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에서 만난 예수의 친구
10월 23일 토요일, 이곳은 영등포역.
분식을 파는 손수레와 노래방과 술집이 가득한 거리에 들어섰다.
‘대실 25000원’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크게 걸린 모텔 주변에서 밀고 당기기를 하는 젊은 연인들,
모텔로 쏜살같이 달려 들어가는 중년의 남녀가 눈에 띈다.
정신없이 호객하는 고깃집 아주머니들을 지나 하염없이 걷다가
폐지가 가득한 손수레 옆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노인과 마주쳤다.
거뭇거뭇한 얼굴, 정돈되지 않은 까치집 머리, 노숙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내가 상상한 노숙인 행색 그대로인 그 노인은 화려한 S 백화점 맞은편에 앉아 웃고 있었다.
노숙인과 시민
L 백화점 입구 앞 엉덩이 붙이기 좋은 계단에는 이미 노숙인 7명이 멍하니 앉아 있다.
정체 모를 가방들에 기대고 앉아 계신 할머니, 욕실용 슬리퍼를 질질 끌며 목발을 짚고 다니는 덩치 큰 청년,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남자들이 지나갈 때마다 웃음을 흘리는 흰 머리 아줌주머니….
나름 귀하게 자랐다고 생각했지만 그 곳에 있으니
갑자기 내 몸에 걸친 유명 메이커 바람막이 점퍼도 주워 입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툭, 계단에 걸터앉아 이쪽을 향해 던지는 백화점 손님들의 시선을 나도 고스란히 받아 본다.
그 때, 백화점 경호원과 술에 취한 노숙인 할아버지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반쯤 빈 소주병과 과자를 들고 한참을 항의하던 할아버지에게 경호원이 욕을 뱉어 냈다.
“아, 씨발….”
“너…! 너 내 아들뻘이야 이놈아! 나쁜 놈 자식! 시민한테 이러는 법이 어디 있어!”
“누가 시민이야! (무전기에 대고)노숙자 난동 부립니다. 빨리 와 주세요.”
그 어지러운 순간,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던 흰머리 아주머니가 날 보고 배시시 웃더니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를 넣고 슥 내민다. 시끄러웠던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난 당신들과 달라요, 궁금해 온 것뿐인 걸요”
노숙인 사역을 하는 광야교회를 찾았다.
초록색 펜스가 높게 쳐진 교회 1층에는 사람들이 밥을 타려고 길게 줄 서 있었다.
그런데 줄 끝자락에 서 있던 한 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여기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순간 ‘아니, 내가 노숙인으로 보이나요? 나는 당신들이 궁금해서 온 것뿐인 걸요.
나는 당신들과 달라요’라는 생각을 해 버렸다.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홱 돌아서는데 가로등에 걸린 ‘청소년 접근 금지 구역’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어떤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일까.
도로변으로 나와 터벅터벅 걷는데 눈앞에서 한 아저씨가 길바닥에 드러눕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예수님이라면 저런 분들에게 말도 걸고, 저 맞은편 식당에서 밥도 사 드리라 하겠지만,
지금의 나는 못해. 오늘은 별로 춥지도 않잖아.’
나는 아저씨와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계단에 털썩 앉았다.
사람들은 아저씨를 피해 가지도 않고 놓여 있는 쓰레기통마냥 무심히 스쳐 갔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는데, 머리가 벗겨지고 토시를 낀 아저씨가 신경이 거슬릴 만큼 주변을 서성거리다
나에게 스윽 다가와서는 “누구… 기다리나?”라고 물었다.
손사래를 치고 고개를 돌리는데 순간 울컥했다.
‘뭐지? 또 나를 젊은 여자 노숙인으로 본 거야?’
사마리아인의 비유 따위, 내게는 중요하지 않다고 씩씩거리며 역을 향해 종종걸음을 놓았다.
누워 있던 아저씨를 뒤로 하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따듯한 나의 집으로.
