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간 토요일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미는 매일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일꾼입니다. 베짱이는 놀면서 시간 나면 일하는 한량입니다. 가을이 지나고 추운 겨울이 오면 개미는 여름에 모아둔 먹이를 먹으며 겨울을 보냅니다. 그런데 베짱이는 추운 겨울이 오면 먹을 것이 없어서 개미에게 구걸하며 겨울을 보냅니다. 과학자들이 일개미를 연구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개미 중에도 30%는 아주 열심히 일하고, 30%는 대충 일하고, 30%는 다른 일개미가 열심히 만들어 놓은 걸 망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열심히 일하는 일개미만 모아서 관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마찬가지로 ‘3 : 3 ; 3’의 법칙은 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간의 세상에도 비슷합니다. 인재들이 모인 대학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들 자기가 속했던 고등학교에서는 최고의 능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이 모인 대학에서는 모두가 최고의 실력을 보여 주지 못합니다. 그중에서도 30%는 열심히 하고, 30%는 대충 하고, 30%는 포기한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자연의 법칙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 ‘도전 골든 벨’이라는 프로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모여서 문제를 맞히는 프로입니다. 학생들은 하얀 보드 판에 문제의 정답을 적습니다. 정답을 적은 학생은 남고, 오답을 적은 학생들은 밖으로 나갑니다. 이렇게 진행되다가, 진행자는 탈락자들을 위해서 ‘패자 부활전’을 합니다. 탈락자들에게 문제를 내서 맞히면 다시 골든 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패자 부활전에서 돌아온 학생이 마지막 문제를 맞히면서 우승하는 때도 있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패자 부활전’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원의 골든 벨’에 참석하는 학생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알 수 있는 문제를 내십니다. 바로 ‘십계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를 보내셔서 우리가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제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표징을 믿고 따르면 누구나 구원의 골든 벨을 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예수님을 은전 서른 닢에 팔아넘긴 유다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밀은 자라면 열매를 맺고 양식이 되기 때문에 잘 길러야 합니다. 그러나 가라지는 자라도 열매를 맺지 않기에 뽑아야 합니다. 밀에도,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가라지를 뽑아야 하는지 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추수 때까지는 그냥 두라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밀을 뽑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라지의 뿌리가 밀의 뿌리와 붙어 있다면 그것을 나누는 것이 절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작 필요한 것은 밀의 열매이기 때문에 추수 때가 되면 밀의 열매는 거두고, 가라지는 버리면 된다고 하십니다. 류시화 작가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알겠는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같은 작가의 ‘신이 쉼표를 찍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라는 책도 있습니다. 시련과 고통이 나쁜 것 같지만 나를 영적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과정인 경우가 있습니다. 잔잔한 파도는 유능한 항해사를 만들지 못한다고 합니다. 험한 파도를 겪어야만 유능한 항해사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비록 초라하고 남루할지라도 나중에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맡기는 것도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밀과 가라지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밭은 우리의 몸과 같습니다. 밀은 건강한 지체입니다. 가라지는 병들어 아픈 지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양의학에서 하는 것처럼 즉각적으로 가라지를 제거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동양의학처럼 말씀하십니다. 지켜보면서 몸의 기능을 강화해 나가라고 하십니다. 건강한 지체들이 활력을 얻으면 건강하지 않은 지체들이 치유 될 수 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밀과 가라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삼 시편의 기도를 묵상하게 됩니다. “주님, 깊은 구렁 속에서 당신께 부르짖습니다. 주님, 제 소리를 들으소서. 제가 애원하는 소리에 당신의 귀를 기울이소서. 주님, 당신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당신께는 용서가 있으니 사람들이 당신을 경외하리이다. 나, 주님께 바라네. 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 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 파수꾼들이 아침을 기다리기보다, 내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네. 이스라엘아, 주님을 고대하여라.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으니. 바로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원하시리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