋은 장로회 정치 조직이, 부적절하다고 판명된 사람들, 또는 그리스도의 제도에 반하여 자신의 직분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직분으로부터 면제시키는 장치를 갖고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장로들을 회원 전체의 파송된 대표자들로 간주하는 이러한 사고 경향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들을 감독자로 삼으신 분은 성령이시며, 그들은 교회의 머리에 의해 파송된다. 장로들에 의하여 수행되는 치리는 그리스도로부터의 파송에 의한 것이며 장로들은 그리스도에게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회원 전체와 장로들의 의무다.
3) 교회.
감독 직무가 수행되는 것은 교회 내에서이다. 여기에 훌륭하고 필요한 구별이 존재한다. 감독이 교회에 대하여 행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장로 자신이 배제되는 어떤 것에 대하여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장로들은 하나님의 유업에 대한 주인들이 아니다. 그들 자신도 양 무리에 속하며,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한다. 성경은 일치점과 차이점을 강조하는 독특한 방식을 갖고 있다. 이 경우에도, 수행되는 치리에 존재하는 차이점은 장로들 자신도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행사하는 치리에 복속된다는 것을 상기시킴으로써 적절하게 균형이 잡혀진다. 장로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고, 그들이 수행하는 바로 그 치리에 복종한다.
존 머레이, 『존 머레이 조직신학(합본)』(크리스챤다이제스트), pp.263-266.
첫댓글 존 머레이의 『조직신학』 중 장로교 정치 원리에 관한 내용을 초신자 용으로 요약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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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경에서 장로와 감독은 명칭만 다를 뿐 동일한 직분을 가리키는 것으로, 특정 개인이 다스리는 교구 감독제는 성경적 근거가 없습니다.
장로직의 핵심은 다수성(多數性)에 있으며, 모든 장로는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서로 동등한 권한을 가지고 함께 치리를 수행해야 합니다.
목사는 가르치는 고유의 기능을 갖지만, 교회의 행정과 권징을 담당하는 치리권에 있어서는 일반 치리 장로와 완전히 동등합니다.
목사가 치리상의 우선권을 주장하거나, 장로가 목사에게 주도권을 양도하여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성경적 원리를 파괴하는 유혹입니다.
직분자 사이의 동등성이 무너지면 성직자 위계 제도로 흐르게 되며, 이는 복음의 순수한 증거를 훼손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장로는 회중의 단순한 대리인이 아니며, 성령에 의해 세워지고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파송된 감독자입니다.
따라서 장로는 회중의 기호나 뜻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 책임을 지는 청지기로서 직무를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교회는 장로들에 의해 치리되는 곳이지, 회중 전체가 스스로를 치리하는 순수한 민주주의 체제와는 구별되는 구조를 가집니다.
장로는 양 무리의 주인이 아니라 그들 중 일부로서 본이 되어야 하며, 자신들 또한 교회의 치리 질서에 스스로 복속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동등성과 그리스도 중심의 직분관을 지키는 것이 장로교 정치의 본질이며 교회의 영적 건강을 유지하는 길입니다.
초신자 포함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제공해주신 존 머레이의 본문에서 인용하거나 근거로 삼고 있는 핵심 성경 구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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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로와 감독의 명칭 혼용 (직분의 동일성)**
* **사도행전 20:17**
>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니"
* **사도행전 20:28**
>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 **디도서 1:5**
>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 **디도서 1:7**
>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2. 장로의 치리와 동등성**
* **디모데전서 5:17 (가르치는 장로와 치리하는 장로)**
>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 **베드로전서 5:1-3 (양 무리의 본이 됨)**
>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3. 교회의 기초와 질서**
* **디모데전서 3:15**
>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좋습니다. 성경적 근거가 있어야지요.
칼빈이 정립한 장로직에 대한 핵심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칼뱅은 신약 성경의 원리에 따라 교회의 직분을 목사, 교사, 장로, 집사의 네 직무로 구분하며 장로교 제도의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2. 특히 장로를 '다스리는 자'로 정의하며, 목사와 협력하여 성도의 삶을 살피고 교회의 권징을 시행하는 치리의 주체로 보았습니다.
3. 목사는 말씀 선포와 성찬례 집례라는 고유의 사역을 맡지만,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치리권에 있어서는 장로와 대등한 위치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4. 장로는 회중이 선출하되 그 권위의 기원은 하나님께 있으며, 인간의 임의적인 통치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법에 의한 통치를 실현하는 도구입니다.
5. 그는 개별 교회의 문제를 목사 혼자 결정하지 않고 장로들로 구성된 당회(Consistory)를 통해 공동으로 논의하는 집단적 치리 구조를 중시했습니다.
