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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Text Jl 2,28-32
(28)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1. 기독교 신앙생활은 성령 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기독교의 신앙생활은 불가능하다 혹은 성령으로만 기독교의 신앙생활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성령으로만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또 성령을 받을 때에 각종 다양한 은사들이 나타나서 신앙생활을 힘있게 잘 할 수 있습니다. 또 성령으로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또 하나님의 귀한 사역에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는 기독교 신앙생활은 다 거짓이며 성령으로 되어지지 않는 것은 모두가 다 거짓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정통과 이단의 구분은 어떻게 할까요? 뭐 여러 가지 교리적인 어떤 것, 문자로 표현된 어떤 것들이 맞다 틀리다 등의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런 교리라든지 글로 된 어떤 선언 등 겉으로 드러난 표피적인 표현만 가지고서 구분하는 것은 많이 모자랍니다. 정통의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도 표현이 서툴러서 실수할 수도 있고 또 생각을 깊이 하지 않아서 그래서 잘못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잘못 말했다고 이단인 것은 아닙니다. 이단도 아주 말을 논리정연하게, 지극히 성경적인 것처럼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끌어다가 얘기하고 성경적인 것처럼 얘기를 한다 하더라도 이단은 정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단과 정통의 차이는 뭘까요? 이단과 정통의 차이는 바로 그 말을 하는 사람 속에 성령이 계시느냐 계시지 않느냐 혹은 성령이 계시느냐 악령이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이것은 본인이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성령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성도는 성령이 자기 안에 계신 것을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고 거꾸로 악령이 속에 있음에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은사 중에 영분별 은사가 있는데, 은사로, 이 사람의 속에는 지금 성령이 계신지 악령이 존재하고 있는지를 분별할 수 있을 뿐입니다. 어쨌든 모든 기독교의 신앙생활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고, 정통과 사이비, 진짜와 가짜 차이는 성령으로 말미암았느냐 아니냐, 그 근거를 가지고 얘기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성령강림주일를 맞이했습니다. 또한 감리교회가 정한 청년주일이기도 합니다. 이 날에 우리가 은혜 받을 말씀은 요엘 2,28-32입니다. 주신 말씀을 통해 성령강림절의 은혜가 모두에게, 특히 청년들에게 충만하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2. 먼저, 28절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를 봅니다.
성령강림절에 성령 받았던 베드로가 첫 번째 한 설교가 사도행전 2장에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120 문도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간절히 성령을 대망하며 기도하다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있고 그리고 각기 다른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방언을 받은 겁니다. 그 때에 천하 각국으로부터 이 명절을 지키기 위해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는데, 이 소리가 나니 사람들이 달려나와서 제자들이 자기들이 난 곳 방언 자기들은 멀리서 왔는데 여기저기 세계 곳곳에서 왔는데 자기들이 태어난 곳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라고 이상하게 여기면서 이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이고 우린 바데, 메대, 엘람을 비롯하여 세계 15개 지역으로부터 온 사람들인데 각기 우리가 태어난 곳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는 것을 듣는구나 하면서 당황해서 이 일이 어찌 된 일이냐고 말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기를 ‘이들이 아침부터 술에 취해서 그런다’는 그런 얘기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그때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서 기독교 역사상 첫 설교를 합니다. 벌떡 일어나서 ‘너희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이 일, 지금 우리에게 일어난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터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그러면서 말합니다. 때가 제 3시, 아침 9시니 아침부터 누가 술에 취해 있겠느냐고 하면서 사실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니고 이는 하나님께서 요엘 예언자를 통해서 미리 말씀하셨던, 예수님께서 언급하셨고 하나님께서 옛날부터 약속하셨던, 바로 그 일이라고 하면서 오늘 읽은 욜2,28 이하의 말씀을 언급합니다.