함께 예배하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10월 26일 화요일 밤 12시, 슬그머니 영등포역을 다시 찾았다.
“예수는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주시니….”
대합실 한가운데 깔린 돗자리에는 사람들이 6행 8열로 앉아 찬양을 부르고 있었다.
역 안에는 50여 명의 노숙인들이 군데군데에 박스, 담요, 신문지로 된 각자의 ‘집’을 만들어 잠을 청하고 있었다.
“천국 가고 싶은 모든 분들은 회개하시기를 바랍니다!”
찬양 인도자의 큰 기도 소리, 찬양 소리도 그들의 삶의 피로를 깨울 수는 없는 듯했다.
찬양이 끝날 때쯤, 술에 취한 어느 노숙인이 눈 감고 기도하던 노숙인의 뺨을 때려 둘 사이에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먼저 뺨을 때린 노숙인은 “너 진짜 교인 맞아? 어?”라며 소리를 마구 질러댔다.
철도특별사법경찰과 동행했다가 예배가 끝날 즈음 돌아온 노숙인이 앞에 나와서 말했다.
“뺨 이쪽도 돌려 대야 하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교도소를 가든 어디를 가든 예배를 방해하는 건 혼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죄송합니다.”
예배가 끝나자 사람들이 컵라면을 받기 위해 줄을 서기 시작했고 나도 줄 마지막에 슬그머니 섰다.
자원 활동가는 의아한 눈빛을 살짝 보냈지만 이내 “새우탕 드실래요? 육개장?”하고 물었다.
새우탕을 고른 나는 뚜껑에 김치도 가득 받고서 대합실 한가운데 있는 기둥에 기대어
후후 불어가며 씩씩하게 컵라면을 먹었다.
시린 엉덩이와 컵라면. 이것으로 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라면 국물을 남긴 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음과 함께 찬 새벽 공기를 마시며 그 곳을 벗어나야 했다.
다음 날 오전 11시, 광야교회 수요 낮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영등포를 찾았다.
노숙인들이 많이 모여서인지 지하 예배당 안이 청국장 냄새로 진동했지만 견딜 만했다.
교인들의 성령 충만한 삶을 강조한 대표 기도 중 여느 교회의 그것과 다른 내용이 있다면
추운 날씨에 집 없는 성도들이 집을 구할 수 있도록 기도한 것일 게다.
예배 후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올라갔다. 다들 식탁에 수저를 내려놓고 있는데
나 홀로 수저를 꽉 쥐고 잔뜩 긴장한 채로 밥을 기다렸다.
안쓰러운 눈길로 식판을 조심스럽게 건네 주시던 나이 지긋한 남자 집사님을 향해 어색하게 씨익 웃어 보였다.
반찬은 제육볶음, 오이 무침, 김치 그리고 청국장.
예배 시간에 ‘남들은 힘들다고 했던 묘한 노숙인 냄새도 나는 꽤 잘 참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것이 민망해 머쓱해졌다.
식사 후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서 잠든 귀여운 고양이 두 마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한 남자가 와서 물었다.
“자매, 갈 데 없어요? 여기는 여자 쉼터가 없는데 다른 곳이라도 소개해 줄까요?”
처음 영등포를 찾았던 날 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또 울컥했겠지만,
방긋 웃으며 “괜찮아요”라고만 말하고 돌아섰다.
끝내 당신들이 어찌 사는지 궁금해서, 한번쯤 같이 밥을 먹어보고 싶었노라고, 말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함께 예배드렸던 그 날까지도 내가 뼈저리게 깨달아야 했던 것은
여전히 영등포의 노숙인들은 내게 ‘그들’이었다는 사실이었으니까.
모든 가난한 자와 병든 자, 버림받은 자의 친구가 되었던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내게
손톱만큼의 용기가 더 생긴다면 그들과 100원짜리 믹스커피 한 잔 나누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어 보고 싶다.
출처 : 복음과 상황. 글쓴이 : 여자 청년 박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