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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참 빠르다.
엊그제 낙엽이 지기 시작 하더니
금방 온 세상 얼음으로 가득한 겨울인가 싶더니
어느새 다시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도 슬쩍 곁을 스치고 지나 갔다.
날씨가 이렇게 좋으니 집안에 가만 있지를 못하고
지난 번에 채 못한 빨래와 옷가지를 다시 꺼내어
세탁을 하고 방안 청소를 하고 있는 데
평생학습관 친구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날씨가 너무 좋으니 바깥에서
커피나 함께 한 잔 하자고.
그렇지 않아도 집안 일을 끝낸 후 어디로 갈까
궁리를 하고 있었는 데
참 잘 되었다.
동네의 아담하고 조용한 카페.
몇 몇 사람이 모여 앉아 도란 도란 이야기 하기 좋은 그런 카페다.
그렇다.
딱 그런 카페다.
뷰 좋고 분위기 좋은 대형 카페도 아니고
디저트가 아주 맛나거나 특별한 것도 없는 그런 카페.
그러나
대부분의 손님들이 동네 주민들이라 정성스럽게 커피와 디저트를
준비해 주는 그런 카페다.
카페안 여기 저기에 대충 붙여 놓은
예쁜 글귀조차 정감이 가는 곳이다.
카페 주인의 정서와 감성을 꼭 빼닮은 그런 카페.
함께 한 이웃들과도 많이 닮은 카페다.
그 카페에서 함께 한 동안 시간을 보낸 후의 저녁 시간.
저녁은 간단히 집에서 허기를 면할 정도로 해결 한 후
학습관으로 가는 길.
그 길목에 있는 횟집에서 대형 참치를 분해 하고 있다.
종종 가는 횟집이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잠시 구경하고 있는 데
주인이 알아 보고 눈인사를 해 준다.
길을 오고 가는 행인들도 신기한 듯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있다.
15킬로그램 쯤 되는 듯 하다.
덩달아 나도 한 컷 담아 본다.
그러다보니 학습관 수업 시간이 다 되었다.
서둘러 학습관에 도착하니
이미 몇 몇 수강생들은 이미 실습에 열중 해 있다.
수강생들은 나 외에는 거의 다 젊은 여성들이다.
좀은 뻘쭘 하지만 개중에는 아는 얼굴도 있다.
다행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향수를 만드는 날이다.
여러 종류의 향수 중에서 다 하나씩 맡아 본 후
마음에 드는 향수를 2~3개 정도 골라
자기가 원하는 비율과 취향대로 배합하여
온전히 자기 색깔만의 향수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에 수강생 모두가 젊은 여성들일 수 밖에 없다.
나는 열 종류의 향수 중에서
그나마 약하고 부드러운 향을 가진 샌달우드와 화이트 로즈 향을 택했다.
비율은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그냥 일대일 비율의 배합을 택했다.
향수 원액은 모두가 프랑스 원액이다.
그런데 수강생은 한 책상에 네명이 함께 했는 데
그 중 한 여성은 솜씨가 좋은 지 욕심이 많은 지
많은 샘플통을 여러 개 챙겨 그 샘플통마다 향수 원액을 가득채워
우선 개인의 백에 넣었다.
다른 한 여성은 조금 서툰 지 그만 향수 원액을 쏟기도 해 버렸다.
그 바람에 주위에 향이 진동 하고 말았다.
너무 많은 향을 동시에 맡을 탓인 지
쏟아진 향의 진함 때문인 지 약간의 어지럼중이 찾아 와
양해를 얻고 일찍 교실을 나와 버렸다.
원래 수업의 목적이 선물용 아로마 향수를 만드는 과정이기에
선물용 박스와 포장지도 함께 제공해 주었다.
그 박스는 맨 나중에 교실에서 강사의 지도 아래
함께 예쁘게 포장박스 접기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포장 재료만 달라고 한 후 나머지는 집에서
혼자 하기로 했다.
어치피 이 번 수업에서 만든 향수는 누구 선물용이 아니라
내가 쓸 것이기에 따로 포장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교실을 막 나오려는 데 강사가 말했다.
배합한 향수는 바로 쓰지 말고 한 보름 정도 숙성을 한 후에
사용하라고 하였다.
숙성.
그렇구나
세상 모든 일은 천천히 그리고 느긋하게
숙성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구나.
결코 서둘지도 말고
바로 결과를 얻으려고도 하지 말고.
집에 오니 약간 여기가 돈다.
좀 전 저녁을 너무 부실하게 먹었나 보다.
얼른 냉장고 문을 열어 빵 하나를 꺼냈다.
대전 성심당의 명물 부추빵이다.
엊그제 그가 선물로 보내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