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를 여행지로 꼽으라면 대표적인 관광지가 바로 전주 한옥마을이다. 전주역은 물론이거니와 버스터미널에서도 가까워 접근성도 뛰어나다 보니, 일주일 내내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바로 그곳 주변, 풍남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새로운 볼거리가 우리들 곁으로 돌아왔다. 관련 복원 소식은 전주에 있을 때부터 왕왕 들려왔지만, 코로나로 인해 전주를 찾지 않았던 그 사이에 모든 작업이 마무리되어 있었다. 한옥마을을 돌아보기 전,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이곳을 찾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주변은 죽어가던 상권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풍패지관과 한옥마을 그리고 신시가지 주변으로 몰리기 일쑤였지만, 2020년에 이곳이 복원되면서 활기를 불어넣을 요소가 생기게 됐다. 버스를 타고 전라감영을 찾으니 잘 다듬어진 신식 한옥과 담장이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다. 수백 년의 세월을 간직한 회화나무 거 우두커니 식재된 채, 그동안의 세월을 증명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저 멀리 보이던 교회의 표식을 되새기며 그 적막감이 감도는 공간으로의 발걸음을 시작했다.
1. 복원
굴곡진 그동안의 시간들은 결국 전라감영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만들어줬다. 그저 홀로 남아있던 회화나무 한 그루를 통해 흔적을 가늠해 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한국전쟁 당시 그마저도 남아 있던 건물들이 타버렸고, 그 자리에 전라북 도청이 들어섰다.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 1996년에 전라북도 청사가 오늘날의 자리로의 이전이 확정되며 본격적인 복원 계획이 논의에 들어간다. 하지만 바로 복원공사에 착공을 한 것은 아니었으며, 또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게 된다.
마침내 2017년, 전주시와 전라북도는 104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옛 도청사 건물들을 철거했으며, 수년간의 시간 그 끝에 1차 복원공사가 완료가 됐다. 2020년 10월 7일에 일반에 공개가 된다. 당시에는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는 없었으나 일반에 공개가 된 이후 야간개장은 물론이거니와 갖가지 문화행사를 통해 가치 창출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는 곳이었다. 게다가 해설사 분께서 항시 같은 곳에서 앉아 계셔서 필요하다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점도 돋보였다.
1차 복원이 된 다음 기사를 살펴보니 2030년까지 총 800억 원의 비용을 통해 서측, 남측 부지를 정말 복원한다는 계획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완료된 곳은 동측 부지로, 정자와 당시 관찰사가 생활하던 곳 그리고 업무를 보던 선화당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곳들만 돌아봐도 규모가 상당해 보였는데, 항상 풍패지관 객사와 전동성당으로 익숙했던 내게 전라감영의 존재는 익숙함 그 사이에 이질감이라는 묘한 조화로움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2. 관찰사
지방관의 기원은 고려시대 '안찰사'라는 직위부터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시대와는 달리 품계도 높지 않았으며, 근무할 수 있는 해당 관청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여러모로 한계점이 많았다. 중앙에서 지방을 통제하기 위한 노력은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었지만 조선 초기에도 큰 변화가 있진 못했다. 계유정난 이후, 세조대에 이르러서야 지방관에 대한 처우개선이 이뤄졌으며 이때를 계기로 모든 상황이 극적으로 바뀌게 된다.
