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6.
압구정동 재건축 아파트에 프랑스 명칭이 등장해서 시끌시끌한가보다. 언제부턴가 아파트 이름으로 한글이 아닌 국적 불명의 외국어가 난무할때부터 나는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 줄 예상했다.
단순히 아파트명을 외국어로 짓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단어 선택에 있어서 캐슬이나 팰리스가 등장하는 것을 보며 건설사의 브핸드 차별화 선택이 남보다 우위에 서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급기야 한달 전인 지난 6월에 본 아파트 홍보에서는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는 문구가 버젓이 등장했다. 모두가 같은 사람으로서 평등하게 살아가고자 노력은 못할지언정 드러내놓고 차별을 조장하는 홍보 문구가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통과된 것 자체가 놀랍다. 어짜면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탁월한 문구를 만들었다며 칭찬을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씁쓸하기까지 하다.
이번 프랑스 명칭 논란의 기사를 끝까지 읽어보니 프랑스 명칭은 아파트 동명이 아니라 각 동에 존재하는 스카이라운지 명칭이라고 한다. 재건축 디자인 테마가 베르사이유 궁전이라고 '친절히' 알려주는 기사를 보며 입주민들의 평소 생각과 그들의 문화가 어떠한지 추측해볼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21세기에 왕이 여전히 존재하는 국가들에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다. 왕족이라는 이유로 평생 노동 한번 하지 않고 호위호식하는 그들을 인정하는 국민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귀족이라는 계급은 없애면서 왜 왕은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왕이 없어서 그런지 너도나도 왕이 되고 싶은가보다. 아파트 명칭에 캐슬이나 팰리스를 붙이는 것만으로는 더이상 남들과 차별화를 갖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이제는 아파트 자체를 궁전으로 디자인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놀랍다. 그것도 우리나라 궁전도 아닌 남의 나라 궁전을 말이다.
프랑스 명칭이 논란이 되자 주요 언론사들은 건설사와 입주민을 대변하듯 '작명 진실' '프랑스 명소 쓴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나는 언론이 설명한 이유를 읽어보며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불편해졌다.
사람이란 원래 남과 같아지는 평등보다 다름을 포장한 차별화를 추구하는 존재이고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평등보다 차별화에 시선이 훨씬 쏠리는 것을 보면 반박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해서 손놓고 차별화 추구를 지켜보거나 옹호해도 되는 것일까?
세상은 갑자기 나빠지지 않는다. 무엇이 옳고그른지, 무엇이 정의롭고 정의롭지 못한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의하지 않으면 가랑비에 옷젓듯 서서히 나빠지게 마련이다. 세상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모른채 휩쓸려 가다 어느 순간 정신차려보면 이미 되돌릴 수 없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미 수많은 역사가 알려주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 어리석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