그래서 오늘 일어난 이 일은 옛날 하나님께서 요엘 예언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던 바로 그 일이다. 그렇게 얘기하면서 내가 마지막 때 내 영을 모든 백성에게 ‘부어주겠다.’ ‘만민에게 부어주겠다. 그래서 너희 자녀들은 예언하고 너의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환상을 볼 것이다. 그리고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고. 또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이적을 베풀 것인데, 피와 불과 연기로다’라고 하였습니다. 28절 본문의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가 말하는 때와 사건이 바로 이 성령강림사건이라고 베드로가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렇게 해석하여 설교했고 우리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또한,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라고 했습니다. ‘만민에게 부어준다’는 얘기는 그냥 별 뜻 없는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쇼킹한 그런 말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자기들만 하나님의 백성이고 나머지 다른 민족들은 전부 다 이방인이라 하면서 이방인을 마치 한 등급 아래 낮은 인간인 양 취급했거든요. 심하게 말하면 개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쳐주는 얘기에서, 식사를 하고 계신 예수님께 그 여자가 와서 자기 딸아이가 귀신 들렸는데 고쳐달라고 그랬더니,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주는 게 마땅하냐? 물론 예수님이 여자를 개 취급한 건 아니지만은 지금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표현한 겁니다. 그땐 이 여자가 대단히 놀라운 믿음을 가졌었습니다. 그래서 ‘주여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이 깜짝 놀랐습니다. 여자의 말이 뭔 말입니까? ‘나는 개 취급을 받아도 좋습니다. 주님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라도 얻어먹고 싶습니다’라는 말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기분 나쁘게 날더러 개라고 하다니 하면서 그냥 가지 않겠습니까? 물론 이 여자는 자기 딸아이가 귀신 들렸다고 하는 안타까운 그런 급박한 순간이기도 했었지만 주님에 대한 그만큼 신뢰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냥 ‘뭐 에이 드럽지만 참지’ 그런 게 아니고 정말 난 당신 상위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을 수 있는 개라도 되고 싶습니다. 바로 이런 얘기입니다.
그렇게 말할 정도로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아주 그렇게 차별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엘 예언자에게 하나님 주신 말씀이 후에 내가 내 영을 하나님의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그랬습니다. 유대적 사고방식에는 도저히 맞지 않는 그런 얘기입니다. 이건 바로 유대인들을 위한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그런 대목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알렐루야. 오늘 여기에 말씀드린 우리 모두도 바로 이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여기에 해당이 되어서 우린 이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지금 우리 이 시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 이후죠 성령님이 임하셨던 마가야 다락방 사건 이후 시대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설교한 거 보니까 이 약속은 모든 먼 데 사람, 모든 먼 데 있는 사람 곧 너희와 또 너희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 약속이라고 했습니다. 이 성령님이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해 주시는 이 약속은 바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 문을 열어주시고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 자녀가 되어줄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한 은혜의 조치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믿고 이 은혜에 감사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성령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3. 하나님이 나한테도 성령 주시겠다고 약속한 사람이다. 나는 약속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이 믿음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잊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주의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겠다고 하셨는데 그 다음 대목이 이렇습니다.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다.
성령의 임재가 일어나면 성령의 임재는 다양하기 때문에 성령님의 임재를 받은 자라면 반드시 이렇게 돼야 된다는 단정적인 어떤 표준은 없습니다. 한 가지로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주 다양합니다. 요엘 예언자는 뭐라고 했냐면 하나님이 약속하시기를 자녀들의 장래 일을 말하고 늙은이는 꿈을 꾸고 젊은이는 이상을 본다고 했습니다. 장래일을 말한다고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계획이 생긴다는 얘기지요. 자녀들이 ‘장래에 뭐가 될 거야.’라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요즘은 청년들이 꿈이 없는 시대라면서 아예 꿈꾸지 말라고 하고 꿈 얘기하지 말라고 할 정도잖습니까? 그만큼 살기 어렵단 말입니다. 근데 성령이 임하시게 되면 미래를 말하게 됩니다. 나의 미래를 말하는 그런 비전이 열리고 미래에 대한 꿈이 열리며 미래에 대한 포부를 갖게 됩니다. 늙은이는 꿈을 꾸게 된다고 했지요? 늙은이가 꿈을 꾼다는 얘기는 무슨 말입니까? 늙으면 저도 나이가 70이 됐지만 늙으면 꿈이 없어지잖아요.