지방 행정 체계가 8도로 고정되며, 관찰사는 종2품의 품계가 매겨졌고 임기는 총 2년으로 정해진다. 더불어 오늘날의 도지사와는 달리 지방의 행정, 군무, 법무 등의 모든 것들을 총괄했는데, 각 도 산하의 지방 수령들과 연계하여 일을 처리했다고 전한다. 전라감영의 경우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한 지방관이 감영 소재지인 전주부윤을 겸직했으니, 그 영향력은 가히 엄청났을 거으로 짐작이 된다. 하지만 산하 고을내에 어떤 문제가 터져 중앙정부로 보고가 올라가면 중간에 파직되는 일도 빈번했다고 하여 마냥 좋은 자리는 아니었다는 사실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8도 관찰사의 자리에서 가장 선호되는 자리는 평안도 감찰사의 자리였으며, 전라도와 경상도 감찰사의 자리는 인기가 없었다고 전한다. 예로부터 해당 두 지역은 지역색이 매우 강했으며, 문중과 서원이 많아 상당히 까다로웠다는 얘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날 각 지역을 대표하는 경상도의 서원들과 객사에 적혀있는 그 풍패지관의 현판을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이는 건 어쩔 수 없어 보였다. 현재의 지형도 그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으니, 그 지역색은 애써 무시하려 해도 어쩔 수 없는 건가 라는 생각이 절로 들며 말이다.
전라감영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건물은 관찰사의 집무실 '선화당'이다. 왕명을 받들어 교화를 펼친다 라는 의미를 지녔다. 옆에 자리한 정자는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그 존재를 눈에 바로 담을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없어 상당히 의외였다. 전주한옥마을과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없나 싶었으나 정작 정동성당과 전주향교 그리고 경기전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촬영이 힘들정도였으며, 조금만 더 상권이 확장됐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다른 감영들은 시간이 지나 위치를 옮기는 경우도 있었으나 전라감영은 조선의 개국과 동시에 518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전라도를 포함해 바다 건너 제주도까지 아우르던 전라감영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라도를 숱한 전투에서 굳건히 지키며 일본군의 계획을 틀어지게 만들었는데, 당시의 그 중요성을 담은 문구가 전라감영 정문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문득 이 넓어 보이던 공간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그 기록을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게다가 동학농민군이 전라도를 점령했을 당시에 전라도 관찰사를 통해 전주화약이 진행됐던 곳도 이곳이며, 점령지에 집강소를 설치해 관리를 하던 곳도 이곳에 두었다. 하지만 경술국치 이후 관찰사의 직급도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으며, 조선총독부가 발표한 관제에 따라 지방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졌다 전한다. 그렇게 돌고 돌아 우리들 곁으로 돌아왔으니 이제 사라질 일 없이 오래도록 그 모습 그대로 머물기만을 바라본다.
3. 회화나무
전라북 도청 예전 청사가 사라진 그 자리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회화나무는 지지대에 몸을 가눈 채 세월을 받아내고 있었다. 아래에서 그저 고개를 들었을 뿐이었는데, 맑은 하늘을 도화지 삼아 웅장한 사군자의 그것을 보는 것 같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서울에 올라오기 전, 태어나고 자란 곳이었지만 이토록 오랜 세월과 경외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날 수 있어 무한한 감사함을 보낼 수 있었다. 소음 하나 느껴지지 않은 곳에서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본다.
저녁에는 다른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밤의 전라감영은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크라임 씬'과 같은 공연도 진행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전주의 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줄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체험의 현장으로 활용될 예정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오래전, 20대 초반에 그 고요했던 한옥마을을 거닐었을 때가 생각이 났다. 방해하는 이 하나 없이 당시 친했던 사람들과 함께 다닐 수 있었던 추억이 생각나며 문득 그들이 무엇을 하며 지낼까 궁금해진다.
모든 순간을 마무리하고 전라감영 밖을 나설 때, 문득 저 멀리 자리한 십자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전주를 찾는 사람들이 꼭 들리는 관광지로 자리매김한 전동성당이 당시 진산 사건에 시부터 비롯된 천주교 최초 순교자가 발생한 곳이라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이번 여행에서는 깊이 다루지 못하겠지만 다가오는 연말과 겨울에 조금 더 해당 부분을 깊이 다뤄보고 싶은 욕심이 절로 생겼다. 다음 방문 때는 종교가 없는 내게 전주 여행의 테마가 천주교와 관련이 있어질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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