6. 또한 장로는 양 무리 위에 군림하는 세속적 권력자가 아니라, 성도들이 복음의 합당한 삶을 살도록 돕는 영적 파수꾼이자 봉사자여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칼뱅의 견해는 목회자의 독단을 막고 교회의 거룩함을 보존하며, 그리스도의 주권적 통치가 가시적인 공동체 안에 온전히 나타나게 하려는 목적을 가집니다.
맞아요. 목사의 독주를 막는 가장 성경적인 제도가 장로교회입니다.
스코틀랜드 개혁교회와 세계 장로교회의 조상인 존 낙스(John Knox)의 장로직에 대한 견해는 대강 다음과 같습니다:
1. 존 낙스는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와 제1치리서를 통해 장로 제도가 성경에 기초한 신적 기원을 가진 질서임을 확립했습니다.
2. 그는 교회의 거룩함을 보존하기 위해 '권징'을 교회의 참된 표지 중 하나로 보았으며, 장로를 이 권징을 수행하는 핵심 직분자로 세웠습니다.
3. 장로는 회중 가운데서 지혜롭고 경건하며 신망이 두터운 자들 중에서 선출되어야 하며, 교회의 영적 도덕성을 파수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4. 낙스는 목사와 장로가 함께 구성하는 당회 중심의 치리를 강조하며, 한 개인의 독재가 아닌 공동체적 지도 체제를 지향했습니다.
5. 장로는 목사가 말씀을 전하는 일을 돕는 동시에, 성도들의 삶이 복음의 원리에 합치하는지 세심히 살피고 지도할 책임을 가집니다.
6. 특히 그는 장로가 목사의 사생활과 사역을 감찰할 권한도 부여하여, 직분자 상호 간의 영적 문책과 책임이 이루어지도록 했습니다.
7. 장로의 선출 과정에서는 회중의 동의와 승인을 필수적인 요소로 보아, 교직 위주의 계급 체제가 아닌 언약 공동체적 성격을 분명히 했습니다.
8. 낙스의 체제하에서 장로는 단순히 행정적인 업무를 보는 이가 아니라, 가난한 자를 돌보고 공교육을 장려하는 등 사회적 책임도 병행했습니다.
9. 그는 모든 장로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양 무리를 돌보는 청지기이며, 세속 권력으로부터 교회의 독립성을 지키는 보루라고 믿었습니다.
10. 이러한 낙스의 견해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기틀이 되었으며, 이후 전 세계 장로교 제도가 형성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당회 중심의 치리 체제가 잘 가동되면 일부 목사의 성범죄, 공금횡령 등을 절 처리할 것 같습니다 😂
@노베 매우 공감합니다.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의 장로직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숩니다:
1. 바빙크는 장로직이 단순히 인간적인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신적 기원을 가진 직분임을 강조합니다.
2. 그는 신약의 '장로'와 '감독'이 동일한 직분을 가리키는 다른 명칭일 뿐이며, 본질적으로 동일한 권위와 책임을 지닌다고 가르칩니다.
3. 교회의 주권은 목사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장로들로 구성된 당회에 있으며, 이를 통해 성직자 중심의 계급주의를 철저히 배격합니다.
4. 장로는 회중의 대표로서 선출되지만 그 권위는 회중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로부터 직접 부여받은 것입니다.
5. 그는 장로의 주요 임무를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한 '영적 감독'과 '권징'으로 보았으며, 이는 성도들의 신앙 삶을 세심히 살피는 돌봄을 포함합니다.
6. 목사와 장로는 치리권에 있어 동등한 동료이며, 이러한 복수 장로제를 통해 교회가 특정 개인의 독단이 아닌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칼빈, 낙스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의 장로직에 대한 견해입니다:
1. 벌코프는 교회의 치리권이 그리스도로부터 직분자들에게 직접 부여된다고 보았으며, 장로직은 그 통치의 핵심 수단입니다.
2. 그는 성경에서 장로와 감독이 혼용되는 점을 근거로, 장로가 교회의 영적 감독과 치리를 담당하는 본질적인 직분임을 강조했습니다.
3. 장로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권위를 대리하여 행사하는 자이며, 회중의 의사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청지기입니다.
4. 벌코프는 치리권이 특정 개인(목사)에게 독점되는 것을 경계하며, 반드시 '복수 장로제'에 의한 집단적 치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5. 장로는 회중으로부터 선출되지만, 그 권위의 기원은 선거라는 절차가 아니라 직분을 제정하신 그리스도께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6. 목사와 장로는 치리의 기능 면에서 동등하며, 이들로 구성된 당회는 개별 교회의 영적 순결과 질서를 유지하는 최고의 치리 기관입니다.