오늘도 기도하기를 하나님 나 얼른 데려가 달라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늙으니 다 늙어서 인생 끝장나고 나는 이제 살 소망도 없고 아무런 여망도 없다라고 생각하던 나이 든 노인들에게 꿈이 생긴다는 겁니다. 뭔가를 해야겠다는, 뭔가를 주님의 손에 붙잡혀서 감당할 수 있다는, 그리고 해낼 수 있다는, 해내야 되겠다는, 하고 싶은 꿈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소망이 생긴다는 그런 얘기지요. 젊은이는 이상을 본다, 비전을 본다고 했습니다. 뭐 이상야릇한 그런 초현실적인 무엇을 본다는 뜻이 아니고 이상을 본다는 얘기는 아까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한다는 얘기와 거의 슷한 얘기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꿈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이 환상을 봅니다. 난 앞으로 이런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난 이런 존재가 될 것이라고 하는 그런 환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 받고 난 다음에 꿈을 갖게 됐습니다. 저도 18살에 성령 받아 은혜를 받고 난 다음에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그저 빨리 취직해서 돈 벌어서 고생하시던 어머니나 도움 줬던 형제들에게 그저 조금 도움이나 되면서 살아야지 하는 것이 꿈 아닌 꿈이었습니다만 성령 받은 후에 생각이 달라져 ‘날 위해 십자가 지신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받았는데 내가 어떻게 해 살아야 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다가, ‘하나님 제가 가진 것 없지만, 내 드릴 것이라고 하는 이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데 돈도 없고 뭐 다른 재주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이 몸뚱이 하나라도 주님이 필요하시다면 이 몸을 주님 앞에 바쳐 주의 일꾼이 되겠습니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꿈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40년 넘게 목회 생활하다가 은퇴까지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성령을 받아야 되느냐는 문제도 있습니다. 물컵에 물이 반 잔만 있어도 있는 거고, 가득 채워져 있을 수도 있는 겁니다.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영어 성경은 ‘filled with my Spirit‘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으로 충분하게 채워진다는 뜻입니다. 어린 자녀들이 장래 일을 아직 말하지 못합니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성령 받아야 됩니다. 늙어서 난 소망이 끊어졌다고 자포자기하고 하루하루를 그냥 시간만 죽이며 삽니까? 꿈이 꾸어지도록 성령 받아야 됩니다. 비전을 잃어버리고 그저 눈앞에 있는 땅만 내려다보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눈이 활짝 열려 장래에 대한 비전이 활짝 열려지기까지 성령 받아야 됩니다.
4. 29절입니다. “그때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며 내가 이 접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주님의 종 주님의 일꾼 사역자들에게 성령을 부으신다고 그랬습니다. 이전에 하나님의 영은 대표적인 사람이 삼손인데 일시적으로만 역사했습니다. 삼손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했더니, 하나님의 큰 힘이 일어나서 나귀 턱뼈 하나로 적군 2000명을 죽였고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게 ’크게 임하시니‘ ’힘 있게 임하니‘ 그가 일어나서 맨주먹으로 사자를 쳐 죽였습니다. 이게 다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하여튼 옛날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셨지만, 순간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이 오면, 내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 사역자들은 특별히 이 성령 받아야 됩니다. 사도행전에서 예수님께서 그랬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뭘 받고? 권능을 받고. 성령이 임해야 권능이 임합니다. 그리고 권능이 임해야 예루살렘과 온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될 수가 있는 겁니다. 주의 사역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모든 성도가 다 성령 충만을 받아야 되지만 특별히 주의 일꾼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될 수가 없습니다. 성령 충만하고 성령 충만한 상태의 사역자들은 벌써 보면 딱 분위기가 다르죠. 그런데 성령 충만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냥 지식으로만 경험으로만 경륜으로만 일하려고 그럽니다. 능력이 안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역사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고 했습니다. 똑같은 말이지만 말을 했을 때 사람의 마음을 찌르고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라고 하였습니다.
30절에는, 내가 하늘과 땅에 기사와 이적을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성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이며 남은 자 중에 나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했습니다. 우선 보면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까지 변한다. 그랬습니다. 구원과 심판은 항상 동시에 일어납니다.
그게 따로 일어난 게 아니고 하나님이 누군가를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신다 그러는 것은 곧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심판인 겁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 아닌 사람들한테 뒤섞여서 온갖 고난과 핍박과 박해를 받고 살고 있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때 백성을 구원하신단 말입니다. 하나님이 역사에 개입하신 겁니다. 개입하시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그것이 구원이지만 하나님 백성 아닌 사람들한테는 심판이 되는 겁니다. 바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른다고 하는 것은 구원의 날이 곧 불신자들에겐 두려운 날이 됩니다.
어려운 일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 땅에 이렇게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찌하여 이렇게 태풍이 불어오고 어찌 이렇게 폭우가 쏟아져서 막 떠밀려 내려가고 그럽니까?“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구원 방법은 다양합니다. 폭우가 쏟아지고 쓰나미가 밀려올 때 거기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나무 자락을 붙잡고 살아나게 하는 방법도 있고 아예 딱 막아서 안 오게 해서 살려주시는 방법도 있고 오는 가운데서도, 또 희생을 당한 가운데서도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법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우리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방법이거든요. 우린 이걸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나를 건지신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일이 어떻게 되어 들어가든 이건 나를 구원하기 위한 역사다 이것이 믿어져야 됩니다. 그렇게 믿어지려면 성령 받아야 하고 그런 믿음이 생겼기에 어떤 환경에서도 구원의 주님을 부를 수 있으며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크고 두려운 날이 우리 성도들에게는 바로 구원의 시간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성령님의 임재는 누구에게나, 만민에게 필수입니다. 하나님은 만민에게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이루어졌습니다. 지금 당신에게도 이루어졌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