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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9장> 8 삭개오가 서서 주께(예수께) ...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사도행전 2장>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사도행전 4장> 34 ...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35 ...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고린도후서 8:13~15> 13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14 ...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15 기록한 것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
혹시나 싶어 다시 말합니다. 가난한 자들은 예수와 사도들이였고 예수는 사도들에게 가난한 척하라며 금과 재물을 챙겨서 돌아 다니지 말라했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이는 실제로 사도들이 그렇게 행한 것이 아니라 재물을 모으기 위한 핑계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들은 어떻게 공산주의 사상을 건설하였을까요? 그것은 혁명에 준하는 공산화를 이루려 했으니 이는 많은 이들을 피가 밭 전체를 물들인 피밭이 될 정도의 잔혹한 살인과 고문 및 협박이 이루어 졌음을 성경을 통해서 이미 보았습니다. 특히 바울은 사도들의 무기를 신의 무기라며 그 정당성을 이야기 하였고 베드로와 사도들은 그 피밭을 대제사장이 사들인 유다와 나그네의 무덤이라고 변명하는 작업을 함께 진행 시켜 나갔습니다. 따라서 당시 예수의 사도들의 공산화는 살인과 협박에 의한 폭력적 공산화라고 정의 할 수 있으며 모든 공산화가 그렇듯이 예수교의 공산화라고 하는 것 역시 피의 역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살인과 고문등으로 무서워하는 힘없는 백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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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장>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사도행전 5장> 11 ...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12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아나니아 부부의 죽음)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 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사도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14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고린도후서 5장> 11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고린도후서 10장> 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
특히 바울은 너무나 영리한 사람이어서 반란, 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직접적인 살인 보다는 유대인과 권세를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그들의 사상에 대해서 조롱하며 웃음거리로 만들도록 하여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이 그들 곁을 떠나도록 하는 사상적 고립정책을 위한 교육을 하였습니다. 바로 비난과 거짓 소문을 퍼트린 것으로 사도들을 높이고 유대인과 반란자들을 옥죄는 것이였습니다. 바울은 바로 여론의 힘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였고 이는 예수 또한 여론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모여서 기도하지 말고 흩어져서 조용히 기도하라고 말을 했던 것 입니다.
<유대인을 부끄럽게 만들라는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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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후서 3장> 14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같이 권하라 |
그렇다면 이러한 공산주의 사상이 가난한 자를 위한 것이였을까요? 당시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가난과 부에 대해서 집착을 했던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이는 사도들과 바울의 말을 듣고 따르던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따르던 사람들은 부와 재산이 평균화 공산화 된다는 말에 사도들을 섬겼을 가능성도 있으며 그 사상은 당시 가난한 자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이였을 것 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권력에 대해서는 권력에 충성하라고 말을 했으니 완전한 공산주의가 아니라 백성들에 국한된 공산화였던 것이며 권력을 위한 공산화였던 것이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 의미를 깨닳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마르크스는 성경을 읽어 보았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마르크스는 사도들의 공산이념을 발전시키고자 했으며 권력이 약한 사람들을 죽이고 권력을 찬양하는 사도들의 만행을 깨닳았을 것 입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종교를 사회악으로 보았을 것으로 생각이 되며 마르크스는 사도들과 반대로 가난한자를 위해서는 권력에 대항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권력에 대항하는 공산화였으며 사도들은 권력을 위한 공산화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공산주의 사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재산을 나누어야 하는데 이는 가진자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쾌한 사상이였므로 가난을 찬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재물을를 신과 권력을 위해 쓰여졌기 때문에 역시 가난한 사람들이 부유해질 가능성은 매우 낮았습니다. 따라서 가난을 찬양 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를 신의 이름으로 가난을 정당화 시키고 있었던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들의 공산주의는 가난과 권력 아래에 있다라고 정의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당시 지배자들은 너무나 잘 알게 되었고 바울의 시대에 이르게 되었을 때에 로마황실에서는 예수가 정말 대단해 보였을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황실에서는 바울을 도와 그의 최측근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바울에게 로마황실의 측근들이 있음은 앞에서 증거해 드렸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카톨릭에서 시작하여 기독교인들은 가난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예전에는 황제와 왕과 권력자의 편에서서 그들을 위한 복음을 하였으며 현재에는 가난을 위하는 명분 아래 권력자들의 편에서서 혹은 권력자를 움직이면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 입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교의 한계일 수 밖에 없으며 이를 극복 할 수 있는 교리가 예수교에는 없기 때문에 이를 헤쳐 나갈 수 없습니다.
오늘날 목사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사도들이 행한 권력을 위한 공산화를 위한 움직임을 말이죠. 그러나 목사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재산을 받아 그것을 나누어 주는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목사들은 거짓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공동체 생활이 권력을 위한 행동이였기 때문에 마찬가지이지만 목사들이 예수와 사도들의 말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재물을 받았으면 그 나누어 주는 행동을 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는 이중적인 모순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으며 두번째로 어떤 목사가 권력을 위한 가난의 공산화를 위한 행동을 하는지 우리는 지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예수와 사도들의 공산화를 권력을 위한 폭력적 공산화라고 정의 하고자 하며 백성의 가난이 곧 예수의 공산화였습니다.
제가 공산주의 사상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추가로 글을 적습니다. 권력이라는 것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르크스는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람을 이끌기 위해서는 권력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권력없이 사람을 이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말을 빌리면 선지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가 정치를 하고자 할 때에는 권력이 필요하게 됩니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원한 정치적인 공산주의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가 정치가 될 때에도 권력을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구분이 되기 때문에 그 사이에 부의 불균형은 생길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공산주의 사회는 있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고 말 뿐인 사상이 되는 것입니다.
정치라는 것은 국가를 이끌어가는 행동입니다. 경제는 사람이 이끌어 가는 행동입니다. 이러한 사회를 만들었던 때가 대한민국에는 있었습니다. 그 시대가 조선시대입니다. 사대부들은 돈을 돌처럼 보았고 중인들이 장사를 하며 돈놀이를 했고 이를 사대부들에게 바쳤습니다. 이 구조는 예수와 종의 관계와 유사해 보이지만 구분하여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인은 돈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해야하고 경제는 비정치인이 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입니다. 이 정도 발언을 통해 저의 생각을 알려드리고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오해를 사전에 방지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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