7. 그는 장로의 주요 의무를 성도의 신앙 생활을 살피는 감독, 교리의 순수성을 보존하는 파수, 그리고 공적인 권징의 시행으로 정의했습니다.
8.또한 장로는 양 무리를 돌보는 목자로서 고난당하는 자를 심방하고 위로하며 공동체의 화평을 도모할 영적 책임을 집니다.
9.벌코프는 직분자들이 회중 위에 군림하는 '교권주의'와 회중이 직분자의 권위를 무시하는 '회중주의' 양극단을 모두 성경적으로 비판했습니다.
10.결론적으로 그는 장로직을 통해 교회의 거룩함이 유지되고, 그리스도의 주권적 통치가 가시적인 질서 속에서 실현된다고 보았습니다.
회중주의를 표방하며, 치리 장로와 부교역자를 들러리로 만들고, 실제로는 교권주의로 가는 기이한 형태도 많습니다 ✈️ 😂
현대 개혁신학의 거두인 마이클 호튼(Michael Horton)의 장로직에 대한 견해입니다:
1. 호튼은 장로직을 인간이 고안한 행정직이 아니라,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 교회에 주신 '은사의 구체적 방편'으로 이해합니다.
2. 그는 신약의 장로 체제가 구약의 장로 제도와 연속성을 지니면서도, 그리스도의 대위임령을 수행하는 **복음적 통치**로 완성되었다고 봅니다.
3. 장로의 권위는 직분자 개인의 인격이나 능력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적용할 때만 유효한 대리적 권위임을 강조합니다.
4. 호튼은 특히 '언약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장로를 바라보며, 장로는 언약의 당사자인 성도들이 언약의 법(말씀) 안에 거하도록 돕는 파수꾼이라 정의합니다.
5. 그는 목사(가르치는 장로)와 치리 장로 사이의 **기능적 구별**은 인정하지만, 교회를 다스리는 **권위의 본질**에 있어서는 철저한 동등성을 주장합니다.
6. 현대 교회의 기업화된 경영 구조를 비판하며, 장로의 직무는 경영적 결정이 아니라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살피는 '목양적 돌봄'에 집중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7. 장로는 회중의 요구를 대변하는 정치적 대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통치를 회중에게 전달하는 **하늘 시민권의 대사**와 같은 역할을 수행합니다.
8. 그는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한 '권징'이 장로의 핵심 사역이며, 이것이 제대로 수행될 때 교회가 세상과 구별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9. 호튼은 장로들이 당회를 통해 공동으로 결정하는 구조가 개인의 독단이나 주관주의적 오류를 방지하는 **신학적 안전장치**라고 설명합니다.
10. 결론적으로 호튼에게 장로직이란, 은혜의 방편(말씀과 성례)이 올바르게 시행되도록 감독하여 교회를 **'언약적 질서'** 위에 세우는 필수적인 직분입니다.
하늘 시민권의 대사? 표현이 멋져 부려요.・゚・(●´Д`●)・゚・
여러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강조한 장로직의 본질을 되새겨보니, 교회의 머리는 오직 그리스도뿐임을 다시금 깊이 체감하게 됩니다.
인간의 정치적 야망이나 위계가 아닌 성경적 원리에 따른 동등한 치리야말로,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고 목회적 독단을 막는 가장 안전한 신학적 보루임을 깨닫습니다.
직분자는 회중의 대리인이기에 앞서 성령이 세우신 그리스도의 청지기라는 사실이, 오늘날 교회가 회복해야 할 진정한 권위와 겸손의 태도가 무엇인지 일깨워 줍니다.
양 무리의 일원이면서 동시에 그들을 돌보는 파수꾼으로서 자신도 치리 질서에 복속되는 장로들의 헌신을 통해, 우리 교회가 더욱 건강한 언약 공동체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장로 및 감독이 회중의 대표로 뽑혀 파송된 것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에 의하여 파송된 직분이라는 설명에 눈길이 갑니다. 회중과 장로들은 장로들이 그리스도에게 책임 짐을 인정한다는 것도요.
장로교회의 안전성은 다수성에 있는데 성경적으로도 맞고 교회 역사적으로도 입증이 된 좋은 제도의 취지를 잘 살려나가면 좋겠습니다.
공감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장로직의 핵심이 계급적 권위가 아닌 '동등한 섬김'과 '공동의 책임'에 있다는 점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며, 우리 교회의 질서를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
장로를 회중의 대표를 넘어 성령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고백할 때, 비로소 교회가 세속적 민주주의나 독재를 이기고 거룩한 언약 공동체로 바로 설 수 있음을 믿습니다.
목사와 장로가 서로를 동역자로 존중하며 스스로도 치리의 질서 앞에 복속될 때,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통치가 우리 삶 속에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